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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8. 7. 21.(토)
트레킹 코스 ; -광성보(광성보 안해루,광성돈대,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와 쌍충비,손돌목 돈대 .용두돈대, 광성포대).-
분오리돈대와 동먁해변-
폭염이 쏟아지는 무더운 한 여름..
아무래도 산행은 힘겨울것 같아 자가용으로 드라이버도 할겸
강화도로 갔다 강화는 고려 시대 때 몽골의 침략에 40여 년간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상처 난 역사를 품고 있는 섬이다.
조선 시대에는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함락되는
비운을 겪었지만, 숙종 때 이르러 12진보와 53돈대, 9포대를 마련해
단단한 방어 시설을 구축했다고 한다.
진(鎭)과 보(堡)는 지방군의 지휘부가 주둔하는 진영이며,
지금의 초소에 해당하는 돈대(墩臺)는 접경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물을 말한다.
강화도에서도 산책하기 좋은 코스..강화나들길이 있다
강화나들길의 코스중에 광성보와 동막해수욕장에 가기로 한다
강화도에 왔으니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며 경치를 즐기며
동부해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여러 유적지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광성보'이다
매표소에서 바라보면 안해루라는 성문이 나타난다
광성돈대는 성문 왼쪽에 있고 성문 오른쪽으로도 길이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우리나라 근대사(개항기)에서 꼭 등장하는
이곳은 1871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신미양요 당시 격전지로 역사의 아픔이 서려있는곳 '광성보'로 달렸다.
국토 김포와 강화도사이에 해협에 위치한 광성보는
사적 제 227호이다.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흙과 돌을 쌓아
강화외성을 쌓았다.
광해군 때 이를 고쳐 쌓았고 효종 9년(1658)에 광성보를 만들었다.
숙종 때는 광성보 안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의 소속 돈대가 완성되었다.
신미양요때 미군에 의해 파괴된 누각과 성곽 등은 1976년 복원됐다.
현재 광성보에는 어재연 등 장수들의 용맹을 기린 쌍충비각과
무명 병사들의 무훈을 기린 무명용사비가 세워져 있다.
강화의 유적지 광성보를 두루두루 탐방하고 오후엔 동막해수욕장으로 갔다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 남쪽 화도면에 위치하였으며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는 해변으로 유명하다.
동막해수욕장은 바닷가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 폭염인
날씨인데도 해변을 걷기엔 좋았다.
모래사장 뒤로는 솔밭이 자리해 있고 해변에서 분오리돈대의
고즈넉한 모습을 감상하고 하루를 즐기고 힐링하기에 넘 좋았던 코스였다
광성보 입구에는 신미양요 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전투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광성보 안해루..
광성나루(광성진)에 있는 성보
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진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썩어 해협을 따라 쌓은 성이다
안해루는 '바다를 순찰하는 망루' 즉 바다를 지킨다는 뜻이 담겨 있다
광성보 안내판..
주차장이 넓은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주차장내에 화장실도 있다
들어오시면 주차장이 대형과 승용으로 구분되어 매우넓게
조성되있으며, 주차비는 무료이다
규모가 있어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입구로 오르면 만나는 매표소..
유로 입장..어른 1,100원 입장료가 있다
문화관광 해설 안내소가 바로 옆에 있어 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제주 올레길과 마찬가지로 강화나들길도 코스별로 되어 있다
광성보에서 강화나들길 2-B 코스가 끝나고 2-C 코스가 시작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표한 걷기 좋은 여행길..호국돈대길이다
강화도해협을 도보로 거닐며 여러문화지를 탐방할수있고
특히 강화도는 스템프투어를 할수있게 문화관광지를 잘 조성하고있다
광성돈대 입구..
광성보 옆 작은 입구로 들어가면, 신미양요 당시 사용했던 화포 구조들이 있다.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 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3문이 복원 설치 되었다
광성돈대로 들어서면
돈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 소포, 불량기가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다
좌로부터 대포, 소포, 불랑기
대포는 홍이포라고도 하며 사정거리 700m로서 포알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고 하며 병자호란때도 사용되었다
소포는 사정거리 300m로서 포알은 대포와 같은데,
대포는 조준이 안되나 소포는 조준이 된다
작은것은 불량기라 하며 프랑스 군이 쓰던 것이라 한다
복원이 얼마되지를 않음인지 깔끔하게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안해루 성곽..
강화도 광성보 안해루..
1871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다
그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려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 덕진진, 덕포진 등이 포대에서 일제 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 덕진진을 점령한뒤
열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 왔다
광성보(사적 제227호)
광성보(廣城堡)는 1658년(효종 9)에 설치한 강화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이다.
