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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지기(先天之氣)의 불꽃, 자연지기(自然之氣)의 풀꽃
-시인 유승우를 말하다
이오장 (시인)
한마디로 유승우 시인을 말한다면 선천지기의 불꽃, 자연지기의 풀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늘이 내려준 선천적인 불꽃, 기독교에서는 성화라 하겠지만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내려받은 기운이다. 또한 자연지기의 풀꽃이라 한 것은 내려받은 하늘의 기운을 자연 그대로 간직하고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고 자신만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렇게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유승우 시인은 누구보다 큰 고난을 겪었고 그것을 이겨내고 세상에 우뚝 선 꽃을 피워 낸 시인이다. 어느 과학자가 인간의 선천적인 힘을 알아내기 위하여 가상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고 한다. 출구가 없는 막다른 동굴에 어린아이 50명을 넣고 입구를 막아 어떤 능력의 아이가 살아나오는지를 시험 했다고 한다. 그 결과 강한 힘을 가진 아이가 생존할 줄 알았는데 가장 순수한 아이가 살아남은 것이다. 막다른 곳에서는 가장 순수하고 자연에 순응한 아이의 생존 능력이 강한 힘을 능가한 것이다. 그렇다. 유승우 시인은 가장 강한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하늘의 정기를 받아 자연에 순응하여 생존하였고 그 생존의 능력을 시의 꽃을 피우는데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유승우 시인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야 하겠다.
강원도 춘성군 남면 방하리 56번지 즉 유원지로 유명한 남이섬이 있는 북한강가의 산골 마을에서 1939년 4월 17일 태어났다. 본명은 유윤식으로 어린 시절은 부족함이 없는 작은 지주의 부농이었으나 가정불화를 겪으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를 대신한 형 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후처로써 이미 장성한 전처의 소생들이 있어 시집살이의 고난은 유별났고 거기에 아버지마저 10살 때 여의게 되어 많은 고난을 겪어가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를 4학년에 입학하게 되어 뒤처진 학습을 따라가느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고 5학년에 올라가면서 6·25동란을 맞게 된다. 이미 장년이 된 형은 사명감이 투철하여 공산당원에 저항하다 산으로 피신하고 어머니를 비롯하여 남은 가족은 서울 수복 후에 퇴각하는 공산당원에게 학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그때, 어서 피하라는 어머니의 눈짓이 평생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 아픔을 품고 살게 된다. 총으로 사살된 게 아니라 죽창으로 찔려죽은 가족과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한 어린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것뿐이 아니라 1.4후퇴 때 공습에 나선 전투기의 포화 속에서 돌봐주던 이웃이 참변을 당하는 것을 목격함과 동시에 자신도 휩쓸려 왼팔 일부를 잃게 된다. 팔을 잃은 것도 모른 채 기절했다가 누님의 도움으로 깨어나 이웃의 주선으로 외국병영의 군의대에서 팔을 치료했으나 출혈이 심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때부터의 삶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역경은 계속되어 함께 살던 조카들의 죽음과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친인의 죽음과 이웃의 죽음, 참혹한 장면까지 목격해야만 했으니, 출혈이 심하여 생의 고비를 겨우 넘긴 어린이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말문이 막힐 일이다. 이러한 참변을 겪고 살아난 것은 선천지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선천지기 즉 성령의 은총이 삶을 유지하게 한 것이다. 기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이 내려준 은총이 없다면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유승우 시인은 성령을 토대로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한 것이다. 참혹한 체험 속에서도 원망도 좌절도 않고 무엇이든지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연에 순응하지 못했다면 지극히 온순하고 만사에 감사하는 성격은 결코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 배고픔, 외로움 그리고 바람
유승우 시인의 자료가 많지 않아서 2012년도 발간된 자서전을 중심으로 쓸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비극의 과정은 앞에서 설명했지만 성장과정을 본다면 누구도 그 슬픔을 함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다. 쌀밥을 못 먹어도 견딜 수 있다. 심지어 봄 소풍 때 깡보리밥에 고추장 한 술 발라서 도시락을 쌌으나 차마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마루에 두고 갔는데 그걸 싸준 형수가 발견하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하며 울고 다니더라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는 깡보리밥이라도 싸서 학교에 갔다"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노동을 할 수도, 두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살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장래 희망은 중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도 나는 수업료를 내지 못했다. 1학년 때 수업료를 못내 학교에서 쫓겨나와 어머니 무덤 앞에서 종일 울었는데 고학을 하기로 결심하고 형수님께 적은 돈을 받아 비누를 사서 인근 동네를 피하여 먼 동네로 장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 알아보고 측은하게 생각하며 많이 도와주었는데 날이 어두워 잠자리를 제공 받았으나 차마 한 방의 한 이불을 덮지 못했다. 내 몸에 이가 너무 많아 피해를 줄 것 같아서였다"
