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 어떻게 / 고쳐쓰기 = 소설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2014.
소설가도 직업이다. 일반적으로 소설가는 특별하고 천재적이며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야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여기 김연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 직업으로 작가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저자김연수는 1993년 <<작가세계>>여름호에 시 <강화에 대하여> 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에『가면을 가르키며 걷기』,『굳빠이 이상』,『원더보이』,『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등 여러 편의 소설과 산문집을 냈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이 시대의 떠오르는 작가다.
소설가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직업인데 책을 읽는 일은 가장 쉽고, 생각은 할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쓰는 일만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말한다. 가장 해야할 일은 바로 원고지에 한 줄을 시작하면 된다. 한 줄을 썼으면 고치는 작업부터가 첫 번째 할 일이다. 쓴 문장을 고치고 다시 고치는 것이 소설가의 전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소설을 쓴다면 구상과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기승전결 등 모든 셋팅을 완벽하게 한 후 써 내려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김연수는 그럴 필요가 없단다. 일단 한 문장을 만들고, 문장 앞에 두 가지 상자만을 놓으면 된다고 한다. 하나는 왜? 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를 문장에 갖다붙여서(p59) 쓰면 된다. 왜? 와 어떻게? 의 두 가지 의문사로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단, 조건은 일단 한 줄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소설의 절반이 끝났다면 소설가의 일은 어찌 보면 참 쉬워 보인다.
하지만 소설가의 본격적인 업무는 바로 고쳐쓰기다. 헤밍웨이는『노인과 바다』를 저술하면서 200번도 넘게 고쳤고, 첫 원고는 쓰레기라고 까지 했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p74)이다. 다듬고 또 다듬어야 생산되는 제품처럼 소설도 쓰고 또 다시 써야 하나의 명작으로 탄생한다. 이러니 아무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일단 쓰고 고쳐 보면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p98). 인간은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자신의 재능을 알 길이 없다. 그러니 모든 일은 해봐야 안다.
저자도 왜 영문학과에 들어가서 노트에 무얼 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1994년 제 3회 작가세계문학상에 덜컥 당선되어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며(p87), 지금의 소설가로 살게 됐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니 무엇이 되고 싶다면 아니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한 줄이라도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탄생 공식은 한 줄을 쓰고 왜?+어떻게?/ 고쳐쓰기를 무진장 하면 소설이 완성된다. 순서가 소설가가 되어야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뭔가를 써야만 소설가가 될 수 있다(p104). 고 주장한다.
김훈 작가는 필일오(必日五)를 책상 앞에 붙이고 하루에 원고지 5매를 쓴다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쓰고 있으며, 66세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23년을 빠짐없이 달리고 썼다. 소설가의 일은 매일 무언가를 써야 한다. 이상도 27세의 짧은 생애 동안 유실된 원고 분량만 손수레 한 대 분량이었다고(p51) 증언하니 쓴다는 것은 엄격한 자기 통제와 혹독한 끈기가 필요함이 보인다. 쓰는 것밖에는 그 무엇도 없는 듯하다. 명작을 남기고 싶고 ‘잘’쓰는 소설가의 욕망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면 된다. 고치고 또 고쳐라. 그리하여 미문이 탄생하고 당신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
한심한 내용일지라도 글자수를 헤아릴 수 있다면 소설을 쓴 것이고, 제아무리 멋진 이야기라도 헤아릴 글자가 없다면 소설을 쓴 게 아니다.(p199)
『소설가의 일』산문집에는 ‘소설가 김연수’를 디테일하게 자신을 노출시킨다. '일단 써라, 그리고 오로지 고치는 일 뿐이다' 라고 수십 번을 강조한다. 모든 일이 쉬워 보여도 게으름의 벽을, 엉덩이를 책상으로 옮기지 못하면 소설가는 결코 되지 못한다. 책 맨 마지막 장에는 얄밉게도 원고지 2장이 기다리고 있다. 원고지를 채울 것이냐의 문제는 아마도 김연수의 힘에 달려있겠다.
<서평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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