대학 동창인 상록수가 “형! 등산 한번 가자”고 권한다. 닉네임을 호산인으로 쓰고 있는 나는 한마디로 좋다고 응했다. 연신내역 3번 출구 안쪽에 오후 1시 20분까지 나오란다.
수원에 거주하는 나는 오전 10시 30분에 팔달구청 개청식에 참가를 하고 슬그머니 빠져나와 서울로 향했다. 사실 이른 새벽부터 북한산행을 위해 배낭을 꾸리고 차를 끓여서 미리 넣어두었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신명이 난다.
급하게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둘러매고 나오니 특급간선버스 8800번이 12분 후에 아주대정류장에 도착한다는 전광판 자막이 신통방통하게 나온다. 그렇다면 아슬아슬한 시간대에 도착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사실 단체행동에 시간을 어기는 사람은 공공의 적이다. 카톡 문자로 상록수에게 문자를 날렸다. 이제 급행버스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해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4월은 꽃피는 봄이라 상춘객이 많고 4일 5일은 청명. 한식이라 고향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선산을 찾는 미풍양속이 전해져 온다. 또한 식목일을 겸하고 있으므로 고속도로는 만원사례이다. 다행히 간이급행버스는 전용차선을 쾌속 질주함으로 기분이 좋다. 소풍가는 날은 언제나 신나고 설레인다. 이런 설램과 호기심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상록수는 벌써 독립문역을 지나고 있다고 카톡에 문자가 왔다. 잘하면 1시 20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문자를 날렸으니 상록수가 생각하기에는 ‘절대 못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나는 백병원 입구에 내려 쏜살같이 달려 을지로 3가역에서 3호선을 갈아탔다. 버스에서도 달리고 전철 속에서도 달렸다. 그런데 점심은 안 먹고 산에 오르나 싶었는데 산행 중간에 간식 먹는 시간을 준다고 한다. 배꼽시계는 밥 달라 하고, 오줌보는 터질 것 같다. 연신내 3번 출구 안쪽에는 등산복장을 갖춘 무리들이 보인다.
약 2년 만에 북한산을 찾았다. 초딩들을 서울로 초청하여 원효봉과 청와대를 견학시킨 게 벌써 2년 세월이 흘렀다. 4월은 본격 봄 채비를 하는 계절이라 산야는 폭죽을 터트린 듯 물감을 흩뿌린 듯 형형색색의 꽃들의 향연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밝게 한다. 지난 3일은 봄비에 꽃이 질세라 마음 졸이며 세계문화유산인 꽃대궐을 이룬 ‘화성’을 친구들이랑 소풍했다.
꽃눈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 헐벗은 나목에서 꽃부터 피는 매화, 생강나무, 산수유꽃, 목련, 개나리 등을 보노라면 신비 그 자체이다. 그래서 누구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희망을 노래하고, 봄꽃의 신비를 찬양하고 사진을 마구 찍는다. 봄은 남녘으로부터 오고, 낮은 양지쪽에서부터 차례로 온다.
북사 모임에서는 진카라 푸르나 삐악이 물결 해피 향기나 럭키 메트로 엉터리 감홍 팔팔 큰돌 굿맨 다이버 하얀이 아침햇살 청산 가리봉동꽁치 달리기 등등 별명인 닉네임을 부른다.
나는 박달마 라고 소개를 했다. 오늘의 산행 리딩 가이더는 ‘푸르나’라는 희말라야의 영원한 설산 안나푸르나에서 따온 닉네임을 사용하는 함박꽃 웃음을 선사하는 겸손한 여성이었다. 아마도 4월 북한산의 함박눈은 희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신비를 오늘 북한산 산행에서 맛보게 했나 보다.
북사에는 일정기간 이상의 참가와 산행능력을 보고 중간 리더를 양성하여 모임에서 봉사정신과 책임감 등을 고양시키는 가 보다.
첫산행의 대업을 맡아서 함으로 회원들은 케익을 사고 꼬깔 모자를 씌워 축하를 해주고 인사를 하게 했다. 그 이후 케익을 나누어 먹고 산행하기 전에 간단한 준비체조를 회장인 럭키는 시켰다. 물결님의 체조 구령이 우렁차다.
