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인별곡 (허준 OST )by 조수미
가지 못하네 돌아갈데가 없어
살아 헤어질 이맘은 가없이 떠도네
살아서 우네 갈곳을 잃었구나
죽어도 못 맺을 이몸은 천공을 헤매리
가없는 저 세월은 꿈도 한도 없구나
천년을 울어봐도 가는 해만 덧없어라
가지 못하네 갈곳을 잃었구나
죽어도 못 맺을 이몸은 천공을 헤매리
가없는 저 세월은 꿈도 한도 없구나
천년을 울어봐도 가는 해만 덧없어라
가지 못하네 갈곳을 잃었구나
죽어도 못 맺을 이몸은 천공을 헤매리
살아서 슬퍼라
채선이 : 자는 거유!
예진이 : 아니. 소쩍새 울음 때문인지? 통 잠이 오지 않아,
채선이 : 오늘 낮에 병사에서 별난 분을 봤어요. 난데없이 젊은 의생 한 분
이 나타나 더럽기 그지없는 병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지 않았겠우!
가난한 병자라면 끔찍이 여기시는 김봉사 나리도 그리하지 못하시는데
어찌 그리하실 수가 있으신지?
저 내의원 의과에 수석으로 입격한 의생이신데, 그 용모도 얼마나 수려하
시다고요.
예진이 : 나도 그런 의원을 알고 있단다. 그분 두 병자의 환부에 스스럼없
이 입을 대셨지. 진심으로 병자를 긍휼이 여기셨어.
채선이 : 셩님이 좋아했던 사람이유?
예진이 : 흐~흠! 존경했어. 병자를 보는 그분 모습을 보면 내 마음까지도
훈훈해졌지.
채선이 : 하~암!
예진이 : 병든 몸만을 치료하는 의원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까지도 위로
해주는 분이셨어. 난 그분을 통해 병자를 치유하는 덴 의술보다도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신병의 술(身病의 術)에는 4가지가 있다.
신(神) : 환자를 보는 것(병을 짚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 병의 증
세를 파악하는 경지. 바라본다고 함은 병자의 오색(코, 눈,
이마, 뺨, 피부색)을 보아 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성(聲) : 환자에게서 나는 소리를 듣고 증세를 파악하는 경지로
오음을 듣고 숨은 병을 분별하는 재주이며
공(工) : 환자에게 아픈 곳을 물어보아 증세를 파악하는 경지로
일일이 병자의 용태와 괴로운 것을 물어보아 아는 경지이다.
교(巧) : 환자의 맥을 짚어보고 만져보아서 증세를 파악하는 경지
로 미심쩍은 곳을 만져보아서 병을 찾아내는 것이다.
신병의 지식은 열의나 훈련을 쌓으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으나, 그것을 차
례대로 거치고 일어났다고 해서 정작 병자가 아파하는 데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흔하디흔한 의원일 뿐이다. 병자를 진정으로 긍휼이
여기는 심의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의원이라 할 수 없어.
우상대감 : 고개를 들라!
일파만파로 커지는 구만.
선조 : 예진이라 하느냐?
예진 : 예
의주로 몽진했을 때 어의를 도와 내 환후를 돌보았겠다. 과인이 너를 부른 연유를 아느냐?
예진 : 황공하오나 모르옵니다.
선조 : 과인은 어의 허준이 지난 전란 중에 세운 공을 인정하여 호승공신에 책록하고 보국
숭록대부로 초자할 것을 명했다. 허나 양사 대간들이 이를 반대하는 상소가 끊일 날
이 없다.과인은 지난 십수년간 허준의 심성을 지켜봐온 바, 그런 상소를 개의치 않는
다. 허나 허준에게 둘러 싼 추문은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양사 대간들이 제시하는 정
황이 예사롭지 않다.
우상 : 그 추문의 한가운데 네가 있다는데 어의와 십수년간 정분을 나눴다는 것이 사실이
었더냐? 뭐하는게냐? 어서 진위를 밝히거라.
뭐하느냐? 어서 진위를 밝히거라!
예진 : 전하! 제 아비는 의원이었습니다. 침통 하나를 들고 팔도를 유랑하며 병자들을 돌보
던 제 아비가 역병으로 객사한 뒤 저는 산음 땅에 명의인 유의태 약방에서 유년을 보
냈습니다.
제 나이 열아홉이 되던 해에 유의태 문하에 들어온 어의영감을 만났습니다.
