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 왕복종주기
◈ 일 시 : 2009. 1.17(토) 04:00 ~22:00(18시간)
◈ 산행거리 : 57Km
◈ 산행코스 : 성삼재~천왕봉~성삼재
◈ 누구와 : 혼자서
2009년도 기축년들어 처음으로 지리에 듭니다. 작년 10월 화대종주 이후 두 달만에 두 번째 숙제(주능선 왕복종주)에 도전합니다. 그것도 눈이 잔뜩 쌓여 있을 한 겨울의 지리산 주능선을……, 힘겨울 것이라는 것을 뻔히 예상하고 그 고생을 사서, 그리고 즐기러 들어갑니다.
1월16일 금요일, 미리 예약해 두었던 10시58분 영등포발 구례구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타자마자 잠을 청하기 위해 베토벤을 들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잠이 잘 옵니다. 잠이 깨니 서대전역, 근 2시간을 잤습니다. 개운합니다.
정확히 새벽 3시23분 열차는 목적지 구례구역에 도착합니다. 곧바로 택시로 성삼재로 이동합니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와 합승하여 꼬불꼬불 성삼재가는 861번 지방도로를 올라갑니다. 4시 성삼재 도착. 기사님에게서 명함을 건네받습니다. 다시 성삼재 오는 시간이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가 될 것 같아 택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에 미리 예약해 둡니다.
새벽 4시의 성삼재는 열 두어 명의 산객들이 준비 중이고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바람도 없고 날씨가 무척이나 좋은 것 같습니다. 헤드랜턴을 켜고 홀로 긴긴 지리산 주능선 왕복종주길을 시작합니다.
4시40분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여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반달이 외롭게 차가운 겨울하늘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나 물이 넘쳐나 지나가는 산객들의 목을 충분히 축여주건 임걸령(5:28)이 오늘은 꽁꽁 얼어붙고 눈으로 덮여 있어 물 나오는 데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아이젠 없이 조심조심 갑니다. 너무 자만해서일까? 임걸령 지나 평범한 평지에서 꽈당, 곧바로 아이젠 착용. 종주 끝날때까지 벗지 못합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아직까지는 경쾌하게 들립니다. 언제까지 이 소리가 내귀에 그런 소리로 들릴지……
삼도봉(6:16)명물도 변함없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등로 옆은 눈이 많아 쌓여 있어 조금만 발을 옆으로 하면 무릎까지 빠져버립니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7:48)합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하늘을 뚫고 나무들 위로 태양이 떠오릅니다.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응시합니다. 올 한해 가족들의 건강과 클럽 주민들의 무사산행도 기원해 봅니다.
취사장으로 가 배낭을 벗고 아침을 해결합니다. 메뉴는 삼각김밥 2개와 곳감 2개와 물, 이것이 전부입니다. 옆에서는 인천에서 왔다는 3명의 산님이 라면을 끓이고 있습니다. 꼴깍 침 넘어가지만, 먹어보라는 청도 정중히 사양하고 내 밥만 먹고 8시7분에 연하천을 유유히 떠납니다.
미사일기지가 눈에 덮여있습니다. 형제봉의 절경을 찍어보고 지리산 최고의 전망처에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장쾌한 능선과 산군들을 바라다 봅니다. 눈이 시원합니다. 이 맛에 지리산을 찾는 것 같습니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09:06)하여 시원하게 콜라 한 캔 사서 목을 축이고 바로 세석을 향합니다. 구름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계속됩니다. 선비샘(09:50)에서 한떼의 산님들이 취사를 하고 있습니다. 산장을 놓아두고 굳이 여기서 냄새피우며 라면을 끓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냥 지나갑니다. 어차피 물도 꽁꽁 얼어붙어버리고 수없이 와 본 길,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칠선봉(10:24)입니다. 천왕봉이 7킬로미터 정도 남았습니다. 손에 곧바로 잡힐 듯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젠 눈길이 조금은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아이젠 찬 발이 저려오는 느낌입니다. 세석대피소(11:07)에 도착하여 곶감 3개를 먹고 기운을 냅니다. 여전히 옆에서는 서너팀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습니다. 뱃속에서 요동을 쳐 댑니다. 어서 넣어 달라고.....하지만 과감히 천왕님을 빨리 배알코자 일어섭니다. 촛대봉(11:32)을 지나고 장터목(12:24)도 그냥 지나치고 곧바로 천왕봉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천왕봉(13:12)입니다. 일망무제의 조망을 선사합니다. 역시나 많은 산님들로 붐빕니다. 잠시 차례를 기다려 한 장 찍습니다. 반야봉, 노고단 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득히 먼 거리, 지난 9시간 동안 쉼 없이 오늘 새벽부터 걸어 온 길인데 또다시 똑같은 그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합니다. 문득 꾀가 날려고 합니다. “그냥 하산해라”. 마음속의 또 다른 내가 속삭입니다. 걸을 만큼 걸었다고......허기도 지고 다리도 많이 아프고,
이런저런 잡생각 전부 떨쳐버리고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깁니다. 제석봉에서 노고단쪽을 바라보니 서서히 가스가 끼기 시작합니다. 성삼재로 다시 돌아가는 길의 험난함을 예고하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다시 장터목(13:50)입니다. 점심먹기에는 늦은 시각인데 취사장은 발디딜 틈 없이 북적입니다. 매점에서 콜라 두캔 사서 한캔은 배낭에 넣어두고 한캔으로 남은 삼각김밥 두 개와 곶감 3개로 점심을 먹습니다. 여기 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어제 저녁 이후로 밥다운 밥을 먹어보지 못했으니 속에서 요동을 칠만 합니다. 10여분 쉬고 다시 출발입니다.
