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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하고 싶은 환경
볼룬타드(도나티보) 알베르게는 거의 소규모 숙소라 순례자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가
지난한 일은 아니라 해도 늦잠꾸러기 나라에서 용이한 일 또한 아니다.
거의 모든 알베르게에서 관리인은 입실 때 대면할 뿐 아침에는 볼 수 없지 않은가.
여러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가라고 붙들었지만 바에나처럼 정이 담뿍 배어 있는 아침은
사도 야고보의 길 5개 루트에서 처음이다.
아침을 거르는 습관을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인가.
아침식사를 둘이 하고 사진도 같이 찍고 포옹(동양 늙은이도 어느 새 익숙해졌다)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가물거릴 때까지 손도 흔들었는데 왜 미진한 느낌이었을까.
정에 약하면서도 무정해야 하는 것이 나그네의 숙명인데.
늘 뒤돌아보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미련도 없이 훌훌 떠나버리는 것이.
이베리아 반도를 걷고 있는지 만 두달이다.
잠자는 5시간 내외 외에는 오직 걷거나 살펴보고 자료 모으는데 바치는 생활이다.
식사 마저도 국내의 산과 길에서 하던 버릇대로 거의 걸으면서 한다.
오죽하면 길걷는 동안에 사귄 이들이 내가 식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의아해 했을까.
이처럼 외골이며 건조한 나그네가 혹여 사람의 정을 그리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쁜 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잖은가.
헛된 생각을 털어내는 가장 좋은 약은 빨리 걷는 것.
발데스티야스 8km 길을 동녘에서 전개중인 일출쇼도 무관심할 만큼 잽싸게 걸었다.
어제에 이어 아스팔트 차로와 나란히 가는 감칠맛 나는 송림 길이다.
VP-9003 지방도로인데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왕래하는 차량이 거의 없으므로 이따금씩
숲길과 차로를 번갈아 걸어도 될 길이다.
푸엔테 두에로를 벗어날 때 마을 언저리를 어슬렁대는 거무스름한 노루와 마주쳤는데
전혀 겁을 먹지 않고 만만디로 숲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검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고귀한 천연기념물, 사향노루인데 이곳에서도 서식하고 있나?
그보다 사도 야고보의 길 산간지대에서 가끔 조우하는 고라니와 노루, 심지어 토끼까지
사람을 얕잡아 보고(?) 있는데 이런 환경을 수입할 수는 없을까.
포획금지령이 아니라 차량에게 서행하라고 당부하고 있으니 그들의 천국임이 분명하다.
길에 취해 무작정 걷다가 철로에 막혀 얼마간을 되돌아오는 해프닝을 아침부터 벌였다.
횡단해 이어갈 길이 없는 기찻길일 뿐 아니라 발데스티야스의 상수원과 방송국 부지로
묶인 출입제한 구역이다.
이후의 마드리드 길은 지하차로를 통해 철도를 가로지른 후 차로를 따르다가 다른 철도
와 아다하 강(rio Adaja)을 건너 발데스티야스 역(estacion/Renfe) 앞으로 간다.
렌페 역(Renfe/Red Nacional de Ferrocarriles Espanoles/스페인의 국철) 효과인지
발데스티야스(Valdestillas)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단다.
한데, 현재 1.800명이 넘는 큰 마을인데 알베르게가 없다.
하긴, 5천명 도시 시만카스와 30만이 넘는 주도 바야돌리드에도 알베르게가 없다.
순례자가 아닌, 관광객으로 간주해 고가의 호텔을 이용하게 하는 전략일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도 숙박업자들의 입김에 눌려 장거리 나그네에게는 오아시스에 다름 아닌
24시간 찜질방 영업을 불허하는 지자체들이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유명 소설의 무대임을 홍보하는 것 처럼 여기 지자체들도 그런다.
연표로 보면 우리보다 앞섰을 것이며 발데스티야스 마을도 그리하고 있다.
돈 끼호테(Don Quixote)의 저자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작품중 하나인
'개들의 대화'(El Coloquio de los Perros)에 등장한다고.
오래되지 않은 18c건물 산타 마리아 기적교회(Iglesia parroquial de Santa Maria del
Milagro)와 크리스토 보증 예배당(Ermita del Cristo del Amparo)등도 홍보하고 있다.
관광자원의 빈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이후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취락형성의 시기는 대개 교회의 설립과 때를 같이 하는
듯 한데 교회의 역사가 일천한 것으로 보아.
넓은 채소밭과 마늘밭, 넓은 밀밭과 보리밭, 넓은 솔밭
마을을 벗어나다가 한 부부를 만났다.
