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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손문상) |
우리 우주의 구원자, 암흑 에너지
▲ 황재찬 경북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강양구 : 오늘은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을 놓고서 얘기를 나눠보죠. 그런데 처음부터 말 그대로 캄캄하군요. (웃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좀 막막한데요.
이종필 : 물리학자이긴 하지만 저도 우주론은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해요. 그러니 오늘은 저도 독자 입장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우선 우주와 관련한 가장 기본적인 얘기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사실 20세기에 이뤄진 여러 과학 발견 중에서 가장 쇼킹한 것 중 하나는 '우주의 팽창' 아닐까요?
강양구 : 우주가 흔히 '빅뱅(Big Bang)'이라 부르는 대폭발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상태가 되기까지 계속 팽창해 왔다는 거죠? 지금 이 순간도 팽창하고 있고요.
황재찬 : 네, 1929년에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발견했지요. 그런데 허블 얘기를 하기 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현대의 우주에 관한 이론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쓴 독일어 논문('Kosmologische Betrachtungen zu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본 우주)')에서 시작하거든요.
이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정적 우주' 모형을 제안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은" 정적인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주가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건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 때문이잖아요. 우주 전체로 시야를 넓혀 봐도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이렇게 서로를 끌어당기겠죠.
강양구 : 그러면 결국 우주는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수축하거나 붕괴하겠네요.
황재찬 : 정적인 상태였다면 당기는 힘 때문에 수축하겠지만 팽창 중이었다면 팽창 속도가 감속하겠지요. 영구히 정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아인슈타인이 1917년의 그 논문에서 '우주 상수'를 제안합니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주에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상쇄할 만한 어떤 가상의 미는 힘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힘을 수식에서는 특정한 우주 상수를 도입함으로써 표현한 거죠. 원하는 결과를 위해 중력 이론을 바꾸는 약간 편의적인 방식이었죠.
그런데 허블이 1929년에 이런 아인슈타인의 뒤통수를 친 셈이에요. "우주가 팽창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내죠. 아인슈타인은 결국 허블의 발견에 승복하고 1931년에 자신이 억지로 도입한 우주 상수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아인슈타인이 애초 제안한 우주 상수는 지금 와서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이명현 : 이제 암흑 에너지 얘기를 해야 할 때인데, 그 전에 허블의 발견 이후에 있었던 논란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죠.
일단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곧바로 꼬리를 문 이런 질문이 나오죠. 그럼 팽창하기 전의 우주는 도대체 어떤 상태였을까? 지금이야 우리는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모여 있는 상태로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상태가 대폭발로 깨지면서 우리 우주가 시작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이런 빅뱅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상당수의 과학자는 다른 가설을 지지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앞서 얘기했듯이, 우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꼴이라는 겁니다. 단, 모든 방향으로 같은 비율로 팽창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이게 바로 '빅뱅 이론(Big Bang theory)'과 경쟁한 '정상 상태 이론(steady state theory)'입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도 우주의 탄생이 '대폭발'이라는 걸 상식처럼 알잖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빅뱅 이론을 옹호하는 이들이 오히려 소수였어요. 사실 '빅뱅'이라는 멋진 이름도, 정상 상태 이론을 옹호하는 과학자 몇몇이 "우주가 빵(Bang) 하고 시작했다고?" 하면서 비아냥거린 데서 비롯된 거고요. (웃음)
이종필 : 1965년에 우주 배경 복사가 관측되면서 빅뱅 이론은 결정타를 날리죠. 우주 배경 복사는 빅뱅의 흔적이 우주 곳곳에 골고루 퍼져 있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까 아인슈타인이 우주 상수를 도입할 때 했던 고민과 똑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빅뱅 이후에 우주가 팽창한다는 건 OK! 그럼, 우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주의 구성 요소 간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이 작용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는 중력의 영향 때문에 점점 감소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1998년에 그런 직관에 반하는 현상이 관측된 거예요. 초신성(supernova)을 관찰했더니, 오히려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강양구 : '초신성' 하면 인기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텐데…. (웃음) 어두웠던 항성이 갑자기 큰 폭발을 일으켜서 며칠 사이에 100만 배 이상 밝아지는 별이 초신성이죠.
이명현 : 네, 바로 그 초신성을 관찰해서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사실을 관측한 이들 세 명이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황재찬 : 1998년 관측 이전에도 상당수 과학자는 우주가 가속 팽창할 가능성을 제기했어요. 왜냐하면 가속 팽창을 전제하지 않으면 우주의 나이를 둘러싸고 굉장히 난감한 문제가 생기거든요. 우주의 나이가 오래된 천체의 나이보다도 적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자체 모순에 빠진다는 겁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볼게요. 지금 우리가 아는 우주의 팽창률(허블 상수)로 계산하면 우주의 나이를 이론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요.
그런데 1990년대까지도 그렇게 가늠한 우주의 나이가 (허블 상수 값에 따라 다르긴 햇지만) 약 100억 년에서 130억 년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계산한 나이는 결정적으로 별들의 관측 결과와 맞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가장 늙은 별의 나이를 대충 150억~160억 년 정도로 보았거든요. 이건 앞뒤가 안 맞잖아요? 우주의 나이가 130억 년인데, 우주의 구성 요소인 별의 나이가 150억 년이라니.
