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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수가 입을 열었다.
“나의 죽음은 가짜였소. 난 죽지 않았소. 어서 속히 나를 영접하시오.”
해모수를 알아보았던 장수가 해모수의 말을 거들었다.
“이 분은 해모수 공임이 확실하오. 내 목숨을 걸고 담보하겠소.”
그는 자기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백악의 병사들은 들으라! 이 분은 해모수공임에 호리라도 틀림없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내 지휘를 따르렷다!”
그 때 해모수가 갑자기 오백무사들을 휘둘러보며 큰 소리로 명했다.
“모두들 활과 살을 거두라!”
그 때까지도 오백용사들은 활시위에 살을 먹인 채 관병들을 겨누고 있었다.
의외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오백무사는 일제히 손을 내렸다.
“제군은 무기를 정리하고 말에서 내리라!”
해모수가 다시 한 번 명했다. 그와 동시 해모수 자신도 말 등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관병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해모수는 총지휘관에게 말했다.
“우린 모두 무기를 치웠소. 당신이 일개 성의 무관으로서 동북부여후인 내 명령을 따르기 거부한다면, 그건 내 부덕의 소치요. 어찌 내게 동북부여를 다스릴 자격이 있겠소? 나와 내 부하들을 당신의 처분에 맡기겠소.”
해모수의 말에는 위축됨이나 머뭇거림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위풍당당하고 위엄마저 흘렀다.
의외의 말을 들은 지휘관은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두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난 듯, 갑자기 소리쳤다.
“뭣들 하는가? 이 사람들을 모두 포박해 관아의 취조실로 압송하라!”
그 때 해모수를 영접하던 마병대장이 소리를 높였다.
“장군! 장군께서 군후를 알아보지 못하고 항명하신다면, 난 장군의 명에 따를 수 없소이다. 이곳의 최고 지휘관은 동북부여 군후이시니, 난 군후의 명을 받들 수밖에 없소!”
백악산 관군의 총지휘자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에서 내리더니 허리춤에서 오랏줄을 꺼내 손수 해모수를 묶기 시작했다.
해모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결박을 받았다. 해모수의 오백 무사들은 모두 놀란 눈빛과 간절한 표정으로 해모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해모수의 부하 장수가 해모수 앞에 엎드려 신음하듯 소리쳤다.
“전하!”
그 광경을 바라보던 관군들도 홀연 정신을 차린 듯, 해모수의 무사들에게 다가가 역시 허리춤에서 오랏줄을 꺼내더니 그들을 일일이 포박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뭣들 하느냐! 멈춰라!”
외친 이는 뜻밖에도 관군의 총지휘관이었다. 관군들이 일제히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다보았다. 그는 해모수의 결박을 다시 직접 풀더니 그 앞에 엎드려 말했다.
“동북부여후 전하! 전하는 역시 소문에 듣던 대로, 한낱 권세를 탐하는 소인배가 아니라 천하의 영웅이요 일세의 인걸이십니다! 소인의 무례를 벌해주소서!”
그가 머리를 조아려 몇 번이고 해모수에게 절하더니 감격에 가득 찬 목소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동북부여후 전하께 부복하지 않고 뭣들 하느냐?!”
해모수의 오백무사들을 결박하다 말고 관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 우물쭈물 땅바닥에 엎드렸다.
‘제기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아마도 관병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급박한 사태가 진정되자 현장에 모여들었던 백악산아사달의 문무 관원들은 일제히 해모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해모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두들 일어서시오.”
문무 관원들이 해모수 앞에 도열하고 백악산아사달의 군대도 줄을 지어 정렬했다. 그 때 누군가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동북부여후 해모수 전하 천세!”
“천세!”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목소리에 이어 관아가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대부여평국상장 동북부여후 해모수 전하 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해모수가 손을 휘저으며 말렸다. 하지만 해모수의 손짓을 오해한 군중은 감격에 겨워 만세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그 사이 해모수는 속으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오천 기나 되는 중부여후의 기마병은 죄다 어디로 갔는가? 그들이 백악산아사달을 접수하지 못했단 말인가?’
해모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곁에 서 있는 관군대장에게 물었다.
“우리가 이곳에 당도하기 전, 중부여후의 깃발을 휘날리는 대략 오천기 정도의 마병이 이곳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 사실 그들은 우리 성에 와서 우리와 협력해 민병대를 해산시킨 후, 지금 영채에서 쉬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해모수의 눈빛이 해연駭然하다.
“나리, 안심하십시오. 그들의 지휘관은 중부여후의 명을 받았다고 내게 일러주었습니다.”
