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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삼국지 97
(소설 삼국지 )
제1권 천하대란
제1장 세마리 잠룡
1. 조맹덕 :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청명한 날씨였다. 며칠간 황사바람이 거리를 휩쓸더니 모처럼 날씨가 맑았다. 춘삼월의 햇볕은 길었고 맑은 날씨를 맞아 집 밖을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붐볐다. 골목 어귀에서 한 사내가 나타났다. 깡마른 체격에 그다지 크지 않은 키였지만, 무언가 뿜어나오는 기가 느껴지는 뭇사람들 중에서도 한눈에 시선이 가게 하는 사내였다. 사내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 장을 보는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나와 사거리에 우뚝 섰다. 날렵한 몸매에 움직임이 가벼웠다. 짙은 얼굴빛에 각진 얼굴, 깊게 패인 볼주름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뒷짐을 진채 무엇을 생각하는 듯 몸을 다소 구부리고 있었지만 자신감이 과하여 오만해 보이는 행동거지며 걸치고 있는 화려하게 수를 놓은 비단 옷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사내였다. 잠깐 멈칫하는 사이 누군가가 그이 등을 탁하고 쳤다.
“아만(阿瞞)아. 오래 기다렸느냐? 형님 오셨다.”
무리 속에서 불쑥 비집고 나온 사내 역시 비단 수를 놓은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는데, 높은 관은 삐딱하게 쓰고, 허리띠는 비스듬히 늘어뜨린 것이 겉멋이 잔뜩 들고 건들건들한 모양새였다. 얼굴이 기름한데 살짝 얽었고, 낯빛이 누런 것이 죽어있었다. 눈은 반쯤 내리깔고 사람을 내려보는 것이며 입꼬리가 비죽 올라간 품이 남을 얕잡아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만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획하고 돌렸다. 자신의 몸에 손을 댄 무례한 자를 위협하는 듯 쏘아보았다. 순간 번뜩이던 안광이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날카로운 눈초리가 가볍게 흔들리더니 실눈을 짓고 파안대소했다. 표정의 변화가 빠르고 풍부했다.
“자원(子远)인가. 예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네.”
아만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이름은 조조, 패국 초현 사람으로 자를 맹덕이라 했다. 그는 환제시 중상시 대장추를 지낸 조등의 손자였다. 조등의 아버지는 조절로 평범한 백성이었는데 먼 조상은 한고조의 한나라 창건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건국공신 상국 조참의 후예라고 했다. 조등은 어려서 황문에 들어가 4대에 걸쳐 황제에게 봉사하면서 벼슬이 환관으로서는 최고위직인 중상시 대장추에 이르렀는데, 대장추는 당시 각료급 직위였다. 환, 영제 시는 환관들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서 실질적으로 환관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은 외척과 사족을 능가했다. 당시의 최고 권력자는 중상시 장량이었고, 조등은 장량의 전임자였으므로 조등 또한 환제 시절에 권력과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었다. 그러나 조등은 장량 등의 무리와는 달리 심성이 진중하고 업무에 실수가 없어서 황제의 신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족들을 추천하여 벼슬길로 나갈 수 있게 하여주었고, 남을 훼방하고 중상하는 일이 없어서 환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족들 사이에서 비교적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진류(陈留) 사람 우방(虞放)、변소(边韶)、남양(南阳) 사람 연고(延固)、장온(张温)、홍농(弘农) 사람 장환(张奂)、영천(颍川) 사람 당계전(堂谿典) 등을 추천했었는데 이들은 모두 다 지위가 공경에 이르렀다. 조조의 아버지 조등은 원래 성이 하후씨 였다고 했다. 그래서 조조에게는 조씨 말고도 하후씨 사촌들이 많이 있었다. 하후씨의 조상 역시 한고조가 패상에서 몸을 일으킬 때, 그의 마부 출신으로 한의 개국공신인 하후영이라고 했지만, 사백여년 이나 지난 일이라 기실 그 뿌리는 알 수가 없었다. 조등은 그저 그런 인물로 아버지의 후광과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덕에 가끔 벼슬 길에 나아갔지만 그저 가문의 재산과 권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지 관직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조조가 이미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후에 무려 일억전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내고 삼공 중 최고의 지위인 태위 벼슬을 사 낙양에 물의를 불러일으킨 일 말고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조조는 벼락 출세한 신흥 벌렬 가문 출신이었다. 그것도 내놀만한 사족가문들로서는 버러지만큼도 취급해 주기 싫어하는 환관 출신의 가문이었다. 어마어마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어도 환관 출신은 한문이었지 명문 출신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버지 조숭이 그저 주색계나 좋아했지 자식 교육에도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 받지 못했다. 돈은 쓰고 넘칠 만큼 있겠다 아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배경도 있겠다 거기다 품성교육도 엉망이니 조조가 소싯적에 할 일은 뻔할 뻔자였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임협방탕하게 놀기를 좋아했다. 비슷한 부류의 소년배들과 패거리를 지어 어울려 다니면서 놀았다. 매를 날리고 사냥개를 달려 사냥과 도박을 즐겼고, 여염집과 주루를 드나들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다.
