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자기의 딸을 원수의 딸로 키워 자신과 연인을 죽이도록 하여 끝까지 사사로움을 끊어 정의를 실행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칼이 있습니다. 사사로움을 따르는 불의의 칼과 사사로움까지 버리는 정의의 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칼로 싸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불의의 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미국4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트럼프와의 박빙의 승부였습니다. 이 두 대선 후보자의 싸움을 보면서 마치 칼의 전쟁과 같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개인 자신이 아닙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한 것처럼 이들 뒤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바이든을 지지하는 국민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이든과 트럼프의 싸움은 두 국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이든이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는 경제보다 코로나19가 먼저라는 정책이 승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먼저다 코로나가 먼저다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전쟁으로 성이 봉쇄되자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는 비극이 나옵니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 있지 분간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인간에게 던진 가장 명확한 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풀은 시드나 말씀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인생은 허무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먹을 것 때문에 걱정이 없고 코로나19 때문에 근심이 없습니다. 두 칼의 전쟁에서 사사로움을 버리는 것이 인생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