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통일 전략 제 4 비법 : 교차-교체 축복 결혼으로 다문화 가정 확산
1. 결혼과 종교 통일
종교통일과 세계통일을 위한 첩경 중에서 서로 다른 가정과 가정을 하나로 묶는 교차-교체 결혼식보다 더 귀하고 효과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결혼은 신랑 신부가 육체적 정신적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은 피를 나누는 것이고 섞는 것입니다.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에 결혼한 두 남녀는 그들 자신은 물론 양가의 두 가문을 결합시키는 주인공이 됩니다. 피와 생명을 묶는 것은 오해와 갈등 등을 극복하고 두 가문이 화해와 협력으로 상생공동체를 지향하겠다는 무언의 약속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결혼이 두 가문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 작품으로써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쓴 유명한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습니다. 이 희곡은 5막 24장으로 구성되고 1595년 무렵에 기록된 것입니다. 베로나의 명문 몬터규 집안과 카플렛 집안 사이에는 오랜 반목이 계속되어 두 가문 사이의 결혼을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몬터규 집안의 아들 로미오와 카플렛 집안의 딸 줄리엣은 첫눈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로렌스 신부의 주선으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러나 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가 싸움을 걸어오자 결투를 벌이고 그를 찔러 죽입니다.
로미오는 추방선고를 받고 하룻밤을 줄리엣의 방에서 지새우고 만추아로 떠납니다. 그리고 줄리엣은 파리스 백작과의 결혼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자 절박한 사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로렌스 신부의 지시에 따라 죽음을 가장하는 약을 먹고 다음날 시체가 되어 영묘(靈廟)에 안치됩니다. 그 사이 로렌스 신부는 로미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심부름꾼을 보냈으나 접촉이 안 되어 실패하고, 한편 영묘에 달려온 로미오는 그녀가 실제로 죽은 것으로 오인하여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합니다. 그가 죽은 뒤 곧 가사(假死)에서 깨어난 줄리엣도 그의 뒤를 따라 자살합니다.
청춘을 뜨겁게 불사르는 두 연인, 다채로운 문체와 화려한 대사, 속도감 있는 템포로 대단원에 이르는 줄거리의 전개, 서정적인 사랑의 비극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인기가 높은 것 중 하나로 손꼽히게 합니다. 특히 두 연인의 죽음이 두 가문을 결합하게 되는 것은 결혼의 긍정적 기능을 예찬하는 것이 됩니다. 화려한 결혼식과 함께 두 가문이 화해하고 결합하였다면 더욱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두 연인의 무덤 앞에서 두 가문은 때늦은 후회를 하고 새롭게 출발을 합니다.
비극과 희극을 함께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결혼의 역할을 잘 대변해 줍니다. 결혼은 피부를 초월하고 문화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고, 가문과 가문이 화합할 수 있고, 국가와 국가가 화해 협력할 수 있는 좋은 제도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에서나 외국의 역사에서도 왕가를 비롯하여 서민층 가문에서도 결혼을 통한 화합과 단결을 시도하여 왔습니다.
2. 21세기 미래와 다문화 가정의 역할
현대사회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세계화(Globalization)와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의 가속화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각종 다양한 경제적 교류와 문화적 교류가 국경을 초월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외적인 변화는 천일국의 창건을 전개하는 참부모님의 내적인 섭리 진행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1960년 참부모님의 성혼식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후 44년이 지나서, ‘후천개벽’이 선포되었고(2004. 5. 5. 청해가든), 천일국 창건이 목전에 다가온 복귀섭리의 시대적 혜택을 따라서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이 급변하고 있으며, 다문화 가정을 껴안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미 100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다인종 다문화 다종족 다종교를 수용하는 용광로 이론(Melting Pot)이 제기되어서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의 본보기로서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1908년에 발표한 이스라엘 쟝윌(Israel Zangwill)의 용광로라는 희곡에 의하여 제창된 용어가 20세기가 되어서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이민이 증가되면서 국가정책 용어로 선정되고 활용되어 왔습니다. 노예제도의 슬픈 역사를 가진 미국이 용광로 이론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로 마침내 2008년 11월 4일,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흑인 혈통의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었습니다. 다문화 포용의 분위기가 없었다면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의 기적으로 현실에 드러났습니다.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축제만이 아니라 케냐와 인도네시아의 축제로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세계적 선거요 축제였습니다. 앞으로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에 급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도 다문화 가정의 역사가 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15년이 지난 서기 48년 7월 27일, 김해에서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 왕의 치세 7년 되던 해에 인도의 아유타로부터 온 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였습니다. 오랜 옛날, 갠지스 강의 지류인 '무타' 와 '물라' 라는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에 '아유타'라는 작은 왕국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왕국을 푸니아푸르(Punyapur, 신성한 도시) 라고 불렀다. 어느 날 아유타국의 왕과 왕비가 허황옥 공주를 금관가야 김수로 왕에게 시집보내라는 꿈을 꿉니다. 이와 같은 하늘의 계시에 따라 이 신성한 왕국의 공주가 붉은 돛배를 타고 서풍을 따라 한반도 남단에 도착했습니다. 제(祭)를 드리고 난 공주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비(허황후)가 되었습니다. 