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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8월 1일 목요일
[(백)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알폰소 성인은 1696년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두터웠던 그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1726년 사제품을 받은 알폰소는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를 설립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설교와 저술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고티의 교구장 주교로 활동하다가 다시 수도회로 돌아가 1787년에 선종하였다. 1839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윤리 신학의 대가로 존경받던 알폰소 주교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가 주님 말씀에 따라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집안이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당신 손에 있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8,1-6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
2 “일어나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내 말을 들려주겠다.”
3 그래서 내가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갔더니,
옹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5 그때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6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47-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로마 8,1-4)와 복음(마태 5,13-19)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서 13장에는 하늘 나라에 관한 여러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늘 나라의 모습과,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늘 나라는 씨앗이며 새싹입니다. 그 하늘 나라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누룩처럼 이 세상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늘 나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때로 이 나라가 너무 미약하다고, 하늘 나라가 과연 우리 가운데 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답답해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늘 나라의 그 무력함은 하느님 자비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하늘 나라가 완성되는 날에 가라지는 불태워지고, 나쁜 물고기는 밖으로 던져집니다. “온갖 종류의 고기”(마태 13,47)가 모여 있는 그물은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아직 기회를 주시는 때이고,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레미야서의 말씀도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예레미야서 18장에서는 옹기장이가 그릇을 빚으면서 잘못된 그릇을 다시 고쳐 빚지만, 19장에서 이미 그릇을 구운 다음에는 잘못된 그릇을 깨뜨립니다. 구워진 그릇은 다시 고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도 18장은 아직 하느님께 돌아갈 여지가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19장은 인간이 하느님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를 나타냅니다.
선과 악이 함께 있는 시간, 하늘 나라가 이미 와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도록 두시는 하느님께서는 가라지를 불태우시는 하느님이시고, 온갖 고기를 모아들이시는 하느님 또한 나쁜 물고기를 버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하느님께 돌아갑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구분법.
전심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비유 말씀으로 어부가 물고기를 거두어들여 어떤 종류는 거두어들이고 어떤 종류는 버린다고 하십니다. 내가 어떤 물고기일까를 알아보기 위해 일반적으로 어떤 물고기들이 거두어들여지고 어떤 물고기들이 버려지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선 버려지는 물고기들의 특징을 봅시다. 그것들은 맹독성이 있거나 가시가 많거나 잡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사람이 손쉽게 먹기 어려운 이런 물고기들은 사실 다른 물고기들에게도 천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먹기 어려우면 다른 물고기들도 먹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복어를 볼 수 있습니다. 복어는 지금 양식을 해서 독성이 없이 잘 먹기는 하지만, 예전에 복어가 그물에 들어왔다면 어떨까요? 처음엔 분명 버려졌을 것입니다. 복어는 물이나 공기를 삼켜 몸을 부풀려 몸을 더 크게 만들고 삼키기 어렵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부풀어 오를 때 직립 되는 가시를 가지고 있어 추가적인 방어층을 형성합니다. 무엇보다 많은 복어의 조직에는 강력한 신경독인 테트로도톡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독소는 잠재적인 포식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 복어를 먹으려는 시도를 방해합니다.
라이온피쉬는 생긴 것은 멋있지만, 지느러미에 길고 독이 있는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시는 잠재적인 포식자에게 독을 주입하여 극심한 통증, 마비, 심지어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밝은 색상과 뚜렷한 패턴은 다른 동물에게 독이 있다는 경고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는 라이온피쉬는 그것들을 걸러내고 식용을 하기에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적어서 일반 어부들에겐 버려지기에 십상입니다.
스톤피쉬는 독과 위장술로 거의 공격을 받지 않으며 만약 밟거나 만질 경우 인간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독이 있는 가시가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어와 같이 특별한 조리법으로 요리하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먹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는 쓸모없는 물고기입니다.
