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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화가 카라바조 Caravaggio의 그림
카라바조 Caravaggio(1571~1610)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
The Raising of Lazarus
The Entombment
The Martyrdom of St. Matthew
Rest on Flight to Egypt
Christ at the Column
The Crowning with Thorns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David
The Conversion of St. Paul
The Crucifixion of Saint Peter
Taking of Christ
Supper at Emmaus
The Seven Acts of Mercy
Judith Beheading Holofernes
Martha and Mary Magdalene
Adoration of the Shepherds
Madonna di Loreto
카라바조는 17세기 이탈리아의 바로크 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화가다. 그는 39년이라는 짧은 생애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내면서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당시 전성기였던 르네상스 미술의 흐름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르네상스가 종말을 맞이할 즈음, 인간의 내면과 종교내용을 주제로 회화에 집중하던 당시 미술세계에, 현재 밀라노 박물관에 소장된 '과일 바구니'란 정물화를 제작하여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이런 카라바조의 시적 사실주의 화풍은 기성의 화가로부터 반발을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젊은 예술가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음으로써 새로이 전개하려고 하는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목격자로 승격시킴으로써 당시의 회화에 혁명을 일으킨다.
건축가였던 가난한 페르모 메리시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카라바조의 본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였다. 그런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의 미술을 지배하고 압도했으며 카라바조보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았던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구분하기 위하여 그의 가문이 있던 마을 이름인 카라바조를 따서 그의 이름으로 대신 부르게 되었다. 6살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3살인 1584년부터 밀라노에서 티치아노의 제자인 시모네 페테르차노 선생 밑에서 그림을 공부하였으나, 1590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기근에 시달렸다.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 팔거나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밑에서 제단그림을 모사하거나 정물그림들을 그려 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오랫동안 병을 앓기도 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카라바조가 외부에서 공식적으로 주문받은 콘타렐리 카펠레 제단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며 그의 실험적인 초기 그림을 수집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1602년에 제작된, 로마 콘타렐리 성당에 그린 '성 마태오의 일생'은 카라바조의 사실주의적 자연주의가 충만하게 배어있는 작품들이다. 1600년 경에 완성한 이 그림들은 미술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관람자를 극적 절정의 장면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전해지는 대부분의 그림만큼이나 그는 격정적인 삶을 살았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화가로서 인정받으며 차츰 부와 명예를 쌓아가고 있을 무렵인 1606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그만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 때부터 카라바조는 체포를 피해 고단한 도망자의 삶을 살았다. 기사단의 기사로 지명되기도 하며, 비록 도망자의 신분이었지만 이 시기 동안 그는 훌륭한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 이렇게 불안한 삶을 살던 카라바조는 긴장과 피곤으로 병을 얻어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만다. 그러던 1610년 7월 18일, 예전에 그와 다툰 적이 있는 한 귀족이 보낸 자객의 칼에 죽는다. 낯선 지중해 해변가에서 말라리아병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고, 결국 39세의 젊은 일기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종교적인 주제를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을 경멸하고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로 대치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미술을 부정하였으며, 오직 살아 숨쉬는 진실만을 그리기를 원했다. 심정적인 표정이 생생하다. 관람자가 마치 사건 속으로 빨려들어가 함께 동참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관람자에게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목격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회화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전체적인 카라바조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그의 초기 작품들은 금색을 바탕으로 한 밝은 색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나 만년의 작품에서는 억제된 빛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이 퇴조하면서, 그가 주로 사용한 이런 혁신적인 명암법은 바로크 회화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또한 그가 그린 소재들은 이후 정물화·풍경화·인물화 등 장르화라는 새로운 분야로 발전했다. 이렇듯 카라바조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이자 당시 '자연주의'라고 불린 사실주의적 화풍을 연 개척자였지만, 그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고, '저주받은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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