이 때 그녀에 의하여 한반도에 최초로 불법(佛法)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왕의 아내가 되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황후도 어쩔 수 없는 향수에 젖어 들고 이를 불심으로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김해 김씨가 한국에 가장 많은 가문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때, 한국은 이미 다문화 가정의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천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 다시금 한반도에 다문화 가정 증가가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1988년에 올림픽을 치른 이후로 본격적인 외국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조선족 입국을 기점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여 10년 사이에 그 수가 급증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노동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가동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참부모님 정성에 의하여 한국이 4위를 기록한 88올림픽은 한국의 국운을 전환시킨 경사가 되었고, 실제로 그 이후 여행의 자율화가 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를 찾아 여행을 떠났고, 또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왔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출현의 가속화로 인하여 이제는 일부 농촌 지역이나 중소도시에서는 외국인 결혼 이주자들이 20-50%에 달하는 곳도 있고,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의 경우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50%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은 변화하는 문화의 주류에 서 있고, 지방 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축제에 빠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세계를 향한 발돋움이 빨라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2006년 기준으로 결혼 이민자의 총수는 11만여 명에 이르고, 현재 결혼 가정 8쌍 중에서 1쌍은 국제결혼가정입니다. 농촌총각 4명 중 1명은 외국인 신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다문화,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이 처한 급변하는 추세이며, 외국인 근로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고 여전합니다. 2007년 말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106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2%를 넘었고, 2005년도에 비하여 30% 증가하였습니다. 이 추세로 가면 2020년에는 국민의 5%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2007년도에 유엔 인종 차별 위원회가 채택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인종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우리보다 4년 앞서서 외국 이주민이 전국민의 2%를 차지한 일본은 소극적 자세에서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하여 그들을 주민으로 포용하여 큰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명실공히 기존의 단일민족 단일문화의 국가에서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는 나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외적으로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취업과 여행이 증가하였기 때문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내적으로 참부모님께서 올림픽 이후로 한국의 운세가 전환될 것을 선포하신 섭리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부모님에 의하여 한반도는 세계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한 모델 국가가 되어 왔습니다. 가정연합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원리강론』에는 “한국이 재림 메시아가 강림하게 될 나라로써 세계 문명의 총집결지가 될 것이다”라고 하여 오늘의 다문화 사회의 도래를 이미 50년 전에 예언하였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지금 우리의 주위에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다문화 가정의 증가와 함께 지구촌 한가족 의식의 지평이 확대될 것입니다. 환언하면, 이는 다문화 가정을 많이 배출하는 공동체가 미래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자연히 갖게 된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3. 교차-교체 축복결혼가정을 중심한 다문화 가정 확대
근대 이후로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이 증가한 과정은 ‘3세대+1교차교체축복결혼’의 4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3세대는 사회학적인 구분이고, 국제축복결혼은 가정연합의 교차교체축복결혼식에 참가한 다문화가정들입니다.
제1세대는 6.25 동란 이후에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형성된 다문화 가정입니다. 동란 이후 1년에 3000명 여성이 미군과 결혼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에 사는 200만 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이들의 후손에 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많은 무시와 소외를 받아왔지만, 그들 중에는 유명인이 되어서 서러움을 극복하기도 하였다. 인순이, 윤수일, 박일준, 다니엘 해니(Daniel Henney) 등이 대표적입니다.
제2세대는 1988년 올림픽 이후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찾아온 동남아 남성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올림픽 이후로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를 구가하는 외국 남성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유입은 앞으로도 증가될 전망입니다.
제3세대는 한국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로서 2000년 이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한국 유입은 대개 모국에서 경제적 빈곤을 탈출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였습니다.
이들 1,2,3 세대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부모나 자녀들의 자아상과 사회상의 인식 차이가 크게 마련입니다. 1세대는 피해 의식과 수축된 자아상을 가질 것이고, 2세대 역시 피해의식을 가지나 그래도 1세대에 비하여 적응력이 높습니다. 그러나 3세대의 경우는 부모의 모국이 후진국의 상태에 머무는 경우로 인하여 무시당하는 정도가 심각한 편입니다. 백인 계열에는 호감을 갖고 아시아계나 흑인계열에 대하여 거부나 무시를 하는 이중적 태도를 갖는 상황에서 3세대 다문화 가정이 갖는 어려움은 당연히 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국인 전체가 새 가치관을 갖고서 이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 이후로 한국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동남아나 중동의 남성들이 Korean Dream을 꿈꾸면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예로써, 이슬람 노동자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25.6%,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응답이 35.9%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학생의 경우 계속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46.2%로 나와 처음부터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터키인이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에 대한 호감(16명), 한국에 거주하는 모국 친구의 소개(14명), 한국의 선진 학문과 기술 수준(10명) 순이었습니다.
