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월드컵은 지난 1934년 제2회 월드컵을 개최한 이탈리아가 소련을 제치고 개최권을 지면서 행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이탈리아 월드컵>바람은 1988년부터 불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월드컵 예선전이 시작되는 시기는 1989년 이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아시아 최초 월드컵 2회 연속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월드컵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88년 한국슈퍼리그의 우승팀 감독에게 월드컵 대표팀 지휘봉을 주겠다"
대한축구협회는 프로축구에게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월드컵 열기를 일찍 불러일으키려고 묘안을 짜냈던것이다. 88년 시즌 한국의 프로축구는 초반부터 화끈한 열기를 뿜어냈고 마지막까지 대표팀 감독직을 놓고 대결한 감독은 포철(현 포항) 의 감독인 이회택 감독과 현대(현 울산)의 감독 김호(현 수원블루윙즈감독) 감독이었다. 모두 일세를 풍미하던 한국축구의 슈퍼스타들이었지만, 끝내 슈퍼리그의 우승은 포철이 우승했고 이회택감득은 지휘봉을 손에 넣는다.
90년 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대결하는 방식은 우선 각국을 6개조로 나누고 조별 리그전을 갖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6개조에서 수위를 차지한 6개팀이 모여, 다시 리그전을 갖고 상위 2개팀이 월드컵 본선 티켓을 손에 넣는것이었다. 지난 대회에선 교묘하게 중동팀을 피해갔지만 이제는 그들과 정면승부를 통하여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결정해야 했다.
한국이 편성된 1차리그 4조에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네팔 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86년 월드컵의 주역 최순호와 '삼손' 김주성이 버티고 있는 한국의 공격조에는 건국대학교에서 최고의 골게터로 활약중인 대학최고 골게터 '황새' 황선홍 이란 비밀무기를 숨겨놓고 화려한 공격축구를 선보여였으며, 정용환을 축으로한 수비진도 최강의 방패였다. 말레이시아,네팔,싱가포르는 이제 한국의 적수가 아니었다.
1989년 5월 23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과 싱가포르에서 계속된 1차리그에서 한국은 6전 전승, 25득점에 무실점이라는 막강 공격과 완벽한 수비를 자랑했다. 한국이 기록한 득점의 평균치를 계산한다면 1경기당 4골이 넘는 훌륭한 것이었다. 이미 86년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가 8명이나 포진한 한국팀은 사실상 최강의 팀으로 무장된 셈이었다.
19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종예선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강국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10억인구의 중국, 66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북한, 그리고 전통적으로 한국에 강한 면모를 보인 중동의 사우디 아라비아,카타르,UAE가 모여들었다. 축구전문가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북한이 최대 걸림돌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첫경기 상대는 카타르. 쉽게 잡을것으로 예상된 카타르를 0-0으로 비기고만것이다. 한국이 얼굴을 못들게 한 카타르.....
그것은 충격이었다. 최고 공격진이라고 자랑하던 한국이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운것이었다. 그리고 공격을 지휘하며 경기를 이끄는 최순호는 국내리그에서 당한 부상으로 허우적거리는 상태였다.
5경기 중에서 카타르,북한,중국을 차례로 물리치고 승점 6을 확보해 일찍 본선 티켓을 확보한다는 계획은 애초부터 빗겨나갔다. 그러나 1차예선에서 연전연승하던 자만심에 빠져있던 대표팀에게 최종 예선 1차전의 무승부는 훌륭한 약이었다.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인 전력상으로나 모두 어려운 상대로 지목되던 두번째 경기 대 북한전에서 한국은 1-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쾌속 행진했다.
중국과의 경기에서 1-0으로 마감한 한국은 최대 라이벌 사우디 아라비아와 만났다. 그러나 최순호의 부상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팀의 최고참이라는 책임감으로 무장한 최순호는 무릎의 통증을 억지로 참아내며 북한과 중국을 상대했던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최순호의 통증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반드시 이탈리아에 가겠다>라고 다짐하며 자신의 아들이름을 <최로마>라고 지었던 그였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진통제를 먹으며 경기에 나섰다.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던 전반전 41분. 아크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최순호가 옆으로 살짝 밀었고 굴러가는 축구공을 엄청난 파워를 불어넣은 선수는 '캐논' 황보관이었다. 그의 오른발에 걸린 볼은 30m를 날아가 사우디 골문에 그대로 꽂혔다. 1-0으로 먼저 리드를 잡았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선수들은 <한국공격의 신호탄> 최순호에게만 몰렸다. 최순호는 여러 수비수를 끌고 다니며 사우디 진영에 구멍을 만들었다. 그 구멍을 파고든 선수는 한국의 비밀병기 황선홍 이었다. 황선홍의 멋진 추가골이 이어졌다.