이명현 : 현재는 더 정확한 우주의 팽창률을 놓고서 우주의 나이를 대략 137억 년 정도로 보고 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살펴본 늙은 별의 나이도 대충 이에 근접하고요.
황재찬 : 최근 우주의 나이를 계산한 값은 바로 가속 팽창 때문에 좀 더 늘어났고, 늙은 별의 나이는 좀 더 줄어들면서 대략 137억 년에 근접한 것입니다. 아무튼 앞에서 언급한 우주의 나이를 둘러싼 역설을 해결하고자 몇몇 과학자들이 1970년대부터 가속 팽창의 가능성을 제기했어요. 우주가 옛날에는 팽창하는 속도가 느렸으리라는 거예요. 1998년 관측 결과, 이런 예측이 확인이 된 셈이죠.
이명현 : 그런데 이런 우주의 가속 팽창이 사실이라면, 곧바로 새로운 질문 하나가 꼬리를 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떤 물체가 더 빨리 움직이도록 하려면 외부로부터 힘을 줘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우주가 점점 더 빨리 팽창을 하려면,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미지의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이종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특별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
이종필 : 이 지점에서 다시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로 돌아갑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천체들이 끌어당기는 힘(중력) 때문에 붕괴하지 않으려면 그것을 상쇄해주는 미지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우주 상수를 도입했고요? 마찬가지죠. 이제 천체가 끌어당기는 중력을 상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속 팽창하게 하는 힘이 필요한 거예요.
이명현 : 바로 그 미지의 힘을 과학자들은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릅니다. 특히 1998년 관측 결과를 보고 과학자들은 열광했지요. 왜냐하면, 가속 팽창이야말로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파악했거든요. 상당수 과학자들은 1998년 관측 결과를 곧 암흑 에너지의 존재 증명으로 받아들였지요.
강양구 : 그러니까, 암흑 에너지는 아직 그 실체를 모르는 미지의 에너지(unknown energy)네요?
이명현 : 정확히 그래요. 사실 '미지의 에너지'가 정확한 명칭입니다. 암흑 에너지라고 하면 뭔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무튼 현재는 이런 암흑 에너지가 전체 우주의 약 7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어요. 그 정도는 되어야 현재의 우주를 지탱하면서 가속 팽창을 할 수 있거든요.
우리 은하의 구원자, 암흑 물질
강양구 : 그런데 암흑 물질도 있잖아요? 최근에 레너드 서스킨드 박사의 <우주의 풍경>(김낙우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을 읽었는데, 서스킨드 박사가 '암흑 물질(dark matter)' 밑에 이런 각주를 달아놓았더라고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혼동하면 안 된다. 암흑 에너지는 진공 에너지를 나타내는 다른 용어이다." (211쪽)
그 각주를 보고서 웃었던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두 가지를 얼마나 헷갈리면 현대 우주론의 대가로 꼽히는 사람이 자신의 책에서 그런 각주를 달아놓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종필 : 둘은 전혀 다른 거니까요. 암흑 에너지와 비교하면 암흑 물질은 그 존재가 거론된 기간이 꽤 됩니다. 20세기 초반부터 그 존재의 필요성이 관측으로 대두가 되었어요. 좀 자세히 설명해 볼게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처럼, 은하에 속한 별들도 은하 중심을 곡선을 그리면서 돕니다.
태양계와 비슷하게 만약 은하 중심에 은하의 질량이 집중돼 있다면, 케플러의 법칙 혹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은하의 중심에서 멀리 있는 별일수록 그 회전 속도가 거리의 제곱근에 반비례해서 감소합니다. 그런데 관측 결과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거리와 무관하게 별들의 회전 속도가 굉장히 일정한 값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을 은하 회전 곡선이라고 합니다. 이 은하 회전 곡선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암흑 물질의 도입이에요. 은하의 보이지 않는 곳에 정체불명의 질량을 가진 물질이 숨어 있어서, 은하 속 별들의 회전 운동이 케플러의 법칙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명현 : 이런 중력이 존재하려면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 예를 들어 수소, 헬륨, 철 등과 같은 원자를 합한 것보다 열 배 이상 무거운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 때부터 과학자들이 미친 듯이 도대체 그런 물질이 무엇인지를 찾았지만 실패해요. 왜냐하면 이 무거운 물질은 빛을 내지 않아요.
이종필 :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빛뿐인데, 이 물질은 빛을 내지 않으니 관측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결국 '암흑 물질'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현재 과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서 우리가 아는 원자로 이루어진 보통의 물질은 4.6퍼센트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그리고 23.8퍼센트 정도가 원자가 아닌 암흑 물질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강양구 : 지금 많은 과학자들이 이 암흑 물질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용을 쓸 텐데, 정체 규명에 진척이 있나요?
이명현 : 별 중에서 다 타버리고 나서 빛을 내지 않은 것들이 있어요. 백색왜성, 갈색왜성 더 나아가 블랙홀 같은 것들이요. 이 별을 총칭해서 '마초(MACHO, MAssive Compact Halo Objects, 무겁고 작은 헤일로 물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마초는 암흑 물질이 제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질량의 10퍼센트 정도밖에 만족을 못 시켜요.
