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더러 있었지만
우리 일행을 보는 나이 든 가게의 아주머니들의 눈빛이 은근하다.
한국사람 냄새가 나기라도 한 것일까?
이리 저리 좁은 골목길을 돌며
일본인들에게서 받았을 그들의 설움을 되새겨 보며 걷고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세운다.
한국사람을 만나 너무 반갑다며 제주도 출신이라는 그는
우리에게 한라봉의 껍질을 벗겨 주며 먹으라고 권한다.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귤 등을 실어 나르며 판매하는 이동판매 상인이다.
가게(자전거)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사방팔방(四方八方)상점.
돌아서려는 우리를 다시 불러
한라봉 하나를 더 축을 내가며 우리와 오래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오래 같이 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쓰루하시역에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표를 사서 개찰구를 나오려는데 통과되지 않는다.
표를 잘못 산 것이다.
무심코 산 표는 킨테츠 전철 표였다.
7명의 운임이 1,400엔이어서 그냥 버릴 수는 없다.
역무원에게 찾아가 지하철 표로 잘못 알고 샀으니
현찰로 바꾸어 달라 했다.
젊은 역무원의 말이 너무 빨라 알아 들을 수 없었으나
현찰을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로 알아챘다.
우리가 말을 못 알아들으니
더욱 핏대를 세우며 침을 튀겼다.
‘에이! 재수 없는 놈! 외국인에게 좀 친절하면 안 되냐?’
일본인이라고 모두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돌아서는데 앞에 킨테츠 표 파는 곳이 보였다.
“아! 아까 표 산 곳은 저기다!”
그럼,
조금 전에 표 바꾸러 간 곳은?
그 곳은 JR이었다.
그러니까
킨테츠에서 표를 사가지고
JR에서 현찰로 바꾸어 달라고 한 거였다.
JR역무원이 침을 튀기며 핏대를 세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킨테츠에서도
좀 시간이 걸려 환불 받았다.
돌아서는 우리 일행의 뒤 통수에서 들리는 소리는
‘조심 좀 하세요!’였다.
우리나라의 환승 제도는
참으로 천사표라 할 만하다.
마지막 탐방지는
오사카 난바역과 간사이공항 중간 쯤의
사카이시(堺市)에 있는 닌토쿠천황릉(仁德天皇陵)이다.
모든 짐을 사카이역 앞 햄버거 가게에 몰아 넣고
두 여인이 짐 옆에 남아 있기로 했다.
5명만 버스를 이용해 릉 주변의 정류소에 내렸으나
릉 정문까지 1km는 걸어야 했다.
도중에 좀 쉬어가자 해서
다이센공원(大仙公園)의 평화탑이 멀리 바라보이는
지구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는 여유를 가졌다.
이곳이
건너편에 있는 닌토쿠천황릉의
전면 660m의 시작지점이었다.
그러니까 330m를 더 걸어가야 정문이 나타난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릉의 문은
늘 잠겨있어 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릉(陵)처럼 보이지 않고 그냥
야산(野山) 그대로였다.
♣ 닌토쿠천황릉(仁德天皇陵)
닌토쿠천황릉(仁德天皇陵)은
일본에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 원형의 분구를 매장 주체로 하고 거기에 장방형의 단상부를 부설한 것)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릉 주위의 둘레가 2,718m나 되는 거대한 크기로부터
다이센릉(大仙陵)으로 불리며
정식명칭은
모즈노 미미하라노 나카노 미사사기(百舌鳥耳原中陵)이다.
니혼쇼키(日本書紀)에 의하면
16대 천황인 닌토쿠텐노(仁徳天皇 313~399) 67년
사카이시(堺市) 모즈(百舌鳥)에 행차하여
묘터를 정하고 그 해 공사를 시작했다.
그 때,
사슴이 공사장으로 뛰어들어 쓰러져버렸다.
사람들이 살펴보니
사슴의 귀(미미)에서 때까치(모즈;百舌鳥)가 나와 날라 갔고,
그 귓속은 때까치가 파먹어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모즈미미하라(百舌鳥耳原)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천황은
그 후 20년이 지난 87년 영면하여
모즈노(百舌鳥野)에 안장되었다.
사카이역(境駅)으로 돌아와
점심은 각자 해결하란다.
난
아사이 캔맥주와 야키소바(焼き蕎麦)로 뚝딱.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서둘러 공항 행이다.
서두른 탓에 넉넉하게 공항에 도착했으나
대한항공 직원은 아직 출근 전이다.
그래서
남은 동전 털어서 또 맥주 타령이다.
마시는 동안은 늘 즐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