“서울에 올라간 친구에게서 성경을 처음 접하고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라는 대목에서 예수님은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 손만으로도 훌륭한 사람만 되면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예수님과 첫 만남이었다”
이렇게 길게 소개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알지 못하면 유승우 시인의 시적 발현과 성장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승우 시인은 태생적으로 시인으로 등록된 운명적인 시인이다. 삶의 과정이 다른 사람과는 달라 배고픔, 외로움으로 인한 바람을 안고 살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불행한 사람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불행일까. 나는 나의 미적 이상을, 나의 정열을 자학의 그늘 밑에 묻어야 한단 말인가. 정열 자학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러면 말하기도 싫다. 자의식. 그렇다고 나는 나의 병신 몸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운명이라 믿고 고독을 감수해야지. 별수 없겠지. 이제 나에게 무엇이 남았나. 구멍난 가슴과 초점 잃은 눈동자와 네 그림자를 핏속에 융해시키려고 애쓰는 아픈 심장 밖에... 네가 송두리째 앗아간 마음의 빈터엔 졸음만이 눈 내리듯 오는구나. 너는 내 마음을 언제 돌려줄래" 만약 그가 이러한 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자학의 삶을 살았다면 오늘날의 성공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기독교에 귀의하여 예수를 만난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홍익대학교 국문과의 장학생으로 입학 박목월, 문덕수 시인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었으나 3학년을 마친 후 정부의 대학 정비령에 의하여 경희대학교에서 대학을 마친다. 그 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어 목월 밑에서 본격적인 시인 수업이 시작되고 조교 생활을 하며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때에 맺은 인연으로 신규호 시인을 비롯하여 박이도. 이향아. 이건청. 유안진. 오규원. 박제천. 홍신선. 양채영. 노향림. 정의홍 시인 등. 시문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시인들과의 교류가 이뤄지고 학업의 성취를 달성하여 중학교 교사.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대학교수에 올라 시문학을 연구하다 오늘날의 큰 시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유승우 시인에게 시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대부분 바람이다.
두 손은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과 무엇인가를 잡아나가는 것인데 한쪽 팔이 없으면 몸의 균형을 잃고 무의식 속에서는 살아남은 것 같이 비틀거리게 한다. 그곳으로는 쉬지 않고 바람이 불어와 육체의 무게 대신 마음의 무게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가벼운 바람이 바위보다 무겁게 눌러대어 무의식의 세계를 시로써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2. 작품세계
어느 자리에서 유승우 시인에게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더니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시인이며 사람은 살면서 많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 체험의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억 속에 저장되는데 이것이 무의식이다. 시인은 무의식 속에 묻힌 체험을 살려서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는 체험과 현재의 지각이 결합하여 생기고 그 생동하는 감각을 남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게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남을 이해시키는 언어는 과학적 언어이고 느끼게 하는 언어는 시적 언어로 다시 말하여 이미지는 시적 언어라고 하는 유승우 시인의 시론은 시는 체험에서 얻는 이미지의 전개라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 유승우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작품이 감동을 주는 것은 전체 작품이 체험에서 얻은 실존적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인데 그중에서 한 편의 시를 살펴본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열두 살이던/1950년 음력 8월 21일 새벽에/후퇴하던 공산당에게 끌려가/학살당했다. 