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법정은 시자와 함께 사는 기간에는 부엌살림을 시자에게 다 맡겼다. 자잘한 것은 간여하지 않았다. 끼니도 세끼로 늘고 먹는 주식도 시자의 입맛을 고려하여 빵이 호박죽에서 밥으로 바꿨다. 시자는 늘 배가 고프게 마련이다. 스님 시봉하랴, 암자 살림하랴. 공부하랴 몸과 마음이 늘 고단한 것이 시자생활이다. 휴일이 되면 손님들까지 불일암으로 올라와 일이 더 번거로워지고 공양 때는 부엌 안이 제법 소란스러워졌다.
법정도 부엌 안이 바빠지면 모른 체 하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시자의 사기진작을 위한 방편이다. 은근한 응원이기도 하다.
시자가 솥에 쌀을 안치고 난 뒤 잠간 무료해진 순간을 이용해 법정이 한마디 했다.
“무슨 생각으로 밥을 짓는가?”
엉뚱한 질문에 시자와 시자를 돕고 있던 손님 보살까지 대답을 못했다.
그러면 법정이 웃으며 말했다.
“밥 짓고 반찬 만들 때 외우는 진언이 있지”
진언이란 다라니와 같은 주문이다.
시자는 정랑에서 용변을 볼 때 외우는 진언은 들어보았지만 음식 만들 때 진언을 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므로 호기심이 났다. 공양주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알고 싶었다.
“스님, 가르쳐주십시오.”
“당연히 가르쳐주어야지, 잘 들어봐.”
법정이 장난기를 발동하여 입맛만 다셨다. 그러나 손님 보살이 재촉했다.
“스님, 빨리 말씀하세요. 밥 다 돼가요.”
“그럼 따라서 해봐.”
이윽고 법정이 진언을 세 번 외었다.
“옴 맛나 맛나 사바하, 옴 맛나 맛나 사바아. 옴 맛나 맛나 사바하.”
법정이 우스개 진언을 하고 나자 시자와 손님 보살이 큰 소리로 웃었다.
물론 음식할 때 외우라는 진언은 법정이 창작해낸 것이다.
그날 점심공양은 밖으로 나와 평상에 차리지 않고 부엌 안 탁자에서 간단하게 먹는 시늉만 했다. 잡곡이 필요하여 순천장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순천까지는 120리, 직행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법정은 시자는 암자에 있게 하고 혼자만 나섰다.
순천에는 위아래 장터가 있다. 윗장은 5일과 10일, 아랫장은 2일과 7일에 섰다. 윗장에 비해 아랫장에 깔린 물품들이 훨씬 다양하고 걸었다. 불일암에서 가장 가까운 한실장은 오후만 되면 장꾼들이 휑하니 비고, 30리 밖의 광천장은 한실장보다 크기는 하지만 없는 물품이 많았다.
광천장에서는 주로 시자를 보내 낫과 호미, 괭이 같은 연장을 벼려오고 싸리로 짠 바자나 삼태기를 사오곤 했다. 순천장은 법정이 직접 한 달에 한 번꼴로 장을 보아오곤 했다. 법정은 주차장으로 내려가 바로 직행버스를 탔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광천장의 우시장 정경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었다. 생각할 때마다 두고두고 웃음이 나오는 우시장 풍경이었다.
소장수가 송아지 이마 털이 빠진 곳에 엉덩이 털을 뽑아서 밥풀로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농사꾼에게 값을 더 받아내기 위해 엉덩이 털을 뽑아 이마에 붙이는 것이겠지만 송아지는 소장수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순하게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그때 법정은 제값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장수가 우스꽝스럽고 안쓰럽끼까지 하여 못 본체 눈을 돌렸다.
어느 장이건 물건 값은 헐했다. 그래도 장보는 사람들은 값을 깎자고 흥정했다. 순천장도 마찬가지였다. 법정은 순천 아랫장에 도착하여 천원에 8개 하는 참외부터 샀다. 촌부가 달라는 대로 셈하여 주었다. 자신이 길러 따온 참외이기 때문에 촌부에게는 올려 받으려는 장돌뱅이의 셈이 없었다.
출가해서 장을 가보기는 해인사 선방 시절 해제 철이 되어 대구로 나가서 필기도구와 노트를 산 것이 처음이다. 그때는 해인사에서 대구로 나가려면 비포장도로가 많아 완행버스로 꼬박 4시간 반이 걸렸다. 처음 간곳은 장이라기보다는 ‘양식시장’이었다. 시골 장터 같은 재래시장도 아니었다. 법정은 그 시장에서 두 개의 조롱박 모양을 한 헝겊이 끈으로 이어져 있어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궁금해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이 여성의 ‘브라자’인 줄 알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웃은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북과 바라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가보니 장돌뱅이가 양말 한 켤레에 80원씩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메리야스’는 재고정리한다며 2, 3백원에 팔았다.
장터를 어정거리다 보면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뻥하고 옥수수나 보리쌀을 담은 뻥튀기기계가 터졌다. 가는 새끼줄로 동그랗게 꼰 똬리는 단돈 백원이었다. 법정은 다섯 개를 샀지만 도리어 미안했다.
법정은 팔죽집에 들어가 3백원주고 한그릇을 시켰다. 밀팥죽이면 찹쌀로 만든 새알 대신 발이 넒은 국수를 넣어 쑨 팥죽이다. 점심공양을 했는데도 굳이 밀팥죽을 먹으려고 한 것은 쌍계사 탑전 시절이 생각나서였다.