당시의 농업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단순했다. 관직을 얻거나 농사꾼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기능공이나 상인이 될 수는 있었지만 이런 직업들의 사회적 지위는 농민보다도 더 비천했다. 사족이나 권문의 자제들은 학문과 수양에 힘써 벼슬길로 나아갈 때에 대비하고, 평민의 자제들은 부형을 도와 농사일을 돕다가 나이가 차면 가정을 꾸려 성실히 생업에 종사하면 그만이었다. 인구가 과소했으므로 땅은 지천으로 있었다. 기력이 뻗치고 야심이 만만한 젊은이들에게는 다 직성이 풀리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학업과 생업에 충실하지 않은 부류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었고 이들은 패거리를 지어 작당하여 방탕하게 놀면서 풍속을 어지럽히거나 국법을 위반해 이익을 쫓으면서 뭔가 크게 한탕할 기회를 옅보았다. 이런 부류들을 소년 또는 악소년이라고 불렸다.
황궁이 있는 낙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름난 명문세족과 권문이 즐비한 낙양이다 보니 힘있는 가문 출신의 임협방탕한 소년배들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기실 이들 중에는 명문의 자제로서 남을 이끌만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조신하게 품행이나 닦고 글방에 틀어밖혀 새하얀 얼굴을 하고 있기에는 기력이 넘쳐 다만 힘을 주체하지 못해 일시 방탕하게 노는 이들도 있었다. 원소, 원술, 장막, 포신, 허유, 오습, 오경 등이 다 이런 자들이었는데 비슷한 부류를 모아 두목 노릇을 하면서 서로 간에도 함께 어울렸다. 한문이나 평민 출신의 자제로서 나름대로 담력도 있고 재주는 있으나 집안이 한미하여 벼슬을 바라볼 처지에 있지 않은 소년들은 이들 명문가의 자제들을 따라다니며 심부름도 하고 노는 일과 못된 일을 함께 했다.
조조도 이들 소년배의 보스들 중의 하나로서 낙양에서 원소와 더불어 양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원소는 사세삼공의 명문가 자제인데다가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고 행동거지에 위엄이 있을뿐더러 아랫사람들에게 절도가 있었으므로 많은 사족의 젊은이들이 그들 따랐다. 가문이나 인물로 볼 때 조조가 도저히 원소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조는 눈치가 빠르고 기민할뿐더러 권모술수에 뛰어났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교활하다고 할 정도로 명민했다. 그의 교활함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조조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좋아하고 학업에 열중하지 않자 그의 작은 아버지가 자주 아버지 조숭에게 일러바쳐 혼이 나게 하곤 했다. 이를 골치 아프게 생각한 조조는 어느 날 하루 꾀를 내었다. 길거리에서 놀다가 그의 숙부가 나타나자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숙부가 무슨 일인지 묻자, “갑자기 풍을 맞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숙부가 큰일 났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조숭의 집을 찾아가 빨리 조치하라고 말했다. 조숭은 크게 놀라 조조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와 보니, 조조가 멀쩡한 얼굴로 태연자약하게 놀고 있었다.
