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옛부터 많은 음악가들이 태어났던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1756년에 태어났다.
그는 궁정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아버지에게 어려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으며 누나 난넬과 함께 음악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작곡까지 하기도 했다.
그는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곡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항상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의 아내 콘스탄체의 도움으로
결혼 생활 이후에 더욱 휼륭한 작품들을 남길 수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아름다운 명곡들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천재적인 재능
못지않게 큰 몫을 했던 그의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집념을 되새기면서
이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한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하이든과 함께 18세기 고전차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36낸이 채 안 되는 생애를 통해 후세에 길이 남을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는
점이 사람들에게 가슴을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비록 찗은 생애를 살다 간 그였지만 많은 여행를 통해 여러 나라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음악적 향기를 두루 전하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여섯 살 때부터 외국으로 음악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음악으로 유명한 도시를 순회하면서 궁정에서 연주를 하고 교회
오르간을 치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연주 여행 중에 가족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 편지들에는 모차르트의 생활과 사고 방식.작품 성림 과정 드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런던을 여행하던 모차르트는 여덟 살 때 최초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초등 학교 1.2학년쯤밖에 안 되는 소년이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하면
아마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점만 봐도 모차르트가 얼마나 음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였는데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는 궁정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주로 작곡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그 직무가 마음에 들지 않아 궁정 음악사를 그만 두었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한데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 등의
오페라 걸작품과 3대 교향곡인 제39번 E장조,제40번 C단조, 제41번,G장조
(쥬피터 교향곡)를 작곡하였다.
모차르트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창작 활동을 했기 때문에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성악과 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텨
다채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의 음악적 공적은 하이든과 함께 고전과 음악이라는 한 양식을 확립했다는 것에 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는 하이든과 구별되는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하여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말년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곡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모치르트는 그 진혼곡을 작곡하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친구들 몇 사람만이 참석했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공동 묘지에 묻히게 되었는데
최후까지 그의 시신을 따라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만 시신이 행방 불명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성 마르크스 묘지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실제로 유골이 묻혀
있지 않다고 한다.
위대한 예술가의 최후가 너무나 초라하여 무척 가슴이 아팠다.
사람주나무
완도호랑가시나무
구슬나무
녹나무
구실잣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