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치다'라는 말을 모르는 친구는 아마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 말의 뜻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해하기도 해요. 어떤 친구는 '거짓말하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반면, 또 다른 친구는 '허풍 떨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거든요. 두 가지 뜻이 비슷한 것 같은데, 뭐가 다르냐고요?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댄 말'이에요. 허풍은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하여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뜻하고요. '바늘만 한 것을 몽둥이만 하다고 말한다'는 뜻의 '침소봉대(針小棒大)'는 허풍을 잘 표현한 사자성어이지요. 물론 허풍이 심해지면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내기도 하여 둘을 완전히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에 살았던 독일의 뮌히하우젠 남작을 모델로 하여 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허풍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뮌히하우젠 남작은 전쟁에 나갔던 경험을 토대로 종종 친구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대요.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작가들이 만든 이야기가 덧입혀졌지요. 이후 독일 시인 고트프리트 뷔르거에 의해 다듬어져 전 세계로 퍼졌고요. 이 책의 주인공인 '허풍의 달인'은 다음과 같은 신기한 이야기로 친구들을 놀라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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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병익
"대장님은 적군을 염탐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 방비가 무척 철저해서 어떤 수색대도 적군의 요새에 들어갈 수 없었거든. 어쩌겠나? 내가 불가능에 가까운 그 일을 떠맡을 수밖에…. 나는 이렇게 했어. 우리 편 포수가 꽝 대포를 쐈어. 무거운 대포알이 대포를 떠나는 순간 나는 대포알 위에 척 올라탔지. 말 타는 솜씨가 워낙 뛰어나잖나. 바람이 씽씽 귓전을 스쳤지. 그런데 적군은 웬 위험한 물체가 느닷없이 날아오는 걸 눈치챈 게 틀림없어. 대번에 대포를 뻥뻥 쏘아 댔거든. '적군의 대포알이 혹시 내 머리통을 박살 내면 어쩌지?' '적의 요새에서 어떻게 빠져나오지?' 나는 날아가는 대포알 위에 앉아 겁에 질린 채 곰곰이 생각했단다. 얘들아! 솔직히 말할게. 용기가 싹 사라지더라. 다짜고짜 펄쩍 뛰어내렸지. 어디에 뛰어내렸게? 적군이 조금 전 쏜 대포알 위야! 나는 순식간에 우리 진지로 돌아왔어. 모두 히에로니무스 폰 뮌히하우젠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더라."
대포알을 타고 적진에 갔다가 돌아왔다니, 엄청난 허풍이 느껴지지요? 뮌히하우젠 남작은 이 밖에도 고래가 배를 들이받아 구멍이 뚫리자 자신의 엉덩이로 구멍을 막아 배를 구했다는 이야기, 바다를 떠돌다가 발견한 치즈 섬과 생크림 바다 이야기 등 끝없이 허풍을 늘어놓아요. 그 와중에도 자신은 정확하게 사실만 전달하고자 무척 애쓰고 있다고 누차 강조하지요. 하지만 남작의 과장된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황당무계하기 때문에 누구나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속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돼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허풍은 사회문제를 꿰뚫으며 해학적으로 비판할 때에도 자주 쓰입니다. 허풍선이 남작 역시 과장된 이야기 속에서 전쟁으로 아름다운 지구를 망가뜨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쓴소리를 던지기도 해요.
#이야기
끊임없이 거짓말을 지어내고 자기마저 그 이야기에 도취하는 병적 증상이 있어요. 이러한 증상을 뮌히하우젠 남작의 이름을 따서 '뮌히하우젠 증후군'이라고 부르지요. 또 이와 유사한 '리플리 증후군'도 있어요.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인격장애를 말합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의 주인공인 톰 리플리에게서 따온 이름이지요.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6년간 50여개 대학의 신입생 행세를 해온 한 남성의 이야기가 알려져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어요. 그는 실제 재학생의 이름을 도용해 학생증을 만들고 학교 행사 등에 참여하면서, 실제 재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도록 협박하였다고 하지요. 그는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요?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대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청년으로 밝혀졌어요. 형제들은 모두 명문대에 진학하고, 자신만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여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해요. 이 사례를 본 전문가들은 '리플리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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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인격장애예요. 자신을 가짜로라도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꾸미려고 할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난대요. /셔터스톡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넘어 더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여기엔 일종의 열등감이나 보상심리가 작용하지요. 슬프게도 이것은 우리 사회가 학벌·직업·재력·외모 같은 겉으로 보이는 조건에 매우 민감하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남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들이 가짜로라도 자신을 좋은 조건에 끼워맞추려고 할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허풍선이 남작 역시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허풍의 원인 중 하나로 '열등감'을 슬며시 말하고 있어요. 물론 그의 이야기는 허풍이 가져다주는 익살과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독자들은 '열등감'에 대한 말은 가볍게 넘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으면서도, 자신에게 집중되는 관심을 놓치고 싶지 않은 허풍의 이면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돌려 나의 모습은 어떤지 생각해 봐야 해요. 남들이 중요하다고 부추기는 것을 갖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가졌으며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고민해야 하지요. 사회적 기준이나 남의 시선만 신경 쓰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가족, 친구, 이웃 등 다른 사람을 볼 때 여러분은 어떤 부분을 우선하여 보나요? 우리가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치나 특성을 발견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생각하여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