한국은 2-0으로 난적 사우디 마저 물리치고 4전 3승 1무로 남아있는 UAE와의 경기와 상관없이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최초로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한국팀의 성적은 역대 대표팀의 기록중 가장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예선전적 11전 9승 2무승부, 29득점에 무실점. 예선기록에서 본선 진출국중 무실점으로 통과한 유일한 팀이 한국이었으며, 또한 팀내 최고득점한 황선홍은 월드컵 본선 진출국중 예선에서 가장 많이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2) 너무나 높은 세계 축구의 벽
: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회택 사단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86년에 월드컵을 경험하여 노련미도 갖추고 있었으며, 북한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황선홍을 필두로 하는 젊은 선수들의 화이팅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나머지 23개국의 수준과 실력에 대한 우리의 정보는 너무나 둔감했다.
A 조 : 이탈리아,체코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미국
B 조 : 아르헨티나,카메룬,소련,루마니아
C 조 : 브라질,스코틀랜드,스웨덴,코스타리카
D 조 : 서독, 콜롬비아, 유고슬라비아, U.A.E
E 조 : 벨기에,한국,스페인,우루과이
F 조 : 잉글랜드,아일랜드,네덜란드,이집트
한국이 속한 조는 언제나처럼 강국들로 가득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특별한 성적을 올리지 못한 한국이었기에 조편성의 유리함을 바랄 처지는 아니었다. 1차 예선전을 앞둔 이탈리아의 언론들은 아주 조심스럽게(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한국의 <황색 돌풍> 을 예상했다.
전대회에서의 선전은 그들의 기억에 선명하다. 멕시코 푸에블라 스타디움에서 당한 고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특히 '삼손' 김주성은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동양의 신비로운 유망주>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특히 한국팀 관계자가 한국팀이 숙박하는 호텔측에게 <침대가 너무 작다>라고 항의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의 신장이 평균 180cm가 넘는다는 것을 자랑했던 것인데, 이러한 오버액션이 현지 언론들에게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현지 분위기는 한국이 최소 16강정도는 진출하는것이 기정사실화처럼 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는 90분이 모두 끝난뒤에 알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는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데 충분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TV 중계차가 한국의 경기를 중계방송하려고 몰려들었다. 신비로운 동양의 축구돌풍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은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신비로운 졸전> 한국팀은 실력도 없었고, 그렇다고 패기도 없었고, 끈기도 없었고, 작전도 없었다. 78차례나 벨기에 수비진에게 패스를 커트당하는 수모까지 곁들인 이경기는 최인영이 수비수와 싸인이 맞지 않아 볼을 처리하려고 미드필드까지 나왔다가 마크 데그리세(Marc Degryse)에게 로빙슛까지 허용했고, 급기야 수비벽마저 두껍지 못해 미셜 데 불프(Michel De Wolf)에게 약 20m의 거리에서 중거리슛마저 허용해 2-0으로 완패마저 당했다. 이회택 감독은 후반에 황선홍을 교체투입하며 공격의 실마리를 트는가 싶었지만 틀수가 없었다. 더구나 황선홍이 기가막힌 헤딩 슛팅(그나마)을 했지만 골키퍼 미셜 프루돔(Michel Preud'homme)의 가슴에 안겨주는 것에 불과했다. 2-0 완패. 고개를 들지 못하고 선수들은 빠져나왔다. <황색 돌풍>을 예견했던 이탈리아의 신문들은 벨기에와의 경기가 끝난 직후 이런 헤드라인으로 한국측 관계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돌아가서 드리블 연습부터 다시 해라>
한국은 세계 축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실력도 없는것들이 자만심에 차있던 것이었다. 첫 경기에서 세계수준을 경험한 한국팀은 투지와 패기를 재충전하여 두번째 경기를 맞았다.
프리울리 스타디움에서 벨기에에게 2-0으로 패했음에도 불구 교민들은 무려 1천명이나 몰려서 응원하러 왔고 한국팀 역시 투지에 불타올랐다. 전반전 1분, 변병주가 빠른 발을 이용해 스페인 수비수 마저 제치고, 스페인 골키퍼 안도니 주비자레타(Andoni Zubizareta)와 1-1 찬스를 맞았다. 골키퍼를 피한다고 날린 슛팅은 아슬아슬하게 골문을 스쳐 지나갔다.