“풍을 맞았다더니 그새 다 나은 것이냐?”
조숭이 급히 묻자, 조조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풍은 무슨 풍입니까? 평소에 작은아버지가 저를 싫어하시니까 없는 일도 지어내어 말하신다니까요.”
이 일이 있은 후로는 작은아버지가 무슨 말을 해도 조숭은 믿지를 않았다. 가뜩이나 자식 문제에 관심이 없는 조숭이었으니 자꾸 와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동생이 귀찮기도 해서 들은 채도 안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론 조조가 아무렇게나 놀아도 제재하는 이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도 꾀가 이 정도였으니 나이가 들수록 더욱 술수가 교묘해지고 영악해진 것은 불문가지였다. 조조가 비록 학업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아주 배움을 내팽개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시의 학풍처럼 옛 고전을 읽고 구문을 외우고, 자구 하나하나를 파고들어 해석하는 식의 고리타분한 공부를 싫어했을 뿐이었다. 책을 좋아해 당시 유행하는 형명학뿐만 아니라 유교의 고전들과 시문들을 두루 읽었다. 특히 병가의 서적들과 사서들을 좋아했다. 다만 슬쩍 보아 요체만 파악할 뿐 자구에 매달려 깊이 파고들려하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놀기에 바빠 그럴 시간도 없었고..... 감수성도 풍부해 제법 아름다룬 시구를 지을 줄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성년이 될수록 조조의 지략은 더욱 발전했다.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읽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았다. 배짱이 두둑하고 기회 포착에 기민했다. 조조는 원소의 패거리와 어울려 놀면서 악행이든 선행이든 지질 않았다. 원소는 겉만 그럴 듯 했지 과단성이 없었고, 꾀를 내기는 좋아하나 실행력이 없었으며, 혼자 잘나서 남들이 자기보다 잘난 꼴을 못 보았기 때문에 남의 좋은 의견을 진심으로 경청하지도 않았다. 점차 원소보다 조조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조조의 주변에 더 많은 소년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장막이 바로 조조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장막도 명문가의 자제로서 젊어서 협기로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었다. 원소하고도 절친했으나 마음으로는 조조를 더 높이 평가했다. 원소는 조조를 시기하여 사람을 매수해 조조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 사이에 그를 해치려고 한 적까지 있었다. 물론 이로 인해 원소의 속좁음과 용렬함만이 드러났었지만...
조조 앞에서 지금 거들먹거리고 있는 친구가 바로 이런 소년배들 중의 하나인 허유였다. 허유는 일찍이 지모와 계략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정보력도 뛰어났다. 그렇지만 재물과 여색을 밝히는 등 품행이 좋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과시적이어서 같은 부류들에게는 명성보다는 오명이 높은 편이었다. 다만 그 꾀를 이용하고자 원소나 조조가 함께 어울리는 사이였다.
조조는 허유의 옷깃을 잡아끌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 공조(功曹) 건은 잘 조치해 두었겠지.”
“과히 염려 말게. 내가 미리 잘 이야기해 두었으니까. 뭐 그렇게 까지 신경 쓸 거야 있겠나 싶겠나마는......”
여전히 건들거리는 폼으로 심드렁한 자세였다.
이들은 지금 여남군에서 공조 벼슬을 하고 있는 허소(许劭)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허소는 자가 자장(子将)으로 여남(汝南) 평여(平舆) 사람이었다. 공조라는 벼슬은 일개 군리로서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칙임관은 아니었다. 군정의 전반적인 살림과 소속 현과 현리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나 허소는 벼슬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낙양의 사족들 사이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명사였다. 젊어서부터 우수하고 절조가 있다고 이름이 있었으며, 특히 지인지감이 있어서 인물평으로 유명했다.