전기 뱀장어를 볼까요? 전기 뱀장어는 강력한 전기 충격을 일으킬 수 있는 특수한 전기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 뱀장어가 발생시키는 전기 충격은 잠재적인 포식자를 기절시키거나 죽일 수 있어 효과적인 억제 수단이 됩니다. 다른 물고기들에게 해를 끼치는 전기 뱀장어는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어 식용으로 잡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상어는 어떻습니까? 가장 강한 물고기이기에 천적이 없습니다. 즉, 상어는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습니다. 그들의 강력한 사냥 능력과 자연 포식자의 부족으로 인해 그들은 서식지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상어의 지느러미를 먹기 위해 상어를 포식하기는 하지만, 생존을 위해 상어를 잡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다른 물고기들에게 먹혀 영양분을 줄 수 없는 독성이 강하고 다른 것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위험한 가시들이 있는 물고기는 인간에게도 이롭지 못하기에 버려지게 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약 물고기가 인간이라면 다른 이들에게 먹혀 자신을 희생할 수 없는 사람은 하느님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밥이 될 줄 아는 존재가 됨을 배우는 과정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탈리아 복치아니코에서 출생한 성 카밀루스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성장해서는 군인으로서 터키인들을 대항한 베네치아를 위하여 전투에 참가하였고, 도박에 빠졌으며, 1574년경에는 무일푼의 신세가 되어 나폴리 거리를 방황하였습니다. 그는 몸이 건장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에 독기를 품고 가시를 세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1575년 우연히 신부님의 설교를 듣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 일생 그를 괴롭힌 다릿병과 신세만 한탄할 게 아니라 자신도 이웃을 위해 아픔을 감수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좋은 물고기 탄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온 힘을 쏟았으며, 로마의 산 자코모 병원에 자원으로 봉사하다가 성 필립보 네리의 권고를 받아들여 158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병자들을 위한 봉사 수도회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자신보다 더 아픈 이를 돌보다 하느님께 갔습니다.
이웃을 위해 아파질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물고기의 조건입니다. 물론 먹히는 것은 아픔입니다. 어차피 독과 가시를 품고 사는 것도 아픔입니다. 그것보다 이웃을 위해 아파질 줄 아는 것을 배운 이는 좋은 물고기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신이 그러한 삶을 사셨듯이 밥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밥이 되어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길은 먼저 이웃에게 밥이 되어주어 이웃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현대 한국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그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낯선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서로 교환하는 것이 있습니다. ‘명함’입니다. 명함에는 이름, 직장, 메일,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저는 이름을 소개할 때 주로 세례명인 ‘가브리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브리엘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준 천사입니다. 저는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쉽게 저를 기억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이름과 세례명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내 이름과 세례명의 뜻과 의미를 떠올리고, 그 의미에 맞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성당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지역의 이름을 따라서 성당 이름을 정합니다. 제가 있는 성당의 이름은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입니다. 댈러스는 지역 명칭이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주보성인의 이름입니다. 미주 지역의 성당은 대부분 한국의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개신교회는 이름을 정하는 방식이 가톨릭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개척교회의 목사님과 공동체가 교회의 이름을 정하는데 지역의 명칭이나 주보성인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성인이라는 교리가 없고, 가톨릭처럼 속지주의 원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보면 ‘반석교회, 빛과 소금 교회, 광명교회, 온 누리 교회, 사랑의 교회, 방주교회’와 같이 성경에서 교회의 이름을 찾습니다. 한 목사님이 공동체와 함께 교회의 이름을 정했는데 ‘주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의 이름을 주님의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도 아니고, 교회의 주인은 장로님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기에 ‘주님의 교회’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 원칙에 따라서 10년만 목회하고 떠났습니다. 장로들도 임기를 정하고 모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와 목회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공동체를 이루는 신자들이기에 큰돈을 들여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 큰 강당을 지어주고, 그 강당의 일부를 교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교회 재정의 50%는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고, 50%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헌금 봉투에 이름도 적지 않았고, 주보에 헌금 낸 교우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니 이름을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어도 교우들은 기쁘게 헌금했다고 합니다. 1년 예산을 정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지출했다고 합니다. 다만 모든 지출의 원장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지출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예산을 정하면 그 예산에 부족한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서 헌금 설교를 해야 하는데, 예산을 정하지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걸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니, 35년이 지났어도 공동체는 사랑과 기쁨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옹기장이와 진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옹기장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입니다. 진흙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만물과 사람입니다. 세상 만물은 옹기장이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오직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서 진흙인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실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수 있는 겸손함을 주십시오. 더불어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인간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날로 모든 계획도 사라져 버린다.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그날은 오리니 오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3,49)
그날은 오리니
오늘 맑으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밝으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깨끗하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부드러우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착하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곧으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아름다우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사랑하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살리렵니다
그날은 오리니
오늘 걸으렵니다
오늘의 성인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Alphonsus Mary de Liguori)
신분 : 설립자, 주교, 교회학자
활동연도 : 1696-1787년
같은이름 : 알폰수스, 알퐁소, 알퐁수스
성 알폰수스 마리아 데 리구오리(Alfonsus Maria de Liguori, 또는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는 1696년 9월 27일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 근교 마리아넬라(Marianella)에서 주세페(Giuseppe de Liguori)와 안나 카발리에리(Anna Cavalieri) 사이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아버지 주세페는 나폴리 공국의 해군이었으며 어머니는 트로야(Troja)의 카발리에리 주교의 동생으로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던 성 알폰수스는 불과 16세 나이로 나폴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아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결코 패소하지 않는 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1723년 토스카나(Toscana) 대공과 어떤 공작 사이에 큰 돈일 걸린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소송에 참여했던 성 알폰수스는 어떤 중요한 문서를 잘못 해석하고 서명한 사실로 패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변호사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기도하던 중 1723년 8월 28일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찾아갔다가 신비체험을 하였다. 그래서 성 알폰수스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1726년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2년 정도 나폴리 근방을 돌며 선교사로 봉직하였고, 1729년에는 나폴리의 중국 신학원에서 활동했다.