1679년(숙종 5)에 강화도의 국방시설을 확장할 때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를 함께 축조하여 이에 소속시켰다.
신미양요 때(1871년) 미국 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으로서
이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기리는 전적비와
350여 명의 순국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이 있다.
안해루 안쪽 풍경..
용두돈대로 가는길..
우린 용두돈대로 향하는 소나무 사잇길로 걷지 안고 강변 안쪽으로 걸었다
안해루 안쪽에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바로 앞에 의자가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쉴수 있는 공간이 있다
광성보는 용두돈대와 연결된 산책로의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염화강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그만이었다
쌍충비와 용두돈대로 가는길..
해협을 따라 거닐수있는 트래킹코스가 조성되어있는데
광성보에 있는 돈대는 총3개 모두 트래킹길로 둘러 볼수있다.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과 쌍충비각
신미양요 순국무명 용사비..
무명용사비는 신미양요(1871)때 미군이 10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것에 비하여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과 군졸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원진 비이다
쌍충비각..
쌍충비각은 신미양요시 고아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쌍충비 비문해설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조선군과 미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손돌목 돈대에서 조선군 사령관인 중군 어재연장군의 지휘하에 격렬하게 반격을 가했지만
미군은 맥키해군 중위와 두 명의 수병이,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군이 장렬히 전사한 장소이다
쌍충비 해설 판..
신미순의총
신미순의총은 신미양요때 광성보 일대의 미 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항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
당시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용두돈대로 가는길에 먼저 손돌목 돈대를 들린다
손돌목 돈대..
순돌목 돈대는 일명 손석항 동대라고도 한다
용두돈대에 못 미쳐 구릉 정상부에 동그랗게 쌓은 돈대이다
강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역활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돌목 돈대 입구..
순돌목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 중앙부에 3칸의 무기고 있었고 포좌 3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손돌목 돈대에 들어서면 휑한 느낌 ..아무것도 없다
손돌목돈대(孫乭목墩臺)
손돌목돈대는 조선 숙종5년 (1679)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 창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
돈대 넓이는 778 평방미터에 성곽 길이가 108m이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손돌목 돈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강화도 일대가 훤히 보인다
강화 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기 때문에 적의 침입을 잘 볼 수 있다
손돌목 돈대 내부..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정망 강화도 일대가 훤히 보여 전망이 좋다
손돌목 돈대에서 본 강화해협..
광성포대 내려가는길의 팔각정..
뭔가 평화로운 모습이다
손돌목의 험한 물살..
손돌목 돈대의 일름의 유래가 된 '손돌목'은 예로 부터 물살이 험하고
소용돌이가 잦아 조운선이 수시로 난파되었던 곳이라 한다
손돌은 바로 사람의 이름이다.
죽어서 후하게 장사를 지낸들 다시 살아나는 거도 아니고...
참 안타가운 죽음이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임금의 안위를 끝까지 지켜준
손돌이 더 대단하다.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에는 손돌의 무덤이 있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 큰 바람이 분다고 하여 손돌이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 한다고 하고.
지금도 그날에 큰 바람이 부는지... 는 모르겠지만 손돌의 충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손돌은 노련한 뱃사공이었겠고. ~ 일반 백성의 숭고한 넛을 기려본다.
용두돈대로 가는길..
좁은 염화를 향하여 용의 머리 모양으로 쑥 나와 있는 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천연적인 돈대..
마치 바다 가운데를 동그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들길 2코스에서 가장 풍광이 좋다는 용두돈대.
손돌목에 얽힌 전설의 사연도 볼 수 있다
용두돈대(龍頭墩臺)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천연요새로서 손돌목돈대에 속해있는
외곽초소 겸 포대이다.
고종 8년(1871)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된 곳으로
1977년 강화 전적지 정화보수사업을 하면서
용두돈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된 현장이기도 하다.
강화 적전지 정화 기념비
강화 해협을 지키는 천연요새로 고종8년(1871) 포대 살치되면서 정비되었다.
손돌 목돈 대아 속해 있는 외곽 초소겸 포대로,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1977년에 성벽 복원과 전적지 정화작업을 통해 용두 돈대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돈대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를 세웠는데
앞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뒷면임
1871년 6월1일 미군 탐측선을 향해 최초로 포격을 가한 돈대이다
용두돈대에서 내려다 본 해협..
강화도는 수도인 한양으로 이어지는 물길인 한강 입구에 위치해 있어
조선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 중 하나로 다스려 지던 곳이었다.
돈대 앞에는 거친 물살이 흐르고 있는데 물살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이곳에 손돌목과 용두돈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용두돈대 앞바다는 물살이 거칠다
용두돈대 중앙의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와 홍이포..