당시에 환로에 나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조정의 중신들이나 지방의 자사, 태수들에게 효렴이나 무재로 추천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추천을 받기 위한 단계로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특출하다고 알려진 명사들에게 인물평을 좋게 받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추천에 의해 관직을 얻지만 추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추천한 사람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평소에 품성이나 자질을 잘 아는 집안사람이나 제자가 아닌 담에야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청탁을 받았다 해도 쉽게 관직에 천거할 수는 없었다. 추천받은 자가 반역죄면 추천한 자도 반역의 죄로, 추천받은 자가 죽을 죄를 지으면 추천한 자도 같이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추천 한 번 잘못했다가는 패가망신할 수 있는 일이었기
이럴 때 사람을 잘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을 지닌 사람이 대신해서 관직후보자에 대해서 품평을 해준다면 상당히 부담을 덜어줄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제도로서 자리잡은 것이 인물평이었다. 당시에 가장 이름있는 인물 감상가는 남양 사람 하옹과 여남 사람 허소였다.
특히 허소가 유명했는데 허소는 그의 형 허공과 함께 매월 인물에 대한 짧은 평가를 발표했는데 이들이 여남군 에 거주했기 때문에 여남월단평이라 했다. 웬만한 인물은 아예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평가의 대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호평이라도 받게 되면 사람의 값어치가 백배나 뛰었기 때문에 출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허소에게 평가 한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명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허소가 이름을 얻은 것은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공정하게 본대로만 말하고 격이 낮은 사람들은 상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야심이 있었다. 권력도 있는 집안이고 돈은 넘치도록 많았지만, 그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내시의 양자의 아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보기 쉽지 않은 배경이었다. 양자의 아들도 제대로 인정받기 쉽지 않은 사회에서 모두의 지탄 대상인 내시의 양자의 아들까지 겸했으니 남들의 멸시와 비아냥거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조가 소싯적에 더 야단스럽게 놀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당시의 주류사회인 사인 계급에게는 조조가 아무리 덕행을 쌓고 학업에 정진해도 인정받기는 어차피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관직을 더욱 원했다. 한 고을의 수장 정도로 시작하여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서 군 태수 정도가 되어 누구보다도 더 잘 정사와 교화를 베풀어 자신을 업신여기던 선비들에게 보아란 듯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러려면 출발이 좋아야 했다. 게다가 이미 어울려 놀던 원소나 장막 등도 이미 다 출사를 하지 않았던가. 은근히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기를 높게 평가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할아버지 조등이 추천해 중에 공경에 이른 이들이 많았었다. 조조의 가문은 이들을 통해 당시 태위 벼슬을 하던 교현과 세교가 있었다. 교현은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세상에 이름이 있었으나 당시 삼공 중에서도 최고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인물평은 하지 않고 있었다. 조조는 집안 어른의 소개를 받아 교현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와 몇 차례 교류를 했었다. 교현은 그 때 조조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은밀히 조조에게 이야기했다.
“장차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인데 정말로 뛰어난 인재가 아니면 세상을 구해 낼 수 없을 것이네. 이를 능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네뿐일세.”
또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천하의 명사를 많이 보아왔지만, 자네만한 사람은 없네. 나는 늙었으니 앞으로 내 처자식을 자네에게 부탁하겠네.”
그러면서 교현은 조조에게 아직 명성을 얻지 못했으니 허소와 교류를 쌓도록 권유했다. 허소가 조조의 숨은 재능을 알아봐 공식적으로 발표해 준다다면 조조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조조가 청을 넣어 허소와 교류하고자 하였으나, 허소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조조같이 악평을 듣는 사람과 어울린다면 자신의 명성에 손상이 갈 것을 우려해서였다. 허소는 조조에 대해서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기이한 재주가 있지만 출신성분이 너무 나빴다. 게다가 행실도 조신하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그에 대한 인물평을 한다는 자체가 자신에 대한 사족들의 인망을 해할 수 있었다. 오기가 난 조조는 허소의 약점을 잡고 그를 협박했다. 그 심부름을 해준 것이 허유였던 것이었다. 허유는 허소의 먼 친척뻘이라 교분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허유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조조를 끌고 들어가 한 좁은 골목 앞에 세웠다. 옆골목과 다름없이 평범한 곳이었지만 일산을 두른 수레들이 골목 입구를 비좁게 메우고 있었다. 다 허유를 찾아 멀리 지방에서까지 온 사람들의 행장이었다.
