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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숭실대 문창과(문특 전형)에 합격한 문장 5기 이강현입니다.
이 글을 보고 '어? 누구지?' 하는 후배들도 많을 겁니다. 또한 '어? 이 사람 학교 붙었네?' 하는 후배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읽으면 후회 없을 겁니다. 저는 내신 8-9등급에서 숭실대학교를 붙은 인간 승리한 사람입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자면 작년에 수시 전부 떨어지고 정시에 서울예대 실기까지 붙었다가 아깝게(..) 면접에서 떨어져 불가피하게 재수를 하게 된 사람입니다. 재수를 거의 확정하다시피 한 후에 저는 선생님들께 면목이 없어서, 올해 명지, 추계 등등을 합격한 김 모 친구와 함께 문장과 연락을 단절했습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없었죠. 올해 초에 저는 약간의 방황을 했습니다. 잠깐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저는 지금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대학에 전부 떨어진 후 최종적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명지전문대학교에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붙을 줄 알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망의 수능 전날, 수능 전날에는 빨리 끝나는 건 전부 아시죠? 학교가 10시 정도에 끝났는데 집에 가는 도중에 명지전문대조차 떨어졌다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그 때의 기분이란, 여태 글을 써왔지만 어떤 표현으로도 실감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공포의 통보를 받고 으슬으슬 몸이 떨리더군요. 갑자기 감기기운이 올라왔고 집에 도착하니까 몸이 버티질 못하고 바로 쓰러집디다. 이후에 쥐 죽은 듯이 잤습니다. 그날 저녁에 깼는데도 또 억지로 잤습니다. 그냥 잠자면 그 때만큼이라도 잊히잖아요? 그래서 미친 듯이 잤습니다. 가까스로 일어나보니 다음날이더군요. 그렇게 수능 치러 갔습니다.
수능 잘 봤냐구요?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지만 잘 볼 턱이 있습니까. 제 실적만 믿고 공부는 하나도 안했는데 잘 봤을 리가 있습니까. 혹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보시는 분이면 알겠지만 저번에 뿌잉뿌잉 안종석이 수능 쳤을 때랑 저랑 상황이 똑같았습니다(얼굴은 많이 달라요. 상황만 같음).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데, 모의고사 풀어본 게 2년도 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잠도 안 오지, 그냥 끝날 때까지 멍만 때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대학 붙으면 해야지, 하고 세워뒀던 모든 계획들도 뒤로 한 채 저는 작년 정시반에 몸을 담았습니다. 저와 동기였던 광열이라든지 재연이라든지 겨운이라든지 등등이 전부 아르바이트하거나 놀러 다니는 걸 보며 진짜 서럽게 12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자, 여기까지 작년의 제 스토리였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 '어? 지금 나랑 비슷하네?' 하는 사람들 몇몇 있을 겁니다. 그런다고 '뭐야 그럼 정시 가도 별로 희망 없는 거야?' 하지 마세요. 정시 반에서 합격 못한 사람은 저를 포함해 총 3명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못한 거였죠.
저는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2008년도부터 문장학원을 알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상무지구에서 살다가 누나가 (구)광주여고를 다녔기에 지금 문장학원이 있는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다 떨어져가는 문장학원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아직도 그 문구가 기억나는데, '글 써서 대학 간다' 정말 이 한 마디가 임팩트 있게 다가왔습니다. 많이 공감하시죠? 아무튼 학원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했는데 솔직히 처음엔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진짜 공부는 내 길이 아니다 싶어서 바로 문장에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글 쓰는 걸 좋아했냐구요? 물론 무조건 대학만 가려고 학원에 들어온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중학교 때부터 글을 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창피하죠. 엄청 허접하거든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의 반응이 꽤 좋아서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있었고 글 쓰는 즐거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학원을 도착하니 처음으로 제가 쓴 글을 동굴이라는 주제로 평가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 무슨 백수를 설정해놓고 동굴 같은 삶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쓰는 데만 한 3시간 걸렸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여쌤이 제 글을 보고 평가하지 않으셨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 이유가 너무 고칠게 많아서 그랬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ㅏ하ㅏ..
학원을 다니고 며칠 후에 문득 최금진 선생님께서 소설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시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한 번 구경도 못해본 시를 쓰라니.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학교 가려면 써야죠. 제가 처음 쓴 글은 제목이 ‘마당’이었습니다.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저는 그 글을 쓰고 선생님들께서 처음 쓴 글 치고는 잘 썼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들께서 그래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글을 놓지 않고 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매일이 새로웠습니다.