이종필 : 그래서 하나씩 그 정체가 드러나는 입자 중에서 후보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가설을 밀어붙인 대표적인 과학자가 바로 이휘소 박사입니다. 이 박사의 가장 큰 공헌 중 하나가 바로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cosmology)을 연결시킨 거지요. 이런 노력 속에서 중성미자(뉴트리노)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강양구 : 중성미자는 빛보다 빠른 물질이라는 논란의 주인공이었죠? 물론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었지만요. (☞관련 기사 : 과거로는 '시간 여행' 불가능! 미래로는 택시만 타도…)
이종필 : 네, 바로 그 중성미자요. 중성미자는 물질과 상호 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찰이 어려운 데다가, 우주에 엄청난 숫자가 분포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중성미자의 성질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결국 그 입자는 암흑 물질의 후보에서 탈락되었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개별 입장의 질량이 너무 작아서 도저히 암흑 물질로 볼 수 없었거든요.
일단 입자 물리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보통의 물질과 아주 약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이 말은 거의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마치 중성미자가 지구나 생물과 같은 물질을 아무런 상호 작용 없이 휙 지나가는 것처럼. 대신에 이 암흑 물질은 중성미지와는 달리 아주 무거워야 합니다.
이런 성질의 입자를 일단 '윔프(WIMP,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 약하게 상호 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라고 부릅니다. 조만간 이 암흑 물질의 정체가 밝혀지고, 우리가 몰랐던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물질로 확인이 된다면, 우리가 아는 입자의 지식에도 큰 변화가 오리라 생각됩니다. (☞관련 기사 : 힉스 입자가 뭐냐고? 강남에서 '말춤' 추는 싸이!)
우주의 비밀, 여전히 캄캄하다!
이명현 : 지금까지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 수박 겉핥기로 살펴봤어요. 2013년 현재, 많은 과학자는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의 존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해요.
"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년이다.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 가속 팽창의 원인은 암흑 에너지 때문이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 전체의 약 72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우리가 아는 원자로 이루어진 보통의 물질은 4.6퍼센트 정도다. 그리고 우주의 약 23.3퍼센트는 원자가 아닌, 그 정체를 아직 모르는 무거운 암흑 물질이다."
상당히 그럴듯하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주류의 방식을 아예 '조화 우주론(harmonic cosmology)' 혹은 '정밀 우주론(precision cosmology)'이라고 부릅니다.
황재찬 : 이쯤에서 불편한 진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조화 우주론' '정밀 우주론' 이런 식의 표현은 어불성설이에요. 암흑 에너지의 정체가 뭔가요? 아무도 몰라요. 암흑 물질의 정체는요? 역시 아무도 몰라요. 심지어 우주 전체를 통틀어서 우리가 관찰이 가능한 빛을 내는 물질도 0.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강양구 : 우리가 아는 원자로 이루어진 보통의 물질 4.6퍼센트 중에서 관찰 가능한 게 0.5퍼센트 정도라는 거죠?
황재찬 :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를 구성하는 것 중에서 0.5퍼센트를 제외한 99.5퍼센트를 우리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상당수 과학자는 마치 우리가 우주에 대해서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정밀 우주론' 같은 얘기를 하는 건 그 방증이고요. 그런데 과연 99.5퍼센트를 모르는 상태를 놓고서 '정밀 우주론' 운운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여기서 우리가 따져봐야 할 게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펴본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의 존재를 과학자들이 믿는 데에는 몇 가지 가정이 전제되어 있어요. 만약 이런 몇 가지 가정 중에서 단 하나라도 틀린 것이 확인된다면,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은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도 있어요.
강양구 : 예를 들어 어떤 가정인가요?
황재찬 : 생각해 봅시다. 1998년에 우주의 가속 팽창이 관측으로 확인되고 나서, 곧바로 암흑 에너지가 제기된 데는 당기는 중력을 상쇄하고 우주를 가속 팽창시킬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잖아요. 우리는 태양계 수준에서는 태양 궤도를 지구가 도는 것처럼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 중력이 은하 규모의 우주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요?
더구나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는 모두 지금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과거의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몇 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모습을 오늘 관측한다면, 그 모습은 몇 십억 년 전의 우주의 풍경이거든요. 그런데 과연 과거의 우주에도 중력이 오늘날과 똑같이 작용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주 가속 팽창이 곧바로 중력을 상쇄하고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어떤 힘, 즉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알려준다고 주장하는 데는 두 가지 가정이 전제된 거죠. 아이작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 ①과거 현재 미래에 상관없이 ②우주 전체에 작용한다는 거예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암흑 물질과는 달리 암흑 에너지의 경우에는 아인슈타인이 우주 상수를 추가해서 바꿔 놓은 중력 이론에 대한 신뢰로군요.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이명현 : 은하 규모의 우주에도 중력이 똑같이 작용하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요. 은하가 유지되려면 강한 중력의 원인인 무거운 암흑 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니까요.