형수와 누님도 함께였다/이날이 양력으로는 10월 2일이니/서울은 이미 수복된 뒤였다//아버지는 1948년에 돌아가셨으니/나는 참말로 고아가 되었다/내가 고아가 되다니 부끄러워서/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고아라는 부끄러움 때문에/나는 집안에서 혼자 울었다//세월이 지나면서 부끄러움은/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다시/캄캄한 어둠이 되어 나는 밤마다/어머니 무덤 앞에서 바위처럼/울음을 삼켰다/울어도 울어도 소용없었다./바위보다 더 어쩔 수 없는 아득함/삶과 죽음의 절대 거리//이젠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는다/나에겐 어머니의 사진도 한 장 없다/어머니의 제삿날도 잊고 지날 때가 있다/그런데 1999년 6월 25일에/어느 텔레비전에서 6.25의 노래가 들려왔을 때/내 가슴 속에 50년 동안 엎드려있던/바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나는 오래오래 울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 전문
참변을 겪고 난 뒤 50년 세월이 지난 후에 쓴 시다. 당시의 참상을 고발한 것도 다시 떠올려 슬픔을 알리는 것도 세월을 담담하게 회상하고 있는 모습에서 얼마나 자연에 순응하며 지낸 삶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잊은 것 같았던 지난날의 슬픔은 몸속 깊이깊이 바위가 되어 숨어 있다가 화자도 모르게 녹아내리는 비극의 씨앗이 되어 읽는 사람 모두를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하고 따라서 눈물 흘리게 한다. 이것은 ‘시인의 역할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말한다. 빛은 물속에 들어가지만, 빛을 내는 등불 자체는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방관의 자세를 취해야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즉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미지화한 시를 자신이 개입되지 않은 채로 던져야만 그 감동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느낌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느낌에 기반을 둔 생각은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자신의 주관만으로 쓴 시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말로 어떤 느낌만 가지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유승우 시인은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을 살리지만 주관적이지 않고 자연 속에 깃든 모든 영감을 살아있는 자체로 표현하는 능력을 지닌 것이라 하겠다.
겨울의 흰 달빛 속에선
내 모든 뼈마디가 희게 운다
밝은 달이야 무슨 죄가 있겠냐만
젊은 나이에 시앗을 본 우리 엄마
쓸쓸한 빈자리와 밤을 새울 때
마당가 대추나무도
제 그림자를 붙들고
밤새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슬픔이 지극하면
영혼의 육신이 떠나듯이
어둠이 더 어두워질 수 없을 때
제 몸을 불태워 달빛이 된다
아픈 달밤을 새우다, 새우다
엄마는 나를 낳고
아, 나는 외로운 아이
삼십년을 두고 발끝에 긴 그림자를 키우며 산다
-「그림자 1」 전문
유승우 시인의 비극의 씨앗은 생태적인 운명으로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고 외로운 어머니의 모습에서 시인이 지녀야 할 어둠은 잉태되어 운명적인 전개를 펼친다. 젊은 나이에 한 집에서 시앗을 맞이한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밝은 달이야 무슨 죄가 있으랴만 쓸쓸한 밤을 마당가 대추나무와 그림자로 엉켜 지내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슬픈 아이는 어둠의 그림자를 숙명으로 맞이한 것이다. 이것이 유승우를 시인으로 만든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과학적인 해석이 불가하다. 정신으로 발생한 모든 결과는 체험에서 이뤄지고 정신적인 체험은 주관적이어서 내면의 신비를 밝히는데 과학으로는 해석이 불가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생생한 의식의 흐름, 생각에서 얻어지는 생각과의 충동, 기분, 감각과 기억, 몽상이 쉬지 않고 흘러간다. 언어를 글로 표현하여 다른 이의 마음속에 이미지를 전달하고 함께 공유하는 사람, 이러한 힘을 가진 사람, 즉 시인은 환경에 존재하는 유발인자가 학습으로 인하여 자동적인 신체적 반응이나 감정적 반응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승우 시인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작품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오감을 통하여 외부 세계와 몸 안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받아들인다. 감각수용체 세포는 물리적인 변화를 감지하고 그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시인은 한발 앞서나가 오감을 통해 얻은 정보를 더 큰 폭으로 확대하여 상상을 결부, 거기서 얻은 체험적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항상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 곧 시인이다. 유승우 시인은 그 창조적 행위를 철저하게 체험에서 발현시키고 어떤 대상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자신의 경험에서처럼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모방행위에 천부적인 힘을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얻었을 것이다.
1.