겨울철 이른 아침 구례 장날이 되면 쌍계사 아래까지 트럭 한 대가 시골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들어왔다. 법정도 삭발하고 목욕하는 날을 기다렸다가 트럭을 타고 섬진강 강바람을 쐬며 구례장을 보러 갈 때가 있었다. 구례장터에 내려 언 뺨을 손으로 비벼도 얼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집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 움막이었다. 하루 한 끼만 먹는 안거 중이므로 뱃속은 늘 허전하고 시장했다. 강바람에 언 몸도 녹일 겸 팥죽 움막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팥죽은 보통 두 그릇, 어떤 날은 세 그릇까지 먹었다. 그러고 나면 언 몸이 풀려 졸음이 왔다.
법정은 순천 아랫장에서 먹는 밀팥죽이 옛날 구례장에서 먹었던 맛이 아님을 알고 겨우 한 그릇을 비웠다. 국수가 적게 들어가 흘렁훌렁했고, 팥물이 짙어 속이 보깼다. 감미료를 몇 알 넣은 뒤 휘젓고 나서야 단맛으로 먹을 수 있었다.
법정은 대나무 제품을 파는 난장에서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바구니와 고리, 발과 같은 대나무 제품이 넓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납작한 고리는 오랜만에 보는 상자였다. 고향집에도 늘 선반 위에 놓여 있었는데, 대오리로 엮은 그것을 ‘석짝’이라고 불렀다. 고리는 둥근 것, 정사각형, 반닫이처럼 생긴 직사각형 모양 등이 있었다. 법정은 고리를 살 생각이 없었으므로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플라스틱 제품처럼 하나 같이 똑같은 얼굴로 가게 진열대에 무표정하게 쌓인 것과는 달리 정겨웠다. 손수 대나무를 꺾고 엮어 만든 것들이어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늘 보아도 물리지 않은 것들도 있다. 포목점 마룻바닥에 펼쳐놓은 모시, 무명, 삼베, 명주 같은 천들이다. 법정은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손으로 짜고 물들인 천들이 제값에 팔리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장터에서 목이 제일 좋은 곳에는 집채보다 큰 간판을 내건 슈퍼마켓이 들어서 있었다. 슈퍼마켓을 보자, 문구를 사려고 광주의 어느 백화점에 들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백화점은 입구부터 혼란스러웠다. 백화점 공기는 맑지 않고 탁했다. 탁한 공기 탓인지 눈이 따가워 매장 앞에 선 사람이 마네킹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잘 안 됐다. 쳐다볼수록 어리둥절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상술인 것 같기도 했다.
법정이 “허, 그 마네킹 진짜 사람처럼 잘도 만들었네.”라고 중얼거리자 때마침 그 마네킹이 재채기를 했고, 법정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런데 장을 볼 때는 순서가 있다. 부피가 작고 가벼운 물건을 먼저 사야지, 눈에 끌리는 대로 덩치는 크고 무거운 물건을 먼저 샀다가는 장꾼 사이를 헤치고 다니는 데 애를 먹는다. 법정은 마지막으로 조와 수수, 보리쌀 등의 잡곡을 각각 한 되씩 팔아 걸망에 넣었다.
송광사로 돌아오는 버스는 평일이어선지 손님이 한두 명뿐이다. 법정은 걸망 속에서 참외를 꺼냈다. 옆자리에 앉은 낯선 청년과 안내양을 불러 함께 먹었다. 종점인 송광사 주차장에 내려서도 매표소 주인이 합장하기에 또 참외 한 개 내놓았다.
“이거, 하나 먹어봐요.”
“아이구메, 지가 스님께 공양 올려야 하는디 그러지 마시랑께요.”
“꿀참외라고 했으니 한번 먹어봐요.”
“스님, 다음번에는 순천 가는 표 공짜로 끈어불랍니다잉.”
“매표소 거사, 잘못하면 황천행이라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허허”
참외를 몇 개 내려놓으니 걸망도 그만큼 가벼웠다. 법정은 버스주차장에서 불일암 산길을 향해 올라갔다. 시자가 편백나무 숲까지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가 스님의 걸망을 받아 맸다.
“암자에 누가 와 있는가?”
“보살은 내려가고 처사가 한 사람 와 있습니다.”
“그냥 올라온 사람인가?”
“스님 책을 보고 왔다고 합니다.”
손님은 아래채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법정을 보고는 달려와 합장했다. 그래도 책을 보고 왔다는 사람에게는 대접을 박하게 하지 못했다. 정진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대부분 차를 한 잔 주고 내려보냈다. 젊은 손님도 다실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젊은 손님이 방에 앉자마자 <서 있는 사람들> 책을 꺼내면서 떼를 썼다.
“큰스님, 책장에 글씨를 받고 싶습니다.”
“글씨는 무슨 글씨, 나는 큰스님이 아니라네.”
“큰스님 한 말씀 받으려고 서울에서 왔습니다. 한 말씀만 써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젊은 손님이 낙심한 얼굴로 재차 사정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손님의 말에 법정은 마음이 약해졌다. 호주머니에서 붓펜을 꺼내더니 책장을 폈다. 법정은 젊은 스님이 부탁한 그대로 썼다. 그리고 그 아래 날짜와 법명을 적었다.
‘한말씀’
시자가 웃었다. 그러나 젊은 손님은 ‘한 말씀’에 황공하여 어쩔 줄 몰랐다. 200쪽
<소설 무소유> 중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나무아미타불 70년대 초반 같습니다 다 정겨운 세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법정스님 모습과 본연스님 모습이 겹치네요^^
나무아미타불
옛 맛이 있습니다...ㅎ...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법정스님의 일화가 구수하게 보았습니다.
dalma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예전에 스님 책에서 읽었던 부분입니다. 그립습니다... 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