황재찬 : 과학자들은 이런 엄청난 가정을 해놓고도 개의치 않아요. 왜냐하면 이미 대다수 과학자에게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중력의 존재는 일종의 신념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은하 규모의 우주에서 중력 이론이 맞는지 검증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암흑 에너지나 암흑 물질은 일종의 믿음의 산물입니다. '중력은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이런 믿음이요.
강양구 : 듣고 보니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황재찬 :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계속해볼게요. 이건 조금 더 심각합니다. 아까 아인슈타인이 1917년 논문에서 정적인 우주를 제안했다고 했지요? 그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수학적인 단순화를 위해서 우주를 균일하고 등방(等方)한 어떤 곳으로 간주해요. 그러니까 우주 전체로 보면 별들의 분포가 한 쪽으로 몰려 있지 않고 골고루 퍼져 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은하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책상머리에 앉아서 했던 이런 가정을 우주를 연구하는 다수의 과학자가 지금도 공유합니다. 물론 아주 큰 규모에서 그럴 것으로 봅니다. 1998년의 관측 결과 역시 마찬가지에요.
이명현 : 먼저 그 관측 내용을 살펴보죠.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 명의 천문학자는 독립적인 연구를 하는 두 팀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솔 펄뮤터 박사가 이끄는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 팀과 호주 대학교의 브라이언 슈미트 박사와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애덤 리스 박사가 이끄는 '고 적색이동 초신성 탐색' 팀이요.
이들은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를 탐색해서 초신성을 발견한 다음에, 초신성 관측을 통해서 그 초신성이 속한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했어요. 그랬더니 '은하까지의 거리가 우주 팽창 속도가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더 멀다(약 15퍼센트)'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고 가정했을 때와는 일치했고요.
황재찬 : 그런데 바로 이 관측도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균일한 우주'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비교해 볼게요. 암흑 물질의 경우에는 원심력을 상쇄할 만한 중력의 필요성 때문에 빛을 내지 않는 '미지의 무거운 물질'의 존재를 가정합니다. 그게 바로 암흑 물질입니다. 즉 중력 이론은 그대로 두고 물질의 분포를 조절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암흑 에너지도 똑같은 가정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수십억 년 전 폭발한 초신성은 수십억광 년 떨어진 큰 규모인데, 우리로부터 이 정도 떨어진 지역에 마침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거운 물질이 잔뜩 모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 부분은 밀도가 높을 테고, 당연히 중력도 셀 테니 우주 팽창 속도가 느리지 않겠어요? 그런데 1998년 관측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은 어땠나요?
암흑 물질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무거운 물질의 분포를 조절하는 대신 중력 이론을 바꾸어서 '미지의 새로운 에너지'를 도입했어요! 그걸 암흑 에너지라고 이름을 붙였고요. 과거나 현재나 가까운 곳이나 먼 곳이나 우주의 물질 분포는 균일하다는 아인슈타인의 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겁니다. 우주 규모에서 특정한 곳에 무거운 물질이 모여 있을 가능성, 즉 불균일한 우주를 인정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느니 중력 이론을 바꾸는 편의적인 선택을 한 셈인데, 앞서 얘기했듯이 우주 상수도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중력 이론을 바꾸면서 나온 거잖아요?
강양구 :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인데요. 그런데 실제 관측 결과는 어떤가요? 우주가 균일한가요?
이명현 :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현재 SDSS(Sloan Digital Sky Survey)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에요. 은하의 3차원 분포를 확인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 결과만 놓고 보면 우주의 모습이 전혀 균일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주가 균일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거의 60만 개 정도의 은하를 살피긴 했는데, 우주의 균일성을 가타부타 결론을 내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데이터거든요.
황재찬 : 더 먼 거리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지금 계획하는 유클리드(Euclid) 프로젝트 는 2019년 발사될 인공위성으로 약 10억 개의 은하 사진과 그 중 1억 개 은하의 공간 분포를 확인할 예정입니다. 사실 그런 데이터가 확보가 되더라도 우주의 균일성을 놓고서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재까지 확보된 데이터만 놓고 보면 우주가 균일하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하다는 거예요!
강양구 : 그런데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보편 이론을 가정하고 나서 그 이론의 도움으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된 경우가 많잖아요?
황재찬 : 제가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1781년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고 나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염두에 두고 천왕성 바깥쪽 궤도에 또 다른 행성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암흑 물질을 가정한 셈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해왕성이 확인이 되었어요.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도 이렇게 확인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건 과학이 거둔 또 하나의 엄청난 성공 사례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는 그 단어 자체가 일단 현실을 재단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단어만 놓고 보면, 뭔가 실체가 있는 물질 혹은 에너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래서 물리학자들이 암흑 물질을 발견하겠다고 우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지하로 들어갑니다. (웃음)
이명현 : 사실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단일한 어떤 것이라는 데도 의문을 제기해요. 관측을 하다 보면, 아까 백색왜성, 갈색왜성, 블랙홀 얘기도 했지만 빛을 내지 않으면서도 질량이 커서 중력이 큰 게 있어요. 그런 여러 가지가 암흑 물질의 효과를 내고 있을 수도 있지요.