이회택감독은 김주성,변병주를 주축으로 하는 <스피드 중심>의 공격 라인을 새롭게 만들었으며, 이 작전은 주요했다. 변병주의 좋은 기회가 무산되자 다시 김주성이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에서 전광석화 같은 슛을 시도했지만 볼은 오른쪽을 살짝 스치며 지나가버렸다. 활기를 찾은 한국의 공격진은 전반 20분까지 스페인 수비진을 벌집 쑤시듯 다녔다. 드디어 <황색 돌풍>이 시작되는 느낌이 여러 관계자들은 느꼈다.
그러나 스페인의 장신 플레이메이커 미첼(Michel)이 왼쪽 구석에 넘어온 센터링을 논스톱 발리슛을 때리며 한골을 넣어 한국이 주춤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패하면 끝장이란 생각으로 무장된 한국은 쉽게 물러설려고 하지 않았다. 전반 종료 2분전, 스페인 문전을 헤집고 들어오던 최순호에게 스페인선수의 태클을 들어왔다. 주심의 호각소리가 울렸고, 한국의 프리킥이 선언되었다.
프리킥이 선언된 곳은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외곽에서 최순호와 김주성이 볼 주위에 서성거렸다. 아시아 최종예선전에서 사우디 골문을 찢었던 황보관이 2-3m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똑같은 시나리오라는 것을 한국 축구팬들은 알고 있었지만 스페인 측은 알지 못했다. 최순호가 살짝 건드린 볼은 천천히 왼쪽으로 흘렀고 황보관이 미사일같은 슛팅으로 스페인 골문을 뒤흔들었다. 전광판엔 1-1을 알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황보관의 이 중거리슛팅의 속도를 <시속 114km>라고 공식 발표했고, 이 속도는 월드컵 본선 사상 가장 볼의 속도가 빠른 슛으로 기록되었다. 황보관은 <캐논>이란 별명을 아직도 달고 다닌다.
결국 1-1로 전반전을 마감한 새로운 각오로 후반전에 나섰지만, <각오>만으로 스페인을 이길수 없었다. 미첼의 환상적인 플레이에 넋이 나가버린 수비수는 미첼의 드리블링에 농락당해 2번째 골을 내줬고 절묘한 왼발 프리킥으로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슛팅으로 3-1로 만들어버렸다. 미첼은 스페인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이탈리아 월드컵 최초의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모든 한국 선수는 현지 언론들의 비난과 야유를 받았지만 단 한 선수 <캐논> 황보관은 각국 클럽의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3) 1분을 남기고 주심이 한국을 울렸다
: 한국은 2패로 예선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예상밖의 부진으로 허덕이는 상대 우루과이를 맞아 그래도 1승을 하고 가야 체면이 서지 않겠냐는 한국언론들의 성토에 한국팀은 재정비했다.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0-0으로 비기고(루벤 소사의 PK만 들어갔다면 이겼다) 벨기에에게 3-1로 참패한 처지로 1무가 있기때문에 한국에게만 이기면 16강 진출이였다.
1990년 6월 22일, 남미의 우루과이와 마주한 한국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경기 시작 35초, 우루과이는 남미 특유의 개인기와 정교한 숏 패스로 한국 수비수를 농락하며 문전으로 돌진했다. 공격을 마무리하는 프란체스코리의 슛팅이 날카롭게 최인영 골키퍼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한국 응원단은 가슴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골포스트가 우루과이의 슛팅을 막았다. 골포스트맞고 튀어나온 볼은 외곽으로 쳐내는 정용환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위기를 넘긴 한국팀은 발빠른 변병주를 활용한 측면돌파를 시도했고 변병주를 막을 선수는 없었다. 한국의 프리킥 찬스.
한국의 키커는 <캐논> 황보관. 관중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월드컵 최고의 슛터 황보관이 호흡을 가다듬고 우루과이 문전을 향해 킥을 시도했다. 아슬아슬했다. 골키퍼가 가장 막기 어려운 지점으로가장 빠르게 날아간 볼은 골키퍼 알베스의 선방으로 무산되었다. 한국은 실점 위기를 최인영의 선방으로 모두 막아내며 팀을 정비했다. 다시 페널티에어리어 안쪽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지만 우루과이 수비수의 태클에 쓰러졌다. 명백한 페널티킥이었지만 주심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최순호가 날카로운 헤딩을 우루과이 골문에 노크했지만 살짝 골포스트를 넘어갔다. 한국의 지칠 줄 모르는 게임메이커 윤덕여의 턱을 우루과이의 프란체스 콜리가 고의적으로 받았지만, 주심은 또 역시 침묵했다. 월드컵 1차리그 3차전에서의 편파판정이 또 시작되었다. 윤덕여는 오히려 후반 25분, 골킥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지연관계는 지금은 이기는 팀이 지연시키면 경고를 받는다, 이 퇴장은 문제의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후반 45분, 루스타임을 적용하여 계속되는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다니엘 카리스 폰세카(Daniel Caris Fonseca)가 한국 수비수들이 완벽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쓴 지역에서 헤딩슛을 날렸고 완벽히 골네트를 흔들었다. 분명한 오프사이드 였다. 이탈리아 주심 란세세와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의 선심 비람마는 우루과이의 오프사이드를 눈감아준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1분후,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 한국은 세계축구의 한계를 체험하며 3패의 쓰라린 전적으로 귀국길에 올라야했고, 이회택 감독은 대표팀 감독 사표를 가슴에 품고 와야 했다.
