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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까미노 뽀르뚜게스, 가속이 붙다
따구스 강 서쪽 강뚝을 따라 순 방향 까미노를 1km쯤 북상하며 어지러진 생각을 정리했다.
순 방향에서는 어렵잖게 확인되는 까미노 마크를 보며 자문했다.
스스로 어려운 길(逆行)을 택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빠져들지 않은 것이 내 힘이었는가.
지체없이 강뚝 벤치에 앉은 후 백팩에서 오카리나를 꺼냈다.
시편 23편(나운영 작곡)을 부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부르고 또 불렀다.
마음이 차분해질 때까지.
멈춰 있거나 순 방향 까미노로 북상할 필요가 더는 없게 되었다.
북상하던 까미노를 남하로 돌려 목표 아잠부자의 까미노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될 만큼 정리가 된 것이다.
까미노는 잠시 머물렀던 다리 밑을 지나 N3 - 3도로(R. do Morgado)를 따라 남하한다.
남하하기 300m지점에서 N3 - 3도로와 헤어지고 따구스 강에 더욱 밀착하여 강뚝 옆길을 고수한다.
다리에서 600m지점부터는 도로명이 꼬바 다 온사( R. Cova da Onça) 로 바뀐 길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아름다운 뚝방과 좌우의 전망에 잠시 몰입되어 있었다.
좌측은 아름다우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로 뚝의 허리춤까지 철석거리는 풍부하고 검푸른 따구스 강
물이고 우측은 아침나절에 차로 통과했던 광대한 농장지대의 연장 선상이다.
잠시지만 뚝길 때문에 까미노가 초라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겠다.
부리나케 내려와서 다시 걸었다.
한데, 다리에서 1km지점, 농장지대에 별 3개 호텔(3-star Hotel/Quinta da Marchanta )이 들어서 있다.
날로 더 늘고 있는, 잠자리와 먹거리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사이비 뻬레그리노스를 받아들이기 위함일까.
드넓은 농장지대 뿐이기 때문에 투숙객이 희소할텐데도 고가의 호텔이 필요한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는 다채로운 따구스 강이 손님들(투숙객)을 보내주는 것일까.
호텔 페이스북(Facebook)에 들어가서 내린 결론은 뻬레그리노스와는 무관하고 마지막 추측이 맞다는 것.
킨따 다 마르샨따 이후의 직선으로 남서진하는 까미노는 1km 이상의 무미 건조한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쁘로페쏘라 줄리아 알비누 고메스 삐멘따(R. Professora Júlia Albino Gomes Pimenta)로 바뀐 길 역시
1km 넘게 같은 양상이다.
그러나 까미노임이 이따금 확인되어(순방향 편에 서서) 다행인 길이며, 최고의 다행은 안심로라는 점이다.
위험 천만했던 아침의 N3도로와 전혀 달리 달리는 차량이 거의 없으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도 되는 길.
무미하면 어떻고 건조하면 또 어떠냐.
생각하며 걷고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길 이상의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까미노가 있는가.
지자체 까르따슈(Cartaxo)의 프레게지아 중 하나인 발라다의 다운타운에 이미 진입하여 교구 교회(Igreja
Paroquial de Valada) 앞 광장(Largo de Igreja)에 들어섰다.
동과 남쪽에서, 높은 뚝으로 가로막았던 따구스 강의 모습이 눈 아래로 온전하게 드러나는 위치다.
교회 지근에 알베르게(Albergue Dois Caminhos)도 있으나 아잠부자에 해 안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인데
관심이 갈 리 없다.
도착이 여의치 못한다 해도 이곳 도이스 까미뉴스는 나와는 무관한 곳이다.
1박 이용료가 20€니까.
광장 앞 강안(江岸)에 쁘라이아(백사장/Praia Fluvial de Valada)와 빠르케(공원/Parque de merendas
da Valada)가 있다.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천연이 아니라면 주민을 위한 인위적 시설이리라.
쁘리메이루 지 마이우 길(R. Primeiro de Maio)이 되어 남서진하는 까미노는 다운타운을 벗어나면서 N3-
3 도로(Porto de Muge에서 헤어졌던)에 합류하고 따구스 강과는 각각으로 멀어져 간다.
까미노 뽀르뚜게스는 발라다 다운타운에서 남서로 2km 남짓 떨어진 헤겡구(Reguengo)를 지난다.