이종필 :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이 암흑 물질을 중성미자와 같은 특정 물질이라고 간주해온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좀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는 고작 4.6퍼센트 정도에 불과한데도 그것을 구성하는 입자는 최근에 그 존재가 확인된 힉스 입자를 포함해서 열일곱 개나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무려 대여섯 배나 양이 많은 암흑 물질이 한두 종류의 입자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상식적인 반응이 아니죠. 아무튼 방금 황재찬 선생님 말씀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저도 우주론 전공자가 아니라서, 이른바 '정밀 우주론' 혹은 '조화 우주론'의 견해만 듣다가 황재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굉장히 신선합니다.
제 의견을 약간 덧붙이면 이렇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기 전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도저히 설명을 못하는 천체 현상이 몇 가지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수성 궤도에서 만유인력의 법칙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있었어요(수성의 근일점 이동). 그런데 당시 어느 누구도 만유인력의 법칙이 틀렸을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죠.
오히려 수성과 태양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지금 은하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암흑 물질의 존재를 가정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 아인슈타인이 1915년 중력에 대한 자신의 이론(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그 이론을 수성의 궤도를 둘러싼 미스터리에 적용해 봤어요. 당연히 정확히 설명이 되었죠.
결국 수성의 궤도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아인슈타인 일반 상대성 이론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황재찬 선생님의 말씀의 취지는, 지금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 상당히 억지스러운 걸 수도 있다는 거예요. 우주의 구성 요소 중에서 99.5퍼센트의 정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대다수 과학자는 기존의 과학 이론에 안주해 있는 거거든요.
어쩌면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과학 이론을 혁신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류가 아니어서 그렇지, 대안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과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안적인 설명이 지금은 찬밥 신세지만, 어쩌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그랬듯이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강양구 : 토머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김명자 옮김, 까치 펴냄)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잖아요. 정상 과학이 득세할 때, 대다수 과학자는 그런 정상 과학에 반하는 여러 가지 관찰 결과가 나와도 (정상) 과학 이론 자체를 의문시하기보다는 그런 관찰 결과에 부합하도록 그 이론을 보완하는데 몰두하잖아요.
황재찬 : 실제로 현장에서 과학 연구가 그런 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우주론을 둘러싼 상황이 그런 과학 혁명을 앞둔 정상 과학의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정상 과학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상황이죠. 왜냐하면 가장 잘 만들어 놓았다는 우주 모형의 구성 요소 중에서 99.5퍼센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게 정상 과학이에요? 관점을 바꿔 보면, 현재 우주론의 엄청난 균열이 보이는 겁니다.
'천상의 물질'을 찾는 현대 과학
강양구 : 그런데 황재찬 선생님의 이런 견해는 해당 분야의 동료 과학자 사이에서 상당히 이단적인 취급을 받을 것 같습니다. (웃음) 급진적(radical) 견해잖아요?
황재찬 : 오늘은 과학 '수다'를 떠는 자리라면서요? (웃음) 그런데 방금 제 얘기를 놓고서 급진적 견해라고 지적했는데, 사실은 급진적인 게 아니라 굉장히 보수적(conservative) 관점에서 얘기를 한 거예요. 과학의 토대는 경험 연구입니다. 아까 우주가 과연 균일한지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따져봐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과학자들이 자연을 주시하기보다는 이론으로 여러 현상을 재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이 '정밀 우주론' 혹은 '조화 우주론'과 같은 이름으로 주류가 되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말 실제로 무슨 일이 있는지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이 드는 거예요.
ⓒ프레시안(최형락) |
이종필 : 사실 저는 암흑 물질은 조만간 그 정체가 규명되리라고 믿는 편입니다. 그런데 암흑 에너지는 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그 정체를 규명하는 게 21세기 과학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될 텐데요. 아까 아인슈타인이 폐기했던 우주 상수가 이 암흑 에너지로 되살아났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론대로라면 이 우주 상수는 공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거든요. 아인슈타인이 처음 도입할 때는 중력 같은 힘 때문에 정적인 우주 공간이 붕괴되는 걸 막는 에너지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와 비슷한 암흑 에너지가 가속 팽창의 주역이라고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명현 : 그 암흑 에너지의 원인이 되는 가상의 물질을 '크빈타 에센티아(quinta essentia)'라고도 부르잖아요. (웃음)
황재찬 : '천상의 물질' 즉 '제5원소'요! 암흑 에너지로 천상의 물질은 지상의 물질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거니까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간 거예요. 아이러니하죠? (웃음) 제가 오늘의 과학 수다를 혼란스럽게 했으니, 마무리를 해볼게요.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 둘 다 과학자 사이에 그 존재를 놓고서 상당한 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찾으려는 시도도 활발하죠.
이종필 : 2000년 이후에는 암흑 물질의 정체를 찾으려고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이에요. 찾기만 하면 그냥 노벨상입니다. 왜냐하면, 아까도 잠시 얘기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 열일곱 개 중에서는 암흑 물질의 후보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암흑 물질의 정체를 해명하면 그건 우리의 입자에 대한 지식을 흔들 거예요. 그런데 암흑 에너지는 좀….