4) 카메룬의 돌풍
: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중 하나였던 한국이 예상밖의 졸전으로 3패를 하고 있을무렵, 예상치도 못했던 아프리카의 카메룬이 '흑색돌풍'을 일으키며 분전했다. 아프리카의 카메룬은 철통 같은 수비와 빼어난 공격수 로제 밀러(Roger Miller)를 앞세우고 마라도나가 진두지휘하는 아르헨티나를 개막전에서 1-0으로 이겨서 (아르헨티나는 개막전 징크스의 대표적인 희생자가 되었다. 82년에도 붉은악마 벨기에에게 일격을 당한바 있다) 90년 월드컵 최고의 사건을 만들었다.
당시 로제 밀러는 벌써 옛날에 은퇴해서 코치나 담당할 38세의 늙은 나이에 조국 카메룬을 위해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이다. 그는 환상적인 플레이로 월드컵 참가국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체력의 한계를 의식하는 듯, 1차리그에서의 루마니아전에서 교체멤버로 출장 2골을 뽑아내며 조국 카메룬의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으며, 8강을 가리는 대 콜롬비아전에서도 2골을 뽑아 제3세계 팀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8강에 올렸으며 그 자신 월드컵 사상 최고령 최고득점자로 기록되었다.
물론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최고령 선수는 잉글랜드의 명골키퍼 쉘턴으로 그의 나이 40세. 역시 82년 월드컵 우승때의 이탈리아 골키퍼 디노 조프(Dino Zoff)도 40세에 월드컵 우승을 맛보았지만 그들은 골키퍼인 관계로 득점을 하지 못했다. 1차예선은 모두 흑색으로 뒤덥힌것 같았다. 단 3차전 대 소련전에서 0-4로 대패한것이 카메룬의 치욕적인 패배였다.
5) 코스타리카의 반란
: 멕시코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나이조작이 들켜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었다. 북중미에 배정된 티켓은 2장. 1인자 멕시코가 출전하지 못하자 2인자인 코스타 리카와 미국은 매우매우 좋아했다. 최근 몇년동안 멕시코의 벽을 넘지못하고 주저앉은 그들은 특히 코스타 리카는 월드컵 첫 출전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들은 그렇지만 시작은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다. 멕시코 대표팀이 국제대회 출전을 못하자 감독직의 보라 밀루티노비치('Bora' Milutinovic)감독은 코스타 리카를 월드컵 4개월전에 맡았다. 첫 경기 대 스코틀랜드전부터 1-0 승리.
월드컵 첫 출전에 첫 승리를 아주 감격스럽게 차지한 그들은 당초 조2위가 예상되던 스웨덴마저 혈투 끝에 2-1로 잡아내 2승으로 16강을 확보지은것이다. 1차 예선을 통과하는게 숙원인 스코틀랜드와 북유럽 축구왕자 스웨덴을 꺾은 코스타리카는 16강전에서 토마스 스쿠라비(Tomas Skuhravy)의 체코슬로바키아에게 4-1로 무릎을 꿇긴 했지만 코스타리카 선수 사상 최초로 헤르난 메드포드(Hernan Medford)가 이탈리아 세리에 A 포자(Foggia)팀에 입단하는 등 코스타 리카 축구사상 최고의 번영을 맛보기도 했다.
6) 16강전 이변과 빅게임
: 1차예선을 끝내고 16강에 진출한 팀들은 또 피가 말리는 토너먼트에 진출했다.유럽에서는 총 14개국이 출전해 10개국이 16강에 진출했고 남미에서는 출전 5개국 모두 16강에 오르는 호조를 보였다.