내 연배는 되리라 짐작했는데 65, 59세의 벨기에 부부다.
오순도순 걸어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부부도 60, 70년대에는 삼각산 백운대, 도봉산 침니지대와 안전 시설이 있기 전의
칼바위와 뜀바위 지역을 넘나들었건만.
건강관리에 실패한 늙은 아내를 원망할 수도 없고 무심한 영감 탓일까.
프랑스 길 로스 아르코스와 토말 길 묵시아의 관리인, 아라곤 길 솜포르트 밑 칸프랑크
푸에블로에서 만난 쓰러지기 직전의 50대 남에 이어 4번째 만나는 벨지언이다.
많이 걷지 못하기 때문에 알베르게에 구애받지 않고 걸으며 간밤에도 이 마을 호텔에서
자고(알베르게 없는 마을이라) 내가 8km를 걸어온 이 시간에 출발한다는 그들이다.
푸엔테 두에로 알베르게에 관해서 많은 것을 묻는 것으로 보아 오늘도 거기까지만 가려
하는 듯 한데 산티아고는 고사하고 사아군이 아득해 보일 것이다.
서양의 영감들은 하나같이 자기 부인을 나랑 사진찍게 한다.
동양 늙은이가 신기하고 기인처럼 보여서 그럴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잊지 못할) 특별한 시니어(senior/영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둘까.
이 부부도 그랬다.
내가 77세라는데 기겁한 그들은 2개월 동안 걸어온 5개 루트 이야기에 매료되어 서로가
서툰 영어인데도 계속해 듣고 싶어 했다.
아다하 강 왼쪽 끝자락에 위치한 발데스티야스에서 알카사렌에 이르는 마드리드 길은
폐 도예방 이후 해발 700m대의 끝 없는 지평선에 15km 이상 어지럽게 나있다.
넓은 채소밭과 마늘밭,넓은 밀밭과 보리밭,넓고 긴 솔밭 등 우열을 가릴 수 없으며 좁은
국내용 머리로는 상상해 보지 못한 규모의 벌판에 이리저리.
Y 자 갈림길은 아주 신사적인 길이다.
사거리와 가지 많은 길들이 순방향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역방향에서는 매번
알바를 각오해야 하는 애로 투성이 비포장 농로다.
사람이 무척 그리운(길을 확인해야 하니까) 참에 뚱보 초로남을 만났다.
개를 앞세우고 개보다 더 씩씩거리며 걷고 있는 그는 상체를 빨가벗었다.
체중 감량용(?) 걷기 같은데 윗도리를 벗어 든 것이 아니고 아예 없는 것으로 보아 인근
마을 주민인 듯한 그에게서 길을 확인했으므로 얼마동안은 편히 가게 되었다.
아침에 건넜던 아다하 강을 다시 건너 길고 넓은 숲과 밭길을 걸었다.
사거리에서 VA-404지방도로를 잠시 따르다가 에레스마 강(rio Eresma)을 건너 들어선
남쪽 숲속에서 또 알바를 했다.
넓게 차지한 브라수엘라스 목장(Caserio de Brazuelas) 때문이었다.
11c에 설립되었다는 방목 우마목장의 철조망을 피하다가 잘못 들어선 것.
가톨릭교 상징물들이 목장 안 곳곳에 서있는데 사도 야고보의 길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
시설(안내판)은 할 수 없는가.
미국 텍사스 주의 킹 랜치(King ranch)는 전체를 보려면 차를 타고 다녀도 10시간여가
소요된다는 광대한 목장인데 외부인들에게도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던데.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인 강원도 평창군의 평균 고도가 해발 700m란다.
평창과 정선,태백 등지를 고원지대라 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를 우리는 고냉지
채소라고 부른다.
겨울이 긴 고냉지라 일모작(一毛作)이며 하늘을 바라보며 재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700m는 고원지대에 들지 못하며 하늘의 처분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장대한 날개(살수기)가 아무때나 필요한 만큼 비를 내려 주고 있으니까.
백두대간을 절단내어 만든 산비탈의 광활한 채소밭을 통과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으며 원망을 많이 했는데 여기 채소밭들을 지날 때 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귀국해서 알게 된 개양귀비 꽃 이야기
알카사렌을 지호지간에 두고 핌포야다(pimpollada/어린 소나무숲)에서 잠시 견학하고
이베리아 반도인의 전지 기술을 수강(?)했다.
특이하고 아름다운 숲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틈틈이 보고 배우는 중이었으니까.
배워온 기술(?)을 집 마당의 나무들을 상대로 실습중인데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런지.