오전에 왔던 길. 이젠 볼 것도 없이 앞만 보고 전진합니다. 비슷한 풍경들, 더 이상 사진 찍을 것도 없습니다. 천왕봉 쪽으로도 노고단 쪽으로도 하늘이 검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세석을 지나고(15:06) 선비샘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24분입니다. 잠시 휴식합니다. 장터목에서 사둔 콜라 한캔과 빵 한 개로 허기를 달랩니다. 여기서 마을 주민을 만납니다. 그산님이라는데 지태중이라고 합니다. 인월에서 시작했다는데 눈길에 역주한 흔적이 발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표정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출발합니다.
벽소령을 통과하고(17:12), 연하천에 다시 도착합니다(18:20).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짖게 내려 앉았습니다. 취사장에서 빵 한 개와 곶감 2개를 물과 함께 꾸역꾸역 목구멍 속으로 집어 넣습니다.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곁에서는 남녀 두 커플이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습니다. 야속하게 맛없는 빵을 먹으며 힐끗힐끗 보고 있는데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없습니다. 말만 있었으면 염치불구하고 그냥 엉덩이를 깔고 앉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에잇 못된 XX같으니...흐흐흐흐
물을 채우고 다시 일어섭니다. 이미 바람도 장난 아니게 불어대고 간간이 눈발도 흩날립니다. 예상했던대로 최악의 날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고되어 있던 고난의 행군길이죠. 토끼봉 올라가는 길고긴 오르막길, 입에서는 단내가 납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 올라가는 520계단길에서는 계단길에 퍼길러 앉아서 두 번이나 쉬면서 오릅니다.(20:24)
이젠 먹을 것도 다 떻어져서 물과 사탕 몇 개와 연양갱 2개가 전부입니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밤길. 약간 무섭기도 합니다. 잠시만 서 있어도 추워집니다. 간신히 삼도봉에 올라 물 한모금과 연양갱 한 개 먹고 힘을 냅니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안개도 짖게 피어 오릅니다. 한치 앞이 안보입니다. 길 흔적이 바람에 뭍힐까 염려도 됩니다.
이러다 길도 잃고 조난당하지나 않을 지 걱정이 스멀스멀.....하지만 길은 또렷합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앞에 노고단이 있습니다. 노고단에 도착(21:40)하여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합니다. 성삼재로 와 달라고....
성삼재에 도착(22:10)하니 기사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갑에 뒷자리에 배낭을 던지고 오릅니다. 길고긴 왕복종주가 끝나는 순간입니다. 18시간여가 걸렸습니다. 다리에 감각이 없습니다. 아이젠의 압박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올 겨울이 가기전에 지태하려고 했는데 봄으로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지태는 내게는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12시6분발 영등포행 심야 무궁화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옵니다. 열차에 오르니 눈이 저절로 감겨옵니다. 정말 정말로 힘든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제삼리 마을 두 번째 숙제를 끝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하시고, 하시는 일 전부 이루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숙제는 빨리 마쳐야 마음이 편하조....
축하합니다. 갈길이 멀어 잠간 인사나누어 아쉬웠습니다.
축하혀요. 미호씨.
대단하군요. 전 언제나 저렇게 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