황재찬 : 우주를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현상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주 가속 팽창도 그런 현상 중 하나예요. 그런데 암흑 에너지는 그런 현상을 설명하는 너무 쉬운 접근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런 현상을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로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정밀 우주론' 혹은 '조화 우주론'이 얘기하듯이 우주의 신비가 다 밝혀진 것이라면 일반 독자 입장에서도 얼마나 시시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실은 정밀 우주론이라는 모형에서조차 우주 구성 요소의 99.5퍼센트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에요. 우리는 암흑 물질 또 암흑 에너지라는 거대한 수수께끼가 앞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고요.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요?
저는 종종 사람들이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과학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가 1965년의 우주 배경 복사입니다. 그 관측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빅뱅)로 가는 문이 열렸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전인 1961년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아주 유명한 우주론을 연구하는 과학자 데니스 시아마가 한 책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는 정상 상태 우주론을 옹호했지요.
"20세기의 우주가 진정한 우주라고 믿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앞으로의 발견이 조금 더 세세한 부분을 더하게 되겠지만 전반적인 그림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과학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거든요. 저는 '정밀 우주론' 혹은 '조화 우주론'의 운명도 이런 에피소드의 반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주류 이론대로 정말로 암흑 물질이나 암흑 에너지가 확인이 될 수도 있어요.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확인이 되고 곧 대탐험의 시대가 끝났듯이 말이죠. 그런데 새로운 발견을 갈구하는 탐구자들에게는 이야말로 비극이 아닐까요? (웃음)
이종필 :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니까, 오늘 수다 내내 떠오른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할게요. 혹시 스코트 데릭슨 감독의 <지구가 멈추는 날>을 보셨어요?
강양구 :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죠. 사실 이 영화는 원래 195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1940년에 발표된 해리 베이츠의 단편 과학 소설(SF)도 유명하고요('Farewell to the Master'). 영화에서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인 외계인 '클라투'가 나오죠.
이종필 : 네, 키아누 리브스가 분한 외계인 클라투가 쫓기다가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아서 잠깐 은신을 해요. 그런데 그 은신처의 한쪽 칠판에 한 과학자가 써 놓은 방정식이 잔뜩 있지요. 클라투가 그 칠판을 보더니 방정식 하나를 지웁니다. 그 방정식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방정식이에요. 그걸 지우고 나서 클라투가 뭔가를 새로 씁니다.
물론 영화의 설정일 뿐이죠. 그런데 클라투가 도대체 칠판에 뭘 썼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정말로! 외계인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써준 거잖아요. 지금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에요.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다 그 틀에서 나온 거고요.
그런데 정말로 영화처럼 일반 상대성 이론이 아닌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이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지겠죠. 우리가 우주를 아니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테니까요. 물론 지금까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대체할 만한 대안의 패러다임이 등장하지 않았지만요….
강양구 : 설사 누군가 그런 대안 패러다임을 내놓아도 상당히 오랜 기간 핍박을 받지 않을까요? (웃음)
이명현 : 세상 일이 다 원래 그렇죠. (웃음)
이종필 : 아무튼 그 영화의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요. (웃음) 오늘 유쾌한 수다였습니다.
오만과 편견, 현대 우주론을 넘어서 황재찬 / 경북대학교 교수 현대 우주론을 소개하는 책이 꽤 많지만, 대체로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물리 우주론의 이론적 전개는 갈릴레오 이후 근대 과학의 전통에 따라 대상의 수학적 모형을 다루지만, 수식 하나가 늘 때마다 팔리는 책의 수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읽지는 않으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전설적으로 많이 팔렸다는 호킹의 그 유명한 책 <시간의 역사>의 편집인이 말했다는) 위협이 빈말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으로 전개한 내용을 수학 없이 설명해야 하는 고충도 있겠지만 그런 설명이, 저자의 말을 무조건 믿는다면 모를까, 독자로서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교양을 위한 우주론 책들에서, 요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혹은 독자층의 기호를 반영한 것인지, 다중 우주(multiverse)니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에 대한 소개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들이 우리가 속한 우주 이외의 곳에 대한 내용이라면 어떠한 개연성 있는 주장도 관찰이나 실험으로 검증이 원리상 불가능할 터인데, 이러한 논의가 과학의 영역 안에서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면 어딘가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만합니다. 