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는 오월은 내겐 사월보다도 잔인한 계절이다. 연중 가장 좋은 기온과 날씨 때문에 행사도 그만큼 많다. 거의 매일 강의나 공연 혹은 방송이 있는데, 심한 날은 하루에 네 번의 일정이 있기도 했다. 더구나 중순에는 내가 연구위원으로 있는 <우리신학연구소>가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Pax Romana-ICMICA)>과 함께 ‘모든 장벽을 넘어-아시아에 살아계신 성체’라는 주제로 2009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 총회준비 국제포럼을 주최하였다. 전례음악분야에 스탭으로 참가하여 사흘간의 일정에 모두 함께 해야 했고, 사이사이에 미리 약속된 초청일정을 하루에 두 차례씩 다녀오는 그야말로 마라톤 일정이었다.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주교 신부 수녀를 포함한 일반참가자들이 속속 입국하여 만찬을 나누고 있는데, 다급하게 울려오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내 심란한 가슴을 파고든다.
“로제리오씨.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을 넘길 수 없을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말씀 하셨구요. 그러니 한 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와 주셔요.”
부탁을 넘어서서 거의 강요에 가까운 간절한 목소리에도 내 마음은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네. 곧 갈께요. 수녀님.’이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순진한 수녀님.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쉽게 다하는 줄 알다니. 오늘을 넘기지 못한다고 해놓고 삼 년 더 산 사람도 봤는데’라고 응수하고 있었다. 그 동안 명동거리공연과 연관되어 심장병이나 백혈병을 비롯한 특수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자주 지켜본 나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다.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부터 우리 <가톨릭생활성가회>와 인연을 맺어온 콜베수녀가 아침부터 다급한 전화목소리로 내 정신을 빼놓았다. 원래 유치원 교사였기에 지금도 유치원 원장수녀인 그녀는 평소 암투병중인 동료수녀들에게 살가운 간병을 잘하여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다. 병세가 깊어져 고통스러울 때마다 수녀님들께서 그녀를 찾기 때문이다. 그런 콜베수녀의 그날 통화는 좀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었다.
“제가 병실 복도를 오가는데 어느 병실에서 하루 종일 김정식 씨 노래가 들리는 거예요. 알아봤더니 김정식 씨와 같은 동네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27살 된 아가씨가 난소암으로 3,4개월 투병을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살아날 희망이 없어서 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유난히 남매의 정이 깊었던 오빠가, 함께 자라고 살아오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들을 다운받아서 병실에 컴퓨터를 갖다놓고 종일 들려주고 있더라구요. 그 노래가 전부 김정식 씨의 생활성가였어요. 지금은 아무 의식도 없는 그 아가씨는 의식이 있던 얼마 전까지도 오빠와 함께 그 노래들을 거의 매일 자주 불렀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제 생각인데요. 마지막 가는 길에 단 한 곡이라도 좋으니 오셔서 직접 노래를 불러주면 좋지 않을까요? 이미 동공이 풀리고 항문도 열린 상태여서 아무 의식도 반응도 없는데도 내가 그런 희망을 얘기했더니 약간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수녀님. 나도 감동되려하네요. 우리 동네 소식을 엉뚱한 곳에서 들으니 무안하기도 하구요. 하긴 우리 성당 신자수가 만 팔천이예요. 그러니 그런 일도 무리가 아니지요. 제 노래를 그토록 좋아했다니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제 일정이 여의치 않아서 어쩌지요. 당장 내일 있을 국제행사 준비로 정신이 둘이라도 모자라겠어요. 그래도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가 볼께요.”
그렇게 말했지만 그 약속이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포럼 중 전례에 사용할 노래들의 악보와 가사번역 그리고 그것을 함께 볼 수 있도록 빔프로젝트 자료로 만드는 일로 어쩌면 밤을 새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후가 다 가도록 기다려도 내가 가지 않자 콜베수녀는 속이 탔을 것이다. 바쁜 일정중임을 알고 있기에 자주 전화할 수도 없는데, 환자는 아무래도 오래 버틸 것 같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또 전화를 걸어 무리한 청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국 손님들과 식사를 하는데도 내 정신은 계속 외출 상태였다.
“김정식 씨. 내가 지금 병원 로비에서 2시간 째 기다리고 있는데, 수녀원에 들어갈 시간이 다 되었어요. 늦어도 8시 전에는 이곳을 떠나야 해요.” “늦게 들어간다고 쫒겨 나지는 않겠지요?” “영원히 안 들어 갈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면 시간 맞춰 들어가고 싶어요.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이라도 출발하시겠다면 수녀원에 전화 드려 늦어진다고 말씀 드리려구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그 아가씨 때문이 아니었다. 콜베수녀 때문에 나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병원을 향했다. <지금여기>의 사진기자인 후배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택시보다 빠를 거라며 차를 몰아주었다.