“······?”
“중부여후께서 그들에게 이곳의 민란을 평정하라고 명하신 후, 해모수 공께서 여기 오시면 해모수와 싸우지 말고 이곳을 해모수 공에게 넘기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해모수는 속으로 신음을 하고 있었다.
“그랬군요. 어쩐지.”
관아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에 놀란 백성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너도 나도 관아로 모여 들었다. 사태를 파악한 백성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죄다 몰려드는 것 같았다. 해모수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은 금세 성중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백성들은 서로 얼싸 안고 춤을 추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천세, 만세를 부르며 어아가를 목 놓아 제창했다.
♬ 어아어아, 우리 하나님 크신 사랑
배달나라 우리 모두 억만년 잊지 마세.
어아어아, 선한마음 큰 활이고 악한 마음 과녁이라.
억만인 우리 모두 큰 활 시위 선한 마음, 곧은 화살 한 마음.
어아어아, 억만인 우리 모두 큰 활 되어 무리 과녁 꿰뚫네
끓는 물 선한 마음, 눈덩이 악한 마음.
어아어아, 억만인 우리 모두 큰 활처럼 강한 마음, 배달나라 영원하리.
억만년 크신 사랑,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이것은 해모수 장례식 때 웅심산성의 온 백성이 구슬피 부르던 노래였다. 이제는 산천초목에도 늦봄 초여름의 생기와 기쁨의 기운이 가득 찬 가운데, 백악산아사달의 백성들이 춤을 추며 어아가를 불러댄다.
그 날이 바로 임술년(서기전 239) 사월 초팔일이었다. 그날의 백악산아사달 백성들은 모두 잔치 기분에 싸여 있었다.
이 기쁜 소식을 어찌 그들만 누릴 손가. 백악산아사달의 관아는 해모수의 고향 웅심산성과 아사달, 영고탑 등지로 즉시 사자를 보내 해모수 공의 생환 소식을 알리고, 비밀리에 장당경의 고열가 임금에게도 사자를 보낸다.
백악산아사달에서는 백년 이래 최대의 잔치가 벌어졌다. 완강한 저항에 부딪힐 경우 동북부여후의 지위를 깨끗이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가리라,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죽음도 불사하리라 남몰래 작심한 후 백악산아사달에 당도했던 해모수는, 뜻밖에도 성민들의 열화 같은 환영에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이런 환대와 환영에 익숙하지 않은 해모수로서는 마음이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내려갈 줄 안다면 올라갈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비천에 처할 줄도 안다면, 부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낮게 내려갈 때 오히려 즐거워하고, 높이 오를 때 우쭐하지 않으며 근신과 겸손을 지키라고 <행심록>이 타이르지 않았던가.
해모수는 마음을 가다듬고 들뜬 백성들을 진정시킨 후 즉석에서 성중 문무관원들의 천거를 받아 신망이 두터운 성중 인물 가운데서 새로운 성주를 임명했다.
해모수의 생환을 축하하는 잔치가 백악산아사달에서 벌어지고 있을 때 웅심산성에서는 그의 생환을 알려온 사자의 전갈을 받고 관아와 성민 전체가 발칵 뒤집혀졌다.
즉시 동북부여후를 그의 고향으로 모셔오고자 일백 명의 기마대가 파견되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은 백악산아사달을 향해 바람같이 말을 몰았다. 웅심산성에서 백악산아사달까지는 삼백 리도 되지 않았다. 웅심산성의 마병들은 이틀 후 오정에 잔치 분위기에 들뜬 백악산아사달로 들이닥쳤다.
해모수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백악산아사달의 백성들로부터 눈물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설이매 공주의 부황 고열가 임금이 하사한 천광검天光劍을 허리에 패용하고, 기진공주가 선물한 오우관烏羽冠을 머리에 쓴 해모수는, 연나라 예공주의 빙물 오호거五虎車에 올라 탄 채 오백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웅심산성 기마대의 인도를 받아 웅심산성으로 향한다.
웅심산성에서는 그를 환영하기 위한 인파가 성 밖 십리까지 나와 있었다. 멀리서 산을 돌아오는 기마대의 모습이 보이자 웅심산성 백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해모수 공 만세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백성들에게 둘러싸인 해모수는 수레에서 내려 수많은 사람들과 얼싸 안고 눈물을 흘렸다. 고향으로 돌아왔던 그의 두 시녀 천화와 근화는 해모수의 얼굴을 다시 보자 해모수 앞에 엎드려 펑펑 울어댄다.
