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쟁이 주부의 노불레스오불리주를 촉구하며
복주머니 채우는 좋은 습관, 종신보험
2010년 2월 소 장 최 보 영
언젠가 아이가 하는 말이 생각났다.
“친구 소개팅에서 밥을 먹는데, 상대의 식탁예절이 형편없어서(세칭 1등 남편감이었지만)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밥 먹을 때마다 그것에 대해 분명 말을 할텐데, 그게 버릇이 되었는데 쉽게 고쳐지겠냐고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어요.”
에미 된 마음에 아이를 별나다고 야단쳤지만, 그 때 새삼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아이를 별나게 키운 것은 아닌지⋯상대부모를 생각하며 아쉬움이 컸다.
무릇 부모라면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안 아파하리라.
문득, 부모라면 응당 생기는 이 마음이 자식버릇을 잘 못 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서 얼마간은 처음 만나는 사람, 자주 접하는 사람의 언어나 몸맞춤(스킨십)을 통해 ‘아~ 이러니 내 뜻대로 되네. 이래도 소용없네. 이러니까 좋구나.’ 등으로 몸에 닿는 감촉, 귀에 들리는 소리, 혀에 닿는 맛 등으로 밖에 알 수 없는 아가들이다. 배냇짓이나 울음, 나아가 옹알이 밖에 안 되는 아가들인 탓에 자기중심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 익히고 그 친숙한 느낌을 기억하고 보관하면서 그것들을 매사에 들이대는 반복되는 과정, 결국엔 그것이 내 것으로 되는 과정을 3살 버릇이라고 나는 본다. 또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 그 때(첫 경험이나 어린 시절)형성된 자동사고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배어있는 그래서 너무도 익숙한, 그렇게 쉬운 해결을 선택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채우려고 본능적으로 우리 자신들을 그 시절에서 궁둥이를 떼지 못한 채 뭉개고 있어 현재의 나이만큼 자라지 않아 그 고픔을 평생 껴안고 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감정들에 붙들린 채 다른 쪽을 돌아보기는커녕 때로는 고개조차 들 수 없게 만들어 제 나이의 싹을 틔우지 못하는 미성숙한 성인들을 우리네 삶터에서 종종 마주치기도 한다.
성폭력․가정폭력 가해자 상담을 해 보면, 그들이 기억하는 첫 장면이 그들을 열심히 꼬득이며 쉽사리 놓지 않음을 흔히 본다. 그들의 뇌에 첫 도배를 한 그 장면, 예를 들어 처음 본 동영상으로 각인된 느낌이나 맛을 좇아서 그들은 그 후에 맞딱뜨리는 대부분의 문제들을 처리하기 시작함을 많이 본다. 그 첫 도배의 충격이 클수록 누군가에게 확인도 못한 채 날 것 그대로 자기만이 아는 유일무이한 깨달음으로 자리 잡으며, 자신만이 지닌 삶의 무기로 전횡을 부리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은 첫 기억에 몸서리를 칠만큼 끌려 다닌다. 그만큼 첫 경험은 우리에겐 황금덩어리를 주은 듯 횡재한(?) 기분을 오래 간직하나보다. 그렇기에 시행착오를 버릇처럼 되풀이 하여 대부분은 여든까지 잘못을 되풀이해놓고는 그 잘못을 비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체벌이 주는 폐해가 문제되면서 회초리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라졌다. 사실은 회초리가 문제이기보다는 매를 든 사람이 문제인데도⋯.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상황을 겪는다.
이럴 때 우리들의 문제 해법은 단칼에, 쉽게 법을 정해 벌로 그 해결을 강제하는 쪽으로 가곤 한다. 그래도 케이스마다 사람이 문제이기에 결국엔 사람교육으로 돌아감을 볼 수 있다. 결국, 쉬운 일방적 해결은 게도 구럭도 놓치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의 기를 살리려고 아이들이 해달라는 것을 들어주어 마음의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또한, 밖에서 공공의 장소에서조차도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버려두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부모가 되어 제 자식 사랑않는 부모는 어디 있겠는가? 이토록 당연한 사랑이지만, 혀를 깨물고라도 잠시 물러서서 혼자 있을 때의 자식모습을 떠올리자.
누구라도 내 자식 곁에 있는 사람이 부모나 형제처럼 사랑해준다면?
그렇게 자식을 키우자.
그래서 제멋대로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을 때 그것이 방종이 되어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게 됨을 가르치자.
그렇게 자녀들 마음의 복주머니에 ‘배려’ ‘함께’라는 종자돈을 채워주자.
그리고 혼자 남을 시간들을 기억해서 일상에서의 자율을 가르치자.
그렇게 복주머니에 에미 애비 사랑을 종신보험으로 적립하자.
밥 먹을 때마다 버는 복 짓는 습관에서 잠자는 습관까지에서의 복을 짓는 미리 행복한 아이들을 보며 우리 부모들도 미리 행복한 복주머니를 차자.
이 땅의 열성적인 주부들이여!
미리 복주머니 찬 행복한 아이들을 보며 일찌감치 복주머니를 불리자.
그렇게 Social Mother`s Power를 펼치자.
이 복주머니로 작금의 어려움을 넘기자. <행가래로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