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줄로만 알았다. 와인을 증류해 만든 코냑은 향이 달아나지 않도록 입구가 좁은 볼록한 잔을 손으로 감싸, 손바닥의 열로 덥혀 마시는 것이라고. 위스키도 좋은 위스키일수록 그 감미로운 향을 속속들이 즐기려면 얼음은 금물이고, 상온의 물을 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런데 그 까다로운 술들이 이제와 자신을 꽁꽁 얼려달라고 한다. 대체 왜?
바에서 뭘 좀 아는 손님이 되고 싶다면 이제 무조건 얼리거나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셔라.
본래부터 얼려 마시게 태어난 보드카들의 러시는 차치하고서라도 차가움을 반대하던 코냑과 위스키의 온도도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냉동실에 벨베디어, 앱솔루트 보드카, 조니워커와 헤네시, 레미마틴을 차례대로 넣어봤다. 추운 나라에서 온 보드카는 곰 가죽이라도 둘러쓴 것처럼 여유만만한데 태생이 프랑스인 코냑은 좀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같다. 다양한 술의 맛과 향을 즐길 줄 아는 MH가이라면 기자가 비싼 술 잡는다고 괴로워할지도 모르지만 걱정 붙들어 매시라.
이 코냑과 위스키는 처음부터 얼려 마시도록 만들어진 녀석들로
‘조니워커 프로즌 골드’ ‘헤네시 파라디 엑스트라’ ‘레미마틴 서브제로’가 그 주인공이다.
완전무결함을 주장하던 술의 명가들이 직접 칵테일 레시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변화는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폭탄주 문화를 안타까워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대로 된’ 음용법을 전파하려 애쓴 그들이 칵테일을 권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칵테일은 코냑을 어렵게 생각하는 젊은 층에게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헤네시 시티 칵테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모엣헤네시 코리아 이미양 과장의 말이다. 처음부터 좋은 술을 가까이해 먼 훗날 두터운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꽤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얼려 마시는 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점점 번져가는 파티 문화가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술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잘 마시고, 못 마시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파티. 아무래도 부담감이 덜한 샴페인과 와인이 꽉 잡고 있는 파티에 동석하기 위해선 독주의 부담을 덜 필요가 있었다. 더 친근하면서도 감각적인 것이 필요하던 차에 나타난 '발상의 전환' 은 냉동고였다.
위스키와 코냑처럼 알코올 함량이 높은 술은 얼리면 점성이 생기면서 마치 시럽처럼 변하는데 그 과정에서 상온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풍미가 살아난다. 꿀, 바닐라, 과일 같은 향이 진해져 여자들에게 어필할 만큼 달콤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게다가 오랜 시간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과정에서 얻은 황금빛 액체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샴페인의 기포만큼이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조니워커 프로즌 골드는 처음부터 ‘파티를 위한 위스키’를 강조해왔다. 아이스버켓에 칠링해서 샴페인 잔으로 마시는 위스키는 파티 분위기와도 썩 잘 어울린다. 남자들끼리 서재에서 홀짝이던 중후한 ‘남자의 술’이 냉동실을 거치면서, 이제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고,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 즐겁고 쿨한 술이 된 것이다. 어깨에 힘이 단단히 들어가 있던 명주들이, 눈높이를 낮추고 더 친근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파티에는 샴페인, 저녁 식사에는 레드와인 식으로 정해놓는 것도 어쩐지 재미가 없다. 이 경우, 다다익선은 옳다. 선택이 다양할수록 우리가 즐길거리는 더 많아지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는 과거의 신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끈적하고 차가운 코냑과 위스키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꽁꽁 얼리다 터지는 거 아니냐고? 도수 높은 술은 얼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법칙’을 기억하시라.
시리도록 차가운 것이 좋아
조니워커 프로즌 골드 18년 묵은 위스키 조니워커 골드를 12시간 얼리면 ‘프로즌 골드’가 된다. 위스키라고 다 얼려서 맛이 나는 건 아니다. 스카치 위스키 특유의 피트향이 높지도 낮지도 않아야 얼려 마시기 적당하다. 조니워커 골드는 얼렸을 때 최적의 피트향이 된다고.
잊지 못할 맛 그녀와 침대에서. 프로즌 골드는 다크 초콜릿과 완벽하게 어울린다. 초콜릿을 살짝 베어 물고, 프로즌 골드 한 모금을 마셔라.
헤네시 파라디 엑스트라 파라디 엑스트라의 다른 이름은 파라디 지브레다. 제대로 즐기려면 영하 섭씨 23도에서 13시간동안 보관하라. 꺼낸 후 바로 마시는 것보다 상온에서 서서히 녹으면서 얼어붙은 향이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묘미다.
잊지 못할 맛 따뜻한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하면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의 환상적인 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 입안의 감각이 모조리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올 것이다. 그 다음에는 세계적인 바텐더들이 고안한 ‘헤네시 시티 칵테일’을 만들어보라.
레미마틴 서브제로 그랑 상파뉴산 포도원액을 50% 이상 사용한 레미마틴 V.O.S.P를 영하 18도에서 얼렸다. 집에 있는 냉동고로도 충분히 제맛을 낸다.
잊지 못할 맛 친구들과 모처럼 바에 뭉쳤다. 점성이 생긴 끈끈한 원액을 입 안에 톡 털어 넣는다. 목으로 넘기면 깔끔한 맛과 향이 은근히 치고 들어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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