“내가 너무나 부덕하고 무지 몽매해 너희들에게 큰 근심을 끼쳤구나.”
해모수가 두 하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나리께서 떠나신 후 우린 정말로 하늘이 아주 무너진 줄 알았어요. 둘이 함께 자진自盡하려 했지만··· 흑흑!”
“미련하기는. 내가 이렇게 돌아올 줄 몰랐단 말이냐?”
그도 역시 감격스러워 눈물을 글썽이며, 두 시녀 앞에서 이치에 닿지 않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어디선가 향기가 진동하더니, 아름다운 두 아가씨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녀들은 다름 아닌, 백선의, 청아련이다.
“오호! 너희들도 여기에 있었구나.”
“그럼요. 나리. 저희들이 여기에 있을 줄 몰랐단 말인가요?”
백선의와 청아련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다른 분들은 어찌 되었느냐?”
해모수는 지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웅심산성의 신시문을 향해 걸었다.
“삼칠성주님은 삼칠성으로 귀향하셨고, 기비 왕자님과 기진 공주님은 인질로 사로잡혀 설이매 공주님과 함께 궁에 연금당하셨어요.”
“오호,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모두가 나의 불찰이다.”
“아니에요. 나리.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들 가운데 배신자가 있어서 만사가 뒤틀어져 저쪽 장당경 사람들에게 제압당한 거예요. 배신자들이 우리의 거사 계획을 저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지금쯤 감옥에 있을 거예요.”
“아, 일이 그렇게 되었었구나.”
총명한 해모수는, 설이매의 주도로 일행이 일을 꾸미다가 사전에 모의가 탄로 나는 바람에 오히려 역습을 당해 자기 일행이 죄다 붙들렸다는 사실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신시문 앞에 도달하니, 늘 대하던 글귀가 웅위로운 모습으로 그를 반겨 맞는다.
出 入 此 門 天 有 福 출 입 차 문 천 유 복
이 문을 출입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이 있으리라
“선의야, 우리가 이 문을 출입할 수 있으니, 우리는 복이 있는 자들이지?”
해모수가 성문 앞에 멈춰 서서 문루의 환영문文을 우러러보며 백선의에게 물었다.
“네, 나리. 백년 천년, 저 하늘의 천궁天宮(천국)에 들어가서도, 무궁토록 저희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에요.”
“네 말이 옳구나. 환웅임금의 <삼일신고>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성통공완을 이룬 자는, 천궁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무궁한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다물 임금의 <행심록>에서도 하늘의 복락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단다. 너희들은 읽어본 적이 있느냐?”
“저희들이 글을 배우긴 했사오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도 선친으로부터 그 비본을 물려받았단다.”
“하늘의 복락이 어떤 거예요?”
청아련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다물 임금은 <삼일신고>와 선대 성현들의 말을 인용해 <행심록>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곳은 대낮보다 천만 배 환하게 빛나서, 어둠과 죄와 악은 조금도 없으며, 항상 감미롭고 황홀한 음악성이 사방에 울려 퍼져 천상의 만민들로 하여금, 황홀경에 젖어서 어쩔 줄 모르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하고, 모든 사람이 제철신령諸哲神靈들처럼 선하게 될 뿐만 아니라, 질병, 고통, 눈물, 아픔,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은 조금도 없다는 구나.”
해모수는 신시문의 현판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호흡기도를 할 때, 자주 황홀한 기쁨을 누리지 않느냐?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저 하늘의 신령하고 복된 기운이 우리의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현상이라고 <행심록>에서 풀이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그런 기쁨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건가요? 하나님도 그런 가없이 황홀한 기쁨에 싸여 계신 건가요?”
“<삼일신고>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 소리와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반드시 하나님을 뵈옵고 또 하나님의 성품이 마음에 임한다고. 바로 그 성품이 기쁨이고 행복이며, 황홀경이란다. 물론, 그건 황홀하신 천제님의 지극한 기쁨에서 내려오는 것이지.”
웅심산성 관아에 당도한 해모수는 성민들을 안돈시키고, 동북부여후 즉위식을 간소하게 치른 후, 웅심산성을 동북부여의 도읍지로 삼았다. 해모수는 동북부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문무백관들을 임명하고 자신의 옛 집 곁, 넓은 터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 동북부여의 안녕과 태평성세를 기원한다.
이야기를 약간 앞으로 돌리자. 해모수가 백악산아사달로 입성하기 전이다. 중부여후의 중병은 어의들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날로 악화되어, 그는 침상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해모수가 백악산아사달을 접수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중부여후는 가신장 아불한에게 물었다.