물론 아동의 건강한 지적 성장을 위해 동화가 중요하듯이 (우리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분야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분들께 각박한 현실의 적나라한 노출이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리상 검증할 길이 없는 주장의 경우 과학자가 했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과학적 주장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연과의 검증 이외에 따로 과학적 방법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과 우주의 근본을 묻는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가 과학 지망생이나 독자에게는 환상적이고 시원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근대 과학은, 증거를 댈 수 없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질문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답을 구할 수 있는 작은 질문들에 집중함으로써 나름의 성공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첫 번째 역설(paradox)이 있습니다.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갈망(desire)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근본이 형이상학적입니다. 즉, 관찰과 실험의 영역을 넘어서기에 널리 알려진 과학의 본령과 맞지 않습니다. 과학의 영역을 조금 넓히고 싶다면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그곳은 본래부터 과학의 영토가 아니었고 지금도 그곳에는 수천 년 동안 인간 지성이 이룩한 위대한 건축물들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근대의 과학 세계관이 타 세계관보다 우월하다고 내세우는 근거는 결국 자연에 의한 검증입니다. 검증 가능성 없이 주장되는 '과학'이라는 수식어는 일단의 검증된 과학이 어렵사리 획득한 수사학적 지위(rhetorical prestige)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며 또한 그 권위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우주론이 우주에 대한 여러 (예를 들자면 시간적 공간적 유무한성 따위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분명 우리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검증 여부를 벗어난 자유로운 탐구에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부적절하며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최근 물리 우주론에서 진정한 발전은 천문학적 관측과 그에 대한 우주 모형을 이용한 해석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글에서 모형은 이론 체계 전체를 포함합니다.) 내가 이해하는 결과는 이렇습니다. 지금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표준 우주 모형에 따르면, 우주의 동역학에 기여하는 99.5퍼센트의 요인이 빛을 내지 않는 미지의 상태에 있습니다. 단지 0.5퍼센트 정도만 빛을 내는 천체에 속합니다. 관측과 모형의 정합을 위해서는 4퍼센트 정도가 (그나마 대부분 빛을 내지 않는 암흑)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약 20퍼센트와 약 70퍼센트는 각각 우리가 그 특성이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구성된다고 추정합니다. 암흑 물질은 원자처럼 당기는 중력을 행사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물질이며, 암흑 에너지는 우주 규모에서 미는 힘을 내는 요인을 지칭합니다. 최근 많은 연구자들은 이렇게 구성한 표준 우주 모형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 단지 구성물의 비율을 관측으로 더 정밀하게 결정하는 작업만이 남아있다며 지금을 정밀 우주론 시대(precision cosmology era)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미지(unknown)의 것을 정밀(precise)하게 안다는 것이 어쩐지 모순된 어법(oxymoron)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표준 우주 모형의 암흑 부문(dark sector)에 대한 주장은 우주가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형(이론 체계)을 동원하여 관측을 해석한 결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모형을 동원하면 당연하게도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데 표준 우주 모형의 주장은 나름 단순한 모형으로 여러 관측을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그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단순한 모형에 근거한 이론적인 추론의 승리로 결말이 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입니다. 폴란드의 신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주장이 천동설과 지동설의 권력 다툼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천상의 물질이 지상의 물질과 동일하다는 주장으로 근대 과학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단초를 제공한 측면은 굳이 강조되지 않습니다. 이 후자의 변화가 훨씬 중요한데, 이 중대한 '믿음의 체계'가 이틈에 당연한 듯이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제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천문학자들은 다시 천상의 물질은 지상의 물질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아직 믿음의 체계까지 바뀔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에도 변화가 급하게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주 규모에서 미는 힘 또는 암흑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현대 우주론의 전체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암흑 에너지의 가장 단순하며 유력한 후보인 우주 상수는 1917년 아인슈타인이 우주 모형을 정적으로 만들고자 자신의 중력 이론에 미는 중력을 행사하는 항을 임의로 추가한 것이 발단입니다. 현대 우주론은 아인슈타인의 이 논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적 단순화를 위해 공간이 균일하고 등방하다는 강력한 가정을 하는데 이 가정은 지금도 표준 우주 모형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주 팽창이 발견된 후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를 철회하고자 했지만 그 후에도 이 항은 무대에 꾸준히 남아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한 미는 힘이 없다면 우주의 나이가 오래된 천체의 나이보다도 적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자체모순에 빠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나이 문제'입니다. 1998년 먼 거리 떨어진 초신성의 밝기가, 당기는 중력으로 팽창이 감속하는 모형이 예상한 것보다 어둡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우주 상수 같은 미는 힘 때문에 우주가 시간이 가며 가속해서 팽창한 것으로 해석한 이후 '우주의 나이 문제'가 지금은 '우주 상수 문제' 혹은 그것을 일반화한 '암흑 에너지 문제'로 바뀐 셈입니다.
