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는 한국 경마

[아이들러]

2,200m 황제로 군림한 비운의 명마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면 명마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경마팬들에게는 그다지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그러나 마필의 능력만을 따진다면 동시대에 활약했던 전설적인 명마

 ‘가속도’에 전혀 뒤지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 명마였다.  ‘

90년대 최고의 명마’라는 특집

경력 10년 이상인 조교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이때 상당수의 조교사가 90년대 최고의 명마로

‘징검다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마로 평가해도 손색없는 마필이다.

‘가속도’가 데뷔전을 치른 90년 6월 30일 같은 경주에서 먼 훗날 과천의 여왕을 꿈꾸는

 2세마가 데뷔전을 가졌으니 바로 ‘징검다리’였다.

순발력에서 ‘가속도’에 뒤져 3위에 그치긴 했지만 데뷔전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후 데뷔 4전째 경주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자

5백kg에 육박하는 3세 암말에게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가속도’의 연승신화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경마팬의 관심이 ‘징검다리’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가속도’의 연승행진이 경마공원의 최대 관심사였지만

‘징검다리’의 승승장구도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엄청난 추입력을 자랑하는 ‘징검다리’의 진면목은 장거리일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

 이런 ‘징검다리’의 괴력이 확인된 대상경주가 있었으니

91년 7월 펼쳐진 제3회 뚝섬배 대상경주였다.

 한달 전 펼쳐진 스포츠서울배에서 2위를 차지한 ‘마라토너’가 압도적인 인기를 모았고,

막강한 순발력을 뽐내던 ‘북풍’이 상대마로 지목됐다.

 추입력이 일품인 ‘징검다리’도 주목받긴 했지만 복병 수준으로 예상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당일 경마공원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으니

거구의 체격에 추입을 해야 하는 ‘징검다리’의 우승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였다.

그러나 괴력을 보유한 ‘징검다리’에게 불량주로 따위는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하위권으로 직선주로에 접어 들었지만 인코스를 파고든

 ‘징검다리’의 추입력은 실로 경이로운 발걸음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선두 마필들을 모두 뒤로 당기는 듯한 추입력은

 직접 목격하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되는 불가사의한 그런 장면이었다.

 제1회 뚝섬배를 차지한 바 있는 배휴준 기수와의 절묘한 호흡일치였다.

 드디어 91년 10월20일 제7회 마사회장배 대상경주에서

 ‘가속도’와 ‘징검다리’의 두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됐다.

 경마팬의 모든 관심은 ‘가속도’의 12연승 달성 여부에 초점이 모아져

 과천 이전 후 최대의 빅 이벤트로 손색이 없었다.

‘가속도’의 도전자로는 막강한 선행력을 자랑하는

 ‘경지’ ‘영웅호걸’과 이제 막 1등급에 진출한 신출내기 추입마 ‘보은’ ‘징검다리’가 주목받았다.

그 중 잠재력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받았던 ‘징검다리’가

조금 더 높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출발신호와 함께 발주가 이루어지자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5번 게이트에 자리잡았던 ‘징검다리’가 출발거부와 함께

 다른 말들에 비해 약 50m를 뒤진 채 출발한 것이었다.

 시쳇말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징검다리의 ‘타도! 가속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편 ‘가속도’는 ‘징검다리’보다도 한 수 아래로 평가된 ‘보은’에게 덜미를 잡혀

연승을 마감하게 됐다 .

경마팬들은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상심하며 두달 후에 그랑프리에서 펼쳐질

‘가속도’와 ‘징검다리’의 재대결을 기다렸다.

그러나 ‘징검다리’는 이 대회에서의 출발 거부로

그랑프리 인기투표 대상마 자체에서도 제외되는 불운을 맞았다.

해가 바뀐 92년 마사회에서는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1등급 최장거리를 2천m에서 2백m 늘린 2천2백m 경주를 신설했다.

괴력의 추입력을 보유한 ‘징검다리’에게는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징검다리’는 ‘가속도’가 강제 은퇴한 이후

정상을 꿈꾸던 도전자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과천벌 최강 마필로 자리잡아 갔다.

‘보은’ ‘영웅호걸’ ‘경지’는 물론이고

재기를 꿈꾸는 ‘차돌’에게도 치명타를 가하며

2천2백m 경주에서만 8전 7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92년 4월에 펼쳐진 경주에서는 마사회장배 우승마였던

‘보은’을 무려 9마신 차이(약21m)로 제압하며 2분22초8이라는 2천2백m 코스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2천2백m 거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징검다리’의 이 신기록은 영원히 남게 됐다.

그해 10월 ‘가속도’가 가장 무겁게 달고 우승했던 59kg의 기록을 훌쩍 뛰어 넘으며,

 두달 남은 그랑프리 준비를 끝마치게 된다.

그러나 ‘징검다리’에게 불운의 그림자는 또다시 드리워져 치명적인 부상으로

또 한번 출전이 좌절되고 말았다.

 ‘징검다리’는 이후 부상회복을 위해 29조 강윤식 조교사와 마방 식구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지만

한 번의 능력검사에서 1위로 통과한 후 또다시 부상이 재발, 결국 은퇴하게 됐다.

 더욱이 현지(뉴질랜드)에서 도입될 당시 혈통이 확인되지 않은 마필이었던 탓에

씨암말로 등록할 수 없게 돼 불운했던 경주마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징검다리’는 명마의 잣대로 평가받는 그랑프리에는 출전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경이로운 추입력은 명마로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특히 그가 보유한 2천2백m 신기록과 과천으로 이전 후

암말 최고 부담중량 우승(62kg)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다.

[메텔]

징검다리,참 안타까운 말이 였군요.그랑프리에 비록 출전은 못했지만 능력은 어느 말보다도 뛰어난 멋진 말이란 생각이드네요.모든 경주에서 사람이나 말이 부상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운영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징검다리 역시 대단한 명마였군요...

[만고땡]

경주마에겐 부상이 치명적이네요 넘 안타까운 일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