한국은 1970년대의 인력 수출국(주로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 파송)에서 이제는 인력 수입국으로 전환한 한국 정부는 외국인 인력 정책 부재의 단계에서 1992년에는 산업연수제를 실시하였고,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제 병행을 하다가 지금은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안산시 원곡동은 외국인 노동자가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을 돕기 위하여 코시안(Kosian)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 중 중앙아시아로부터 온 이슬람인들이 24000명이 되며, 90%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불안한 실정입니다. 세계를 껴안는 지혜가 필요할 때가 지금입니다.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아시아 여성들의 경우는 경제적 빈곤(Low Economic Status), 기존 사회로부터의 거부성(Outcasts), 부모나 이성에 대한 보복감(Rebels), 호기심과 동경(Adventures), 사회적 불안정(Social Unstable), 모국에서 탈출하거나 도망치고 싶은 자(Escapists), 독립형(Mavericks), 국제적 사랑(International Love)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 이주민들 중에서 경제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시집을 오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 신부들 중에서 32%가 “잘 살고 싶어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라고 하여 198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 남성들이 Korean Dream을 꿈꾸면서 노동력을 갖고 이주해 온 것에 비하여, 이제는 아시아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한 Korean Dream 실현의 바통을 잇고 있습니다. 현재는 중국 조선족이 이어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으로 대고 몰려오고 있다. 이들의 소망은 모국에서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이주와 함께 유학을 오는 학생도 급증하였습니다. 그래서 결혼이주민과 유학생 이주민들은 한국의 단일문화를 다문화로 전환시키고 있고, 이런 대세를 의식하여서 1995년 이후로 지방의 축제 프로그램에 다문화 관련 행사가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한국에 앞서서 다문화 가정 문제를 극복한 일본과 대만의 사례는 좋은 방안을 찾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일본과 대만에서는 이미 다문화 가정의 증가가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세계 왕래, 국내 결혼 기피, 고연령 독신자 증가, 외국으로의 취업 증가, 가난 극복 등은 일본이나 대만이나 한국이 갖는 다문화 가정 증가의 공통된 주요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런 변화에 대하여 “한국은 1970년대까지 노동력을 수출하는 송출국이었다가, 1988년 이후로 외국으로부터 이주노동자들이 급격히 증가하여 현재 40만명에 이른다.”는 평가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국제결혼 초기부터 주류를 이루었던 중국 여성, 그리고 통일교의 축복결혼으로 증가하였던 필리핀 여성이 점차 감소하는 반면에 최근에는 베트남 여성이 급증함을 알 수 있다.”라는 평가에서 통일교(가정연합)를 지적한 것은 적합하지만, 가정연합의 다문화 가정들 중에서 일본 여성이 다수를 이루는 한일 교차교체축복결혼 가정에 관한 설명이 빠져있는 것은 중대한 실수이며, 다문화를 주창하면서도 그 이면에 종교적 편견을 감추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일 가정을 통한 한일 관계 개선 및 복귀섭리에 있어서 부부 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하려는 참부모님의 의도를 모른 채, 한국인들이 섭리에 무지한 상태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의 발전 과정에는 교차-교체 축복결혼을 받은 가정연합의 다문화 가정이 중심을 이룹니다. 이들은 참부모님의 뜻을 따라서 한국의 남편이나 아내와 결혼을 한 가정들입니다. 교차-교체축복결혼 가정은 두 세대로 구분됩니다.
제1세대는 1982년 6000쌍 축복식을 시작으로 1988년 6500쌍을 거쳐서 1992년 8월 25일 3만쌍 교차-교체 축복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주로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유럽을 중심한 교차-교체 축복결혼 가정들이 다문화 가정의 주류를 형성하였습니다. 1982년 10월 14일에 6000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때 85개국에서 온 선남선녀들 중 499쌍이 국제축복결혼가정(다문화가정)이었습니다. 이 행사는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이 출현하는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었고, 한국 역사의 방향을 전환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10월 30일에 한일 가정이 중심을 차지하고 18개국에서 온 선남선녀 6500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이런 섭리의 변화와 함께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이나 단일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탈피하여 세계화의 선두에 서는 국가로 국운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외국 이주민들이 Korean Dream을 안고 물밀듯이 한국을 찾게 되었습니다.
