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독서에 보면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뜻이고,
안식일을 더럽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안식일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식일은 샤바트(שבת)이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말이고,
영어로는 샤바트를 음차하여 샤버스(Sabbath)라고 발음합니다.
그리스도인들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신앙의 선조로 둔
유대교인과 무슬림들도 안식일을 지킵니다.
다만, 안식일의 날이 차이가 있어
무슬림은 금요일에, 유대인은 토요일에,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안식일을 정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아시다싶이 안식일의 기원은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등의 모세오경에서
안식일의 기원과 구체적인 규정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신약에서도 안식일에 대한 기록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을 가시는 이야기
안식일과 관련되어 바리사이들과의 대화 등
예수님 시대에도 안식일의 중요성이 들어납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도 선교여행 중에
안식일 마다 회당을 찾아 설교를 하는 모습도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신약의 시대가 지난 후에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소흘하지 않았습니다.
기원후 135년경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1800년이 넘도록
나라를 잃고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많은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갔지만,
언제 어디서든 안식일 만큼은 어김없이 지켜나갔습니다.
그들이 타지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외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표지였기에
감추고 싶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됩니다.
이는 그들에게 주어지는 차별과 박해를 감수해야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상으로 눈으로 볼 때,
안식일을 고수하려는 그들의 모습이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조선의 박해시대에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지요.
한국의 순교자들도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숨어서라도 공소예절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안식일을 나타내는 샤바트(שבת)은
가장 먼저 ‘쉼 또는 휴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한국말로도 안식일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안식일의 기원을
하느님께서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음날 쉬셨다는 것에서 찾기도 합니다.
또, 일부 신학자들은 이집트에서 휴일 없이 중노동을 해야만 했던
히브리인들의 체험과 고충이
안식일이라는 제도를 형성하게 된 이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6일동안 노동을 한 뒤,
하루를 쉬는 것이 인간의 안녕에 이바지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광야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안식일에 무엇을 했을까요?
탈출기가 이야기하는 탈출의 목적은 광야에서
하느님께 예배를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살 때에는
히브리인들도 이집트 신들을 섬겨야 했기에
하느님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탈출한 그들은 비로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안식일은 하느님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날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직도 안식일 만큼은
하느님과 관련된 일이 아닌 경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 말고는 다른 모든 일을 멈춥니다.
여기서 샤바트(שבת)의 다른 의미가 드러납니다.
안식일은 ‘멈추다 또는 중단하다’라는 뜻이 함께 있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위해 모든 세속적인 행위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수도원의 삶을 보면, 하루에 일곱번 기도시간이 정해져 있는데요.
보통 기도시간 15분전에 종을 쳐서 기도시간이 다가옵을 알립니다.
모스크에서 기도소리를 알리는 아잔(Adhan)과 똑같습니다.
종소리가 들리면, 수도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경당에 모여 기도를 드립니다.
즉, 모든 활동이 기도시간을 중심으로 맞추어져있고
모든 활동이 기도시간을 위해 멈추어져야 합니다.
안식일도 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일상생활을 멈추는 것입니다.
여기에 피로에 지친 인간의 육신에게 주어지는 쉼을 포함합니다.
중요한 것은
삶에 있어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일시중단하는 것은
주일을 거룩하게 만드는 기초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을 일시정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일이나 기타 다른 것들에 사로잡혀
정신적 노예가 되어 살아갈 수는 없기에
나 스스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그 관성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 자유인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안식일은 의무가 아니라, 자유인의 권리로써 이해해야 하고,
또 쉼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멈추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하느님께 방향을 돌리는 날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