소개해 드릴 책은 세 권입니다. 첫 책은 사토 후미다카와 마츠다 다쿠야가 지은 <상대론적 우주론>(김명수 옮김, 전파과학사 펴냄)입니다. 한국어 초판 발간 연도가 1980년인 이 오래된 고서를 소개하는 이유는 단지 대학 1학년 때 이 책을 읽고 우주론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경험은 이런 과학책의 진정한 독자층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지금 보면 독자에게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수식이 과감하게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인플레이션(초기 우주 가속 팽창)도, 암흑 에너지(현재 우주 가속 팽창)도 나오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 우주에 대한 과학의 범주를 넘나드는 논의는 언제고 사람들을 매혹시킬 주제입니다. 다음 책은 작가 존 파렐이 지은 <빅뱅 : 어제가 없는 오늘>(진선미 옮김, 양문 펴냄)입니다. 표준 우주 모형과 같이 암흑 에너지로 우주 상수를 택한 팽창 우주 모형을 제안한 분은 벨기에의 신부인 조르주 르메트르입니다. 우주 상수가 있는 우주 모형을 르메트르 모형이라고 칭할 만합니다. 이 책은 르메트르의 평전이자 현대 우주론 소개서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팽창 우주가 발견된 후 우주 상수를 철회하고자 했지만 르메트르는 우주의 나이 문제를 포함한 여러 근거를 들어 이 상수가 우주론에 필요하다고 꾸준히 주장합니다. 르메트르가 팽창 우주 모형을 제안한 1927년은 허블의 우주 팽창 발표보다 2년 앞섰으며, 놀랍게도 같은 논문에서 이미 르메트르는 당시 관측 자료에 근거하여 우주가 팽창함을 보였음이 최근에 와서야 밝혀졌습니다.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주장이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놀라웠겠지만, 잊히고 왜곡된 발견의 역사는 지금도 경이롭습니다. 한편 우주 팽창도 모형을 이용한 관측의 해석에서 나온 것이지 관측 자체가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우주론의 역사는 끊임없는 의심, 비판, 완고함, 기회상실, 혼란, 그리고 노골적인 부정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21쪽) 여기에 때 이른 발견, 무시, 재발견과 왜곡된 영예가 추가될 만합니다. 위의 부정적 표현이 겨냥하는 인물로, 현대 우주론의 기반이 된 중력 이론의 발명자이자 현대 우주론 자체를 탄생시킨 아인슈타인이 거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이 위대한 학자가 유독 우주론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팽창 모형에 대한 계속된 편견과 오류, 반감은 흔히 노출되지 않는 광경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론의 초기 발전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는 팽창 우주 모형을 처음으로 발견한 러시아 학자 알렉산데르 프리드만의 1922년 논문에 대한 비평에서는 비극적인 색조마저 띱니다. 아인슈타인은 프리드만의 연구가 잘못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만 한해 뒤 잘못은 자신이 한 것임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타격이 있은 후에 프리드만의 이 위대한 업적은 1925년 그의 때 이른 죽음과 함께 잊히고, 훗날 르메트르에 의해 재발견됩니다. 지금은 현대 우주론의 기본 식을 프리드만 식이라고 합니다. 한편, 최근 조사에 따르면 르메트르가 1933년 발표한 구형 우주 모형 풀이(10장)는 그 후 20여 차례 독립적으로 재발견됩니다. 귀를 의심할 지경이지만, 르메트르의 두 논문이 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 학술지에 불어로 발표됐다는 것이 변명이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르메트르는 현대 우주론에서 아주 잘 알려진 학자로 빅뱅 우주론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사해보니, 르메트르의 1927년 논문은 우주 팽창에 대한 관측 부분이 빠진 불완전한 상태로 1931년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1933년 논문은 1997년이 되어서야 영어로 번역됩니다.) 마지막으로 권해드리는 책은 과학사가 슈테판 카르티어가 지은 <하늘의 문화사>(서유정 옮김, 풀빛 펴냄)입니다. 이 책은 최신 우주론 소개서가 아닙니다. 인간이 우주를 이해해 온 변천사를 광범위한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합니다. 저자의 글은 인간과 우주의 관계나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어째서 단지 천문학자나 과학의 시선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지, 또 과학에 근거한 현대 우주론의 우주관도 어떤 의미에서 단지 지금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시선일 뿐인지 보여줍니다. "천문학에서 논의되는 여러 우주 모형에서 변하지 않는 점은 하늘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망이다. 이 질서는 될 수 있으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관측자가 만들어낸 질서다. 이 사실은 잊어버리고 싶지만 누구나가 다 아는 비밀이다." (270쪽) 현대 우주론 또한 관찰자가, 이번에는 단지 과학의 방법으로, 만들어낸 질서의 하나입니다. 우주가 막연히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근대의 사유가 유물론적이며 기계론적 단순함을 추구하는 과학 세계관의 외곬의 시선에 붙잡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과학은 자연을 단순한 모형으로 만들지만, 모형은 실재와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현대 우주론이 요구하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단순화된 우주 모형 안에 우주를 꿰어 맞추는 (주객이 전도되었지만, 토머스 쿤에 따르면 정상 과학에서 일상 일어나는) 과정에서 '구성된' 개념이지 우주가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방법론적으로 유용했을 모형을 우주적인 실재로 간주하는 것은 오류를 넘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자연을 이론의 눈으로 재단하는 '오만'이 자신의 눈을 가리는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부과한 것을 자신이 다시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점은 비단 현대 우주론만이 아니라 근대 과학의 속성이니 주의해야합니다. (이글에서 근대와 현대는 같은 뜻입니다.)
근대에 인간에 대한 학문을 부활시킨 최초의 사람으로 그려지는 이탈리아의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몽벤투 정상에서 펼쳐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0권 8장의 인용을 통해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어떻게 인간 자신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지 묘사됩니다. "인간은 높은 산과 바다의 위엄, 깊은 물과 바다의 광대함, 별의 운행을 보고는 감탄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소홀하다." (87쪽) 역사에 나타난 인간과 우주의 소통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그리고 유머로 가득한 이 책은 과학의 창으로만 우주를 탐구하려는 모험가에게는 많은 역설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은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입니다. "과학적 지식은 우리 인간이 하찮은 존재임을 알려준다.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멸망해도 우주의 운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최후의 역설이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미함을 드러내는 이와 같은 지식이 어느 정도 정당한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송태현 올김, 강 펴냄), 261쪽) 우주가 무심하다 해도, 우주에서 본 지구가 단지 한 점에 불과하다 해도, 우주에서 인간은 결국 자신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그 역할을 찾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며 오로지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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