그러나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4강안에서 만나게 되어있어 반대쪽의 편한 서독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8강 진출을 가리는 경기중에서 가장 관심을 불러일으킨 경기는 역시 남미 양대 산맥의 충돌이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기장에 수많은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양쪽 관중들은 축구의 광끼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었고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줄 리메컵을 가져간 브라질과의 경기는 자존심의 대결이었고 개인적으로 SSC 나폴리 팀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던 마라도나와 카레카간의 우정어린 시합이었다. 마라도나는 카레카에 대해 '그는 정신없이 우리진영을 헤집고 다닐것이다. 그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이다' 라고 추켜세웠고, 그 말 그대로 카레카를 축으로한 브라질 공격편대는 아르헨티나 수비진을 벌집 쑤시듯 쑤시고 다녔다. 예선에서 3연승을 거둔 브라질과 카메룬의 일격을 당한 아르헨티나는 분명 실력차가 났고 도박사들마저 브라질에 모두 돈을 걸정도였으니 경기가 어떻게 돌아갔을것인지는 대충 상상에 맡긴다.
마라도나가 부진한 아르헨티나는 더이상 강자가 아니었다. 마라도나는 2-3명의 마크맨이 철저하게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화려한 기량으로 그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수없이 쓰러지고 뒤로 넘어지는 그의 플레이는 현지 언론들은 <창녀>라는 별명까지 얹어서 혹평을 시도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가장 큰 일을 저지르고 만다. 거의 브라질 골키퍼 타파렐이 보이지 않던 경기를 0-0 행진의 경기를 전후반 89분이 진행되는 상황이었고 마라도나의 부진도 89분동안 계속되었다. 마지막 1분, 모처럼의 역습을 감행한 아르헨티나는 여지없이 부진의 <축구신동> 마라도나에게 패스, 마라도나가 자신에게 2-3명의 마크맨이 또 달라붙고 그들이 위협적인 태클을 감행해왔고 마라도나는 순간순간 넘어질 듯 하면서도 엉거주춤 일어나 다시 드리블을 했다. 놀란 브라질 수비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치닫는 마라도나를 향해 개미때처럼 모여들었으나 마라도나는 마크맨을 피해 절묘한 패스로 <바람의 아들> 클라우디오 카니자(Claudio Caniggia)에게 연결해, 카니자가 브라질 수문장 클라우디오 타파렐(Claudio Taffarel)을 제치며 골로 연결 1-0으로 승리를 결정지었다. 침묵을 지키던 마라도나가 5초만에 위대한 천재성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호각소리... 아르헨티나의 승리였다.
1차예선에서 계속 그를 비난했던 신문들은 기사를 180도 바꿔서 썼다. "천재에게 90분동안 천재성을 바라긴 무리다. 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확실하게 잘하면 끝이다. 마라도나가 그랬다"
16강전에서 두번째로 관심을 모은 것은 로타 마테우스(Lothar Matthaus)의 <전차군단> 서독과 루드 훌리트(Ruud Gullit)의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간의 경기였다. 이들은 88년 서독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준결승에서 만났는데 시종 밀고밀리던 경기였으나 네덜란드가 2-1로 역전승해 홈팀 서독을 눈물짓게 만들었고 이경기에서 서로 앙숙이 되어버린 루디 펠러(Rudi Voeller)와 프랭크 레이카르트(Frank Rijkaard)와의 대결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2년전의 네덜란드와 90년의 네덜란드는 뭔가 모르게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렌지 삼총사>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 루드 훌리트, 프랭크 레이카르트란 걸출한 스타진과 미사일포로 유명한 로날드 쿠에만(Ronald Koeman)등 70년의 요한 크라이프(Johan Cruyff)의 시절보다 더 막강해졌다는 네덜란드는 88년 유럽선수권대회의 감독 리누스 미켈스(Linus Michels)감독을 해임하고 레오 벤하커(Leo Beenhakker)감독으로 교체했다. 선수들은 미켈스 감독시절과는 다르게 조직력과 힘을 잃어버린듯 했다. 서독과의 경기가 그 좋은 예였다.
시종 서독에게 밀렸고 급기야 문전앞에서 수비진만 달려들었다면 유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의 골을 막을수 있었는데 반 브루클린 골키퍼와 싸인이 맞지 않아 1골을 실점, 급기야 안드레아스 브레메(Andreas Brehme)의 절묘한 바나나킥이 2번째 득점으로 연결되자 88년의 영광은 재현되지 못할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흥분한 레이카르트가 펠러의 얼굴에 침을 뱉고 경기는 험악한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둘 다 퇴장당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네덜란드는 경기종료 직전 로날드 쿠에만의 PK 골로 1골을 만회하는데 그쳐 2-1로 어이없이 패하고 만다.
한편 스페인과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는 또 하나의 스타를 만들어주는 경기였다. 드라간 스토이코비치(Dragan Stojkovic). 현재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소속으로 당시는 무명의 선수였지만 스페인과의 연장전 끝의 혈전에서 2골을 뽑아내며 2-1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해냈는데 그의 2번째 프리킥골은 94년의 스토이치코프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환상적인 것이었다.