“이 골목 왼쪽으로 세 번째 문이 허소의 집이네. 미리 귀뜸을 주었으니 바로 만나 줄 걸세. 자. 나는 다른 일로 바빠서 이제 그만...”
허유는 하던 말도 다 마치지 않고 다시 인파 속으로 휘적휘적 사라져갔다.
허소의 집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평소에 집주인의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듯 특별히 꾸미거나 장식하지도 않았다. 동자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내실로 안내되었다. 한식경이나 앉아서 기다리자 드디어 허소가 나타났다.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흰색 모시 창의를 입고 머리에는 두건만 썼다. 나이는 불과 서른 남짓했으나 얼굴빛이 맑고 단정해 학과 같은 풍모가 있었다. 상견례를 대충 마친 후 서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후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감정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마뜩치 않은 표정이었다.
조조가 먼저 몸을 낮추었다.
“교공의 가르침을 받아 찾아왔습니다. 삼가 가르침을 원합니다.”
우선은 태위 교현의 이름을 팔아 상대방의 입을 열어보려 했다. 허소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조조가 재차 삼차 물었으나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나같은 사람은 품평의 대상이 될 가치도 없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너희들 청류니 명사니 사족들이니 하는 것들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단 말이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 잘 받아 교양 있고 세련된 것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저 스스로 잘난 것이나 이루어 논 것도 별반 없으면서 괜히 남을 무시하고 깔보며 그 것이 무슨 자신들의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의양대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멸시하는 부류가 바로 뿌리 없이 벼락출세하거나 당대에 입신하여 권세와 부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가문의 전통이 없다보니 소싯적에 훌륭한 가르침이 없어 세련됨이 부족하고 혈혈단신 바닥부터 헤집고 올라가자니 약빠르고 이악스럽고 권력가에 아부도 잘하는 것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사족들에겐 이런 것이 다 경멸의 대상이었다. 특히 조조의 집안처럼 사족들이 벌레처럼 싫어하는 환관의 집안인 데다가 출신도 알 수 없는 천한 것이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는 것을 가장 꼴을 보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언감생심 당대 최고의 명사의 품평을 받아 청직에 나아가겠다고? 안 되겠지. 기실 자기들끼리야 말로 문생고리로 이어져 끼리끼리 효렴입네 무재네 하면서 돌려가며 추천해 대대로 관직과 특권을 보장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별반 내세울 것도 없는 것 아닌가? 내 언젠가 실력과 업적으로 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리라. 조조는 울컥하는 것을 참고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았다.
“제가 듣기로는 인물평으로 세간에 명성을 얻은 이들은 단지 지인지감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 평가가 추상같이 엄정하여 그의 품평을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가 벼슬이 낮고 한미한 가문 출신임에도 명사로 받들어 존중하는 이유는 그의 인물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있는 사실 그대로 엄정하고 추호도 사심이 개입되지 않음을 세상 사람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 명망을 쌓은 이가 권문의 위세와 재물의 유혹에 굴복하여 있는 사실을 비판하지 않고 좋은 면만 부각하여 평가를 했다는 사실이 세인에게 알려진다면 어찌될지는 알고 계시겠지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원공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오. 허유에게 들은 것이 있소.”