한국(동양)의 조경, 전지가 오밀조밀하고 섬세하다면 이베리아 반도(서양)는 대담하고
선이 굵다고 할까.
아름다우나 쉬이 권태를 느끼게 되는 전자에 반하여 후자로부터는 평범한 듯 하나 접할
수록 강해가는 흡인력을 느끼게 된다 할까.
대학의 살림을 맡고 있을 때 한 금형으로 찍어내듯 천편일률인 조경에 식상해 조경책을
열심히 뒤적인 적이 있는데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 답을 찾은 것 같다.
하나같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지만 권태롭지 않도록 대범하니까.
길가의 눈부신 태양열 발전단지와 눈을 홀리는 붉은 개양귀비 꽃밭이 대조를 이루었다.
한쪽은 눈을 감아버리게 하는데 반해 다른 한 쪽은 눈을 부릅뜨게 하니까.
4월 중순, 프랑스 길 로그로뇨 직전에 있는 도냐 펠리사의 스탬프집 앞 길가에서 처음
보았는데 아직도 피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화기가 꽤 긴 꽃이다.
마드리드 길 주변에 대규모 재배단지들이 있는데 아름다운 꽃을 왜 개양귀비라 했을까.
"제1차 세계대전 때 존 맥크래(John McCrae) 캐나다군 군의관 중령이 전장에서 쓴 시
'플랜더스 전장에서'((In Flanders Fields)가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단다.
영연방국가에서는 이 개양귀비 꽃을 전사장병 추모의 꽃으로 사용한다는데 종전기념일
(현충일)인 11월 11일 11시에 묵념하고 이 시를 낭송하는 것이 전통이란다.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플랜더스 전장에 개양귀비꽃 피었다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우리 누운 곳 알려주는 저 십자가: 종달새 힘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차게 노래하며 하늘로 날아오르건만 저 아래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요란한 총성에 그 노래 잘 들리지 않누나.
We are the dead. Short days ago 우리는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만 해도
We lived, felt dawn, saw sunset glow,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노을을 바라보았다.
Loved, and were loved, and now we lie 사랑했고 사랑받기도 했건만 지금 우리는
In Flanders fields. 플랜더스 전장에 누워 있구나.
Take up our quarrel with the foe: 원수와의 싸움을 시작하는데:
To you from failing hands we throw 맥 빠진 우리 손에서 횃불을 받아
The torch; be yours to hold it high. 높이 치켜들게나.
If ye break faith with us who die 죽은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 저버린다면
We shall not sleep, though poppies grow 우리는 잠들지 못하리라. 비록 플랜더스
In Flanders fields. 전장에 개양귀비가 자란다 해도.
유럽에서는 풍년을 상징하는 꽃으로 오래 전부터 농작물로 재배해 오고 있단다.
빨간 꽃잎은 시럽(syrup) 또는 민속주 담는데 쓰이기도 하고 씨는 기름을 짜거나 빵에
넣어 먹고 줄기는 채소로 먹으며 동양의학에서는 복통과 설사약으로 처방하는 등 버릴
데 없는 일년초라는 것.
중국의 꽃이름은 '우미인초'(虞美人草)란다.
한고조 유방(漢高祖 劉邦)의 군대에 포위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패왕 항우(楚覇王
項羽)의 애첩 우미인의 무덤에 개양귀비가 피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나.
(귀국해서 알게 되었다.)
전장, 죽음과 깊이 관련된 엘레지(elegy/elegie) 꽃임에는 틀림 없나 보다.
벤치마킹을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
알카사렌(Alcazaren)으로 가는 사도 야고보의 마드리드 길은 마드리드와 바야돌리드
길 N-601도로를 횡단한다.
전적으로 해가 중천에 있는 낮시간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주소만 들고 알베르게를 찾아가겠다는 배짱이었던 것은.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는 속담의 실천이었던가.
순례자 숙소를 마을 초입에 두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골목들을 헤매고 다녔으니까.
알베르게에 짐을 푼 후 어차피 그랬을 것이므로 앞뒤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지자체가 볼룬타드로 운영하며 벙크 4개(8명 수용)와 샤워시설이 있을 뿐인 신축 미니
알베르게에는 3명의 순방향 초로남이 입주해 있어 반가웠다.
어제에 이어 숙소에 사람의 온기가 채워 있으니까.
내게는 바야돌리드 주(州)의 마지막 알베르게지만 그들에게는 최초가 되며 마드리드를
들머리로 했다 해도 겨우 1주일 내외가 경과했을 뿐이므로 아직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에스파뇰 둘이 초면인 아르헨티나 솔로에게 사도 야고보의 길에 대해 유식한 체
하는데 어찌나 황당한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본 가장 무식한 시골뜨기들이다.