한편 피가 말렸던 경기는 잉글랜드와 벨기에와의 경기였다. 사자(잉글랜드)는 악마(벨기에)를 꺽지 못하는듯 했다. 사자는 용맹스럽게 악마를 물어뜯었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다. 연장전. 신예 데이비드 플래트(David Platt)가 절묘한 발리슛으로 미셜 프루돔(Michel Preud'homme)가 지키는 벨기에 골문을 폭파시켜 팀을 8강에 이끈다.
이탈리아와 우루과이의 경기는 스킬라치의 가치를 입증시켜주는 경기였다. 그는 매게임 득점을 하며 득점왕 레이스를 계속했다. 2-0 이탈리아 승리.
8강전에서도 흑색 돌풍은 계속되었다. 카메룬과 콜롬비아의 경기. 로제 밀러(Roger Miller)는 콜롬비아 골키퍼 르네 이귀타(Rene Huguita)의 실책과 수비진을 농락하는 플레이로 2골을 뽑아내 일약 4골을 뽑아 이탈리아의 스킬라치를 견제할 유일한 인물로 떠올랐다.
아일랜드는 월드컵 첫출전사상 8강에 진출하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켰다. 루마니아와의 16강전 에서 0-0으로 비기고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겼다. 아일랜드는 월드컵에서 2골만 뽑고도 8강에 진출하는 최소득점팀이 되었고 잭 찰턴(Jack Charlton) 아일랜드 감독은 잉글랜드 사람이지만 가장 아일랜드인에게 인기를 받는 감독이되었다.
7) 백사자 와 흑사자 의 대결
: 38살의 늙은 여우 로제 밀러(Roger Miller)를 앞세운 카메룬의 '흑색 돌풍'은 그들의 별명인 '불굴의 라이온즈' 처럼 거칠것이 없었다. 콜롬비아 마저 2-1로 제압해 더구나 로제 밀러는 최고의 인기스타로 발돋움했다. 한편 벨기에와의 혈전끝에 8강 티켓을 쥔 '왕실의 사자' 잉글랜드는 힘겨운 빛이 역력했다. 게리 리네커(Gary Lineker)란 걸출한 골게터를 앞세우고 신예 콤비 데이비드 플래트(David Platt)와 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이 뒤를 받치는 잉글랜드의 공격진은 최강이었지만 신통치는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잉글랜드는 힘으로 카메룬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그들의 전통적 전략인 '킥 앤드 러쉬(Kick and Rush)'는 카메룬의 유연함을 잠재우는 듯 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풀백 스튜어트 피어스(Stuart Pearce)의 오버래핑에 의한 센터링을 데이비드 플래트가 방아찧기 헤딩슛을 기가막히게 성공시켜 잉글랜드가 1-0으로 앞서 나갔다. 카메룬의 돌풍은 여기서 끝인가 싶었다. 후반전. 로제밀러가 드디어 교체멤버로 출장했다. 그라운드의 늙은 여우를 본 잉글랜드 수비수들은 여우앞의 토끼처럼 순간 긴장했다. 그 여우는 토끼집을 벌집 쑤시듯 지나다녔고 카메룬의 공격은 매서웠다. 페널티킥에 의해 1-1로 따라붙은 카메룬은 로제 밀러의 어시스트에 의한 골로 2-1로 역전 '불굴의 흑색 라이온즈'가 역전승할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팀이 어려운 상황에 스타가 힘을 낸다고 게리 리네커가 드디어 뛰기 시작했고 동점골의 페널티킥을 그가 잡아내었고 급기야 연장전에서도 역전골을 넣는등 경기의 히어로가 되었다. 카메룬의 3-2 분패. 그렇지만 그들의 대활약은 94년 미국 월드컵 에서 아프리카의 배정된 티켓을 3장으로 늘리는 개가를 올리며 일약 아프리카 축구의 맹주로서 대접받게 된다.
한편 16강전 대 브라질전에서 신승을 거둔 아르헨티나는 8강전 대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드라간 스토이코비치(Dragan Stojkovic), 로버트 프로시네스키(Robert Prosinecki),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cevic)가 분전한 유고슬라비아에게 고전한 아르헨티나는 0-0 으로 경기를 마쳤다. 승부차기.
마라도나가 어이없게 실축을 했고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빌라르도(Carlos Bilardo) 감독은 얼굴빛이 흙색이 되었다. 그때 또 하나의 신화가 창출된다. 세르지오 고이코체아(Sergio Goycochea). 주전 골키퍼 폼피도가 카메룬전의 실책을 책임지고 장갑을 신예 고이코체아에게 넘겨줬고 고이코체아는 그 이후 단 1골만 허용하며 그 징조를 보였다. 승부차기에서 그는 연속선방을 하며 4-3으로 아르헨티가 역전하는 개가를 올린 고이코체아는 신의 손으로 추앙받았다.