허유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약간 짜증나는 듯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원공의 일이란 원소가 복양령을 마치고 낙양으로 귀경할 때의 사건을 말한 것이다. 원소는 이미 낭중에 임명되었다가 약관의 나이에 복양현의 현령으로 부임했었다. 사세삼공의 든든한 배경에다가 인물 잘났고 배짱 또한 두둑했으니 사족계급의 자제들 중에 따르는 이들이 구름처럼 많았다. 허소도 이런 원소를 평가하기를 장차 나라를 책임질 동량지재라 극찬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원소가 복양에서 낙양으로 돌아올 때 주변의 수많은 인사들이 무리를 지어 그를 전송했다. 배웅하는 마차가 길게 늘어서 관도를 메울 지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관내외의 인사들이 전별금으로 내어놓은 재물과 선물들을 실은 수레가 한참 뒤를 이었다. 개결한 선비라면 비판하고 비판받아 마땅한 상황이었다.
일행이 여남 경내에 이르자 원소는 손님들과 작별을 고했다. 마부 하나만을 제외하고 다른 수행원들과 짐수레들은 다 길을 멀리 돌아서 가도록 했다. 여남에 사는 허소의 날카로운 필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에게 명망을 얻는 일에 많은 공을 들여온 원소로서는 허소의 비판적 평가에 의해 그의 위명이 손상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속을 허소가 아니었다. 원소의 귀행길 이야기는 허소에게도 전달되었고, 허소는 그의 형 허공과 의논하여 여남월단평에 원소에 대한 재평가를 게재할 생각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엄청난 압력과 회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차 나라를 국난에서 구할 큰 인재를 작은 실수를 가지고 폄하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때 갖은 협박을 전달한 사람 중의 하나가 허유였다. 집안 친척임으로 핑계로 찾아온 허유는 허공형제와 집안 사람들의 앞날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고 은근히 공갈치면서 거절하기 어려운 뇌물공세를 펼쳤다. 공과 나만이 아는 일이라면서... 결국 허소는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이 자는 어떤 자란 말인가? 그의 재주와 품행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이 자가 그런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해서 허유가 그 대단한 원소와 관계된 일임에도 이 자를 위해 배신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이 알고 싶소?”
마침내 허소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오.”
허소가 내뱄듯이 말했다.
“하하하하.”
조조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나왔다.
다음 달 허소의 월단평에 낙양의 화제가 되었다. 비록 뉘앙스는 애매했지만 조조에 대한 허소의 평가는 낙양의 벼슬아치와 선비들이 모두 크게 놀라워하기에 충분했다. 품행이 안 좋고 경박스럽기로 유명한 조조가 치세의 능신감이라니. 적어도 지금은 난세가 아니었고, 난세가 곧 올 것이라고 누구도 함부로 입을 놀려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고위 관료들의 조조에 대한 인식은 크게 일신되었다. 조숭의 집요한 뇌물공세와 교현의 은밀한 권유도 있었지만, 주로 허소의 인물평에 힘입어 상서우승 사마방이 조조를 천거했다. 상서우승은 황제의 비서실 부실장쯤 되는 자리였으므로 그의 추천은 단번에 효력을 발휘했다. 조조는 낙양령 자리를 강력하게 희망했다. 수도 서울의 행정책임을 맡아 한번 멋들어지게 능력을 발휘해 자신을 멸시해온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발령과정에서 인사담당부서장인 선부상서 양곡이 조조가 출신이 나쁘고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끝까지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마방이 중재하여 낙양북부위로 임용 명령을 받았다.
사마방과 조조 간에는 한 가지 일화가 전해 온다. 사마방은 나중에 조조의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우는 기초를 마련한 사마의의 아버지였다. 물론 이때 사마의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후일 조조가 중원을 제패하여 위왕이 되었을 때 이를 자축하기 위해 손님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이 때 오래간만에 사마방을 만난 조조가 술김에 물었다.
“사마공. 지금도 내가 일개 부현급의 현위나 할 사람으로 보이오?”
“이 노인네가 볼 때, 그 때는 대왕께서 낙양북부위 자리에 딱 적임이었습니다.”
조조가 크게 웃었다고 한다.
