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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1)'-구집사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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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을 쓰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에게 저의 모자란 생각과 삶을 보게 된다는 것도 그렇고요, 활자로 오래 남게 된다는 것도 그렇고, 쓰다보면 자꾸 실제보다 더 미화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사람에 대한, 나아가 구체적인 사람을 지칭하고 쓰는 글일 때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래도 이렇듯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은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살아있는 생각이기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글로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또한 감히 그 사람의 삶을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짧은 저의 글 솜씨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하여 쓰는 저의 글은 분명 그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써 보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다시 북돋우고 자그맣게나마 표현해보려는 노력 중 하나입니다. 그래 용기를 내고 편하게 그때 그때마다 만나고, 생각나는 사람들에 대해 써 보고자 합니다.
● '구집사도 있는데...●
매주 금요일 아침 6시-7시에 있는 '예수 알기 성경마을'을 마친 후, 교회 방에 혼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맨 먼저 누구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쓸까?' 생각하다 구집사님에 대해 쓰기로 했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힘들었던 한무리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물론 저와 가장 먼저 오랫동안 함께 고생했었던 사람에 대해서라면 저의 집사람이 먼저 일 것입니다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다음으로 미루고 접기로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모', 목사의 아내라는 자리는 언제나 한 발 뒷전입니다. 그래 '우리교회 목사님은 나에 대한 목회는 안 해!'라는 농담 섞인 아내의 말이 언제나 마음에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구집사님을 처음 만난 것도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제가 88년 3월에 한무리교회에 왔으니까요. 참으로 많은 세월이 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집사님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 젊은 날들을 이 공단마을, 한무리에서 내내 그렇게 '구집사님의 아들처럼'(구집사님의 아들 이름이 '한결'이거든요) 같이 지내왔습니다. '노동자 야학교사'로 시작한 그의 공단마을 생활은 곧 한무리의 시작과 현재까지로 늘 그렇게 같이 왔고 또한 그렇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4년여의 야학교사 생활, 2년 간의 교회 총무생활, 그리고 한무리 어린이집 교사였던 서은희 선생과의 결혼, 1년여의 학원강사생활을 거쳐, 노동상담소, 신용협동조합 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땐 답답할 정도로까지의 말없음으로 묵묵히(물론 본인은 '꼭 할 말은 한다'라고 줄기차게 주장합니다만) 공단마을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한국 최고(?)의 대학을 나와 좀 더 편한 삶을 두고, '다른 사람을 위한 삶'에 뛰어들어 10여 년 동안 공단마을의 삶을 살아 온 것, 그 삶만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구집사님에 대한 처음 느낌은 "좋은 사람이다-좋다! 만날만 하네. 만나니까 좋다!-"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느낌은 "진실된 사람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사람 설렁탕 국물이네!-진국" 그리고는 "끈질긴 사람이다."라는 생각 이였습니다. 그래 지난 10년 동안 아내 다음으로 늘 가까이서 서로 얼굴 맞대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일해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그에 대해 생각나는 몇 가지 일들을 다시 기억해 보고자 합니다.
구집사님은 야학교사 일을 하다가 교회 총무 일을 했었습니다. (아마 그때 구집사님의 사례비가 20여 만원 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30만원, 어린이집 교사는 20여 만원-현재와 비교하면 참으로 고생이 심하던 때였습니다. 오늘의 한무리는 다 그런 시절 어렵게 고생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래 그때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이 참으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 저 1년 간만 시간을 허락해 주시죠. 결혼하면서 집을 사느라(삼영 아파트 15평 짜리)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돈을 좀 벌어야 되겠습니다."라며 저의 생각을 묻습니다. "그래, 빚을 갚으려면 그래야겠지. 그런데 한 번 나가면 1년 후 다시 돌아오기란 쉽지 않겠지. 그 마음 잃지 않기를 바라네. 그런데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려구?" "예. 학원 강사요."
그래 구집사님은 1년여 동안(아마 14개월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원생활을 하면서 꼬박꼬박 10-20만원 사이의 십일조를 하면서 학원생활을 성실하게 합니다. 그때 십일조를 제대로 내는 사람은 저의 가정말고 거의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 뒤 14개월 후, "목사님! 다시 교회일 하게 해주십시오."하며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구집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담소 일이겠지. 그런데 구집사도 알다시피 월급이 35만원이야. 150만원 가까이 벌던 사람이 가정도 있는데 어떻게 살수 있겠어?" "그래도 일하고 싶습니다. 돈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게 더 중요하죠. 집사람도 동의했고요." 그렇게 구집사님은 다시 공단마을 생활로 돌아와, 노동상담소에서 계속 일하게 됩니다.
또 이런 일이 있습니다. 구집사님이 살던 삼영아파트가 재개발을 하게 되어 산본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그곳에서 교회 상담소까지 출근하고, 더군다나 어린 한결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기 때문에 한결이까지 데리고 출퇴근하기가 참으로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됩니다. 그러자 학원생활 중 운전면허도 취득하고 운전이 좀 익숙해진 구집사님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사님! 제가 차를 한 대 사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결이 데리고 힘들거든요. 그런데 좀 망설여집니다. 목사님도 차가 없는 것이 그렇고, 교인들도 차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목사님 괜찮을까요?" "필요하면 사야지요. 대신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기쁜 마음으로 봉사해야 됩니다." "그래야 지요. 교회 일을 위해 또 교인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쓸 겁니다." 그래 구집사님은 프라이드자동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교회 일을 위해서 때로는 교우들의 발이 되어 기쁘게 자신의 차를 활용합니다. 그렇게 2년 정도 타고 다니다가 삼영아파트 재개발이 완료되어 다시 교회 가까이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목사님. 차를 팔려고 합니다. 집도 가까이 이사왔고요. 별로 쓸모가 없는데 차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 낭비인 것 같기도 하구요." 그래 구집사님은 아들 한결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2년 동안 정들었던 프라이드자동차를 팝니다.
그 뒤에도 아들 한결이에 대한 태도 등 구집사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러한 구집사님의 공단마을 삶을 옆에서 보고 그와 학교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자신의 삶이 힘들 때마다 "야, 본철이도 있는데"라며 새 힘을 얻곤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구집사님은 우리 모두에게 "구집사도 있는데"라고 생각되며 힘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공단마을의 삶을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아내도 만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씩씩한 아들도 있고 적절한 시기에 20여 평의 아파트도 마련했습니다.(물론 대부의 빚이 많아 계속 부담이 되고는 있습니다만)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온 구집사님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손길이요, 역사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구집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의 오랜 동안의 공단마을 한무리에서의 삶이, '오래 있음'이, 그의 새로운 변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말입니다.(물론 구집사님이 열심히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노력해 온 것을 잘 압니다. 처음 올 땐 신앙이나 교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사람이 새롭게 신앙의 눈이 뜨이고, 또한 신앙의 발전을 위해서 성경도 보고 또한 성경공부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만. 무엇인가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신앙의 성숙과 삶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구집사님이 기도하는,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더불어 사는 '한무리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더욱 열심을 다하며 그 꿈을 이루는 삶이 되기를 말입니다.<한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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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구집사님의 이력을 잘 알 수 있게 최목사님이 정리하셨군요. 구집사님 정말 대단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