소교구(freguesia) 발라다의 마을로 주민 142명이 토마토, 해바라기, 옥수수, 밀, 멜론을 재배한다는 자그
마한 농촌인데 마을 형태가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도로와 건물의 우선 관계는 차치하고 주거 또는 상업 시설은 도로의 양편으로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양
(兩) 끝 사이가 500m나 되는 이 마을의 모든건물은 도로의 한쪽에 집중되어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 볼 때 긴 일자(一字)로 되어 있으며 건물들이 양쪽 도로에 같혀 있는 형국이다.
갓길은 바닥을 이베리아 반도 특유의 돌심기로 처리했다.
노변의 건물은 거개가 주거용으로 보이는데 평범하면서도 다양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산뜻한 벽화로 어필(appeal)하는 집도 있다.
도로변 건물들 중에는 까페(Cafe CAMPINO)도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다만, 흔한 건물 보다 'VENDE'(賣物)간판을 달고 있는 중량감 있는 건물은 바라보는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속성이 있는데 여기에도 전통 타일로 외장한, 돋보이는 건물이 그 간판을 달고 있다.
왜 매물이 돠었을까.
사업의 실패를 메꾸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일까.
나처럼 관리(정원)가 벅차졌기 때문일까.
뽀르뚜갈 비행장의 요람답다
디레이따 길(R. Direita)이 되어 마을을 지난 까미노는 곧(300m?) 산따렝과 리스보아의 경계를 지난다.
산따렝에서 리스보아로, 까르따슈에서 아잠부자(지자체)로, 발라다에서 아잠부자(프레게지아)로.
현계(Distrito/ 縣界)와 지자체계(Municipio/ 地自體), 소교구계(Freguesia/ 小敎區)의 경계를 한꺼번에
넘어가는 것이다.
지자체 까르따슈의 프레게지아 발라다를 지나 지자체 아잠부자의 프레게지아 아잠부자에 진입하는 것.
이 하루의 종착지 아잠부차의 다운타운이 3시간이면 족할 10km 미만에 들어왔고 현재 시간은 오후 1시를
막 넘은 시각이라 여유롭다고 느껴졌기 때문인가.
헤겡구(Reguengo/지자체 까르따슈) 마을의 환영(Bem - Vindos) 입간판이 서있는 지점에서 푸른 숲으로
덮힌 따구스 강뚝에 다시 올라섰다.
시원한 강바람을 받아 상쾌하기 그지없는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며 막힘이 없는 사방을 조망했다.
이식한 곡식과 과일, 채소 등이 뿌리를 내려 짙푸른 지평선 만야가 어찌나 싱그러운지 마냥 풍요로웠다.
아무 해 가리개도 없는 뜨거운 삼복 더위(뽀르뚜갈과 한국의 더위는 흡사)도 아랑곳없을 만큼.
해 안에 목적지에 당도하려면 그냥 그대로 있고 싶은 생각을 누르고 뚝을 내려와야 했다.
N3 - 3 도로와 동반하여 남서진하기 1.5km의 까미노.
이 지점에서 직각으로 우회전하여 북서진하는 까미노 뽀르뚜게스.
500m쯤 나아가 확인된 것은 1km지점에서 남동으로 도로와 나란히 조성된 500m쯤의 비행기 활주로다.
너른 들판에 활주로(Pista/Runway) 하나가 있을 뿐 풍향기(風向旗) 조차도 꽂혀 있지 않은 허허벌판인데
알케이당 비행장(Aeródromo de Alqueidão)이라고.
경비행기 푼련장이라 해도 격납고 정도의 시설은 필요하련만.
먹는 일이 최우선이기 때문인가.
활주로 시점 옆에는 식당 킨따 두 알케이당(Quinta do Alqueidão/restaurant)이 있다.
까미노는 N3-3 도로와 함께 북서진하기 700m 지점에서 좌회전, 서서남과 남남서로 2km를 더 간 후 직진
하는 N3-3 도로를 떠나 우회전한 후 비포장 농로를 따른다.
이 지점 남쪽 코너(corner/N3-3도로와 비포장 농로 사이)에도 비행장(Aeródromo Azambuja)이 있다.
이 역시 경비행기 훈련장 수준이라 할까.
두 비행장 사이는 2.7km에 불과하며 상호 거리가 10km 미만의 비행장이 4곳이란다.
16km 이내의 비행장은 10개나 되고.
지평선을 이루는 무한한 들판에 활주로 하나 만들기가 어려운 일이겠는가.
경비행기 훈련소라 할 수 있는 비행장이 곳곳에 무수한 것은 어렵잖게 이해된다.
뽀르뚜갈 비행장의 요람이라는 리스보아(縣)니까.