사실 산행은 언제나 위험요소를 동반하는 입산의 행위임으로 몸과 마음을 낮추고 자연에 순응하는 섭리를 배우러 등산한다. 집에서 방콕 신세로 편하게 TV나 보면서 지낼 수 있으나 등산인은 집에 있으면 근질근질 하여 이산 저산 구름 따라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요산요수(樂山樂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건강은 좋아지고, 자연에 대한 경건함과 경외감은 생기게 된다. 어디 자연에서 배우지 않은 것 들이 있는가? 그래서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다.
오늘의 등반 코스는 진관사 둘레길 삼천사, 응봉능선(김신조 루트), 승가사 뒷 사모바위, 승가사에서 구기동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진관사는 신라 원효스님이 창건한 절로 현재 비구니들만이 수행정진하는 도량이라고 한다. 삼천사도 원효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일찍이 원효스님은 지금의 화성 당성에서 득도했다. 의상스님과 구법을 위해 당나라에 가기위해 신라의 서라벌에서 상주-문경-충주-보은-용인-수원-화성을 거쳐서 왔을 것이다. 그 길이 요즘 원효트레일이라고 지자체장들이 ‘평택이다. 화성이다’를 아전인수식 주장하는 웃기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밤에 아주 맛있게 마셨던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겨있었다. 원효스님은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했다.
아마도 삼천사는 삼천명의 승병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곳쯤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에서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승병을 조직하여 적에게 대항하고 결사항전을 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 스님 등이 기억에 남는다.
봄산은 기온이 상승하면서 성큼성큼 다가 온다. 개화시기가 늦을 거라던 벚꽃이 만발을 했다. 봄은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꽃, 매화, 돌단풍,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앵두꽃, 조팝나무 등을 차례로 피워낸다. 꽃들에게는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와 모습이 있다. 그래서 신비롭고 예쁘고 자꾸만 눈이 간다.
가리봉동꽁치라는 닉을 쓰는 분이 찍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아침을 제대로 못했기에 걱정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상록수의 말을 위안 삼았지만 진관사 입구에는 대학생들이 비빔국수를 만들어 공짜로 시식을 시키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얼른 들어가 종이컵 하나를 먹으니 시장이 반찬이니 맛있었다.
진관사 입구 북한산 둘레길에는 쑥이 지천에 쑥쑥 올라오고 있다. 삼천사 입구에서 다시 산행 이정표를 따라 응봉능선에서 사모바위 쪽으로 오르니 처음에는 경사가 있었다. 코브라가 바짝 약이 올라 벌떡 선 모양도 있고 강철줄을 묶여져 있어 산맛과 산멋이 있는 곳이다.
이 정도쯤이야 하며 관록을 믿으며 오르는 데.... 산은 연습과 평소 애산 경험을 그대로 평가받는 냉엄한 현장이다. 어라 큰 바위를 오르는데 갑자기 오른 다리 종아리에서 쥐가 났다. 낭패이다. 어쩐다. 부끄럽다. 호산인을 닉으로 안 쓴 게 그나마 다행이다.
능선에서 적당한 평지에서 간식을 먹었는데 그게 오늘의 산행 중 점심이다. 나도 밑자리를 꺼내서 멍석으로 제공하고 앉는 의자를 꺼내어 앉으니, 북사 회장인 럭키가 다가와 어서 신발을 벗으라며 쥐난 부분에 맛사지를 해주며 파스를 뿌리니 한결 좋아졌다.
푸르나님이 단호박 스프를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왔다. 종이컵에 한 컵을 받아먹고 김밥 몇 점을 먹었다. 상록수가 제주도 출장 길에서 사온 쑥빵에는 팥이 많이 들어있고 쑥내음이 물씬 나는 달지는 않은 빵떡이 맛있다. 이제 제대로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쪽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거대한 암릉의 자태가 기운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출발할 때 내린 비가 눈으로 변하여 북한산 정상부위에는 환상적인 상고대가 피어났다.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 순간을 놓일 새라 사진찍기에 분주하다. 멀리 고양 땅에는 검은 구름사이에 서광이 빛나고, 유유한 한강은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4월 날씨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함박눈이 오더니 싸락눈으로 변하여 북한산을 한 폭의 수묵화로 순식간에 변하게하는 마술을 부렸다. 이런 자연현상에 감탄을 연발하며 모두들 기분이 고무되고 얼굴이 환해진다.
