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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폭력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130만이 지금 요르단에서 지내고 있다. 현지와 세계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화요일 아침 8시 30분, 암만의 요르단 복음주의 신학교JETS 학생회관의 텔레비전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몇 명만―대부분 이집트, 수단, 시리아, 요르단 남학생들―지켜보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커피와 차를 마시고 있다. 종이컵에 설탕을 넣고 저으면서 헬라어 단어를 외우거나 삼위일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리포터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이슬람 테러집단이 장악한 시리아 도처에 공습을 막 시작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쿠르드 방위군, 이라크 군, 그리고 시리아 내 반군 세력과 싸우고 있다. 이슬람국가는 기자들을 참수했고 다른 인질들을 붙잡아두고 있다. 요르단도 공습에 참여했다. 요르단은 국경검문을 강화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을 단속하고, 그리고 하심 왕국[요르단의 공식 국명] 전역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2년 전에 시리아에서 탈출한 한 난민 목사가 텔레비전을 끈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모여 있는 2층에서 모우니스라는 학생이 찬양을 인도하고 있다. “아스타티 쿨루 샤인 필 마시 쿠와티[나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온 학생이 눈을 감고 이마에 주름이 잡힌 채 키보드를 연주한다.
“일라이 요우리드 안 아야 피 나자이[나의 하나님께서는 내가 승리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네]. 와 유키무니 일라 무르타파아티[그리고 그분은 나로 하여금 높은 곳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하시네].”
찬양이 끝나고, 이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브라이슨 아서 교수가 설교단 앞으로 나와서 마태복음 8장을 읽는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아서 교수는 믿는 사람들은 두 가지 두려움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의 두려움과 주님의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 말을 잇는다. “하나는 여러분을 움츠러들게 하고 절망하고 무서워 떨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줍니다. 하나는 통제를 추구합니다. 다른 하나는 순종을 추구합니다.” “뒤에 것을 선택합시다.”
채플이 끝난다. 신학교 밖에서는 정치적인 그리고 군사적인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 신학교 공동체에도 두려움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매일 수업이 끝난 후와 일요일이면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암만 전역으로 흩어져 이 도시의 각 교회들과 난민촌, 가정집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난민들을 돌보는 사역을 한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때문에 교회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르단 연맹 교회의 유세프 하슈웨 목사의 말이다. “우리와 함께 서 있어 줄 서방의 자매 교회들이 필요합니다.”
긍휼의 돌봄
2010년, 요르단 복음주의 신학교 신학 부교수인 하나 마사드는 이라크 난민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새로운 교회를 암만에서 시작했다. 몇 년을 지속하고 있는 시리아 사태 전까지, 이 교회는 이라크인들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채워주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은 이곳의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인들에 대한 교회들의 구호사역을 도와주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의 절반 이상이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다. 마사드의 교회는 시리아 난민 가정의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집을 개방한다. “우리는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방문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차를 마시고, 기도하고, 그리고 가끔씩 음식도 제공합니다.” 마사드 목사는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가자의 침례교회에서 목회한 적도 있다.
난민으로 등록된 61만 9000명 이상의 시리아인들이 2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수천 명의 이라크와 수단, 소말리아 등지의 난민들과 함께 요르단으로 밀려들어왔다.
시리아 내전이 4년 째 접어들면서, 요르단의 난민 긴급 상황은 국가적 위기가 되어버렸다. 조만간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난민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능력이 고갈될 것이다(현재 요르단에는 32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있다).
난민이 늘어나면서, 유럽과 미주, 한국, 일본, 중국에서 이 나라로 들어오는 기독교 선교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4년 말이 되면, 50개 이상의 종교, 정부, 세속 단체들이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8억 5000만 달러를 쓸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0월,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독교의 요람’ 펀드Cradle of Christianity Fund는 다가오는 겨울 동안 이라크 및 시리아에서 쫓겨나온 그리스도인 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기 위해서 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식량과 쉼터, 교육, 의료가 시급한 과제이다. 평균적으로, 암만의 유엔 핫라인은 매일 도움을 요청하는 2500건의 전화를 받는다.
해외에서 온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도착하자마자 전도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요르단 교회 지도자들은 개종행위를 하지 못하게 경고한다. 요르단 형법 150조는 “종파적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일체의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 모호한 규정에는 개종행위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요르단의 전통적인 교회들은 개종행위를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요르단에도 종교활동을 감시하는 거대한 정보기관이 있다.
요르단 경찰은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한 혐의로 미국인과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 그리스도인들을 구금하고 추방하기도 했다. 한 가지 예로, 어느 목사를 강제 출국시켰는데, 그의 교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이유였다. 찬양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조차도 공식적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요르단 복음주의 신학교의 이마드 세하데 총장은 현재의 안전과 문화적 복잡성을 고려한다면 전도는 차라리 요르단 사람들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아랍인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랍 그리스도인들은 유럽인들만큼 똑똑하고 또 경건합니다.”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아흐메드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사전에 위험한 상황을 고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신이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이 감옥에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번의 결정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그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떤 외부의 압박으로부터도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프로젝트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흐메드는 말했다.
마사드는 난민들을 돌보는 핵심은 긍휼이라고 말했다. 많은 난민 가족들이 다른 모든 방법을 강구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암만에 도착한다. 교회들이 그들을 받아들일 때, 신뢰가 형성된다. “언제 대화를 나눌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긴 메시지를 전할지, 위로부터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사드의 말이다.