광성포대(廣城砲臺)
광성포대는조선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국방 강화책으로 숙종은 강화도 내에 내성,외성, 12진보, 54돈대를 축조하여 요새화를 이루었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을 증가시키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고종 11년(1874)에 용진진, 광성진,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광성포대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자를 갖추고 있었다.
광성포대의 내경..
광성포대 위에서..
습지 같은 느낌이 넘 좋았다..
광성포대의 외경..
광성포대의 원경..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고 쉬기에 안성맞춤..
이곳에서 오디주와 겯들어 푸짐한 먹거리로 점심을 하면서 한참을 쉬었다 간다
오늘은 최고의 온도 폭염이 쏟아지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가을에 왔는것 처럼 이곳은 넘 시원하였다
아쉽지만 다음 코스인 동막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광성보를 나가기로 한다
강화나들길 2코스 시점 (호국돈대길)은 긴 코스(17km) 때문인지
3개 코스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2-A코스는 갑곶돈대 - 화도돈대(6 km)
2-B코스는 화도돈대 - 광성보(4km)
2-C코스는 광성보 - 초지진(6km) 구간이다.
참 좋았던 소나무 숲길...
파고라- 퍼골라(pergola)
파고라는 마당이나 평평한 지붕위에다 나무를 가로와 세로로 얽어
세워서 등나무나 담쟁이 덩굴장미 따위의 덩굴성 식물을 올려
그늘을 만든 정자, 테라스, 산책길 또는 그 시렁 구조물을 말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 pergola 페르굴라로 부터 이탈리아어 '뻬르골라' 를 걸쳐 영어의 '퍼골라'로 부르는 것을
일본에서 그들의 발음으로 '파고라'로 읽은 것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쓰고 있는 단어 인데
백과사전에는 영어식으로 읽은 '퍼골라' 로 나와 있다
2코스는 해안길을 따라 걷는 길이라 무덥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걷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걷는 중에 푸른 숲길 2곳이 있고
광성보는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광성보는 손돌목돈대를 거쳐 용두돈대까지 걸으면
가벼운 산책코스로 손색이 없어보인다.
한적한 주말에 강화도를 거닐며 문화재관람하는 건강한 여행형태가
대중화되길 소망한다. 강화도 가볼만한곳 강화 광성보였다.
광성보에서 해안도로를 달리면 얼마 안가 동막해변이 나왔다.
해변을 내려다 보니 해질녁,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해변 위로 쏟아진다.
우선 동막해변에 있는 분오리 돈대로 향한다
고개마루에 주차장이 있고 바로 진입로가 있다.
동막해수욕장이 살포시 얼굴을 보이고 있다
동막해변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강화나들길 20코스에 해당 한다
강화나들길 여행시 유의사항
차안에서 옷을 갈아 입고 ;; 먼저 분오리 돈대로 향한다
분오리 돈대..
조선 숙종5년(1676년)에 축조하였다. 초지진의 외곽포대이다
분오리 돈대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돈대이다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6호)
돈대란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견지역 또는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마련해 두는 초소를 말한다.
대게 높은 평지에 쌓아 두는데 밖은 성곽을 높게 하고 안은 낮게하여 포를 설치해 둔다
강화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돈대는 조망 할수 있는 시야가
넓으며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았기 때문에
평면이 반달 모양을 이루고 있다. 4곳에 문을 설치한 외곽포대로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게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띠었다 한다.
조선 숙종 5년 (1679년)에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경상도 군위어영군 8천명이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들풀이 제멋대로 자란 돈대안에는 태곳적 같은 묘한 느낌이 감돈다.
사위가 적막하다. 거친 섬 바람에 소리만 요란하다
동막해변이 모래사장으로 아름답게 조망된다
분오리돈대에서 동막해수욕장을 바라보니
썰물이라 물이 빠져 있어 바다에 들어가고 싶음 욕망이 접어서 실망 스럽다..ㅎ
분오리돈대에 올라서면 마니산과 해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분오리 돈대에서 여러 풍경을 담는다
분오리 어시장 전경..어선의 산착장과 함께 있다
분오리 돈대 내부..
조선 숙종 5년(1676년)에 축조하였다. 초지진의 외곽포대이다
강화도에는 해수욕장이 두군데 있다
하나는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이고..또 하나는 석모도에 위치한 민머루 해수욕장이 있다
강화도 동막해변은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이 사시사철 관광객을 반기고
바다위로 떨어지는 낙조가 유명한 곳이다
분오리돈대 바로 밑에는 동막해수욕장이다
동막해수욕장 해변가로 내려선다
바다를 모니 진흙범벅으로 누런 바닷물이다
우선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동막해변으로 향한다
화도면에 위치한 동막 해변은 마니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가면서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여름철 밀물 때는 해수욕장으로 썰물 때에는 갯벌 체험 장으로
이용되며 강화도 대표 여름 피서지로 손꼽힌다
물리 빠져 있는 모습..