8) 이탈리아를 울린 아르헨티나의 끈질긴 행운
: 준결승의 첫 경기는 행운의 아르헨티나와 <아쭈리 군단> 이탈리아의 게임이었다. 모두의 예상은 살바토레 스킬라치(Salvatore Schillaci)의 이탈리아가 아르헨티나의 행운을 무참하게 짓밟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는 믿었던 골게터 지안루카 비알리(Gianluca Vialli,그당시에는 대머리가 아니었음)가 부진의 부진을 거듭했을때 스킬라치란 구세주를 만나서 매게임 연승하고 있었고 월터 쳉가(Walter Zenga) 이탈리아 골키퍼는 8강전까지 단 한골도 실점하지 않는 놀라운 방어력을 보여 이탈리아가 아르헨티나를 꺾는건 기정 사실화되었다. 더구나 멋진 슛과 화려한 드리블, 정확힌 킥 모두 세계 최고인 신예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o)가 있었으니 이탈리아는 월드컵 본선 사상 최고의 팀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5초만 반짝한 마라도나와 그나마 화려한 드리블과 스피드로 무장한 <바람의 아들> 클라우디오 카니자(Claudio Caniggia), 그리고 <신의 손> 고이코체아 뿐이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의 끈질긴 행운은 대단했다.
전반전, 이탈리아는 공격적으로 변신, 비알리의 슛팅을 손으로 막아낸 고이코체아 옆에 스킬라치가 바로 발리슛팅으로 골로 연결시켜 이탈리아가 손쉽게 1-0으로 앞서나갔다. 스킬라치는 팬들에게 달려나갔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마라도나에게 시작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가 아는 사실이었고 <수비의 달인> 이탈리아는 그것을 막는데는 거의 천재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마라도나만을 생각했다. 후반전 카니자의 멋있는 백헤딩슛이 쳉가의 무실점 기록마저 무너뜨리며 이탈리아를 혼란으로 빠뜨린것이다. 연장전. 이탈리아가 좋은 프리킥 찬스를 얻었고 키커는 로베르토 바조. 바조의 왼발 프리킥이 거의 정확하게 사각을 향해 날아갔고 고이코체아는 사력을 다해서 다이빙 펀칭을 해내 이탈리아팬들을 아쉽게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의 지겨운 행운은 승부차기를 야기시켰다.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만은 자신이 있었다. 그들에겐 <신의 손>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3-3까진 팽팽했다. 이탈리아의 키커는 알도 세레나(Aldo Serena). 세레나의 킥은 고이코체아에게 간파당해 이탈리아가 위기를 맞았고 이탈리아 벤치는 아르헨티나 키커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의 실수를 기원할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제발 실수를 저질러달라고...
그렇지만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심장의 비수를 꽂는 격으로 간단히 성공시켜 4-3으로 앞서나갔고 이탈리아는 마지막 키커 로베르토 도나도니(Roberto Donadoni)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렇지만 고이코체아는 이미 신이 나있었다. 고이코체아가 또 막아내면서 아르헨티나를 2회 연속 결승전에 진출시킨것이었다. 경기가 끝난후 무명의 시절의 설움을 딛고 세리에 A 득점왕 을 차지, 그리고 월드컵 득점왕 0순위로 올라선 스킬라치가 아무도 없는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은 이탈리아를 응원하는 팬들에겐 아픔이었다.
한편 서독과 잉글랜드의 준결승전은 약간 흥미가 떨어졌지만 전통적 라이벌이라서 관심가는 경기였다. 리네커의 잉글랜드. 마테우스의 서독의 준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충분했다. 서독은 신예 토마스 해슬러(Thomas Hassler)를 전격 기용해 게임의 리딩을 적절하게 풀어나갔고 이에 대항하는 폴 개스코인 역시 대단했다. 팽팽한 균형을 깬것은 기상천외한 골에 의해서였다. 서독의 전담 프리키커 안드레아스 브레메(Andreas Brehme)의 슛팅이 이번엔 잉글랜드 수비수 바카를 맞고 높히 솟아올랐고 골키퍼 쉘턴이 전진수비를 하는 바람에 쉘턴 키를 넘기는 <재수좋은> 골로 연결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리네커는 잉글랜드의 수호신이었다. 잉글랜드 수비수 폴 파커(Paul Parker)의 헤딩패스를 받은 리네커가 종료 10분전 동점골을 터뜨리며 1-1로 동률을 만든것이었고 이내 잉글랜드 페이스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개스코인-리네커-크리스 워들(Chris Waddle)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은 서독 수비진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워들이 슛팅한 볼이 골대맞고 다시 보도 일그너(Bodo Illgner) 서독 골키퍼의 가슴에 안겼다. 서독으로선 가슴 철렁했고 잉글랜드로선 매우 땅을 친 슛팅이었다. 승부차기. 백전노장 골키퍼 쉘턴과 슈마커의 후배 보도 일그너의 대결은 노련미에선 쉘턴의 승리인듯했다. 그렇지만 승부차기는 노련미,기량,순발력 모든 능력에 달린것보단 하늘에 달린 운이었다.