한 가족이 이슬람국가가 그들의 아버지를 납치한 후에 마사드의 교회에 왔다. 어머니와 두 자녀는 아버지의 생사를 지금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사드의 말이다.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는 웃고 웁니다. 각 가정이 겪은 일들을 책으로 써라 해도 쓸 수 있을 겁니다.”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곧 매주 시리아와 이라크로부터 난민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는 역사가 기록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사드의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장기적 헌신
긴급 구호가 필요하지만, 요르단의 가장 성공적인 그리스도인 지도자들 가운데 일부는 긴급 구호와 장기적인 계발 프로젝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제자훈련과 의료시설, 경제성장이 바로 그런 장기 프로젝트이다. 정형남 선교사는 이런 접근이 요르단 문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믿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요르단에서 일한 지 20년이 넘은 그는 한국인 목사인데, 그는 한국인들이 중동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3세대가 걸렸다고 말했다. 정 선교사가 1989년 바레인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은 아랍어를 못했다. 대부분 젊은 독신 남자들인 그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모여서 기도를 했다. 그 지역에서 거둔 “열매”를 세는 것으로 자기들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는 유혹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관점으로 보시지 않습니다.” 정 선교사의 말이다. “그분은 서두르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큰 그림을 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때 복이 있습니다. 재정착이나 비자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을 기다리는 동안에 당신은 축복의 원천입니다.” 정 선교사의 말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집트인들, 이라크 난민들, 필리핀 가정부들, 그리고 지금은 시리아 난민들―은 그의 말 뜻을 이해한다. “걸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선교사들은 필리핀 노동자들입니다. 그들 말고 누가 사우디아라비아 가정집에 들어가서 그들의 거실에서 여자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 목사와 다른 지도자들은 재정착에 초점을 맞춘다. 많은 경우에, 난민들은 자기네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영주권을 받는다. 예를 들어, 미국은 8만 5000명의 이라크인들을 정착시켰지만 지금까지 시리아인은 90명에 불과하다. 내년에 미국은 2000명까지 시리아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암만의 다른 지역에서는 몇 명의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장기간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인 후이족과 위구르 소수민족 출신인데, 중국인을 포함한 종교적인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이슬람 대학에서 아랍어를 연구하고 있다. 리와 쟈이 부부는 요르단에 거주한 지 2년 됐다. 그들은 아시아 신자들이 서구 신자들보다 더 환영받는 지역에 노동자들을 보내고 있는 중국 가정교회 출신이다. 요르단에 있는 가장 큰 개발 기구는 북미와 남미에서 왔다. 캐나다와 미국은 요르단에 20개 이상의 그룹을 보유하고 있고, 그리고 그 가운데 다수는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새로운 교회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 남미 그리스도인들도 교육과 소규모 투자 사업을 통해서 봉사하고 있다. 마리아와 훌리하나, 30대의 독신 브라질 여성인 두 사람은 영어나 아랍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2년 전에 암만으로 이주했다. 두 언어를 배운 뒤에 지금은 시리아 난민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여성들에게 에어로빅과 수건 파는 법을 가르치고 있고, 청년 캠프도 열고 있다.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아랍 문화 속으로 특히 다른 여성들 속으로 쉽게 들어간다고 마리아는 말했다.
“걸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선교사들은 필리핀 노동자들입니다. 그들 말고 누가 사우디아라비아 가정집에 들어가서 그들의 거실에서 여자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형남 선교사
아웃리치는 위험하다
대체로 요르단의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 지도자들은 수년 동안 그곳을 지켜왔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은 난민 위기를 통해서 일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하나의 단체처럼 곧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마프라크의 전국 기독교선교사연맹의 누르 사하우네 목사가 말했다.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자르카의 ‘자비의 어머니’라는 가톨릭 병원은 최근에 <원 매거진>에 소개되었다(가톨릭 근동 복지 협회가 발행). 이 병원은 행동으로 기독교적 일치를 이룬 모범이다.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이 작은 병원은 일반적으로 매일 1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대하는데,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북부 도시 마프라크와 제라쉬, 이르비드에서 산전 진료를 받기 위해 온 임신부들이다.
“우리는 일터에서 영성에 관해서는 대화할 수 없습니다.” 나즈마 수녀는 <원 매거진>에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과 일하는 방식이 우리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사람들을 돌보는 데 바쳤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메시지입니다.”
요르단 인구의 56%가 24세 이하이며, 젊은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 가정들이 비용이 적게 드는 의료 서비스를 앞다투어 찾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어머니’ 병원의 직원들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곳에 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가톨릭 교인이 아니다.
또 하나의 핵심 영역은 종교간 사역이다. 이것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서 극도로 민감한 영역이다. 누군가의 종교를 바꾸는 것은 불법이고 위험하며 때로는 치명적이다.
기독교 박해 감시 사역을 하는 오픈도어선교회는 요르단의 종교자유는 지난 18개월 간 계속 낮아졌다고 보고한다. 지역 위기들이 보수주의를 강화하여 많은 요르단 사람들이 종교간 상호작용에 거부감을 갖게 만들었다. 동시에, 테러주의의 고통이 많은 개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에 관하여 새로운 질문들을 하게 만들었다.
믿는 사람들 사이의 일치가 바로 이런 때에 강화되는 것이라면, 복음의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중동에 불게 될 것이라고 요르단 지도자들은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방, 서방, 유대인, 또는 그리스도인이 없습니다. 한 지체가 아프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낍니다.” 하슈웨 목사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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