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엔 아홉 분의 독거노인이 사신다. 그중에 할머니가 여덟이신데, 모두 칠십 후반에서 팔십 중반이시다.
자식들은 도회지로 나갔고 서로 살기 바빠 명절에야 한번씩 다녀가니 한번 왔다 가면 다음 명절까지가 너무나도
긴 세월이고 그리움과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신다.
어느 봄날이었다. 중원이 엄마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우리집 옆길을 축 쳐진 모습으로 올라오고 계셨다.
'할머니 어디가세요?' '응~하도 속이 상해 그냥 나왔어' '왜 속이 상해?' '......'
할머니는 대꾸도 않고 차백한 얼굴에 숨만 가쁘게 쉬신다. 우리집은 동네에서 맨 위에 위치하여 약간 오르막이라
노인이 왕래하기엔 좀 버거운 길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 길을 철래 철래 호미들고 꺼먼 비닐봉지와 함께 씩씩하게
달롱개(달래)캐러 뒷산으로 다니시는 길이다.
그래서 다시 '왜 속이 상하는데~?' 하고 물으니 '형님하고 싸웠는데~속이 상해 죽겠어~'하신다.
그래서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이시고 가여운 마음이 들어 밭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서 옆에 같이 앉아
자초지종을 들었다.
어쩜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틀니를 빼놓고 나오신 터라 발음이 불분명해
알아듣기가 어려웠으나 대충은 이렇다.
동네에 사촌형제인 청년들에게 시집와서 남편들은 먼저 세상뜨고 남은 여인이 이 중원이 어머니와 '분이 할머니'라
부르는 허리가 꼬부러지신 흰머리 형님 할머니로 모두 80대이시다. 다툼의 내용은 뭐 별게 아니다.
아침에 분명히 세수를 했는데 형님이 마을 쉼터에서 안 씻었다면서 자꾸 거짓말 한다고해서 대들고 급기야는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의 약점까지 들추어 대고 했단다. 평소에는 자주 왕래하면서 다정하게 지내어 왔는데...
나이가 더 들면 이렇게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지나친 집착을 하게되고 양보하는게 지는 것이라 여겨져 더 고집부리게
되는것일까...?
이 할머니 얘기를 들으며 위로차원에 맞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나도 더 늙으면 이런 모습으로 변해 갈까?'하는 생각에
씀쓰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이 할머니 기분을 up 해드리는 방법을 알기에 곧장 '할머니~! 다 잊어버려~글구 지금
쑥 뜯어 오면 내가 살께~!' 하니 귀가 솔깃하시고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며 벌떡 일어나신다.
'정말?' '그럼요' 해마다 봄이되면 이 할머니에게 부탁해 연한새쑥을 확보하곤했다.
나는 쑥 매니아이다. 쑥향이 넘 좋다. 그런데 이른본에 돋아나는 새 싹을 뜯기란 넘 힘들고 바구니가 더디 찬다.
그래서 이 할머니께 부탁하면 한나절이면 우리 이틀 분량을 해 오신다. 용돈을 넉넉히 드리면 너무 신나하시고 자꾸
뜯어 오신다. 그래서 부레이크를 걸어야한다.
어떤 때는 내가 쑥뜯어 달라고 얘기하지 않나하고 내 주변을 맴돌기도 하신다. 우리는 서로 친하게 지낸다.
겨울 농한기가 되면 마을회관에서 굴 떡국 잔치를 배설하거나, 수안보온천이나 15km떨어진 약수탕에 교회 승합차로
동네 할머니들 모시고가 목욕도하고 끝나고 자장면 먹으면 그렇게들 좋아하신다.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는 분이 몇 안되시고 머리는 모두 허옇게 되시고 거동도 느릿느릿, 승하차시에는 부축해
드려야하지만 난 이 할머니들이 정겹다.
어쩌면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그리워함이 내 영혼 깊은곳에 흐르고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첫댓글 박태규 님, 메르스 예방법에 감사드림.
하태용 친구의 이야기! 정말 감동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은 데...! 존경스럽다. 학교 다닐 때 반이 달랐던 것 같고, 키 크고 건장한 친구로 기억하는 데..., 거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아니라 16기 모든 친구들이 하나같이 반세기가 가까워오는 세월동안 각자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살아왔는가를 새삼 깨달으며 감동을 받고 있다네. 나로서는 모든 친구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삶에, 그저 감탄의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구만.
길수 칭구 오랫만이네~^^ 많은 작품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大 文學家께서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다 이렇게들 하실텐데...그냥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농부로 지내다보니 소재거리가~ㅎㅎ 자주 칭구들 대화방에서 봅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