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일- 마태복음 18:1-9
잠언 19:13-17/ 찬송 563장
천국에 들어가려면, 영생에 들어가려면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태복음에는 다섯 개의 설교 묶음이 있습니다. ‘산상설교’(5-7장), ‘제자 파송’(10장), ‘천국 비유’(13장), ‘교회에 관한 가르침’(18장) 그리고 ‘종말에 대한 설교’(24-25장)’입니다.
‘교회에 관한 가르침’(18장)은 다섯 가지 내용입니다. ‘천국에서 큰 사람’(1-5),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6-9),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말 것’(10-14), ‘죄 지은 형제에 대한 권면’(15-20),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이 당할 벌’(21-35)입니다.
다섯 가지 내용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예수님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먼저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
제자들의 관심사는 천국에서 ‘누가 큰 사람인가’입니다. 여기에서 천국은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와 보이는 교회’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크고, 누가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인간의 질서가 아닌 “천국에 들어가”는 일(3), 곧 구원을 강조하십니다.
당시 어린 아이는 권리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어린 아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지위를 내려 놓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사람은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장차 다가올 나라를 뜻하지만, 지금 공동체의 이상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고, 또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5).
예수님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로 여기십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작은 자 중 하나, 곧 보잘 것 없는 자라도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실족하게 하다’는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도록 유혹하여,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하는 그 사람에게 거듭 “화가 있도다 ... 화가 있도다”(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자면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닫게 됩니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실족하는 행위가 가져올 끔찍한 결과 때문입니다.
또한 가정법으로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8) 혹은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9)이라고 실례를 드십니다.
예수님은 단호히 범죄 한 그 신체 부위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통해 악의 위험과 전염성을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신체의 온전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에 들어가는 것”(8, 9) 곧 구원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희생도 치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 의로운 길을 걷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이며, 신앙공동체가 행해야 할 모범입니다.
샬롬샬롬
☀ 다시 봄
1) ‘교회에 관한 가르침’(18장)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지켜야 할 기본 가치를 말씀하십니다. 당시에나 오늘이나 신앙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5가지 문제 제기를 보면 질문 형식(1, 21)이거나, “만일 ...하면”(6, 8-9, 12-13, 15-17)과 같은 조건문 형식입니다. 실생활에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주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가르침입니다.
☀ 새겨 봄
1) 예수님은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5)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을 가장 낮은 존재와 동일시하십니다. 그런 어린 아이, 작은 자일망정 예수님으로 알고 섬길 것을 권면하십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섬김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은 교회 안에서 겸손함과 섬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첫댓글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게 하시고 자신의 유익만을 앞세우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로 살기 원합니다 나를 항상 낮추고 주님의 뜻을 구하며 죄 짓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 자신을 가장 낮은 존재와 동일시하십니다 "
특권을 가진사람은 인식론적으로 무능하다 (blind) 그래서 작은자, 소수자 그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페기 메킨토시), 만약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우리안의 타자 (stranger within)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들이 강한 객관성을 가졌다 (Sandra Harding) 예수쟁이인 나에게 이런 이론들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는 그냥 어린 아이가 아니라 노동을 착취당하고, 가뭄때 가장 굶었으며, 노예로 쉽게 팔리던 존재였습니다. 19세기 말에서야 그들을 존중했습니다. 모성개념이 구체적으로 발전된것과 같은 시기입니다.
이미 2천여년전 예수님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과 달리 모든 면에서 차별당하고 무시당했던 그들을.. 순진하고 때묻지 않을 겨를도 없이 헐벗은 그들을 사람들 앞에 세웁니다. 살아남으려고 눈치도 빠르고, 더 먹으려고 애쓰는 그 연약한 아이를 . 주님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 늘 겸손하고 낮은 모습으로 공동체를 섬기게 하소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코람데오의 마음으로 형제 자매를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