저의 첫 백일장은 소규모였는데 그래도 거기서 1등을 해서 시장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저를 깔보던 학교 선생님들도 약간은 인정하는 눈치셨고 기세를 몰아 춘우문학상 장원에 당선되어 200만원을 현금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운도 좋았습니다. 받은 상금은 대부분 여태 뒷바라지하느라 힘드셨던 어머니한테 드렸습니다. 거기서 쾌감이 오더라구요. 그렇게 계속 상금을 탔냐구요? 하하하하.. 아뇨. 저는 집안 사정 때문에 정말 부끄럽지만 가출을 하게 되었고 결국 문장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픈 제 인생의 한 구절이네요.
고등학교 2학년을 통째로 허비했습니다. 그냥 학교에서 자고 끝나면 놀고. 거짓말로 특기생이라고 하고 학교도 빨리 끝났습니다. 몇 개 광주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나갔었는데 수상은 했지만 전혀 진학에 필요 없는 상들이었습니다. 방금 생각난 건데 그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비해서 제가 재수를(반수지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ㅋㅋ 각설하고 3학년에 올라가니까 진짜 미래가 안 보이더군요. 그래서 다시 문장학원을 찾았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무릎도 꿇고..그런데 제가 그만둘 때 학원 연락도 다 씹고 그렇게 철없는 행동을 했는데 선생님들께서 좋게 봐주셨겠습니까. 당연히 퇴짜 맞았죠. 문학 하는 녀석이 그러면 안 된다고!
그래도 문지원 선생님이 저를 안쓰럽게 봐주셨는지 연락을 다시 해주시더군요ㅠㅠ 이 자리를 빌려서 고맙다는 말 올립니다.
말이 꽤 길어졌네요. 중요한 건 제가 얼마나 놀다가 운 좋게 숭실대를 떡 붙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수가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재수(정확하게는 반수)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말 당연한 이야기들이 재수생인 저에게 뜻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절실함'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게 그 단어를 알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체험을 하고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절실함이 진실로 우러나옵니다. 저도 고3 때 어느 정도 절실함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속엔 쓸 데 없는 자만심, 안주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대책 등등 여러 가지 심정들이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땐 롯데시네마와 미스터피자 주방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땐 조금이나마 인생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진짜 대학을 안가면 안 되겠구나 평생 나는 이 수준에서 머물겠구나, 라고 또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란 것이 경험 삼아 하는 거지, 결코 제 인생의 종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꾸역꾸역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수시 준비를 했고 서울예대는 접수를 잘못해서 시험 응시조차 못하고 동국대는 1차까지 붙었지만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조선대도 떨어졌고 썼던 곳은 전부 떨어졌습니다.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듯 저는 원광대, 광주대까지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또 막상 쓰려니 남은 실적서가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 대학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친구들은 학교 가서 재밌게 바쁘게 잘 사는데, 저만 맨날 혼자 집에서 잉여스러운 생활을 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나는 집에서 밥만 축내는 기계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진짜 반년 내내 불면증도 오고 인간 폐인 되는 거 시간문제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생각이 많아지니까 글로 쓰고 싶은 것도 많아지더군요. 그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전 숭실대 면접도 안 보려고 했었습니다. 어차피 작년이랑 실적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성적은 말하나마나였기 때문에 면접으로 당락이 좌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서울까지 가놓고 아침에 그냥 가지 말아야지 하고 있는데 같이 있던 서울산업대 재학 중인 김경현(문장4기)이라는 형이 너 미쳤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하면서 누워 있던 저를 간신히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면접 때 저는 한을 풀듯 하고 싶던 말을 전부 하고 나왔습니다. 여태까지의 면접은 뭔가 외운 듯한 그런 내용이었지만 그날은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차피 내 성적 바닥인 거 다 안다. 실적도 거의 30개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모자란 것도 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잘 쓴다던 애들도 대학 가면 다 별로라더라. 어차피 성적과 실적은 바꿀 수 없는 지나간 것들이 아니냐. 나는 재수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을 교수님들께 보여드리지 못해 정말 아쉽다. 이런 얘기들을 주구장창 늘어놨습니다. 부수적인 것들로 취미가 뭐냐, 시인 누구 좋아하냐 같은 질문을 받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개인적인 얘기도 하면서 면접만 거의 10분을 한 것 같습니다. 숭실대가 좋은 게 다른 학교와는 달리 면접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 시원하게 말하니까 기대는 안했지만 너무나 후련했습니다. 내 작은 가치관이 그래도 교수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졌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면접을 치르고 저는 며칠을 또 허송세월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수능 거의 3주 전부터 독서실에 박혀서 살았습니다. 왜냐면 서울산업대 최저 5등급을 맞춰야 됐거든요. 그래요 저는 5등급도 안 나오는 놈이었습니다. 제 내신은 8~9등급이었습니다. 풀었으면 조금 더 나왔겠죠. 그러나 시험 시간에 매일 잤던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 1학년 2학기 때부턴 무조건 찍었죠. 안 믿겠지만, 저 고등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 언어 1등으로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때도 거의 90점 밑으로 내려가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언어공부를 하려니까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군요. 작년 모의고사부터 올해 모의고사까지 쭉 풀어봤지만 5등급이 나올 때도 있었는데 3점차이로 6등급 나오고 이럴 땐 정말 말 그대로 앞이 안보였습니다.