1730년 친구인 토마스 팔코이아(Thomas Falcoia)가 스칼라(Scala) 지방에 있는 카스텔라마레 교구의 주교가 되자, 성 알폰수스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스칼라에서 수녀들의 피정을 지도할 때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를 만났고, 새로운 수도회에 대한 그녀의 환시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팔코이아 주교가 로마(Roma)에서 경험한 환시와 일치하였다. 그래서 1731년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환시에서 받은 규칙을 따라 여자 구속주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스칼라로 이주하여 팔코이아 주교, 파가노 신부와 다른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 구속주회(Redemptoris)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의 말씀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성직 수도회였다. 본부는 스칼라 수녀회의 숙박소를 이용하였으며 명예원장으로 팔코이아 주교를 모셨다. 그런데 초창기에 중대한 알력이 일어나 마리아 첼레스테 수녀가 떠나가서 포치아에 따로 수도원을 설립하고, 또 1733년에는 쿠르시오(Curtius)라는 수도자 한 명만 남고 모든 회원들이 다른 회를 설립하여 떠났다.
하지만 성 알폰수스는 흔들리지 않고 회를 지키면서 다른 회원들을 맞아 1734년에 빌라 데글리 스키아비에서 두 번째 창립을 맞이하였다. 그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수도회를 발전시켜 나갔다. 마침내 구속주회는 1749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열린 총회에서 수도회 종신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다음 해에 여자 구속주회도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왕권주의를 내세워 수도회들을 적대시하던 왕과 타누치(Tanucci) 후작 때문에 나폴리 왕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1752년 왕은 교황령과 시칠리아(Sicilia)만을 사목 활동 영역으로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인가를 해주었다.
이 기간 동안 성 알폰수스는 인근 지역을 다니면서 설교 사도직을 열렬히 수행하였으며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는 1762년 6월 20일 산타 아가타 데이 고티(Santa Agata dei Goti)라는 나폴리의 한 작은 교구장 주교로 알폰수스를 임명하였다. 그는 이 교구를 돌보는 13년 동안 성직자, 수도원 그리고 전 교구의 혁신을 계획하였으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열정적 활동으로 중병을 얻었고, 또 죽을 때까지 괴롭혀온 류머티즘으로 마비될 때도 많았기 때문에 1776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의 허락을 받고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주교직을 사임한 후에도 그는 구속주회의 정립과 운영을 위해 주력하였다. 하지만 나폴리 왕국의 당국자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예수회가 박해를 받은 이후 구속주회도 위험에 처하자, 성 알폰수스는 중개자를 내세워 당국자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왕이 승인한 규칙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가 수도회를 인가한 교서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므로 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교회와 나폴리 왕국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교황령 외의 지역에 있던 공동체들이 성 알폰수스의 관할권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회는 두 계열로 분열되었다. 성 알폰수스는 둘로 분열된 수도회가 다시 합쳐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1787년 8월 1일 살레르노(Salerno)에서 선종하였다.
구속주회는 성 알폰수스가 선종한 직후 다시 하나로 재건되어 발전하였다. 성 알폰수스는 윤리, 신학, 수학에 관한 놀라운 저서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윤리신학은 얀세니즘(Jansenism)과 반성직주의를 극복하면서 올바른 윤리관을 정립한 저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심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책은 “마리아의 영광”이다. 그는 1816년 9월 15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871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 후 1839년 5월 26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50년 4월 2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고해사제들과 윤리 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성녀 스페스 (Spes)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스뻬스,쓰뻬쓰
성녀 카리타스 (Charity)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까리따스, 카리따스
성녀 피데스 (Fides)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피데쓰
하느님의 지혜인 피데스(Fides), 스페스 그리고 카리타스(Caritas) 공경을 설명하는 동방의 한 은유에 따르면, 이들은 로마(Roma)의 과부 성녀 소피아(Sophia, 9월 30일)의 세 딸의 실제 이름이라고 한다. 이 딸들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하였다는 것이다(로마의 순교록). 순교 당시 피데스(신덕)는 12세로서 매를 심히 맞았으나 큰 상처를 입지 않자, 끓는 물을 부었고 그래도 별 효과가 없자 참수하였다. 그리고 스페스(망덕)는 10세였고, 카리타스(애덕)는 9세였는데, 용광로에 집어넣어도 죽지를 않아서 목을 베었다. 또 그들의 어머니 성녀 소피아(지혜)는 그들의 무덤에서 기도하다가 3일 후에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