난삽한 숙제가 한꺼번에 풀린 느낌
아잠부자 비행장에서 서서북과 서서남을 반복하여 N3-1 도로에 진입했다.
3km가 넘는 비포장 농로의 까미노가 끝남으로서 아쉽게도 이 하루의 구간에서는 비포장의 부드러운 촉감
을 더는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이 농로 구간은 산따렝~아잠부자 사이에서는 10분의 1이 넘는 거리로 가장 긴 구간이다.
뻬레그리노스를 위한 어떤 시설이 필요하지만 허허한 광야라 바라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었는데 한 시설
(Quinta das Quebradas)이 농업생산(Agricultural production)이라는 부제를 달고 들어섰다.
그러나 농로구간 중간지점에 선 이 시설은 뻬레그리노스에게는 그림의 떡인 고급 시설이다.
실비적 알베르게도 날이 갈수록 폐쇄 또는 상급 시설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신규는 예외 없이 상류에 속하여 뻬레그리노스에게는 우울한 사건들이지만 진정한 뻬레그리노스라면 결단
코 영향받지 않을(never mind) 것이다.
선조들의 풍찬노숙 시대로 회귀하며 선조를 따르게 될 것이므로.
관개 수로(운하)와 동행하다가 N3-1 도로에 진입하는 농로끝 지점에는 노랑과 파랑의 까미노 마크(arrow)
기둥과 파띠마 안내 표지판이 한 풀이를 하는 듯 복수로 서있다.
수로 횡단용 다리(Estradas de Portugal)를 건넌 까미노는 아잠부자의 다운타운 입구까지 1.5km를 서북
으로 다가간다.
N 또는 EN 도로는 대부분이 갓길 또는 보행로(人道)에 인색한 도로다.
이 길(N3-1) 역시 위험한 길이기는 해도 왕래 차량이 많지 않아서 다행인 도로.
직선로의 끝이 아잠부자 다운타운의 접지점이다.
가로막고 있는 철도 노선과 N3 도로를 건넜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철길들을 보면 여기 사람들 모두가 위험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임의로, 무시로 횡단해도 저지하는 사람이 없고 우리가 무수히 맞닥뜨리며 살고 있는 "O년 이하의 체형 또
는 OO만원 이하의 벌금" 이라는 공포의 글귀도 보이지 않는다.
무단 횡단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방치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비또르 꼬르동 길(R. Vitor Cordon) 허리쯤에 접어들어 우회전, 몇걸음 만에 왼쪽의 알베르게(Albergue
Abrigo do Peregrino Azambuja/R. Vitor Cordon 69) 앞에 당도했다.
3시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시각에 끝난 것이다.
문이 잠겨 있기 때문에 어떤 안내문을 찾는 중인데 돌연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알베르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키(key)를 가지고 왔다는 여인이다.
오스삐딸레라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여인.
최대 16명을 수용하는 작은 숙박시설인데다 도나띠보(Donativo/기부금제)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을 겸하고 있는 오스삐딸레라(Hospitalera)란다.
뽀르뚜 이후의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알베르게 거개의 운영 실태다.
몹시 무거운 발길로 시작한 아침이었지만 아잠부자의 알베르게 앞에 서 있을 때는 난삽한 숙제가 한꺼번에
풀렸을 때의 홀가분한 기분에 흡사했다 할까.
지난 며칠은 물론, 아침나절까지도 아주 곤혹스러웠으나 말끔히 풀린 느낌이었으니까.
백팩을 내려놓고 알베르게에서 비또르 꼬르동 길(R.Vitor Cordon)을 따라 서쪽으로 200m쯤 걸었다.
쁘라사 두 무니시삐우(Praça do Município)가 사방으로 4각을 이루고 그 안이 돌 포장의 광장이다.
아주 편한 마음으로 광장의 긴 벤치에 앉았다.
이 방문은 그 날 걸은 까미노의 10%~15%에 해당하는 거리의 답사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
33km의 반 밖에 걷지 않았으므로 체력도 싱싱한 편이라 보다 적극적이었다.
현재는 리스보아현에 속한 지자체지만 1936년에 생성되었다가 1976년에 소멸되었으며 뽀르뚜갈에서 가장
비옥한 농경지 중 일부를 포함하고 있는 히바떼주 주(Ribatejo州/Provincia)에 속해 있었다는 아잠부자.
현(現) 리스보아 현(Distrito)과 뽀르딸레그르(Portalegre)현, 산따렝 현의 지자체들이 모두 히바떼주 주에
속해 있었단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여생을 보낼까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에 잠시 앉아 있을 때 무료했기 때문이었는가.