언어가 잠깐 한다고 오르는 것도 아니고 가끔 문제들을 보면 정말 이해를 할 수 없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수능에 문학부분에서 분명히 이건 외로움을 나타내는 소절 같은데 답은 자유로움이라고 나온 그런 부류의 문제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쩌겠습니까, 답이 자유롭다는데. 나중에 들은 소린데 시인이 직접 자신의 글이 출제된 수능문제를 풀었더니 다 틀렸다고 합니다. 자신은 이런 의도로 쓴 게 아니라고 말이죠.
말이 됩니까, 그게? 문학은 해체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이 느낀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능에선 그게 아니라고 하니 그런 문제들은 아무리 풀고 오답정리를 해도 도통 맞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풀었습니다. 제가 또 깨달은 것이 작년 애들 중에 겨운이 같은 경우는 알게 모르게 열심히 따로 또 글 쓰고 검사 맡고 했다더라구요. 영아 같은 경우에도 정시 때 학원 오기 전에 도서관 가서 필사하고 시집 읽고 그랬다 하더라구요.
그에 비해 저는 맨날 늦잠 자서 학원도 지각하고, 오늘 시 한 편 다 썼으니까 오늘 할일 끝~~~ 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노력을 안했던 거죠. 노력은 배신을 안 한다는 말이 있죠? 저는 그 말만 믿고 끝까지 언어공부만 했습니다.
조금씩 알게 모르게 성적이 오르긴 오르더라구요. 하루에 모의고사 3개씩 풀고 오답정리하고- 그게 불과 며칠 전입니다.
어느 날은 지윤이가 숭실대 합격 여부 확인해보라고 하더군요. 진짜 기대 따위 안하고 마음 비우고 봤습니다. 근데 웬 일? 합격이라네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에 독서실에 나와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근데 또 합격이라네요? 근데 작년에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숭실대가 전산착오로 합격 발표 잘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이래저래 확인해보고 다시 합격이란 것을 알게 된 후 바로 짐 싸서 나왔습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이런 얘기들은 여러분들에게 괜히 바람만 불어넣어주는 것 같아서 그만하겠습니다. 아무튼 고생 끝에, 노력 끝에 얻은 것 같아서 더 좋았습니다.
만약 제가 재수(반수)를 안 하고 바로 대학교를 갔다면 숭실대는 당연히 못 갔을 테고, 생각도 없이 망나니처럼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제가 이렇게 성적이 낮았는데 대학교 갔다고 여려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아쉽게도 조금은 오산입니다. 아마 9등급의 바닥을 치는 성적으로 숭실대 이상의 학교를 간 것은 제가 처음일 거예요. 아마 운이 무척 좋았나 봅니다. 아니면 문장학원 다니면서 받은 수상실적이 30개 있다는 거? 결국 그 수상실적을 써먹어서 숭실대에 떡하니 붙은 거 아닙니까!
입시에는 운이 정말 필요한 요소 중 하나거든요. 물론 실력도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쓰는 분이면 문장 선생님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세요. 정말 귀중합니다. 이것도 뻔한 말 같죠? 두고 보세요. 나중에 저랑 똑같은 말하고 있는지 없는지 볼 겁니다. 특히 최금진 선생님의 그 특유의 그 툭 흘리듯 말씀하시는 것들 잘 주워 담으세요.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거 있으면 좋든 안 좋든 무조건 적었습니다.
