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8.
산지가와 소매가
과즙이 줄줄 흐른다. 손으로 껍질을 벗겨 한입 또 한입 베어 물면 넘쳐나는 과즙이 턱을 따라 뚝뚝 떨어진다. 손등으로 목에서 입까지 대충 쓸어 훔친다. 다시 살이 연한 한 개를 골라 흐르는 물에 씻는다. 도중에 껍질이 벗겨진다. 속이 하얀 백도다. 달고 향이 짙은 험다리 복숭아 네댓 개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맘껏 드시라는 농장 주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모르겠다.
무른 게 더 맛있다. 딱딱한 천도복숭아보다 물렁물렁한 백도나 황도를 더 좋아한다. 돌이켜보면 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면 연한 육질을 좋지만, 젊었을 때는 씹는 맛이 좋은 단단한 복숭아를 먹겠지.” 아버지를 닮고 싶어 그날부터 무른 복숭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좋은 걸 보면 아들과 딸이 생각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는 늘 통한다. 내 입에 들어가는 만큼 자식 입에도 넣어야 맘이 편하다. 잘 익은 최상급 복숭아를 한 상자씩 택배로 보낸다. 상품으로 판매하지 못할 흠집이 있거나 못난이 복숭아 또는 상처가 난 B급이나 C급 복숭아를 한 상자 가득 담아 트렁크에 싣는다. 달곰한 복숭아 향이 자동차 내부로 스민다. 돌아오는 길이 짧기만 하다.
구례 전통시장은 3일과 8일이 장날이다. 살 물건이 있든 없든 장날이면 으레 구석구석 장터를 헤집고 다녀야 맘이 편해진다. 구례에서는 5일마다 반복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과일 가게 앞을 지나는데 복숭아가 눈에 띈다. 열 개 남짓 담긴 상자에는 크기와 색이 아들한테 보낸 복숭아와 엇비슷하다. 그런데 가격은 반값 아래다. 머릿속이 하얗게 백치가 된다. 산지 가격이 소매값보다 비싸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신선도 차이인가? 품종이 다른가? 아니지 숙성 정도의 차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슷한 경우는 몇 번 있었다. 고령을 지나치며 딸기 바구니에 속았고, 성주 참외도 곧잘 속았었다. 국도를 달리다가 갑작스레 마음이 동하여 작은 양의 과일에는 그럴 수도 있다며 웃고 넘겼다.
이번 경우와는 매우 다르다. 농장으로 와서 시중가보다 값싸게 좋은 제품을 맛본 후에 구매하라고 해서 왕복 50km 넘는 길을 잽싸게 달려갔다. 교통비와 시간을 들여가며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산 복숭아다. 산지가와 도매가, 소매가의 차이를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은 쓰라리다. “속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가 “설마!”라고 자문자답하기를 반복해도 결론은 없다. 어리석기를 반복하면 바보가 된다.
복숭아는 건강에 좋은 과일이다. 피부미용에 좋고 대장암이나 폐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피를 맑게 하고 위장 기능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비싼 만큼 좋다고 생각하면 맘까지 편해진다. 때론 바보라도 좋다.
첫댓글 내가 제일 좋아하는과일이 백도 황도다 근데 살때마다 망설인다
너무너~무 비싸다
과일이 비싸더라.
참 궁금하네 왜 유통과정을 거친과일이 더 싸지??
원래 농사 짓는 사람은 인심이 후해서 더 담아주고 더 싸게주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랫는데ᆢ
농사짓는 사람들이 소매가를 생각해서 미리 비싸게 판거지. 속은거지. 농민이 약은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