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의 내용, 그리고 역자인 이재승 교수의 해제와 논문에 대한 설명을 해 왔습니다. 이제 끝으로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에 대한 국내의 논의 맥락과 현황에 대하여 간단히 추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는 그 중요성에 비하여 야스퍼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을 '사회적 실존'으로 재해석해 온 박은미에 의하여 비로소 논의의 주제로 취급되었고("죄책을 짊어지는 실존", 한국 야스퍼스 학회, <칼 야스퍼스 비극적 실존의 치유자>, 철학과 현실사, 2008), 이어서 정용환이 "나치 범죄와 독일인의 죄: 칼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에 관한 연구"(브레히트와 현대 연극, 2014)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정용환의 논문은 가장 최근의 연구성과이면서 동시에 가장 종합적이고 정통한 연구로 생각됩니다.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가 독일의 과거청산을 위한 논의였듯이, 국내에서도 그것은 주로 과거청산, 특히 친일문제와 관련하여 주목되었습니다. 윤해동이 2003년 "친일과 반일의 폐쇄회로 벗어나기"(당대비평, 제21권)에서 친일 문제 청산의 방법론으로서 야스퍼스의 네 가지 죄책의 개념을 소개하였고, 2005년 김민철이 역시 친일에 관한 책임의 문제의 이해를 위하여 야스퍼스의 논의에 의존하였습니다("친일문제: 인식, 책임, 기억",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45권). 그리고 이재승은 "국가범죄와 야스퍼스의 책임론"(사회와 역사, 제101호, 2014)에서 그 지평을 넓혀서 '국가범죄' 일반에 대한 이행기의 정의에 대한 재정립을 도모하였습니다. 이어서 이재승은 마침내 직접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를 번역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국내의 논의는 현대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논의에서 촉발된 면이 크다는 것입니다. 과거청산은 독일만의 몫이 될 수 없고, 일본 역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경 전범 재판이 뉴른베르크 재판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듯이, 일본의 과거청산은 독일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상적인 차원에서도 일본은 야스퍼스와 같은 민족적 구속성을 초월한 사상가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일본의 대표 지성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이 1946년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에서 천황 중심의 획일적 가치체가 바로 전쟁의 원인이었음을 지적하고, 1949년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에서 일본 파시즘 체제를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무책임의 체계라고 탄핵하고 있지만, 천황 자체를 직접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바로 그점을 지적하며 일본의 무책임성은 궁극적으로 천황의 전쟁책임을 묻지 않은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사회평론, 2001, 150쪽). 우스꽝스럽게도 천황은 아무 죄가 없고, 그 아래의 신민들만이 소위 '일억총참회'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야스퍼스는 도덕적 혹은 형이상학적 죄를 강조함으로써 독일인들의 진정한 책임과 구조개혁을 호도하는 '철학자의 기만'을 범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야스퍼스의 논의는 결국 피히테의 독일 민족주의의 귀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윤리 21>, 140쪽). 야스퍼스의 책임론에는 나치가 왜 생겼는가라는 원인에 대한 물음이 빠져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관한 형이하학적 물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를 마르크스적으로 재해석한 '전지구적 차원의 생산-소비자 협동조합'의 체제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가라타니 고진의 야스퍼스 비판은 신랄하고 예리한 면이 있지만,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를 정독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는 피히테가 아니라 칸트의 길에 서있는 것이며, 또 야스퍼스의 참회론은 '정치적 자유'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독일 민족의 전향, 독일 민족의 정치문화의 개혁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버마스가 얘기한대로 야스퍼스의 논의는 독일 민족주의를 '헌법애국주의'로 변전시키는 토대가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