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소감문 2019-02-05
책명: 근대사회의 변화와 기독교
(존 로크, 아담 스미스, 알렉시스 토크빌을 중심으로)
저자: 박명수(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배경은 토크빌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그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읽은 후에 그의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를 공부할 계획이었다. 이 책은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가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요약한 내용이다. 그 주제는 근세사회의 변화 속에서 정치와 경제가 기독교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살핀 것이다. 근세는 상인들이 일어나는 시대요, 중세 봉건주의가 붕괴되는 시대요,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들고 민주주의가 그 싹을 틔우는 시대이며,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시대를 말한다.
저자(著者)는 근세사회의 변화를 세 사람의 삶과 사상 속에서 찾고자 한다. 그들은 존 로크, 아담 스미스, 그리고 알렉시스 토크빌이다. 존 로크는 관용론이라는 글을 통해서 유럽에서의 종교갈등을 극복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인물이며, 그의 사상은 미국 헌법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인데 그 책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 속에서 자유경쟁체제가 보장될 때 사회가 부강해진다는 국부론이다. 저자는 이들 인물의 사상이 기독교와는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를 살피며, 그렇게 사회가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를 해야 한다는 사상가들의 글을 소개하면서 당시의 종교가 어떤 변화를 시도하여 적응하여 그 생명력이 번성하였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세 번째 인물은 미국을 9개월간 여행하면서 자국 프랑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교훈을 얻고자 했던 토크빌에 대한 이야기다. 토크빌을 통하여 저자는 정교분리가 어떻게 정치에도 교회에도 유익이 되는지를 말한다.
종교는 근세를 지나오면서 관용의 정신, 그리고 자유로운 경쟁, 정치와 거리두기 등을 통해서 중세사회에서 가졌던 모습에서 벗어나 변화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 새로운 성장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의 글은 분명히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는 것이다. 즉,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지, 그리고 종교의 본질이 이 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고 우리를 격려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시대의 기독교가 중세와 상당히 닮은 부분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종교가 지나치게 세속화되거나 권력과 가까이 하게 되거나 또는 힘을 얻게 되면 시대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어떤 특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사상과 양심을 억누르고 갈등을 부추기며 생명을 훼손하는 특징이다. 종교전쟁으로 피비린내 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화목을 이룰 것인가? 성직자들에게 너무 많은 재산을 몰아주고 종교권력이 독점될 때 일어나는 부작용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즉, 신자들의 필요에는 무디고 사변적이고 내세지향적이며 교리적 경직성에 빠지게 되는 것은 종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마다 나타나는 부작용이며, 그런 부작용은 종교에서의 자유경쟁이 사라지고 성직자들이 독선에 빠질 때마다 발생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지나치게 결탁되어 시민들이 사회를 개선하려고 할 때 종교도 구시대의 적폐로 간주되지만, 미국에서는 종교가 정치제도를 보완하여 사회를 더욱 안정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토크빌이 관찰한 미국의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세 사람, 존 로크와 아담 스미스, 그리고 알렉시스 토크빌은 저마다 다른 영역에서 해법을 제시했지만, 그 해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교분리를 위한 종교의 민주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민주화에 중요한 요소는 자유와 평등이다. 종교가 자유 대신에 절대적 권위를 내세우거나 평등 대신에 독점되면 세력이 커질 때는 정치권력과 연결되어 그 본래적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시민들로부터 배척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는 종교 본래적인 요소를 갖춘 새로운 운동이나 그룹이 일어나면 기존의 낡은 종교는 그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게 된다. 한 분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왕 같은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그 자체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정치가나 경제사상가의 눈을 통해서 오늘의 기독교를 진단하고자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성경에 있는 이야기이며, 성경의 핵심 주제이지만 신학자가 아닌 정치인이나 사상가들의 입을 통해 제시된 관점으로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담긴 근본적인 아름다움과 유용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성경은 어느 시대나 세상을 비추는 빛이요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다. 하지만 그 빛을 발견한 사람들이 소수라서 서고에서 먼지를 쓴 성경책처럼 기독교 정신은 시대의 먼지 속에 갇혀서 그 빛이 숨겨져 있을 때가 많은 것 아닐까? 누군가 먼지를 걷어내어 그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다리면서 그 사람에게 세상을 밝힐 등불을 안겨주려는 것 아닐까?
토크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강정인 교수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제공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결함과 그 보완의 모색: 알렉시스 드 토크빌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71XX56300016)
나는 우리교회에서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려는 두 가지 주제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하나님의 경륜’으로 정하고 목회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읽어보니 전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것이라면, 후자는 책임과 공동체의식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리의 경직성이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을 향하여 나아가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일종의 보호를 위한 울타리의 역할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장벽이 되거나 창공을 날고자 하는 이에게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교리는 울타리도 되어야 하고 날개도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양면성을 함께 유지하면서 성경을 배울 때 우리는 안전한 공동체와 역동적인 공동체를 함께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토크빌이 말한 것처럼 미국의 민주주의는 종교가 만들어낸 마음의 습관에 의해서 지탱되고 보완된다. 이 말은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환경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라는 의미다. 오늘날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시대와는 다르며 청교도들이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와도 다르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사회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으며 국제관계와 환경의 문제 등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며 살아가야 할 새로운 시대에 이미 진입했다. 그것은 지구촌시대 또는 세계화의 시대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 말은 이미 세계가 같은 문화권이나 생활권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통신과 교통의 발달, 그리고 환경오염에 대한 전지구적인 고통 등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 그것은 지구시민(Earth Citizen)으로서의 의식이다. 다른 말로는 사해동포의식(Cosmopolitanism)이다.
나는 하나님의 경륜이 바로 이런 마인드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며 함께 상속자가 된다는 하나님의 경륜은 특별히 오늘날과 같은 다원화된 세상에서 적합하기 때문에 강조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和)의 정신이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이렇게 변화된 시대 속에서 세계시민이 서로 협력하여 상생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는 귀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토크빌이 관찰한 것처럼 종교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지탱해주었다면, 다시 한번 교회는 성경의 근본 가르침을 통해서 세계시민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하며,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대리인적 소임을 감당할 때가 되었다. 그런 소양(素養, 평소에 닦고 쌓아 바탕이 된 교양)을 기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오늘날 목회의 중요한 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일을 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과 공동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끝>.
근대서회의 변화와 기독교-박명수.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