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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고생의 손에 들린 팻말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둔산동 타임월드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집회 시간(저녁 7시)은 넘어섰고 늦더라도 거리행진을 함께 할 생각이었다. 집회 장소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빠른 발걸음 속에서도 바람이 목덜미를 휘감고 돌았다. 올 가을 날씨 중 가장 깊게 피부에 바람이 파고들었다. 집회 장소 중앙 무대에 도착했을 때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거리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랬던 것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7-80퍼센트가 10대와 20대였다는 것이다. 교복을 입고 온 학생들 손에는 여러 팻말들이 들려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이게 나라냐’ 였다. 붉은색 팻말에 흰글씨체가 슬프게 박혀있었다. 청소년들과 대학생 그리고 20대 시민들을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참 친구들과 놀거나 학교에서 내준 과제물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할 시간에 고등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해서 나라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목요일(2016년 10월 27일) ‘민주수호대전운동본부’에서는 이날 집회를 예고했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은 연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었고 그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허탈감을 넘어 ‘이게 나라냐’며 자조섞인 말을 넘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때이른 초겨울 날씨에 국민들의 몸과 마음은 알몸으로 세상에 버려진 신세였다. 이런 세상을 좀 더 따듯하게 만들겠다고 시민들은 하나 둘 둔산동 타임월드로 모였던 것이다. 무엇이 삼 천 명이 넘는 시민들을 모았을까. 말하지 않아도 그 답은 지난 1주일 대한민국 뉴스가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젊은층들이 많이 나왔고 고등학생들까지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집회 장소를 벗어나 하나 둘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참여 시민이 너무 많아 앞에서 이끌고 있는 방송차량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특히 필자의 눈에 띄었던 것은 이제 고1,2 정도 되어보이는 여고생들의 외침과 손에 든 팻말이었다. 학생들의 한 무리는 따로 구호를 만들어 외치며 걷고 있었다. 한 쪽이 “박근혜는” 다른 한 쪽은 “사퇴하라”를 온 몸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권력의 사유화를 막지못했는데 찬바람속에 계속 걸으면서 반복해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며 어른이라는 말이 참 가치없는 단어라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시민들은 경찰의 폴리스 라인을 따라 걸으면서 외쳤다. 누구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입에서는 찬바람을 가르는 뜨거운 구호들이 쉴세 없이 터져나왔다. 그순간 청소년들이 외치는 구호를 들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여 ‘너희들은 왜 공부는 하지 않고 이런데 나와서 그러고 있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자 바람이 더 깊게 옷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청소년들의 걸음이 거리행진으로 이어진 것은 사회시간에 배운 대한민국의 헌법 1조 1항, 2항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초겨울 추위속에 걷고 있었다. 국민을 위해 써야 하는 권력을 최순실 한 사람이 독차지했다. 이때까지 보인 모습으로는 최순실 공화국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상상치도 못할 국정농단을 저질렀기에 청소년들 손에 ‘이게 나라냐’ 하는 ‘박근혜는 하야하라’ 하는 팻말이 들린 게 아닐까.
법과 원칙을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씨 한 사람에게만 예외를 두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하야니, 사퇴니” 하는 말이 참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김희정 시인
첫댓글 나라는 이 기회를 삼아 변화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당파를 넘어 진보를 넘어 평화와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