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7:27-39
찬송가 251장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본문은 계속해서 솔로몬 성전에 있는 기구들을 설명합니다. 특히 바다에 이어 열 개의 놋 물두멍이 등장합니다. 이 열 개의 물두멍은 바다와 같이 고정식이 아니라 수레에 올려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일종의 리어카 위에 물탱크를 얹은 모양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성경 기자는 그 기구의 제원을 상세히 밝힙니다. 하지만 글을 읽어서는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으며 그 내용도 모호한 부분이 상당히 있습니다. 따라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물두멍 10개의 제원 (27-39)
(27) 또 놋으로 받침 수레 열을 만들었으니 매 받침 수레의 길이가 네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받침 수레의 길이와 너비가 네 규빗이라고 하는데 각각 1.8m 정도 됩니다. 높이는 세 규빗이라고 하는데 약 1.4m 정도입니다. 높이가 가로 세로의 3/4인 육면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즉 길이와 폭이 2m가 안 되는 정사각형에, 깊이는 약 1.5m 정도인 수레를 열 개 만든 것입니다.
(28-29) 그 받침 수레의 구조는 이러하니 사면 옆 가장자리 가운데에는 판이 있고 가장자리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가장자리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
그 수레 사면에는 판을 대서 사각 틀로 만듭니다. 그리고 판에는 각종 장식을 합니다. 사자와 소와 그룹을 새겨넣었는데, 사자는 힘과 용맹과 통치권 등을 상징하고, 소는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며,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의 수호를 상징합니다. 29절을 보면 가장자리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다고 하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29절을 이렇게 옮깁니다. 그 놋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 천사들이 있고 그 틀 위에는 밑받침이 있으며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즉 틀을 가로지르는 가로대 또는 물두멍을 얹을 받침 기능의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0-31) 그 받침 수레에 각각 네 놋바퀴와 놋축이 있고 받침 수레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어깨 같은 것은 물두멍 아래쪽에 부어 만들었고 화환은 각각 그 옆에 있으며 그 받침 수레 위로 들이켜 높이가 한 규빗 되게 내민 것이 있고 그 면은 직경 한 규빗 반 되게 반원형으로 우묵하며 그 나머지 면에는 아로새긴 것이 있으며 그 내민 판들은 네모지고 둥글지 아니하며
이 수레에는 네 개의 놋바퀴를 달았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30절을 이렇게 옮깁니다. 또 놋받침에는 놋으로 만든 바퀴 네 개와 축이 있고 그 놋받침 네 모퉁이에는 물통을 얹을 수 있는 네 발이 있으며 그 발은 화환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즉 30절에 나오는 발 밑에 어깨 같은 것 이란, 수레 네 모퉁이에 물통을 얹을 수 있는 버팀 장치로 보입니다. 예전에 겨울이면 리어카에 연탄을 실어 집으로 가져갔었습니다. 100개를 맞추려면 약간의 기술이 필요했던 생각이 납니다. 이 리어카는 바퀴가 두 개밖에 없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잘못 맞추면 뒤로 넘어가 연탄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물두멍 받침 수레는 바퀴가 네 개이기 때문에 그러한 염려는 없었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31절을 또 이렇게 옮깁니다. 그리고 놋받침 맨 위에는 오목한 받침대가 있었다. 그것은 놋받침에서 위로 45센티미터 올라왔고 그 깊이가 약 68센티미터였으며 그 면에도 무늬를 아로새겼다. 즉, 이 받침 밑면에는 위로 45cm가 올라오는 일종의 장치를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2-36) 네 바퀴는 옆판 밑에 있고 바퀴 축은 받침 수레에 연결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이며 그 바퀴의 구조는 병거 바퀴의 구조 같은데 그 축과 테와 살과 통이 다 부어 만든 것이며 받침 수레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 넷이 있는데 그 어깨는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받침 수레 위에 둥근 테두리가 있는데 높이가 반 규빗이요 또 받침 수레 위의 버팀대와 옆판들이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버팀대 판과 옆판에는 각각 빈 곳을 따라 그룹들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아로새겼고 또 그 둘레에 화환 모양이 있더라
바퀴는 수레에서 길게 뺀 축에 연결했는데, 그 높이가 한 규빗 반, 즉 약 70cm 정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받침 수레 옆면의 높이까지 같이 계산하면 전체 받침 수레의 높이는 2m 이상이 되는 작지 않은 크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축과 테와 살과 통을 다 놋을 부어 만든 것으로 보아 세밀한 공예 기술이 필요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34절에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30절에 나오는 어깨 같은 것의 추가 설명 또는 또 다른 고임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35절에 나오는 받침 수레 위에 둥큰 테두리는 31절의 대접 받침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37-39) 이와 같이 받침 수레 열 개를 만들었는데 그 부어 만든 법과 크기와 양식을 다 동일하게 만들었더라 또 물두멍 열 개를 놋으로 만들었는데 물두멍마다 각각 사십 밧을 담게 하였으며 매 물두멍의 직경은 네 규빗이라 열 받침 수레 위에 각각 물두멍이 하나씩이더라 그 받침 수레 다섯은 성전 오른쪽에 두었고 다섯은 성전 왼쪽에 두었고 성전 오른쪽 동남쪽에는 그 바다를 두었더라