더구나 단지 먼저 도착했다는 이유로 다른 두 사람에게 텃세하려 하다니.
공동생활을 해보지 못해 사회적 의식이 전무한 그들에게 무식한 헤이시드(hayseed /
촌놈)라고 영어로 내밭았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영어는 알파벳도 모르니까) 단지 칼날 같이 날선 한 마디에 기가
꺾여버리는 촌티 덕지덕지한 이 자들이 아직 카미노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카미노 귀신을 몰라보는 눈 가지고 앞으로 프랑스 길을 어찌 걸어갈 것인지.
촌티의 클라이맥스(climax)는 식당에서 연출되었다.
일요일이라 레스타우란테(restaurante/식당)는 휴업하고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바르
(bar)라고 소개받아 간 집에서 나보다 먼저 나간 그들을 만났다.
나를 본 그들은 주인에게 몇마디 하고 나갔다.
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주문의 취소가 아니고 30분쯤 후에 와서 먹겠다고 했단다.
먹거리에 무관심한 내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겪는 가장 큰 애로는 음식 주문이다.
늘 같은 것만 먹는 이유도 다른 메뉴를 모르기 때문이다.
저들이 주문해 놓고 간 음식은 아마도 스페인인들이 즐기는 다양한 조합메뉴인 듯 한데
나도 그것을 주문함으로서 즐거운 식사가 될까봐 잠시 피한 것일까.
생전 처음 먹어보는 어이 없는 비프스테이크(beefsteak)에 주인도 미안한지 맥주값을
받지 않을 정도의 식사를 한 후 나갈 때 그들이 들어섰다.
알베르게로 돌아온 후 식수를 얻으려고 그 바르에 다시 갔다가 식사삼매경에 빠져있는
그들을 보고 내 예상이 적중했다고 생각되었다.
고백컨대, 무식한 촌놈들로부터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기분 전환과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 확인을 위해 나섰다.
인구 720여명인 마을 이름 알카사렌(Alcazaren)은 두 개의 성을 뜻하는 아랍어'Al-qua
saryn'에서 유래되었으며 인구 감소세가 새 천년 이후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마을이다.
13c 무데하르(Mudejar) 양식의 두 교회, 사도 야고보(Iglesia de Santiago Apostol)와
산 페드로(Iglesia de San Pedro)교회로 미루어 그 무렵에 형성된 마을일 것이다.
한데,이 마을에 왜 아메리카발견 500주년 기념비(Quinto Centenario,Descubrimiento
de America 1492~1992)가 서있을까.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이탈리아Cristoforo
Colombo,스페인Cristobal Colon)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이다.
교세확장을 위해 새 대륙이 필요한 에스파냐는 권력과 명예,부를 동시에 노리는 탐험가
콜럼버스의 요구를 수용하고 지원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다.
그래서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 전부와 많은 중미를 지배해 가톨릭 교세확장에 성공한다.
거국적으로 기념할 대사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알카사렌이 남달리 500주년 기념비
를 세울 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아메리카 발견 500주년' 이외의 아무 설명도 없이 덜렁 서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골목을 돌아가다가 유난히 불을 환하게 켜놓은 집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강당처럼 넓은 실내에서 대형 파티를 열고 있는 듯 음식을 즐기고 있는 남녀노소들.
9유로를 날렸을뿐 저녁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구미가 당겨졌는데 파티가
아니고 알카사렌 복지센터(Hogar del Jubilado)의 주말(토, 일) 저녁식당이다.
(Sabados y Domingos por la noche)
음식백화점에 다름 아닌 메뉴에 완전 실비제공이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 다양한 단체 등 온 마을인이 비록 주말 저녁에 한해서지만 친교를
나누며 유쾌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주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나도 여러 음식을 배불리 먹고 마시고 내일 점심까지 준비했는데도 5.8e에 불과했다.
수익금이 지자체 마을의 복지기금 확충에 기여하게 됨으로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는
매우 요긴하고 보람있는 프로그램 아닌가.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 길손까지 덕을 보았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지자체에 벤치마킹을
권하고 샆은 유일한 프로그램인데 이 땅의 다른 마을들은 왜 시행하지 않을까.
바르에서 만난 이 마을인들은 이처럼 유익한 프로그램이 있음을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혹, 마을 바르의 영업이익에 도움주려는 애향심(?) 때문이었을까.
만일, 사실이라면 미시적이며 마을의 이미지를 해치는 잘못 설정된 애향심이다.<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