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9. 월
노태인 : 6세
노강인 : 4세 (41개월)
노시인 : 2세 (21개월)
아동 학대
홈스쿨 가정들의 만남을 통하여
빛나리가정교육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 감사하다.
부모는 배우고 아이는 신나게 놀게 하자.
신나게 노는 것이 무엇인지 어른들은 그것을 잊어 버렸다.
정보화 시대에 쫓기는 삶, 정보에 구속된 삶이
노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모르고 성공을 위해
매진한 삶이 노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나도 그런 삶을 살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여유를 가지고 신나게 집중해서 노는 법을 배워나갔다.
방송대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늘 시험이 눈앞에 있었지만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은 시험이 코앞에 있어도
여유있고 느긋하게 아이와 놀아야 했다.
아이는 내가 가는 길에 걸림돌이 아니라
즐기면서 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비로소 매일 하늘을 보고
동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과 바람소리를 들었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소리를 듣고
꽃이 피는 소리를 들었다.
흙을 밟아보고 농사까지 짓게 되었다.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퍼즐도 하고 블록놀이도 처음으로 해 보았다.
빨래도 삶아보고 걸음마하는 아기 걸음에 맞추어
한없이 천천히 걸어도 보았다.
아무 거리낌없이 집안을 뒤집어 놀아도 보고
소꿉놀이하며 아무거나 음식인냥 얌얌 먹어도 봤다.
동네 아이들 모두 불러 생일파티도 해보고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잡기놀이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여유를 찾아갔다.
기관에 보내지 않으니 빨리빨리 재촉할 일이 없어 늘 여유롭다.
학습지나 학원에 가지 않으니 시간 맞추어 갈 일이 없다.
시간 맞출 일은 오로지 예배시간이다.
하루종일 날마다 아이랑 노는 것이
내가 할 일이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놀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갑상선에 위가 안좋고 온몸이 허약체질이라
나의 체력은 날마다 바닥상태다.
논다는 것, 그것은 많은 힘이 필요하다.
어떤 남편들은 집에서 뭐했냐며 집안살림에 대해
타박하기도 한다.
아이와 종일 놀아 보라.
당신은 녹초가 되어 초저녁에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다.
체력이 바닥상태인 나는 노는 것을 끊임없이 연구해야만 했다.
첫 번째 방법은 동네 초등부 아이들이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아무 때나 집에 놀러오게 했다.
그래서 방학때는 거의 우리집에서 살았다.
동네 누나,형만큼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사람을 없으리라 생각한다.
한글, 산수, 영어, 한자, 피아노, 노래, 춤, 태권도, 줄넘기 등
자신들이 할 줄 아는 것은 모두 놀이를 통해 가르쳤다.
두 번째 방법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놀이터, 시장, 학교에 가서 놀았는데 그곳은 넓어서
힘을 소모하기에 좋았다.
동네 아이들도 만나 같이 놀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 사랑도 받아 좋고
방 어지를 일 없어서 잔소리할 일이 없어 좋고
아이들끼리 싸울 일도 거의 없어서 좋다.
우리는 늘 자전거를 끌고 다녀 이목을 끌었다.
산동네라 길이 힘들기 때문이다.
체력이 딸려 아이를 기관에 맞기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기관에 맡기는 것은 모두가 다하는
편안한 방법이라 맞서서 대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동네 아이들과 바깥활동이었다.
인천으로 이사온지 3주가 되었다.
시골같은 도시, 도시같은 시골.
우리가 딱 바라던 동네다.
오늘은 아파트에 붙어있는 논에 가 보았다.
논은 모두 얼어있었다.
얼음은 그림을 그리듯 예쁘게 얼어 있었다.
얼음도 깨고 썰매도 탔다.
얼음 위에서 놀아 본 적이 없는 강인이는
얼음위를 겁도 없이 마구 뛰어 다녔다.
그러다 꽈당 넘어지니 귀여워서 태인이와 나는 깔깔 웃었다.
시인이는 완전히 뒤로 꽈당 넘어져 일어나질 못하는데
인형이 누워있는 것 같아 웃음만 나온다.
넓은 논에서 노는 태인이 강인이를 멀리서 바라보니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에서 한참을 놀다 논과 이어져있는 오봉산으로 가 보았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산이 야산인줄 알았더니 가보니 오봉산
입구였다.
산은 매우 완만해서 우리 아이들이 놀기에 아주 좋았다.
산새들이 우리 머리위에서 노래해 주고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겨울산의 포근함을 더해 주었다.
이런 곳에서 날마다 놀 수 있다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곳곳마다 나무를 베어놓아서 집짓고 놀기에 좋다.
태인이는 산에 있는 내내 집을 열심히 짓고 나무에 그림을 그렸다.
산에서 점심을 먹고 오르막길 없는 평길을 걸어 집으로 오니
힘든 줄 모르고 왔다.
집 앞에 오니 동네 누나가 학교 끝나고 어김없이 전화를 했다.
집에서 누나 두 명과 떡볶이를 해서 먹고
잡기놀이, 숨바꼭질, 썰매타기를 하면서 놀았다.
강남에서 놀이학교가 유행이란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어딜가도 놀 수가 없으니 학원에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노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정한 놀이가 아니다.
진정한 놀이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아이가 자유롭게 놀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만큼 노는 것이다.
그렇게 자유롭게 놀게 되면 아이는 끊임없이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연구하게 되고
어떻게해야 잘 어울려 놀 수 있을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놀이이다.
지금 어른들은 노는 것을 못한다.
늘 마음이 바쁘다.
집에 가서 밥해야 하고 남편 밥 차려줘야 하고
빨래 널어야 하고 학원가야하고 학습지해야 하고.....
그래서 놀이터에서 1시간을 넘겨 놀기가 힘들다.
1시간은 양반이다.
30분 놀다 아이 윽박질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린집도 마찬가지다.
2-30분 놀고 원으로 안들어가는 아이는 야단을 쳐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종일 놀아도 더 놀고 싶어하는 우리아이들을 보니
그네들은 어떻게 자유롭고 싶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살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원선생님이,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옷 깨끗이 하라는 말과 함께
겨우 몇 분을 놀다 끌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것은 아이들에게 고문이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락을 싸와서 실컷 놀면 될텐데
깔끔하게 하고 나와서 밥먹어야 하니 집에 가야한단다.
그것은 아동학대다.
지금은 아이들을 심하게 구타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대신 자유를 억압해서 아이들을 구타하고 있다.
초등생들이 학교만 끝나면 우리집에 와서 노는 이유가
바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싶은 대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연이가(초4) 친구와 통화한 내용이다.
“여기는 놀이터 같은 곳이라서 아무나 와도 돼.”
그래서 매우 내성적인 아이가 처음으로 놀러 왔다.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무엇이든 자신없어 했지만
집에 가지 않고 계속 놀았다.
둘이 현관을 나서며 “재미있지?” 한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허약체질로 태어나 건강해 본 적이 없다.
건강을 이겨보기 위해 강한척 연기도 해보았고
내 몸을 종일 때리다가 몸의 모든 혈관을 알게 되는
은혜도 맛보았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여유를 가지고 노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도 건강한 몸을 꿈꿔왔지만 완전히 건강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내 몸의 가시를 이겨보려는 힘겨운 싸움을 통해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아이들과 놀고 밖에서 유모차 휘청거리게 싸들고 다니며
노는 나에게 사람들은 놀래곤 한다.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내가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