조조가 낙양북부위로 임명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낙양 북부는 황궁이 관할 구역 내에 있었다. 궁중의 권세가들과 그들의 친척들이 많이 살았다. 특히 정권을 농단하다시피하고 있는 고위직 환관들의 사저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권력있는 환관들 뿐만아니라 그들의 집안사람들도 모두 안하무인이었고 법을 어기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천자가 거주하는 지역이니 만큼 어느 곳보다도 금령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다. 이 지역의 치안책임자로서 낙양북부위는 금령을 못지키면 큰 벌을 받았고 지키게 하자면 당장에 반발을 사 자리를 부지하기 어려웠다. 권력을 쥐고 있는 내시들에게 한 번 잘 못 찍혔다간 벼슬자리는 고사하고 졸지에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 터였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골치아픈 자리이다 보니 누구도 그 자리에 임명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조조는 환관, 그 중에서도 최고 우두머리인 중상시의 집안사람이니 ‘너희들끼리 한번 잘해 봐라.’ 라는 것이 사인계급 출신의 관료들의 태도였던 것이었다.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조조는 낙양이 발칵 뒤집어지는 대형 사건을 저질렀다. 당시 최고의 권력가, 십상시 중 하나였던 건석의 숙부를 몽둥이질을 해 때려 죽인 것이었다. 도성에서는 통금제도가 실시되었는데 밤 이경이 지나면 아무도 거리를 나다닐 수 없었다. 조조는 밤이 되면 북부위 관할 구역 곳곳에 관문을 설치하고 관문위에는 오방색을 칠한 곤봉을 좌우 다섯 개씩 걸어 놓았다. 그리고는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통금을 어기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곤장을 치도록 엄히 명하였다. 삼경에 통금 위반이 적발되면 곤장 30대였다.
어느 날 밤 술에 코가 삐뚜러진 건석의 삼촌이 조조가 지키는 관문 앞에 나타났다. 주루에서 늦게까지 계집을 끼고 놀다 온 모양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건석의 삼촌은 양팔을 붙잡는 병사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놔라. 이놈들아. 내가 누군질 알기나 하느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건석이 아재비다. 이놈들. 알았으면 어서 꿇어라.”
조조가 추상같은 목소리로 명했다. 손에 쥔 칼을 금방이라도 빼어들 기세였다.
“무엇들 하느냐. 저놈을 어서 형틀에 묶어라.”
형틀에 묶인 건석의 삼촌이 버둥거렸다. 무어라 고함을 치고 있었지만 재갈이 묶여 들리지 않았다.
“매우 쳐라. 조금도 손속을 봐주어선 아니된다.”
곤봉이 스무번 넘게 허공에서 춤을 추자, 옷이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선혈이 낭자했다. 형틀에 묶인 자는 몇 번 크게 버들쩍거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야가 발칵 뒤집혔다. 새파란 벼슬아치가 건석의 삼촌을 몽둥이로 때려죽인 것이었다. 건석이 누구인가. 영제 초기 외척인 대장군 두무와 사족들의 중망을 받는 승상 진번이 환관들을 숙청하려 했을 때 왕보 조절과 더불어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이들을 주살한 것이 그였다. 건석은 건장한 체격에 무략이 있었으므로 실질적으로 병력을 지휘했었다.
그러나 어찌할 수는 없었다. 조조는 금령을 지켰고, 법 위반자를 법대로 처리했을 뿐이었다. 서슬퍼런 환관들도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조조가 그들의 대선배님의 금쪽같은 손자였기 때문이었다. 중상시의 손자가 중상시의 삼촌을 때려죽인 사건은 그래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는 수도의 치안이 좋아졌고 밤에 금령을 어기고 나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조조의 이름이 크게 떨쳐졌다. 사람들은 조조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고관대작들과 환관들은 여러 가지로 불편해졌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발령이 났다. 조조는 현령으로 승진했다. 발령지는 연주에 있는 돈구현이었다. 좌천성 승진이었던 셈이었다.
때는 희평3년(174년)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사실상 최초로 통일하고 한(漢)을 건국한지 삼백 팔십여 년, 후한 광무제(유수)가 왕망의 난으로 망한 한나라를 다시 세운지 약 백오십년이 지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