동막해수욕장은 강화도에서 유일하게 백사장이 펼쳐진 이곳은
폭 10m, 길이 200m로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며,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갯벌체험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대리석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바위로 가득한 해변길이다
그늘진 곳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쉬었다 간다
이제 동막해수욕장으로 간다
동막해수욕장은 아담하다
규모는 작지만 접근성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해수욕장을 가로 지르는 도로가에는 카페, 식당, 편의점, 숙박업체 등 다양한 상가가 밀접되어 있다
동막해수욕장 부근에는 횟집과 숙소가 많은 것 같다
갯벌 체험을 즐기는 피서객들...
마니산 남쪽의 갯벌. 모래톱이 20m 가량으로 좁아, 만조 이외에는 항상 갯벌이 보인다.
해수욕장이라기 보다는 갯벌이다.
썰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서해는 갯벌체험이나 바다 수영을 하려 간다면 그 무엇보다 썰물과
밀물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물떼를 잘 알아야 한다.
물떼는 바다타임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만조는 밀물로 물이 가득 차는 시간..간조는 썰물로 물이 빠진
시간이니..물떼 시간을 확인하여 원하는 바다체험을 하여야 한다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은 야영장도 있어서 텐트치고 야영을
즐길 수도 있다 동막해수욕장 중간중간에 공중화장실도 있고
샤워장도 있어서 물놀이도 마음놓고 할 수 있다
여름철이라는 북적북적 할 해변을 찾는 발걸음이 한가롭다
어린아이를 동반하는 가족, 친구들, 연인들의 발걸음 덕분에 동막해변은 외롭지 않다
소나무 숲도 잘 조성되어 여름철 산책코스로도 좋다
바닷물이 빠진 자리에는 갈매기 들이 노닐고 있다
갯벌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파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해변의 모래는 금빛으로 참 곱다
아이들의 놀이터도 좋고 연인들의 발자국과 추억을 남기고 떠났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면 강화도 동막해변이 제격일 것이다
갯벌은 생태계의 보고이다..갯벌은 보호되어야 한다
갯벌의 축축함이 햇살을 받아 반짝임으로 변한다.
동죽등 조개를 캐기 위해서는 멀리 보이는 곳 까지 나가야 한다
동막해수욕장의 갯벌 체험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체험을 하고 싶다면 동막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조개체험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개체험장은 자연그대로의 갯벌이 아니라 조개씨를 뿌려 키운 것으로
조금만 호미질을 해도 조개를 캘 수 있다고 한다
동막해수욕장의 여러 풍경을 담는다
모래사장 뒤로 수백 년 묵은 늙은 소나무들의 푸름이 바다와 어울려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모래가 단단해 바다산책을 즐기고자 한다면 일년 내내 어느 때 찾아와도 좋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봄과 가을엔 따뜻한 바람, 높은 하늘이 더해져 더욱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바다를 자주 보기 힘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곳.
동해보다 비교적 적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찾아갈 수 있으며
서해에서도 바다다운 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나있다.
이것으로 강화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다
강화나들길..
강화도 어디에 있던 세상과 외따로 떨어진 기븐을 느끼고 싶다면 돈대를 찾아가면 된다.
일단 바다가 있는 해변을 따라서 쭉 가다보면 길가, 혹은 언덕위에서 공터를 빙 두르고 있는 야트막한 성곽을 만나게 된디.
사각형, 원형 등 형태는 다르지만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비슷하다.
성곽 한쪽에 뚫어 놓은 문으로 들어가면 한복판의 공터에 수풀이 우거졌고 성곽 너머로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런 돈대가 강화도 해안에 53곳이나 존재한다
강화도 가는 교통편
서울에서 강화 가는 버스는 전철2호선 신촌역 1번 출구 정류장에서 3000번, 영등포역 버스정류장에서 1번과 88번이 다닌다.
그밖에 인천, 부평, 일산 등지에서 강화행 버스 90번이 있다. 강화터미널까지 간 후 마니산국민관광단지행 군내버스
(700-1, 화도40, 화도41, 화도44, 순환04)를 타고 가면 된다
승용차로는 김포시 양촌읍을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는 것이 빠르다.
초지대교를 건너 직진하다가 장흥교차로에서 좌회전해→길화교삼거리 우회전해 직진하면 함허동천이 나온다.
함허동천에서 길따라 조금만 가면 동막해수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