어린 것들이 커가면서/바람 소리도 그냥 안 들린다/초겨울 어린 바람이/밤새도록 칭얼대며 문을 흔들면/잠자리가 불안하다/저렇게 밤새도록 설리 울며/아빠를 부르는 아픈 소리/뉘 집 어린애 망령일까/1.4후퇴 때/눈 속에 버리고 간 아기들의/울다. 울다 얼어 죽은/마지막 울음소리/이제 겨우 눈 뜨는 부성의/내 가슴을 흔들며/밤을 새워 울고 있다
2.
1.4후퇴 때/폭격에 끊긴 내 왼 손목/빈 소매 사이론/20년 동안 쓸쓸한 바람이 분다/내 몸의 부분 중에서/제일 먼저 세상을 떠난/내 어린 손목/차마 멀리 떠나지 못하고/내 주위를 떠돌고 있다/바람이 불면/나보다/나를 떠난 어린 손목이 먼저 시리다/불안한 잠자리, 어느 꿈속에서/어린 손목이 제자리 와 붙어서/어린 것들을 안아 올리고/꽃을 꺾어주다가/바람 소리에 잠을 깨면/아 빈 소매 사이로/쓸쓸한 바람이 불고 있다
-「바람 변주곡」전문
유승우 시인의 첫 시집의 표제가 된 작품으로 시작노트에서 “내가 결혼을 하고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쓴 작품이다. 내 빈 소매를 흔들어 댄 20년 동안의 쓸쓸한 바람이 만든 작품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치료 한번 못 받고 18일 동안 누워 있을 때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부서져 나간 왼쪽 손목을 바라보며 쓸쓸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 처절한 상황을 20년이 지나 둘째 아이를 낳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얼러주지도 못한 안타까움과 결부시켜 있는 그대로의 체험을 승화시킨 작품이다. 유승우 시인은 평소 시 강의 및 담론 자리에서 "시 쓰는 일은 마음의 옷을 벗는 행위다. 그 마음의 옷을 종교적으로는 죄라고 부르며 죄는 허물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하늘과 시간 사이에 던져지는 것이다. 끝없는 하늘과 시간 사이가 바로 우주이며 사람이 우주 안에 던져졌을 때 느끼는 것이 공간이다. 누구나 하늘과 하늘 사이인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때 사이에 있다는 것은 모르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에덴동산이며 인간의 원형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작품을 읽어보면 사람이 머무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한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된 인간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곳은 원형을 잃은 그 자리다. 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전부를 갖췄으나 왼쪽 팔을 잃어야 했고 들판에서 얼어 죽는 아이들의 칭얼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전이 에덴동산이며 그곳에서 쫓겨난 순간 팔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죽어가는 비극을 맞게 하였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인간 원형의 허물을 혼자서 겪게 된 것으로 몸을 떠난 손목과 어린아이들이 곁을 맴도는 현상은 언제 어디든지 바람을 불게 한다. 삶과 바람이 인간 원형의 에덴동산을 두고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것이 유승우 시인의 시적발현의 원형으로 바람. 달빛. 물. 어둠은 작품의 씨앗이 된다.
3. 바람. 달빛. 물. 그림자 속에 자리 잡은 예술적 영혼
문학은 인간생활의 편리함을 위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활로를 찾기 위하여 발생하였다. 자연 속의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고 자연을 뛰어넘었다 해도 내면의 슬픔이나 외적인 아픔을 감내하지 못한다. 육체가 강할수록 내면의 갈등은 더욱 커지고 무엇인가를 얻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한 희로애락을 극복하고 빈곳을 채우기 위하여 문학은 태어났다. 소설은 설명으로, 희곡은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을 자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느끼게 한다. 이와 반면 시는 의문을 깨어나게 하여 스스로 채워주는 역할로 인간의 숨겨진 감각을 깨우고, 오감을 통하여 얻게 된 물상의 움직임과 내부에서 발생한 고뇌와 이념이 상충작용으로 부딪쳐 발생한 감정으로 쓰게 된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는 가는 개개인의 체험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유승우 시인의 내면에서 불꽃으로 일어나는 요소는 무엇인가. 아마도 바람. 달빛. 물. 그림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 아닐까. 내면 깊숙이 스며든 비극적 오열과 삶의 고단함에서 밀려든 온갖 고난사는 유승우 시인의 가슴 속에 불안적 요소들을 품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의 씨앗을 그대로 발아시키지 않고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등 오감으로 순화시켜 꽃으로 피워낸다. 이것들이 작품의 씨앗으로 가슴 속에 젖어들어 촉촉하게 피어나 독자들의 감정을 복받치게 한다.