병원로비에서 만난 콜베수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안절부절 못한 채 서성이던 그녀는 바삐 우리를 병실로 안내했다. 병실 입구에서 만난 환자의 어머니는 뜻밖에도 나와 절친한 사이였다. 본당에서 전임 성모회장을 비롯하여 사목회 임원을 오래 했던 그녀이기에 일로 자주 만나 친해졌었는데 그런데서 만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힐라리아 자매님. 왠 일이예요? 동네에서 다들 모르고 있던데.” “병을 알게 된지 4개월이 채 못 되었어요. 그 동안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구요. 곧 회복될 것 같아서 주변에 전혀 알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었네요.”
엄마를 찾아온 본당 교우 두 분과 오빠 부부, 콜베수녀와 나 그리고 함께 간 사진기자까지 여덟 사람이 그녀의 침상 가까이에 둘러섰다. 파리하게 야윈 그녀는 전화로 들었던 것처럼 눈동자가 넘어가 있고 동공도 풀린 상태였다.
“진실아. 김정식 아저씨가 오셨어.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던 노래를 만들어준 분이야. 며칠 전까지 휠체어 타고 산책하면서 함께 불렀었잖아. 기쁘지? 아저씨가 너를 위해 직접 노래를 불러주신대. 우리 진실이 참 행복하겠다. 축하해 진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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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용길 | 그녀의 이름이 진실이었다. 최진실. 오래 전에 그녀가 초딩 시절, 우리 성당의 ‘이슬 어린이성가대’가 발표회에서 내 노래들을 불렀을 때, 인기 탈렌트와 이름이 같아 기억에 남아있었다.
예쁘고 착한 소녀였다. 꽃 같은 어린 날의 모습은 다 지고 뼈가 드러날 만큼 야위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곱고 순수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20여 년 전의 기억을 거슬러 그녀가 ‘이슬 어린이성가대’ 시절에 자주 불렀던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 나의 기억력은 최상이다. 그 당시의 정황과 정서를 더듬는 연상을 통하여 나는 거의 대부분의 기억을 회복해낸다. 영감으로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지닌 최고의 장점이다. 미동도 없는 상태에서 가끔씩 진실이는 손가락과 안면근육으로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쟤 손가락이 움직인다. 얼굴도 잘 봐. 안면근육으로 반응을 하고 있잖아. 신기한 일이다. 저럴 수 없는 상태인데.”
그녀의 손가락을 말없이 만져주었다. 실낱보다 더 여린 감각이 느껴진다. 그 순간 내게 느껴진 것은 진실이의 마음이 가 있는 곳이었다. <이슬어린이성가대>가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에 담겨있는...
내 곁에 떨고 있는 작은 풀꽃 한 송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조각 이렇게 언덕에 앉으면 보고 싶은 엄마 얼굴 엄마 엄마 가슴으로 불러보면 하늘 끝에서 웃어주는 엄마 흐르는 구름 속에 언뜻 뵈는 얼굴은 언제나 그리운 엄마 얼굴 같은데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흐려지는 엄마 얼굴 엄마 엄마 가만히 불러보면 구름에 가리운 채 대답 없는 엄마 내 곁에 떨고 있는 작은 풀꽃 한 송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조각 이렇게 언덕에 앉으면 보고 싶은 엄마 얼굴
내 어머니가 52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후 어느 날 떠오른 이 노래를, 엄마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아이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구슬프게 불러댔다. 진실이도 그랬었다. 지금 내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며 모두가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는데, 진실이의 눈가에도 여린 물기가 돌았다.
이윽고 진실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다는 노래를 불렀을 때 더욱 놀라운 일이 있어났다. 입을 움찔거리는 것을 모두가 목격을 한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몸을 가눌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도, 고통을 느낄 기력조차 다 빠져나가버린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것에 반응할 힘이 남아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막 피어난 보리꽃. 논두렁을 수놓은 자운영 꽃무리. 아침이슬 머금은 작은 제비꽃.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시냇물. 해지는 서산마루 비껴가는 저녁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자욱. 내가 좋아하는 것 시냇가의 조약돌. 이름 없는 들길의 노란 민들레. 이른 아침 못가에 피는 물안개. 푸른 하늘 나는 아기 종달새. 해 저문 강나루에 살랑이는 솔바람. 노을을 기다리는 물새들의 속삭임.
이어서 요즈음 만들었던 새로운 노래들을 불러주었다. 마지막 길을 가는 그녀에게도 처음 듣는 새로운 노래는 여전히 신선할 것 같아서였다. 나는 마치 진실이가 곁에서 모든 것을 알아듣는 사람인 듯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했고, 노래가 끝난 다음 새로운 노래가 담긴 음반에 싸인을 하여 진실이 손에 쥐어주었다.
“진실아. 아저씨가 싸인 까지 해서 음반을 주셨어. 정말 진실이는 행운아다. 진실아. 너도 함께 노래 부르니까 행복하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어도 네가 입술을 움직이는 것을 보니 함께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말하는 오빠 진강이의 따뜻한 목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언젠가 지인에게 들은 얘기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 간 조카가 사회적응을 잘 못하여 마약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죽어가게 되었다. 진실이의 마지막처럼 의사와 가족들이 스무 살도 채 안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었다. 더 이상 살아날 희망이 전혀 없기에 모든 치료를 멈추고 산소 호흡기를 떼자고 의사는 말했고, 가톨릭신자인 어머니는 반드시 깨어날 것을 믿는다면서 계속 소리 내어 기도를 했다. 열흘 후에 기적처럼 소생하여 15년이 지난 지금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놀랍다.
