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1일 (3월을 마치며)
하느님의 드라마 - 반전의 묘미
성경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역사와 민담의 성격을 지닌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사순 시기이면 어김없이 가장 긴 독서를 들어야 하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다.(사순 5주일 화요일)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산나 이야기.
성경의 이야기들 중에서 한 편의 드라마의 소재로 꼽는다면 단연 반전 드라마의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그 내용의 배경과 과정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다니엘 예언자를 통하여 독자들을 반전 드라마의 절정으로 이끄는 그 재미도 못지 않다.
인간의 욕정과 욕망이 두 사람의 원로들의 눈을 멀게 하고,
하느님을 섬기고 흠 없는 여인이었던 수산나를 향한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곧바로 이 세상에 선하고 흠 없는 한 힘없는 여인의 운명으로 시선을 모은다.
도아니면 모다. 그들의 협박에 굴복하여 치욕을 얻느니, 차라리 영예로운 죽음을 택하겠다는 수산나의 의지는 마치 조선시대 열녀들이 가슴에 은장도를 품고 남정네들의 위협에 지조를 지키려는 모습과도 비슷하리라.
닥쳐온 위기는 곧바로 예정된 수순에 의하여 음모로 이어지고, 수산나는 꼼작없이 군중들과 원로들 앞에서 한 없이 비열하고, 거짓된 위선자로 낙인 찍히며 돌로 쳐 죽임 당할 위험에 처한다. 그 때의 수산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마지막 순간 하느님을 향하여 외치는 그 절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 없이 못 박혀 죽으시며 외치신 절규와 비슷하리라... "아버지..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우리의 삶은 이런 식이다. 늘 음모와 오해, 편견과 독선 속에서 진실은 사라지고, 잘못된 정보와 잘못된 시선으로 왜곡 당한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반전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이러한 위기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그런 반전이 필요하다.
다니엘은 이런 반전 드라마의 매개체로 등장한다. 교만하고 위선적인 원로들과 이들의 말을 곧이 듣고 돌을 들던 우매한 군중들을 향한 하느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윽고 다니엘이 하느님의 지혜로 가득차 이들의 음모를 밝힌다. 그들은 자신들의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 자신들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된다. 이 얼마나 통쾌한 반전인가? 죽음에 처하게 된 수산나에게는 구원을, 독선과 위선으로 가득찬 원로들의 거짓은 오히려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온다.
진실이 묻히는 세상.. 진실보다 거짓을 더 진실처럼 믿고 사는 세상에 우리는 반전을 꿈꾼다.
하느님의 드라마는 이런 반전 드라마의 연속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개인적인 삶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늘 도식대로 이루어진 삶에는 희망도, 비전도 없다. 오직 하느님께서 이러한 반전을 일으켜주시는 희망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는 이런 반전 드라마의 신약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 이 여인이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히게 되었는지는 성서학자들과 성경을 읽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자.
어째든 그녀는 사람들에 의해..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녀의 치부를 드러내어 짐진 자신들의 위선을 감추고 싶어했던 이들로부터 끌려 나왔다. 혹시 이럴 수도 있겠다. 그녀와의 관계를 즐기던 일부 유대인들이 자신들과의 관계를 독점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그녀를 공개 처형하기로 맘 먹었을 수도 있겠다.
어째든 여인은 이제 돌에 맞아 줄을 운명에 처했다.
그리고 이것은 호재다. 가뜩이나 눈엣가시던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할 대 챤스다...
예수님은 말 없이 땅 바닥에 뭔가를 쓰시며 딴청을 피우신다. 여인은 땅에 엎드려 죽음을 기다리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더 아우성이다. 뭔가 반응이 없으면 더 난리를 피는 것이 본래 열 받은 사람의 특징이니까.
결국 예수님은 몸을 일으키시고 한 마디 하신다.:
""Let the one among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hrow a stone at her."
참 통쾌한 한 마디이다. 반전 드라마의 예수님 편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이 말에 돌을 끝까지 들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여인은 측은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예수님을 바라봤고, 그 순간이 곧 구원이었다.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많은 교부들은 그 여인이 바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이요, 막달라 마리아가 아닌가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한다. 전승이 그렇게 전하는 것은 그 사건의 드라마틱한 부분을 성서 속에서 찾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의 드라마는 성경에서도 우리 삶에서도 계속 이루어진다.
반전이 필요한 사람들, 인생의 역전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
반전과 역전은 우리 삶이 나락에 떨어져도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다.
반전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도, 운동 경기에서도 막판 역전이 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물며 하느님이 이루시는 인생의 반전 역사와 인류의 반전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 날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내 생을 마치는 그 날... 반전 드라마가 완성 되리라.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 결론을 기다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