히람은 이와 같이 받침 수레 열 개를 만들었는데 다 동일하게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그 위에 둡니다. 직경은 네 규빗 약 1.8m였는고, 사십 밧 즉 908리터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수레는 길이와 너비가 네 규빗의 정사각형 모양이었기에 물두멍의 직경과 같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 물두멍은 수레에 딱 들어맞는 크기였을 것입니다. 물론 수레 아래 고임 장치를 두어 물두멍이 수레 윗부분으로 솟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에 비하면 크지 않은 용량이지만 상당히 거대하고, 여기에 물을 채우거나 끌고 다니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력이 투입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열 개의 물두멍은 어떤 기능을 합니까? 역대하 4장 6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또 물두멍 열 개를 만들어 다섯 개는 오른쪽에 두고 다섯 개는 왼쪽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 즉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자기 몸을 씻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번제물을 씻는 용도였던 것입니다. 번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이 될 짐승에 직접 안수하고 동물을 잡았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피를 사방에 뿌리고 번제물을 물로 씻습니다. 레위기 1장 13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 내장과 그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즉 피로 범벅이 된 제물을 씻는 용도로 그 물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수레가 10개나 된다는 것은 당시 드려지는 제사가 많았고, 성전 뜰 여러 곳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이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함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전 건축과정을 살피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신약에서 예수님이 성전을 대체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2장 21절은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즉 성전 자체가 예수님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또한 그 기능도 대체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14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즉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또 히브리서 9장 11절은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고 증거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성전이 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고, 영원한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성전과 그 기능을 모두 자신이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는 어떠한 종교와 비교해도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으며, 너희가 제물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로 씻겨진다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바로 팔복입니다. 즉 이 세상은 마음이 부한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것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 세상은 즐거워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슬퍼함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 세상은 세도를 부리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온유함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 세상은 돈에 주리고 권력에 목마른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 세상은 받은 대로 갚아 주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긍휼히 여기는 것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 세상은 권모술수를 복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깨끗한 것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이 세상은 자신의 권리만 누리면 복이라고 하지만 평화를 이루는 것이 복이라고 믿는 것이며,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일이 오히려 복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직관에 반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하도록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의 표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그리스도인의 행동 양식은 이렇게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반대 되는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을 말씀으로 개혁하여 참된 승리를 누리기 원합니다. 또한 수레가 10개가 되었듯이, 우리 삶의 어느 영역이든 우리가 깨끗이 씻기어 제물로 드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열 개의 물두멍과 수레를 확인했습니다. 아름답게 지어진 성전과 그 모든 기물이 예수님으로 인해 완전하게 대체되었으며, 우리 역시 예수님을 따라 그러한 기능을 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이기는 하루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동 가능한 물두멍을 10개나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이 성전의 모든 기능을 대체하셨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명하셨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십시오. 내가 성전으로, 제사장으로, 제물로 살아가기에 필요한 결단은 무엇입니까?
3. 나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로 씻겨지고 산제물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영역이나 사고방식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