여기 아잠부자와 내가 70년 넘께 살고 있는 (현 누옥에서는 57년/ 2015년 기준) 강북구, 내 출생지(정읍시)
등을 대조해 보았다.
무심코 한 짓인데 의외로 판이 커졌다.
아잠부자는 262.66㎢의 면적에 인구 21,814명(2011년 기준)으로 인구밀도가 83명/㎢이다.
강북구의 면적은 23.6㎢로 아잠부자의 8.985%에 불과한데 인구는 반대로 13배가 넘는 284,579명이다.
인구밀도는 83명/㎢인 아잠부자의 142.582배인 12,058.43명/㎢이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서울은 사람을 비롯하여 만물이 집중하는 수도라 그렇다 치고, 출생지는 날로 더 감소해 가는 농촌이다.
그 곳(井邑市)의 면적은 693.04㎢이다
아잠부자의 2.6386배인데 인구는 102.705명으로 21,814명인 아잠부자의 4.7082배다.
정읍의 인구밀도는 148.19명/㎢명으로 아잠부자(83명/㎢)의 1.7854배다.
(아잠부자의 면적은 정읍의 37.9%인데 인구는 정읍의 21.24%, 인구밀도는 56.01%)
이 대비 만으로도 이베리아 반도가 한국보다 살기 좋은 나라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아주 높고 파란 이베리아 반도의 하늘.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저랬다.
조상이 부(富)는 물려주지 못했지만 청명한 하늘,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었다.
그래서, 1960년대 초에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온 장공(長空/金在俊牧師)이 한 말,
"이렇게 좋은 자연을 가지고 이렇게 가난한 것도 기적이다"가 한동안 회자되었던가.
그러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속담은 로마 제정을 두고 나온 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것 없다.
쥐 잡는 고양이라면 됐지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가릴 것 있는가(등소평의 黑猫白猫論)
우리의 지도자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하늘을 보릿고개와 바꿔치기했다.
우리가 이처럼 돈버는 일(수출)에만 올인(all in)하는 동안에 비통하게도 나라 전체가 회복 불능의 중병, 죽
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까미노를 걷는 동안에 수시로, 문득문득, 대학관계인 순례자협회 회장이며 나바라대학교 총동문회
회장인 JAF 박사(Jose Antonio Fernandez PhD)의 글(내게 보낸 mail)이 생각난다.
"I am happy you have no problem to stay in Spain forever!!"(스페인에 영구 체류)
빌라 노바 지 가이아(Vila Nova de Gaia)의 친구 로저 교수(Prof. Roger)도 그렇게 권하고 있다.
하지만 80넘은 나이에 가족을 버리는 일이 용이한가.
나는 30대 초반에 "80에 관 나간다"며 현 거주지로 들어왔다.
80을 최고령으로 생각했는데 이미 80을 넘어서 이베리아반도를 걷고 있으므로 지금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덤의 인생은 이베리아 반도에 뿌리 내려도 괜찮지 않은가.
이렇게 타협도 해보고 맘에 드는 로저의 집 정도의 집 가격도 알아보았지만 쉽게 결정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는지 지근에 자리하고 있는 뻴로리뉴(Pelourinho da Azambuja)는 보지
못하고 좀 떨어져 있는 교회(Igreja Paroquial de Nossa Senhora Assunção /성모승천교구교회/Igreja
Matriz da Azambuja) 로 갔다.
거기에서 비로소 뻴로리뉴 다 아잠부자(Pelourinho da Azambuja)가 눈에 잡혔다.
스페인에서는 중세 사법권을 상징하는 돌기둥, 일명 '재판의 기둥'(Rollo Jurisdiccional)이고 뽀르뚜갈에
서는 뻴로리뉴(Pelourinho/정의, 심판의 칼)다.(본래, 죄인을 묶어 처벌하는 형틀이었다지만)
1933년부터 공익자산으로 분류되었단다.
아잠부자의 품격을 올려주는 국가 지정 유산이란다.
알베르게의 문이 열려 있고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열린 문을 통해서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도심에서 돌아왔을 때의 알베르게가 그랬다.
오스삐딸레라로부터 늙은 나에 관해 들었으련만 20대 젊은 여인 몇이 안하무인격이었다.
나 혼자 뿐이고 밤을 조용히 보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알베르게.
스탬프를 찍어주러 온 오스삐딸레라의 언행으로 보아 뻬레그리나들이 아닌 여인들이며 오스삐딸레라와의
친분 관계로 1박하는 듯이 보였는데 예절과는 담을 쌓은 여인들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