서독은 모두 성공시켰다. 3-3. 잉글랜드의 키커는 스튜어트 피어스. 그가 보도 일그너에게 볼을 가져다주며 잉글랜드 보비 롭슨(Boby Robson)감독의 얼굴을 어둡게 했다. 4-3. 이제 마지막 키커는 셰필드의 희망 크리스 워들이었고 워들의 슛팅은 하늘로 높게 솟구치는 슛팅으로 결국 서독에게 결승전 티켓을 넘겨주게 된다.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kenbauer) 서독 감독은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9) 서독, 통일을 자축하며 우승의 축배를 들다
: 서독과 아르헨티나의 재격돌은 지난 86년 결승전의 재판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에게 따르는 행운을 가지고 결승까지 왔고 서독은 아르헨티나의 그 행운이 두려웠다. 그러나 <행운>은 <행운>에 불과했다. 그리고 새로운 축구형태인 <압박축구>를 선보이며 등장한 서독에게는 그 누구도 당할자가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준결승까지 그 빼어난 기량을 선보이던 카니자의 결장은 결정적이었다. 경기초반부터 서독의 일방적인 우세속에서 진행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서독의 강력한 미드필더들에게 제압당하여 변변한 슛조차 날리지 못하는 졸전을 보이고 있었다. 마라도나는 서독의 찰거머리 수비수 지도 부흐발트(Guido Buchwald)에게 완전히 봉쇄당해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래도 전반전을 0-0으로 지켰다는 것은 빌라르도 아르헨티나 감독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후반전에 들어 서독의 공격은 배가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괴로웠고 서독의 파상적인 공격에 육탄 수비로 나서고 있었다. 로타 마테우스 (Lothar Matthaus)의 패스를 받은 <골드 파이터> 유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이 아르헨티나 수비수 데미안 몬손(Damian Monson)에게 걸려넘어졌고 몬손에게 퇴장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심판에게 달려들은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몬손은 퇴장당했고 설상가상으로 아르헨티나는 10명과 싸워야 했다. 후반전 38분, 로타 마테우스가 승리의 실마리를 잡아당겼다. 마테우스가 골게터 루디 펠러(Rudi Voeller)에게 절묘한 패스를 연결했고, 90년 월드컵에서만 3골을 기록중인 펠러는 질풍처럼 아르헨티나의 문전으로 치달렸다.
아르헨티나가 할 수 있는 건 거친 태클 하나였다. 아르헨티나 수비수 로베르토 네스톨 센시니(Roberto Nestor Sensini)의 태클뒤에는 주심의 호각소리가 뒤따랐다. 페널티킥. 또다시 경기는 중단되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더욱 거칠게 항의했다. 결국 페널티킥은 실행되고 <킥의 귀신> 안드레아스 브레메(Andreas Brehme)와 <페널티킥 도사> 세르지오 고이코체아(Sergio Goycochea)가 맞붙었다. 고이코체아가 이번에도 방향은 잡았지만 브레메의 슛팅이 낮고 구석으로 깔리는 슛팅으로 그물망을 피해 골네트를 흔들었다. 아르헨티나의 손에서 행운이란 단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신경질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구스타보 데조티(Gustavo Dezotti)가 자신의 마크맨 유르겐 콜러(Jurgen Kohler)를 밀어뜨리고 공을 손에 쥔것이다. 또 다시 1명이 퇴장당했다. 이번엔 주장 마라도나가 항의했다. 그에게 돌아오는건 번복이 아니라 경고였다. 경기는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사람들은 우승이 돌아갈팀에게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동●서독의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우승이었다.
지난 멕시코 월드컵에서 멕시코까지 날아왔다가 패배만 확인한 콜 수상이 이번에도 이탈리아로 갔으며, 관중석에서 관중들과 함께 환호했다. 74년 대회 이후 잃었던 월드컵을 16년만에 되찾으며 동시에 잃었던 영토와 민족을 되찾았다는 기쁨은 게르만 민족의 가슴에 흘러넘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