더 이상 삶을 지탱할 기력도 숨을 쉴 힘도 다 빠져나갔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데도, 귀를 통하여 의사와 어머니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과 그에 대한 어머니의 확신에 찬 기도가 끝없이 들려왔고, 그 기도를 따라 자신이 스스로 살아나야겠다는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도 청력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진실이가 보여준 반응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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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용길 |
진실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행복하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가는 발걸음에서 내가 왜 노래들 만들고 부르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것은 물론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가에 노래 꽃이 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콜베 수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간직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아침 전례를 끝내고 이어질 주교님의 강의시간을 이용하여 진실이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었다.
“8층 102 호 보호자와 통화하고 싶은데요.” “죄송합니다. 그 환자가 오늘 새벽에 운명했어요.”
그렇게 최진실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별나라로 가는 길에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함께 노래하며 배웅해준 우리들도 잠시 천사가 되었었다. 그렇게 시간을 안배해 주신 누군가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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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중이신 이해인 수녀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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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114>라는 곳에 있는 <김정식팬클럽>이 있다. 종교를 비롯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노래라는 것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회원 중 종파를 초월하여 성직자와 수도자의 참여가 꽤 높은 곳인데, 회원이신 이해인 수녀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옮겨본다. 현재 수녀님도 암투병중이시다.
( www.gayo114.com 동호회 사랑방 > 김정식 팬클럽 >자유 게시판 >글읽기 )
비 일기
이해인 수녀
빗소리 아름답고 마음은 고요하다
초록에 물든 시간들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일생동안 쌓아둔 감사의 목록은 어디에 새겨둘까? 어디에서 끝이 날까?
오늘 나의 기도는 끝도 없는 빗방울 물음표이네
안녕하세요? 며칠 전 비 내리는 날 성체조배하다 잠시 떠오른 생각입니다.
저를 위해 염려하시고 기도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잠시 초록빛 사랑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음엔 평화 얼굴엔 미소! 계속 기도해 주시길 부탁 드려도 되지요?
로제가 우리 콜베 수녀님 부탁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 전 병원에서 최진실이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 아가씨 앞에서 단독으로 그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불렀다는 감동적인 소식을 오늘 아침 우리 OOO수녀에게 전해 들었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겹고 아름다운 광경 그야말로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앞둔 어느 암 투병 처녀에게 Last Concert 를 해준 로제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샬롬!
나도 한 마디
로제 2009/05/26 흰구름 수녀님께서 다녀가신 곳에서 빗방울이 실어다 준 풀 향기가 납니다. 최진실이라는 아가씨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다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것> 을 부를 때는 입을 움쭐이기도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지요. 아무런 미동도 없는 상태였는데요. 그 생각을 하니 저도 다시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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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로제님 큰일 하셨네요.감동적입니다.읽는 내내 눈물이 납니다.
형~ 돌아오셨네요. 찬찬히 글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형의 노래가 진실씨에게 밝은 빛이 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빛과 사랑이 되신 형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인사올립니다. 고맙습니다~
로제님은 천사시네요. 저희 팬클럽에도 가져갑니다.
정말 감동적이네요.. 따뜻하고 편안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셨군요..
콜베수녀께서 <지금여기>에 올리신 댓글입니다. -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 로제리오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다 기억하며 글로 옮긴 형제님의 기억력에 놀라며 그 순간으로 다시 가서 진실이를 만나게 해 주니 고맙고 감사하며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그 날 밤 진실이는 이어폰을 꽂은 채 노래를 들으며 하느님께로 갔다고 합니다. 노래하며.... 진실아! 너를 알게 되어 행복하다.
로제님의 노래가 가시는 이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었을지요...영혼을 울리는 음악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좋은 음악으로 세상을 밝히시니, 감사합니다.
바쁘게 이렇게나 많은 일들을 하시면서 살아가시는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보잘것없이 살아가는 오늘이 아니기를 바라며 작은 다짐을 해봅니다. 늘 건강하셔서 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로제님께 주님의 충만한 은총을 기원합니다. 샬롬
로제님께서 왜 그리 바쁜 삶을 사시는 지 위의 글을 통해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눈물 흘릴 일이 없는 이 바쁜 일상사인데... 모처럼 눈가에서 눈물이 핑 돕니다. 그전에는 위의 노래를 들을 때 그런가보다하는 마음뿐이었는데 위 글을 읽으며 들으니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 옵니다. 이런 느낌, 감사드립니다. 로제님은 가수가 노래를 통해 할 수 있는 맥시멈을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최진실님, 하늘에서 편안하고 고통없으시길 빕니다.
늘 덕담으로 삶의 위로와 격려가 되게 해 주시는 벤자민님 또한 가치로운 삶을 추구하시고 일상으로 살아내시는 분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