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학송 소설가 서거 83주기 추모식
▘일시 : 2015년 7월 8일(수) 오후3시
▘장소 : 망우리묘지공원내 유택
▘주최 : 서해 최학송 소설가 (주)기념사업회
▘주관 : (사)중랑문화연구소
▘후원 : 경희예한의원. 김도형특허법률사무소. 다스림한의원. 동산치과. 법무법인 선율. 서울교원문학회.
서울초,중등문학교육연구회. 성도치과. 성애병원. 서울현대병원. 소정문학회. 송곡여자고등학교.
수림문화재단. 우리문학기림회. 유성주유소, (주)서광알미늄. 중랑작가협회.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청량고등학교 망우인문학 동아리.
▘식순
- 개식선언 (사)중랑문화연구소 이사장 남화창
- 내빈소개 (사)중랑문화연구소 상임이사 이수종
- 경과보고 정종배 시인
- 추도사 곽근 교수. 안재식 중랑작가협회 회장
- 봉정 정종배 시인
- 서해 작품 낭송(청량고 망우인문학동아리)
- 분향
- 폐회
▘추모식 후 석식
▘경과보고
우리나라 빈궁문학의 최고봉 소설가 서해 최학송 서거 83주기 추모제가 7월 8일 망우리묘기공원 유택에서 최학송 기념사업회와 (사)중랑문화연구소가 주관하여 열린다.
소설가 최학송은 1932년 7월 9일 위문협착증으로 사망하여 최초의 문인장으로 장례를 치러 미아리공동묘지에 묻혔다. 문학적 재능뿐 아니라 인간성도 좋아 1932년 『삼천리』 8월호에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박종화 김동환 등 많은 문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서울시 도시 개발로 1958년 9월 25일 이산 김광섭 시인 중심으로 망우리묘지공원으로 이장하였다.
모친과 부인 두 아들 모두 1932년 9월 28일 함북 회령으로 떠나 현재 남쪽에는 유족이 없다.
그에 유택은 돌보는 이 없이 나무와 풀숲으로 뒤덮여 방치 되었다. 2003년 동국대 곽근 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렸고 2004년 <우리문학기림회>에서 문학비를 세웠다.
망우리묘지공원을 자주 찾아 시심을 닦던 시인 정종배교사가 2006년 3월 아까시나무 뿌리가 얽혀 봉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유택을 사비를 들여 정비하였다. 그러나 나무들로 우거긴 유택 주변이라 쉽게 무너져 2008년 또 다시 유택을 정비하였다. 청담고 청량고 담임반 및 동아리와 방과후학교 학생들과 유택을 참배하고 정리하며, 중랑구청에 지속적으로 나무를 베어달라고 하여 아까시나무 세 그루를 벌목하여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주변 나무들의 성장으로 2014년 재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2년 11월 시인 정종배 교사의 제자들 중심으로 서해 최학송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몇 가지 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남쪽과 북쪽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잘 그려낸 작가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고, 제자들 중심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유택을 정비하며 최학송 통일문학상을 제정하여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를 발굴하는 사업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사)중랑문화연구소
첫댓글 최학송이 누군가 했더니 최서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