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저링], 미국, 2013
하정우와 함께 출연한 [두번째 사랑]에서 소피 역을 맡았던 여배우 베라 파미가를 기억한다. 푸른 눈, 금발 머리, 볼륨이 느껴지지 않는 몸매, 그저 이국적인 모습을 제외한다면 관객의 눈길을 끌만한 외모는 아니었다.
그런데 조용조용한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연기가 아닌 실제 생활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검색해 보았다. [세이프 하우스] 2012, [소스 코드] 2011, [헨리스 크라임] 2010,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2008, [디파티드] 2006. 이 외에도 상당히 많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인데도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특징 없는 자신의 외모처럼.
심령공포물 [컨저링]에서야 도드라진 배역을 맡아 기억에 오래 남을 연기를 보여준다.
1971년 로드 아일랜드, 해리스빌. 한가한 전원주택으로 페론 가족이 이사 온다.
울타리 없는 널찍한 마당(그냥 공터라고 해야 옳겠다), 끝에는 호수가 펼쳐져 있고, 오래된 고목이 기괴한 모습으로 서있다.
공포물이 탄생할 아주 좋은 배경이다.
남편과 아내와 어린 아이들이 서넛 있는 가족 구성 역시 조그만 공포라도 확대 재생산될 소지를 갖고 있다.
이런 물리적 배경과 함께 페론 가족이 이사온 집은 수 십 년 전 아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는 비밀이 숨어 있다.
남편 에드 워렌은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탐구하는 심령학자다. 정작 본인은 그런 현상들의 과정과 결과 만을 수집할 뿐, 기괴한 현상의 주체를 볼 수는 없다. 그의 아내 로레인은 그 현상들을 일으키는 주체 즉, 유령들을 본다.
영화 [컨저링]은 로레인이 페론 가족의 집에서 맞닥뜨린 귀신들을 등장시킨 영화다.
만약 단순하게 이 세계에는 분명 유령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영화는 B급 심령공포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연출력과 영화적 장치들이 [컨저링]의 공포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