바람은 무엇인가. 그냥 공기의 이동뿐이다. 그러나 빈자리를 메꿔주는 구원의 손길이다. 공기가 뜨거워지면 상승하게 되고 그 자리는 빈 곳이 된다. 공기는 일정한 입력으로 대치하기 때문에 빈자리는 곧바로 채워지는 데 공기의 이동으로 생기는 힘이 바람이다. 사람은 그것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교한다. 첫 시집 『바람의 변주곡』은 그래서 태어났다. 모든 것을 갖췄던 몸 일부가 떨어져나가 그곳으로 항상 바람이 든다. 그 바람은 멈추지 않고 일상에서나 상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용하여 보이는 사물들과 부딪쳐 이미지를 발현하게 한다. 유승우 시인의 초기 작품들이 바람의 작용으로 태어난 것은 빈자리를 메꿔주는 바람의 심리적 작용이다. 내면에서 윙윙거리는 바람이 상상의 낙엽을 만들고 어둠의 그림자를 만드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불꽃과 그림자의 씨앗을 발아시킨 것이다. 이것이 유승우 시인의 시적 요소다.
달빛의 혼은 달빛처럼 은은하고
푸르고 깊다
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
내 정신도 푸르고 깊다
한강 상류의 여울목에서
물살에 찬란하게 빠져 죽은 달빛은
밤중의 달빛처럼
푸르고 깊게 달빛의 혼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고
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
달빛의 혼에 취해 술처럼 취해
달빛이 그리워 달밤이 그리워
파리한 내 정신은
달 밝은 들판에서 머리를 푼다
-「달빛의 혼」전문
시앗 사이에서 고달픈 삶을 달빛에 기대어 살다 비참하게 죽은 어머니, 대추나무 그림자를 만들어 주어 어두운 모습을 감춰줬던 어머니의 달빛, 유승우 시인의 가슴 속에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달빛은 어머니의 불빛으로 낮같이 환하게 비춰주지 못하지만, 어둠을 물리게 할 수 있고 슬픔을 감춰주기도 한다. 그런 달빛에 어머니의 혼이 깃들어 어린 자식을 보살피고 성장시켜 주었다. 틀림없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것은 유승우 시인의 달빛은 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삭망에서 그믐까지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며 따라다니는 달빛을 가슴 깊이 감춰두고 어머니를 불렀을 것이다. 푸르고 깊은 달이 물속에 스며들어 정신을 번쩍 깨우게 하고 아무도 몰래 물속에 빠져들어가 아래에 있는 시인의 목을 청량하게 적셔준다. 그런 물을 너무 많이 마신 이유는 그 속에 어머니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고 한꺼번에 풀어버린 그리움은 술처럼 취하게 하여 들판을 헤매며 어머니를 부르다가 머리를 풀었을 것이다. 이것이다. 유승우 시인의 시적 씨앗은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를 달빛으로 환생시켜 만천하에 사모곡을 불렀다. 이제 노인이라 불리며 새벽잠을 잊은 나이지만 아직도 밤이면 달빛을 찾을 유승우 시인의 가슴으로 밤은 외롭게 깊어가고 달빛의 혼은 은은하게 세상을 비춘다. 달빛이라는 사물에 어머니의 혼을 불어넣어 시로 발현시킨 발상은 실존적인 체험이 없이는 불가하다. 이 작품으로 시가 정신적 활로를 만드는 통로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빛을 향해 일어서는 파도의
허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그림자
높은 파도일수록
큰 그림자를 낳는다
거북이처럼 육지를 향해 기어오는
파도여, 파도여
거북이처럼 바다를 덮고 기어 다니는
어둠이여, 어둠이여
결국 이 추운 겨울에
깊은 속 바다의 어둠까지 기어 나와
