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즐거움...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밥 금테 두른 밥상에 차려 놓았어도 소담스럽게 중심에 놓인 그 김치 변변찮으면 무단히 이 집 찬품들 '쌔피'하게 보인다. 장맛은 둘째치고 김치마져 바닥을 긴다면 눈길부터 아래로 쫙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별 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음식을 내는 전문식당에서 김치 하나도 변변히 못 담는다면 참 한심해 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여건들 녹록치 않은 오늘의 각박한 현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김치 만큼은 '그 집 맛'이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욕심 혹은 자존심, 아무리 비우려해도 이것 만큼은 양보가 안되는 것이다. 김치 면면 '매가리 없는' 집은 그래서 한참 덜 좋아보인다. 덜 이뻐 보인다.
풋내 날듯 말듯한, 이를테면 생두부용 '푸성귀 즉석겉절이'에서 부터, 흔히 막김치라고 불러도 무방한 '낱배추겉절이'의 짭쪼롬 풋풋한 맛, 맑고 시원한 나박김치의 슴슴함, 혹은 포기김치의 포옥 익은 깊은 맛까지... 수많은 김치의 갈래들이 갖는 저저큼의 '맛' 중 하나라도, 적어도 그 집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서운한 속내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식당들 더러 있다. 이름 널리 알려진 음식점들 중에도 있다. 맛없는 김치를 두고 '그 집 고유의 맛'이라고 하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김치란 것이 그렇게 변화무쌍한 '맛 차이' 별로 안느껴지는 우리나라 최고 음식 다름아닌 줄 아는 터에는...
온갖 '밥'이 만나는 김치,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할 것 무엇 있을까 마는 그래도 '끼리끼리' 짝을 이뤄 팀플레이 빛내주는 김치 궁합들이 있게 마련이다. 늦가을 김장 무렵 쌀밥 한 그릇에 곁들이는 양념 덕지덕지한 김장김치 한 닢 쭈욱 찢어 올린 맛의 각별함을 필두로, 날 궂은 날 비 긋는 처마 끝 작은 식당에서 먹는 칼국수, 수제비 한 그릇에는 그저 아무렇게나 무쳐낸 듯한 낱배추겉절이가 제격이라 하겠다. 뚝뚝 썰어낸 팔공산표 생두부에는 서글서글 금방 무쳐낸 푸성귀 즉석겉절이가 그만이다. 양념 알갱이도 아작아작 씹히는 그 풋풋한 푸성귀 무침에다 두부 한 젓가락 올리면 담담한 두부의 묘미는 다 가진 것이라고...^^
탕반에는 그저 동서고금 깍두기가 전형을 이루는 듯 하지만 그것 말고도 충분히 매력적인 김치들이 또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다양한 김치의 세계, 그 막강한 저변 때문이다. 배춧잎 하나하나 뜯어 담근 막김치 잘 익은 한 점이야말로 탕국에 아주 잘 어울리는 김치다. 뭉근뭉근 미끈하게 잘 삭은 파김치도 탕에 꽤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사실 탕국에 있어서의 파라는 것은 생한 것은 생한대로 삭은 것은 삭은대로 독특한 풍미 보여준다. 아삭아삭 말랑말랑 잘 익은 파김치의 새콤달콤 미감은 우리나라 '삭힘문화'의 진수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매력 덩어리다. '삭힘'은 사실 김치거나 젓갈이거나에서만 찾을 일도 아니다. '삭힘'은 어쩌면 면면히 내려온 우리들 삶의 일상적 해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만촌 소문난 국밥'(053-755-4511)집도 눈길 끄는 김치 하나로 마음 사로잡은 집 중 하나다. 범어네거리에서 경산 방면으로 직진한 후 수성경찰서 지나 남부정류장 네거리 가는 길 조금 못미쳐 왼편 하이마트 옆길로 좌회전해서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끄트머리 지점 오른편에 있는 집, 만촌 소문난 국밥집이다. 메뉴 단촐한 집. 돼지국밥집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이다. 인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집이라고 한다. 깍두기도 있고 '다른' 김치도 있었지만, 정작 마음 사로잡은 것은 바로 '다른 김치'였다. 이름 뭐라고 해야할까. '낱배추정구지김치'라고 할까. 아무튼 청방배추풍 사근사근 배춧닢에다 정구지 무던히도 많이 들어간 김치다.
그 둘 어울려 얼마나 맛깔스럽게 익어 버렸는지... 씹을 때 마다 배어나오는 새콤매콤한 맛, 참으로 일품이었다. 결국은 이빨새로 끼어들어 오래오래 작업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리나라 아니지 않는가. 어찌 그 새콤한 삭힘 맛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좀처럼 잘 하지않는 탕국에 김치 넣어먹기도 마다치 않게 만드는 맛깔스러운 김치였다. 덜 익은 김치는 탕국에 풀려 얕은 양념 맛만 난무하게 하지만 잘 익은 김치는 그 삭힘의 힘, 탕국을 새로운 맛으로 이끌어준다.
경험해 본 대표적인 김칫국, 서울 을지로의 하동관 곰탕이지만 대구에서도 만나본 적 있다. - 하동관 김칫국은 '깍국'이라는 애칭으로 통한다고 한다. 깍두기 국물이란 뜻일테지만 그냥 줄여서 깍국 그렇게 부른다고. 내 경우는 익숙치 않아서, 여전히 깍두기 국물 주세요... 이다.^^ - 상인동 상화로(상인동 보훈병원네거리에서 진천동 위천교에 이르는 복개도로. 이상화 시인의 이름을 붙여 명명한 길 이름이다) 길옆에 있는 연화정삼계탕집에서 맛 본 깍두기 국물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새콤하게 잘 익은 그 국물 반쯤 먹은 삼계탕에 풀어 먹으니 아주 새로운 맛으로 변하던 그 좋았던 경험을...
[출처] 만촌동 / 김치의 즐거움 ... '만촌소문난국밥' |작성자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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