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해 있다. 풍광 좋는 곳에서 '북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카페 현수막을 펴고 능선을 배경으로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햇살의 따사로움은 없는 날이었지만 새봄의 움트는 기운과 삐쭉삐쭉 올라오는 새싹을 보며 살아있음을 고맙게 생각하는 산행하기 딱 좋은 하루였다. 모든 생명체는 움직이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 또한 모든 생명체는 살기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다. 능선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보면 그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점심 먹을 때 가리봉동꽁치가 앉아있는 뒤쪽으로 연분홍 진달래의 자태가 아름답고 눈부신다. 먹는 것을 식도락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 보다 큰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북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http://cafe.daum.net/sanday 북사)모임은 서울에 천하명산이 북한산이 있는데 뭐하러 굳이 멀리 까지 가느냐는 식의 북한산의 품격과 자랑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라고 추측해본다. 회원이 3000명이 넘고 약 300명이 활동하고 한번 산행에 약 150명 정도가 참가한다니 파워카페이다.
오늘 산행 코스인 응봉능선이 유명한 것은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군부대인 114군부대가 청와대를 급습하기 위해서 야밤에 내려온 코스가 진관사 뒤쪽 능선이다. 하루 밤에 약 30~40km이상 산악지대를 이동하는 특수부대 군인들이다.
당시에는 북한이 우리보다 더 높은 경제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던 시대였으니 우리나라는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산행 중에 1968년도에 태어났는냐고 어는 회원에게 물으니 갓난 아이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날 이후 예비군을 창설하여 "일하면서 싸우자! 우리 고장은 우리가 지킨다!"는 안보의식을 높이는 계기였다.
이윽고 능선에 도착하니 사모바위의 모습이 정말 의젖하다. 누구를 사모하다가 기다리다 지쳐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장원급제하여 사모관대를 갖춘 선비가 쓴 모자같다.
바로 옆에는 비봉의 진흥왕순수비로 통일신라의 영토를 표시했으니 이 코스가 호국애국을 다시 꼽새기는 계기가 아닐까? 예전에 나는 일요일 새벽 6시 올림피아호텔 건너편에서 친구랑 만나 거북바위와 일선사 대성문 대남문 보현봉을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에는 아침 7시부터 북한산 입장료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친구랑 새벽 일찍 하루를 산에서 멋진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는 가족을 돌보며 보냈고, 야간 등반으로 산정기를 시험(?)했더니 아내도 튼튼한 남자로 인정했던 것 같다. 등산을 좋아 하는 사람들에게 산이 주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수연무작(髓緣無作)으로 유유상종(類類相從) 만나서 살게 된다.
확 트인 곳에서 보니 북한산은 과연 천하명산 중에 하나다. 설악산 다음이 북한산이라고 어느 회원이 말했다. 남산인 목멱산과 관악산 우백호인 인왕산과 안산이 야트막하고 그 넘머 한강이 유유히 흐르니 축복받은 땅이 아닌가. 오늘이 식목일인데 나는 마음으로만 식목과 육림의 중요성을 새긴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이 나무를 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승가사 아래 예전에 없던 큰 사찰이 자연과 불일치를 이루고 있다.
산중의 기도도량들이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癡)를 벗어나고자 하는 데 어쩌자고 자연을 거스르는 큰 규모의 사찰과 건물들이 마구 짓는다. 예로부터 우리 건축물은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검이불루(儉而不陋 ) 화이불치(華而不侈)"를 기본 개념으로 지었는데 이제는 제일 크고 높게 화려하게 짓는 경향이 있어 조화와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
특히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을 살펴보면 어떻게 새장 같은 아파트로 강변을 다 막아버렸는지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10년은 젊어진 것은 같은 오늘 산행을 끝냈다. 뒷 풀이로 북사모는 오전 산행팀과 1차 삼겹살집을 같이 가서 오늘의 첫임무를 무사히 수행한 푸르나에게 꽃다발을 받치고 박수로 격려를 했다.
2차 생맥주집까지 꼬불쳐 놓은 발렌타인 21년 양주를 갖고 온 상록수와 누군가 가져온 와인, 박달마를 축하해주기 위해서 늦게라도 와준 감홍님께 감사를 드리며, 내 평생 처음 마셔본 진카라님의 진달래꽃술이 잊을 수 없는 산행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자연 속에서 봄꽃을 보며 호쾌한 북한산 정기를 듬뿍 받은 멋진 하루였다. 감사하다.
산노래 '산처럼 살리라'를 선사한다. http://www.withmt.com/comm/skin/board/movie/movie.php?bo_table=movie&wr_id=17
박달마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