제 주변에 재수했던 친구들은 거의 삼수를 바라보거나 아니면 하향 지원이나 하고 있습니다. 1년 내내 영수학원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던 애들인데 말이죠. 수험표 가지러 고등학교 갔을 때 재수하는 애들한테 은근슬쩍 나 수시로 숭실대 붙었다고 하니 부러워 죽으려 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훨씬 공부 잘했던 애들인데 말이죠. 합격을 하고 문장학원이 먼저 생각나더라구요. 수능 끝나고 깜짝 놀라게 해드려야지, 했는데 어떻게 먼저 아시고 연락을 취하셨더라구요. 원장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축하해주시는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마음 한 쪽에서 안심이 되고 몇 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또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의 앞길을 터 주신 선생님들께는 정말 감사합니다. 영어론 땡큐, 중국어 쎼쎼, 일본어론 아리가또라고하지요 ..........라고 하면 웃어 주실 건가요?ㅠㅠ개그콘서트 안 보시면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 문장학원을 다니는 순간 대학교를 갔건 못 갔건 선생님들께 큰 은혜를 입은 겁니다. 문학을 배웠다는 자체가 참 특별하잖아요.
전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만약에 글을 안 썼다면 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글을 몰랐다면 실적? 그런 게 있었겠습니까? 실기? 원고지 쓰는 법이나 알았겠습니까? 정말 인생 답 없습니다. 특히 저 같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더욱. 재수를 한다고 해도 무작정 공부만 하는 애들 결국 다 똑같습니다. 더 잘 가는 애들은 극소수고 그나마 작년이랑 등급 비슷하게 나오면 그나마 잘 나온 겁니다. 정말 중요한 말인데 재수를 하면 가장 큰 적이 자기 자신입니다. 주변 생각하지 말고 내 자신을 이겨나가다 보면 어느새 결승점에 도달해 있을 겁니다.
또 수시에 대학 못 갔다고 선생님들께 악심을 품거나 그런 애들 꼭 있을 텐데 그냥 계속 끝까지 믿으세요. 정시 본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세요. 정시 때도 실력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그게 다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겁니다. 대학 가서 장학금 받는 선배들 많이 봤습니다.
더군다나 문장선생님들은 매년마다 얼마나 더 고생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대학 붙으면 땡이지만 선생님들은 한 학년 보내면 또 다음 학년 걱정이십니다. 대학교 가는 건 여러분 인생이라구요? 여러분 대학 못 보내면 선생님들 인생도 위험해집니다. 여러분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들도 똑같이 고민하고 함께 입시를 치르는 심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열심히 하라는 말입니다. 또 내가 돈 내고 다니는 건데 당연히 대학이라는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구요?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돈 내고, 아니 더 내고 더 고생하면서 다른 학원 다녀보세요. 문장만큼 합격률 좋은 학원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문장 선생님들은 정말 실력도 출중하시지만 가르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해도 막상 학생 가르치는 건 못하는 사람 대다수입니다.
학원에 분위기 흐리거나 맘에 안 드는 애들도 몇몇 애들도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잘 챙겨주세요. 나중에 서울 가면 어느 정도 필요할 때가 있을 겁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울에서 내려오지만 않았어도 대학 안가도 될 만큼 부모님 재산 물려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것이 정말 모를 일입니다. 제가 숭실대학교를 간 것도 정말 모를 일이었습니다. 꼭 주변에 보면 서울? 왜 가야 돼? 이런 애들이 있을 겁니다. 다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여러분도 큰물에서 놀아야 된다는 인식을 가지세요.
백일장 몇 번 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서울을 가야겠구나 하는 인식이 생길 겁니다. 저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자유로웠는데 여러분은 서울을 가도 바로 내려와야 되고 가족 같은 분위기도 없이 삭막하고 그러겠지만 거기서 잘해야 나중에 대학가서도 잘합니다. 전 문장이 작은 대학, 좀 더 오버한다면 작은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녀주면 고맙겠습니다.
정말이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이젠 항상 문장선생님들의 감시 때문에 그렇게 크게 터질 만한 사건도 안 나겠지만 문장을 다녔을 때의 추억은 너무나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문장선생님들 몰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학원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네, 어쨌네, 저쨌네 하는 것들도 문장 친구들끼리 얘기하면 너무나 재밌고 즐거웠습니다. 뭐 하나 선생님들께 걸릴까봐 죽자고 뛰고, 숨기고, 쉬쉬하고(어차피 대부분 들켰지만요) 그때의 스릴감은 돈 주고도 못살 겁니다.