약초꾼으로서 지리산을 헤매던 시절부터 약방의 창고지기와 병부잡이가 될 때까지
그는 진심으로 병자를 궁휼이 여기는 심의가 되고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가난한 병
자의 환부에 박힌 피고름을 입으로 빠는 일도 서슴치 않았고, 남들은 대면조차 꺼려
하는 대풍창(나병) 병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수삼년을 동고동락 하였습니
다.
저는 그런 어의영감을 이 날까지 제 심중에 두고 살았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
모하였습다.
하오나, 전하!
어의 영감을 향한 제 마음은 그저 같은 하늘 아래 그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천행이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어의영감은 죽음도 불사 않고 신분을 초월
한 사랑을 하였습니다.
어의 영감의 안사람 또한 어의영감을 위해 감히 저 같은 계집은 꿈도 못 꿀 인고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흐~ 흐~ 흐~ 어찌 제가 그 두 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전하! 저는 진심으로 어의영감을 존중하고 사모하지만 이는 평생 가슴 속에만 담아두
고 살 마음입니다. 이런 제 마음이 지탄의 대상이 된다 하시면 저는 기꺼이 죄를 받을
것이나 어의영감한테 추문이 있다 하시면 당치 않으십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 중략 -
예진 : 어쩐 일이냐?
상화 : 내의녀님!
예진 : 옛 시(봄이 까닭없이 슬펐어요)에 이런 구절이 있단다.
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 보고 눈썹을 길게 그렸어요.
팔세투조경(八世偸照鏡)/ 장미이능화(長眉已能畵)
열 살 때 연꽃 수 놓은 옷을 입고 나물캐러 다니는게 좋았어요.
십세거답청(十世去踏靑)/ 부용작군차(芙蓉作裙衩)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은갑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요.
십이학탄쟁(十二學彈箏)/ 은갑부증사(銀甲不曾卸)
열네 살 때엔 왠지 남자들이 부끄러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어요.
십사장육친(十四臟六親)/ 현지유미가(懸知猶未嫁)
열다섯 살 때 봄이 까닭없이 슬펐어요. 그래서 그네줄을 잡은 체 얼굴 돌려 울었지요.
십오읍춘풍(十五泣春風)/ 배면추천하(背面鞦韆下)
예진 : 이상은이라는 당나라 사람이 쓴( 읍춘풍(泣春風)?) 시란다. 옛날 어느 봄날에 어떤
분을 본 후론 난 까닭없이 봄이 슬펐다. 늘 그 분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어.
상화야!
상화 : 예.
예진 : 난 이제 궐을 떠나야겠다.
상화 : 내의녀님~?
예진 : 이제 그만 삼적사로 돌아가야겠어. 남은 생은 대사님을 모시고 병자들을 볼보며 살
련다. 떠나기 전에 상화 너한테 청이 있다. 허의원님을 잘 보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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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 : 소쩍새 소리가 참~ 처~연도 하다!
허준이는 보아라!(유의태의 유서)
내 죽음을 누구보다 서러워할 사람이 너임을 알고 이 글을 네게 남긴다.
나는 내게 닥쳐올 죽음을 보았고, 기꺼이 그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그것은 태어나던 순
간 결정된 모든 생명의 예정된 길이니, 서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육십 평생을 살다가는 나 같은 자에게 더 이상 무슨 여한이 있을까마는 소리 없이 닥치
는 죽음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로부터 이 세상이 바라는 유용한 사람들, 평생 타인을 위해 덕을
쌓은 귀한 인물에서 호강 한 번 못해보고 고생만 하다 죽은 측은한 인생까지 이들 모든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만병의 정체를 밝혀 그들로 하여금 천수가 다하는 날까지 무
병하게 지켜줄 방법은 없는가?
이는 의원된 자에 본분이요. 열 번 고쳐 태어나도 다시 의원이 되고자 하는 이에겐 너무
도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허나 나 또한 불치의 병을 지니게 되었으니, 병과 죽음의 정체
를 캐는 여력이 이미 없다.
이에 내 생전에 소망을 너에게 의탁하여 병든 몸이나마 내 몸을 너에게 준다.
명심하거라.
이 몸이 썩기 전에 지금 곳 내 몸을 가르고 살을 찢거라! 그리하여 사람의 오장과 육부의
생김새와 그 기능을 확인하고 몸속에 퍼진 삼백 예순 마디의 뼈가 얼키는 이치와 12경락
과 요소를 살펴 그로써 네 의술의 정진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출연진의 과거와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