1992년 8월 25일에는 3만 가정 국제축복합동결혼식이 있었고, 131개국에서 선남선녀들이 참가하였고, 2793쌍의 한국인과 일본인(한일, 일한 다문화 가정) 커플이 탄생하였고, 일본과 아프리카 국제가정도 약200가정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들이 다문화 가정을 이룬 것은 개인 영리 추구가 아니라 ‘Moon Dream’, ‘Cheonilguk Dream’을 성취하기 위하여서였습니다. 특히 많은 일본 여성들은 고급 인력에 해당되면서도 기꺼이 한국 남성이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의 남성들과 교차-교체 축복결혼을 받았고,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이상가정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일본 남성들은 한국이나 제3국 여성 식구들과 교차-교체축복결혼을 하여서 다문화가정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제2세대는 1995년 8월 24일 36만쌍 축복식 이후로 동남아 여성들이 대거 참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필리핀, 몽골, 중국 등으로부터 교차-교체 축복결혼식에 참가한 선남선녀들이 급증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다문화 가정 확대 과정에는 가정연합의 교차-교체 축복결혼 다문화 가정이 선구자적 위치에 있다. 1988년 올림픽의 성공과 함께 6500쌍 축복식 이후로 ‘선진국 및 중진국형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게 되었고, 1995년 36만쌍 축복 이후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형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런 내적인 다문화 가정 확대의 흐름에 맞추어서 외적인 면에서, 사회에서도 1988년대 이후로 노동자 유입과 함께 다문화 가정이 많아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동남아로부터 농촌 총각들에게 시집을 온 여성들이 급증하였던 것입니다.
참부모님에 의하여 주도된 교차-교체축복결혼 다문화 가정의 특징을 5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한일 가정이 많고, (2)하늘의 계시를 통하여 맺어진 가정이 많고, (3)참부모님을 따라서 천일국 창건에 앞장서는 결심(Moon dream 실현)이 결혼을 하게 된 주요 동기이며, (4)참혈통 복귀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실천하고 있으며, (5)현재 전국에서 각종 다문화 가정을 중심한 행사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참부모님에 의하여 시작된 교차-교체 축복결혼 다문화 가정은 한국의 다문화 가정 증가를 이끈 중심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연합의 다문화 가정들이 한국의 미래를 천일국 문화를 바꾸는 중추적 역할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하기 위하여 보다 조직적인 운영이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부모님에 의하여 전개되는 교차-교체축복 결혼 다문화 가정의 섭리적 의미가 세상 속으로 지평을 확대해 나가도록 우리들이 합심해야 할 것입니다. 일상적인 욕구 충족의 목적보다도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뜻을 더 존중하는 축복가정들의 출현이 더욱 증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코시안 뿐만 아니라 Kojapan(한국-일본), Koviet(한국-베트남), Komon(한국-몽골), Kochin(한국-중국) 등의 용어로써 다문화 가정의 특성과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이들을 부르는 다양한 용어들이 총칭하여서 ‘축복 다문화 가정’(Blessed Multicultural Family)으로 통일되어 모두가 대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게 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용되는 다문화 관련 용어들은 국경없는 마을(The Borderless Village), 국경없는 시민권(Borderless Civil Right), 노동의 유연화(Flexibilization), 문화적 사고(Cultural Thinking), 에스닉(Ethnic), 지구사회 시민권(Global Society Civil Right), 3D업종, 지구촌 마을(Global Village & Global Cottage), 글로컬(Glocal), 혼종성(Hybridity), 다문화 공생, 디아스포라(Diaspora), 화교(華僑), 이주민(Immigrant), 코시안(Kosian), 혼혈인, 다문화가족, 새터민(북한 이탈주민), 하프(Half), 더블(Double)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축복가정’이란 이름으로 묶어지는 날이 속히 도래하여야 할 것입니다.
2008년 9월 22일부터 시행되는 다문화가족지원법 제7조(평등한 가족관계의 유지를 위한 조치)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문화가족이 민주적이고 양성평등한 가족관계를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복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문화 가정 부모나 자녀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확한 정체성과 긍지를 갖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교차-교체 축복결혼을 한 많은 다문화 가정들이 종교통일과 세계통일에 앞서가야 할 것입니다.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천일국 도래와 비례할 것이며, 그러하도록 역사의 방향을 우리 모두가 끌고 가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종교가 우수한가에 대한 판가름은 다문화 가정의 배출 및 그들에 대한 각종 배려와 새로운 문화 창조가 주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다문화 가정이 갖는 결혼의 긍정적 기능의 극대화야말로 종교와 피부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 역할을 해 왔으며 앞으로 더욱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천일국(지상천국과 천상천국) 창건의 징표는 다문화 가정의 증가와 그들이 만드는 새 문화에 비례하여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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