내 가슴의 등불을 끄고
이 캄캄한 바다 위에서
나는 그림자를 키우며 산다
-「그림자 2」 전문
유승우 시인의 가슴 속에 웅크리고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림자 1에서의 그림자는 모든 뼈마디에 웅크려서 희게 울어야 했지만 어머니의 대추나무 그림자에 묻혀 그것을 삼켜야 했다. 그림자는 슬픔을 키워 육신을 떠나게 했고 어둠이 더 어두워 질 수 없을 때는 제 몸을 불태워 달빛이 되었다. 과거의 슬픈 회상이 어깨뿐 아니라 온몸으로 그림자를 지우게 한 것은 슬픔의 체험으로 짊어진 마음속 그림자다. 그것은 다른 그림자보다 더욱 짙어 어디를 가도 지워지지 않는 숙명이다. 한 가닥의 빛을 발견하고 일어서는 순간 허리를 붙들고 매달리기도 하고 더 높이 오르면 크게 만들어지는 그림자, 한데 너무 느리다. 파도 위에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추운 겨울에 바다를 덮어 밀려들어도 느리기만 하다. 슬픔의 무게가 크기 때문이다. 가슴에 겨우 밝힌 불빛을 지우려고 천천히 다가든다. 일시에 달려들어 꺼버린다면 두려움이 쉽게 가시겠지만 마음속 깊이 잠겨든 그림자는 어둠을 더욱 키워 캄캄한 항해의 바다에서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유승우 시인의 과거가 어둠으로 덮여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둠을 잊기 위하여 더욱더 큰 어둠으로 덮어버리려는 의도인가. 마지막 행의 “나는 그림자를 키우며 산다”의 고백은 과거를 지우려고 의식적으로 그림자를 키운다. 라고 해석하여도 무리가 없겠으나 가슴 속의 응어리를 파도 위에서 밀려드는 어둠의 혼, 즉, 그림자로 덮어버리기를 희망한 시적 의도는 사실인 것 같다.
물은 낮은 자리를 좋아 합니다
높은 자리는 한사코 사양 합니다
일어서기보다는 눕기를 좋아 합니다
게을러서 그런 건 결코 아닙니다
한 번도 일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낮고 어두운 곳이면 꼭 찾아 갑니다
크고 싶지 않지만 바다가 됩니다
-「물 3」 전문
물은 유승우 시인과 어떤 관계인가. 최근 들어서 최대 화두는 물이다. 따라서 물과 유승우 시인은 함수관계로 하나의 그림자 속에 들어있는 자연수다. 물은 지구상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물질로 어떠한 생명도 물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물이 곧 생명이다. 라는 공식은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런데 물은 모양이 없다. 어떠한 곳에 들어가도 저항이 없이 그 모양을 따르고 색깔이 없어도 있는 곳의 상황에 따라 색상을 가진다. 크기와 모양 그리고 색상을 지니지 않았으나 어느 곳에 자리 잡아도 제 몫을 다하고 높이 오르는 것을 마다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 하나의 자연이 된다. 유승우 시인은 그런 물의 특성을 따르기로 한 것 같다. 살아온 과정이 어떠했던 겸손과 미덕으로 인생의 마무리를 하려는 시인은 어느새 물이 된 것이다. 낮은 자리를 좋아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할 일을 다 하는 물, 바람과 그림자, 그리고 달빛에 기대어 삶을 반추한 길에서 물을 만나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방향을 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바다가 되어 가장 큰 그릇으로 변한다는 반전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껏 고난을 겪으며 낮은 자세로 살아왔지만 오히려 그런 삶의 자세가 큰 그릇으로 변하여 무엇이나 포용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가진 것이 아닐까.
