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덕? 수술 전면 중단?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2012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이후 6년 만인 지난 5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후 7월 7일 광화문에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5,000명의 사람이 모였다. 낙태의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참가자들은 ‘여성도 사람이다. 기본권을 보장하라’, ‘임신중지 처벌하는 낙태죄를 폐지하라.’, ‘낙태죄는 위헌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결국 ‘낙태죄 위헌 여부’를 예정되어 있던 8월에 선고하지 않기로 최종 확정하였다. 더불어 최근, 국민건강을 책임진다는 정부 부처와 의료인의 대답 역시 실망을 넘어 더한 분노를 일으킨다.
2016년, 보건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을 포함하여 의료인에 대한 자격정지 처벌을 최대 12개월까지 늘리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로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2년 후인 지난 17일, 기존의 태도를 고수하며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처벌 개월 수만 줄여 동일 법령을 개정, 형법 제 270조를 위반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겠다는 방침을 날치기로 발표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임신중절수술 전면 거부를 선언하였고, 의사회는 다수의 산부인과 전문의가 동참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유형을 구체화하여 기준을 정비한 것이라고 해명하였으나 이는 기존의 법원 판결 없이도 보건복지부가 의사들에 대해 자격정지를 할 수 있다는 의사회 측의 주장처럼 오히려 ‘불법’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처벌이 더 쉬워지고, 강화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형법이 여성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어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청와대 또한 낙태죄 폐지 관련 국민청원에 대해 현행 낙태죄가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는 문제가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고, 여성의 고통과 목소리를 외면한 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과정에서는 ‘의견 없음’으로, 국민청원을 통해 안전한 임신중절을 위한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하라는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임신중지를 ‘비도덕적’인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의료인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로서 여성의 고통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들을 향한 도덕적 지탄을 염려하면서 임신중절수술 전면 중단이라는 ‘파업’을 강행하며 몸을 사리는 모습에서 의사로서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에 의한 사태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들이 ‘불법’ 임신중절수술 병원을 고발하면서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이 크게 위협받았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이며, 이런 상황이라면 여성들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사태가 더 크게 도래할 것이다.
필요와 이익에 따라 여성을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출산의 도구로 이용하고 범죄자로 만드는 국가.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의료서비스를 자신들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파업’이라는 퇴행적 방식으로 중단하겠다는 의료인. 이 땅에 여성의 인권과 기본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낙태죄’는 국민의 생명과 삶에 대한 책임을 오직 여성에게만 전가하며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생명을 선별해 온 지난 60여 년의 적폐, 가부장적 국가의 핵심적 산물이다.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절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의 문제이며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이제는 더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임신중절을 줄인다는 이유로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처벌해서는 안 된다. 낙태죄로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고, 여성의 인권을 더는 침해해서는 안 된다.
법과 도덕의 이름으로 여성의 몸에 자행되는 통제와 탄압은 더는 용납될 수 없다. 보건복지부와 의료인은 이를 명심하고 이제라도 시대를 역행하는 행태를 즉시 중단하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를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