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쥔장사찰자료실 스크랩 해인총림 가야산 해인사
소윤당(가람산방) 추천 0 조회 46 07.04.16 19: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가야산 해인사  해강 김규진

 

  일주문 주련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지나온 천겁 세월 옛날 아니며

  해강 김규진              항만세이장금(恒萬歲而長今)    만세는 흘러가도  늘 오늘이네

 

 해인사 고사목

 

 해인사 防厄火災鹽石含

 

  천왕문

 

 천왕문 해인총림 惟堂 정현복(1909~1973)      봉황문

 

  해인사 국사단

 

  局司 대가야의 시조신인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

 

  해탈문 해동원종대가람  釋만파書1865年.          해탈문 박해근書

  해인사 구광루    釋만파書1865年

 

 구광루 소림시구  해강

 

  구광루 측 해인대도량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

 

  해인 범종각

 

  해인목어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2005.7.4    신라 49대 헌강왕(875~886) 때인 서기 883년.

왼쪽에 ‘中和三年癸卯此像夏節柒金着成’(중화3년계묘차상하절칠금착성)이,
오른쪽에 ?κ촨唆필蛟ピ昌鏶柏?圖ⓠ嚴ピ昌鏶發?서원대각간주등신○미우좌비주등신○)라고 적혀있다.

 

 해인사 대적광전

 

  세호

 

  대적광전 소맷돌

 

  대적광전 어칸문

 

  대적광전 벽화   목어의 유래를...

 

  해인사 응진전

 

  해인사명부전

 

  명부전 지장삼존불

 

  명부전 업경대

 

  독성전   육모건물

 

  팔만대장경   회산 박기돈書

 

  수다라전

  반야심경

 

 수다라전 전면

수다라장과 법보전 두 건물의 각 벽면에는 위아래로 두 개의 살창이 이중으로 나

아래창과 위창의 크기가 서로 다르게 돼 있다.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공기가 실내에 들어가서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고도의 기술을 발휘한 방편이다.

 

  수다라전 배면   (동북향최小濕入.濕大出)

 

  법보전 전면

 

  법보전뒤 장원

 

  『行舟形의 돛대바위  (수미정상탑)

 

  학사대

 

  해인사 길상탑

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조그만 탑이 157개가 있으나,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탑에 대한 기록인 탑지(塔誌)는 4장인데, 통일신라 후기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에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5)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간지주

 

  해인사 영지

 

 성청대종사 사리탑    불기 2537년(1993)계유년 세수82.법랍59세로 11월4일(음9.21) 대열반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 가야산 홍류동 崔 致遠臺 詩

광분첩석후중만(狂芬疊石吼重巒): (중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듯 쏟아지는 물소리에)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사람의 소리는 지척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고)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시비의 소리 귀에 들릴까 언제나 두려움에)

고교유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모두 귀먹게 하였구나)

 

  

  홍류동게곡의 최치원 은둔지비와 농산정

 

가야산 법보종찰  해인사
가야산 해인사는 신라시대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 하기 위해 세워진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신라 40대 임금인 애장왕 3년(서기 802년)에 창건된 古刹이다. 


해인사가 법보종찰인 것은 화엄종의 근본도량이자 우리 문화유산인 고려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기 때문이다.


海印은 일렁임이 없는 바다에 만물의 형상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이 번뇌가 없는

마음에는 만물의 이치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로 海印三昧에서 따온 이름이다. 

 

해인사는 순응과 이정(利貞) 두 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창건하여  930년경 희랑대사에

의하여 크게 중창되었으며, 우리 나라 삼보 사찰중  법보사찰이다. 
 
가야산이란 석가모니께서 수행을 하신,인도의 붓다가야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해인사의 터를  행주형국이라하니 

行舟形이란 돛대바위(수미정상탑)+장경각(재물선적)+대적광전(선장실)+고사목(닻),
이는 곧 큰 바다에 배가 가고 있는 모양이란 뜻이다.

 

1398년 고려대장경이 강화에서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사찰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성종 19년 덕종의 비 인수왕비와 예종의 계비 인혜왕비가 선왕의 뜻을 받들어 學祖대사로

하여금 판전 30칸을 짓게 하고 보안당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 후 해인사는 임진왜란 때도 전화를 면했으나 1695년 이후 1871년까지 해인사에는

일곱 번의 큰 화재가 있었으나 판전 건물은 피해가 없었다.


해인사는 일주문-천왕문- 국사단-해탈문 -구광루-석등,탑-대적광전-대장경판전에

이르는 108계단과 장경판전의 기둥이 108개로서 백팔번뇌를 무언으로 구성하였으며,

시각 구조적 아름다움을 연출하였다.

 

중요전각 및 문화재로는 일주문,봉황문,국사단,해탈문,구광루,대적광전,응진전,명부전,

독성각,고려대장경판(국보32호),장경판전(국보52호),고려각판(국보206호및 보물734호),

길상탑 (보물1242호),목조희랑대사상 (보물 999호).목조비로자나불좌상(883년조성) 등.


유네스코에서는 1995년 우리나라의 석굴암,종묘와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장경판전은 4동(수다라장.법보전,東西 寺刊藏)으로 국보 제 52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안에는 국보 32호인 고려대장경판과 국보 제 206호인 고려각판을 보존하고 있다.

 

건물의 벽면에는 위아래로 두 개의 窓이나,下창과 上창의 크기가 서로 다르게 돼 있다.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이것은 큰 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함과 동시에, 가능한 한

그 공기가 골고루 퍼진 후에 밖으로 빠져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건물의 바닥은 숯,횟가루,소금,찰흙 등으로 되어있어 습도와 온도 조절이 잘된다고 한다.

 

★ 局司壇:大伽倻의 始祖神인 가야山神 (正見母主)을 기려 세운 사당으로 대가야의

    후손(이정, 순응)들이 이 사당을 모태로 창건한 가람이 해인사이다.

 

 파이의 에러로 재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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