4. 인간의 얼굴로 자신의 이해와 해석이 재현된 길 닦기
우리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려 한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관심이 많아 맑은 물이나 번쩍거리는 쇠붙이 판에 비춰봤다. 다른 사람을 바라봤을 때의 호감도를 자신의 얼굴로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본 것이다. 언어 이전의 시대에도 원시인들은 물가에 앉아 자신을 비춰보며 상대방과 비교하였다. 소리가 의미를 더하여 언어가 되었을 때 거울의 역할은 더 커졌다. 언어를 건네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바라보고 기대한 대답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언어는 소통이다. 그러나 약속에 의한 소통이다. 여기에는 일정한 학습이 필요하고 서로의 믿음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유승우 시인의 시는 우리의 인간다움을 비춰준다. 그것은 나를 나로 보여주는 거울이자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하게 하는 거울이다. 그 어떤 경우에든 시는 인간이 자기 이해를 밝혀내는 도구이므로 인간 존재의 얼굴인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얼굴을 비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장한 얼굴을 비치기도 한다. 때로는 허무의 거울이기도 하고 자신의 실존에 가슴 떨려하는 흔들림을 비추기도 하며 자신을 자기도취에 빠트리는 욕망의 늪일 때도 있다. 또한 성찰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자신을 이해하는 모습이 시를 통하여 드러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자기 이해가 재현된 표상이다. 유승우 시인은 시가 지닌 특성을 자신의 성찰과 이해를 통하여 낮은 자세로 펼친다. 사물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거듭하면서 시의 길을 닦아온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성화를 안아 들고 삶의 역경을 이겨내고 그것을 자연에 순응하는 사명감으로 받아들여 자연 속의 풀꽃으로 피워낸 유승우 시인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 보
1939.4.7.(음) 강원도 춘성군 남면 방하리에서 (부)유제창·(모)공순이의 막내로 태어남
1948.12.29. 아버지, 화병으로 돌아가심
1949.4.2. 서당공부를 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학
1950.6.25. 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둠
1950.8.21. 어머니와 형수, 누님이 공산당에게 학살당함
1952.2. 하순 비행기 폭격으로 왼쪽 팔을 잃음
1952.4. 가평초등학교에 복학
1953 가평 가이사중학교에 입학
1959.3-4. 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국어국문과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 신규호시인을 만남
1962.4. 홍익대학교에서 경희대학교 4학년으로 편입 후 졸업
1964~1966.3.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목월 시인의 지도로 문학석사 학위 취득
1966.1969. 현대문학 등단
1966~1979. 13년 동안 한양중학교 교사로 재직
1967.10.28. 신명자 여사와 결혼
1969.2.2. 큰딸 다미가 태어남
1970~1975. 한국시 동인(오규원, 박제천, 홍신선, 양채영, 노향림, 정의홍) 활동
1971.2.13. 둘째 딸 유미 태어남
1973.7.10. 셋째 딸 경아가 태어남
1976.5.25. 넷째 딸 경남이 태어남
1976.3.20. 첫 시집 『바람의 변주곡』 출간(신라출판사)
1979.11.15. 제 2시집 『나비야 나비야』 출간(심상사)
1979.3.2. 인천전문대학교 조교수 취임
1980.3.2. 인천대학교 전임강사 취임(조교수·부교수·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
1983.1.5. 첫 저서 『한글시론』 출간(민족문화사) 국문학과 교재로 씀
1985.1.30. 제 3시집 『그리움 반짝이는 등불 하나 켜들고』 출간(민족문학사)
1988.8.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1989.1.20. 제 4시집 믿음의 시선 『나 있던 그 자리에』 출간(종로서적)
1989.12. 경희문학상 수상
1989.3. 연구저서 『시문학파 연구』 출간(민족문화사)
1991.10.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중곡 교회 장로 취임
1993.3.10. 제 5시집 『달빛연구』 출간(우리문학사)
1994.1. 한국기독교문인협회장 취임
1994.8. 후광문학상 수상
1996.6.5. 제 6시집 등단 30년 기념 시선집 『하얀 모래섬』 출간(형설출판사)
1998.7.20. 연구저서 『한국 현대시인 연구』 출간(국학자료원)
2004.7.20. 제 7시집 『살과 뼈는 정직하다』 출간(형설출판사)
2004.8.25. 인천대학교 시민대학장 취임
2005.3.20. 연구저서 『몸의 시학』 출간(새문사)
2005.8.27. 인천대학교 정연퇴임 홍조근정훈장 받음
2010.10.28. 한국현대시인협회 제21대 이사장 취임
2010. 제 8시집 『물에는 뼈가 없습니다』 출간(창조문예)
2011.10.28. 국제 펜 한국본부 자문위원 위촉
2012.3.16.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위촉
2012.12.15. 자서전 『시인 유승우』 출간(예지북스)
2014.10.15. 제 9시집 『어둠의 새끼들』 출간(책마루)
2017.12. 제 10시집 『어느 마루턱까지』 출간(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