“백악산아사달로 파견한 우리 군대는 어찌 되었는가?”
“방금 전 파발마가 도착했습니다. 백악산의 관군과 협력해 민병들을 모두 해산시킨 후, 나리의 명에 따라 관군대장에게는 동북부여후 해모수에게 전권을 넘기도록 부탁하고, 지금 철수해서 돌아오고 있다는 전갈입니다.”
“해모수는 자기 지혜가 뛰어나서 백악산아사달을 점령한 것으로 알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도 눈이 있고 머리가 있으면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나리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그럴까?”
“하지만, 연나라로부터 백악산아사달로 향해 나아가던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나리의 천리안에 이미 붙잡혀 있었음을, 그는 까마득히 몰랐을 겁니다.”
아불한은 잠시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얼굴에 감탄의 빛이 가득 차오르며 덧붙였다.
“나리는 역시 불세출의 영웅이십니다. 해모수 같은 풋내기는 감히 나리의 혜안을 따를 수 없사옵니다.”
“불세출의 영웅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늘이 날 돕지 않으니.”
해로운이 탄식했다.
원래, 해모수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에 접한 순간, 해로운은 겉으로 슬퍼했으나, 속으로 코웃음을 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시해서 해모수의 술잔에 탄 독약은 치명적인 약물이었으나 결코 사람을 삽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아니었던 것이다.
명의가 지어준 그 독약은 사람의 뇌에 침투해, 뇌의 기능을 점차 마비시키고, 사람을 천천히 바보로 만들어가는 무서운 독약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중독자는 점차 기억력과 사고력이 감퇴되어 불과 일이년 안에 완전히 폐인이 되고 만다.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모수의 부고장을 받은 순간부터, 해로운은 이미 그들의 수법을 뻔히 내다보고, 이를 역이용해, 해모수의 장례식 날, 오히려 삼칠성주와 설이매, 기비 등 해모수 세력을 일거에 장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던 설이매와 기비 일행은 장례식을 기회로 삼아 해로운의 무리를 일망타진하려던 자신들의 계획이, 내부의 배신자에 의해 누설되었다고 오해했었다.
좌우간, 번조선과 연나라 간의 양국 접경지대에 파송한 세작으로부터 해모수의 연나라 입국 및 재출현을 보고 받은 해로운은, 해모수의 동태에 시선을 집중하며 군대를 보내 그를 체포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그 무렵 그는 중병으로 인해 커다란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된 걸까?
해로운은 심복들의 의견에 따라 백악산아사달을 무정부상태로 만든 후 오천의 기마군대를 파견해, 동북부여를 접수할 듯한 기세를 보였으나, 웬일인지, 아불한을 통해, 백악산아사달로 진주하는 부대의 지휘 장수에게, 만일 해모수가 거기에 나타나거든 그와 싸우지 말고, 깃발을 내린 채 조용히 군대를 철수하라고 이른 것이다.
겉으로는 바보인 척하며 속으로는 무서운 계략으로 일세를 주름잡고 나라를 손아귀에 장악한 천하영웅 해로운은, 하늘이 자기 뜻을 재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물러나고자 했을까? 해로운은 하늘의 시의時宜와 천의天意를 읽을 줄 알고 있었던가?
해로운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내가 졌네!”
“나리,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녀가 이겼어.”
해로운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 라뇨······?”
아불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떠듬거렸다.
“넌 모르느냐? 해모수의 생모 말이다.”
“아, 묘고미향!”
잠시 숨을 돌리던 해로운이 천천히 말했다.
“그녀가 어느 날 아버지의 첩으로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난 꿰뚫어보았지.”
“······?”
“그녀가 한 가문은 물론이고 한 나라라도 말아먹을 수 있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아불한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를 일찍 제거했어야 되는 건데··· 하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인지 모르지. 내 운명이 이렇게 끝나고, 결국 그녀는 나를 이긴 후, 그 자리에 해모수를 세웠으니··· 하지만 어림도 없지.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은 결코 날 이길 수 없었어. 그렇지 않나?”
해로운이 동의를 구하는 듯, 아불한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마다입니까? 불세출의 기인이신 나리를 이길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물며 묘고미향과 해모수 모자쯤이야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날 너무 치켜세우지 말게.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나보다 해모수가 더 나을 걸세.”
해로운은 일찍이 묘고미향이 자기가문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보통 여인이 아님을 간파하고, 갖은 구실을 붙여 부친의 첩인 묘고미향을 집안에서 내쫓고 말았었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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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4. 7.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