지금은 수시가 빨라지고 접수 기간이 겹쳐서 문학기행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슬펐습니다. 전 대학교도 중요하지만, 당연히 1순위지만 여러분들이 대학 이외의 것들, 대인관계라든지 여러 가지 깨달음들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등학교+재수(반수) 기간이었는데 더 쓰면 지루해질 것 같고 해서 슬슬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수기 보면 다들 똑같은 말 하지만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또 똑같은 말을 하게 되네요. 제가 이런 글을 쓰리라고 상상은 했지만 막상 쓰게 되니 느낌이 색다르네요. 이 기분을 여러분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 화이팅! 하세요. 좌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실력이나 선생님들을 의심하는 순간 무너지는 겁니다.
끝까지 해보세요. 급할 거 없습니다. 한번 끝났다고 해서 친구들 대학가고 나만 못갔다고 해서 인생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느리게 사는 법을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인생은 길기 때문에 멀리 보세요. 지금 상황만 탓하지 말고. 그리고 내가 정말 열심히 했나? 하고 자문을 던져보세요. '열심히'라는 개념을 남들이랑 비교해보지 말고 그냥 스스로 판단을 해보세요. 그런데도 안 된다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밤새도록 상담해 드릴게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저는 합격했다는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정말로요.
정말 좋긴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좋았습니다.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라구요. 대학을 붙었지만 어머니 표정에는 등록금에 대한 걱정도 숨어 있었고, 대학이라는 산을 넘었지만 또 이제 취업이라는 바다가 펼쳐졌다고 해야 되나요? 고등학교 때는 제가 좋아하고, 자신하는 글쓰기만 할 수 있었지만 이제 학교를 들어가면 교양과목도 공부해야 되고 몇 년 동안 놓고 있었던 영어공부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깝깝하더라구요. 토익도 봐야 될 거고 그러니 합격한 학생들도 합격 했다고 좋아라만 하지 말고, 한 발치 더 나아가서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다들 알고는 있겠죠. 그러나 실천이 참 힘든 겁니다. 저도 이렇게 말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문장선생님들이 해주실 수 있는 거라곤 단지 공부 못하는 놈 대학 붙여주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해주셨으면 나머지 몫은 우리 겁니다. 갈수록 문학특기생들의 경쟁률도 세집니다. 청소년 등단도 이제는 비교적 흔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됩니다. tv 속에서 연예인들 웃고 떠드는 거 재밌게 보고나면 허무하지 않아요? 결국 그들의 돈벌이에 우리가 가담하는 것밖에 더 안 됩니다. 먼 곳에서 구경꾼처럼 바라보고 있지만 말고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제가 졸업을 했다고 또 문장학원과의 연락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거나 해주셔도 저는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그동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부렸던 어머니한테 죄송하고, 못난 아들 뒷바라지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 전하고 싶구요, 마지막으로 최금진 선생님 문지원 선생님께 정말 평생 감사드린다고 말씀 올리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성적이 낮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문학특기자>라는 희망이 있거든요. 그러나 정말 자신있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 희망도 사라진다는 거 잊지 마세요.
한두 살 차이난다고 괜히 어른 노릇 하는 거 같아서 쑥스럽지만 인생은 노력하는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저도 이 말을 그냥 흘려들었을 땐 몰랐지만 조금 겪어보니 이제 알겠더라구요. 늦게라도 열심히 하세요. 정시 갔다고 슬퍼할 일도 전혀 없구요. 정말 하고 싶던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지루하니까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그럼 이제 정말 길고도 짧았던 문장학원에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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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크,..ㅠ저희가1등했던문학기행이결국없어지고야만건가요....무튼오빠너무수고하셨어요ㅠㅠㅠㅋㅋ숭실대에서뵈요!ㅋㅋㅋ
우리 강현이의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수기~~~~~~~~~아, 가슴 아프다. ^^ 하지만 크게 되려고 늦게 된 거야. 알지? 오랜만에 만나 잡아본 네 손이 참 따스해서 기분 좋더라. 마음도 따스한 대학 생활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를 이렇게 이끌어주신 건 첫째로 어머니가 믿어주신 게 가장 크고, 둘째, 너를 사랑으로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신 고3 때 담임 선생님이시다. 우리도 그 두 분이 안 계셨다면 너를 지도할 수 없었을 거야. 세상엔 참 좋은 사람들도 많다. 그 분들이 네 곁에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지켜며 살아라. 특히, 인연은 더 그렇다. 그게 너의 길이 될 거다.
형 대학 합격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