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요양원 방문
유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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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동시낭송 음악회
아침저녁 바람결에서 가을 냄새가 묻어납니다.
동물 동시 낭송 회원님들,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아래와 같이 음악회를 열 예정입니다.
모든 회원님들은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봉사의 참뜻을 새기시길 바라겠습니다.
* 일시 : 2014년 8월 19일 (화) 오후 2시
* 장소 : 세종 동물 요양원
* 주최 : 동시 낭송 동물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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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원에서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전화벨이 울렸어요. 달려가 받아보니 곰한테서 온 전화였어요.
"동물협회에서 엽서 오지 않았니?"
수화기에서 곰의 궁금한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지요.
"으응, 우편함에 있었어. 지금 읽고 있는 중이야."
"음악회가 다음 주 화요일이니 딱 2주가 남았지? 이번 음악회에 우리 둘이 함께 참여하는 건 어때?"
"그래 좋아. 근데 뭘로 하게?"
"넌 플루트를 잘 부니까 그걸로 연주를 해. 나는 노래를 할께."
"그거 아주 멋진 생각이구나. 근데 어떤 곡이 좋을까?"
"내가 '곰 세마리' 와 '예쁜 아기 곰' 두 곡을 부를게."
"와~ 그거 괜찮은데! 노래 선택이 정말 특별한 걸."
"그럼 내일 학원 끝난 후 우리 집에서 연습하기로 해."
그 후, 나는 매일 학원 수업이 끝나면 곰의 집으로 가 곰의 노래에 맞춰 플루트 연습을 했어요. 우리 집은 아파트이기 때문에 플루트와 노래 소리가 옆집에 시끄럽게 들릴까봐 조심스럽거든요. 월, 수, 금요일은 우리가 모여 연습을 하는 날이에요. 음악회 전 날인 월요일까지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와~ 너무 너무 잘했어. 이렇게 화음이 척척 잘 맞을 수가 없어. 토끼가 연주한 플루트의 맑고 선명한 음색에 곰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부르는 노래 같았어. 양 할머니도 매우 좋아하시겠구나."
엄마 곰은 곰이 좋아하는 도토리와 다래, 또, 내가 좋아하는 건초와 당근 말린 것을 간식으로 주시며 말씀하셨어요.
비가 온 다음날, 하늘은 더 높고 맑아 보입니다. 길가의 나무들은 방금 세수를 마친 아기처럼 푸르고 깨끗합니다. 음악회가 있는 오늘 내 기분도 하늘처럼 상쾌합니다. 2시부터 시작되는 음악회에 참석하기위해 조금 일찍 요양원에 도착했어요. 요양원 앞에 곰의 자전거가 보이고, 그 앞, 놀이터엔 시소, 미끄럼틀, 그네를 타고 있는 몇몇 동물 친구들이 눈에 띄어요. 나처럼 모두들 일찍 요양원에 온 모양입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됐어.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함께 시소를 타며 놀던 코끼리의 말에 사자는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섭니다.
"아이쿠, 어서 오세요.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다니. 정말 부럽고 감사합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아주 행복해 하실 것만 같아요."
동물 요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마 원장과 염소 복지사, 강아지 요양사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하마 원장님의 안내로 우리들은 3층으로 올라갔어요. 동물 할머니, 할아버지 30여분 정도가 거실로 나와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나는 양할머니를 찾아 두리번거렸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희들은 동물 동시낭송 회원들이에요. 우리 할머니, 할아 버지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오늘 저희들이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어요. 열심히 박 수도 쳐 주시고, 춤과 노래로 함께 하시면서 재미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라겠어요."
가지가 많은 뿔을 가진 사슴이 잔뜩 멋을 부린 채 사회를 봅니다.
"짝짝짝~"
동물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염소 복지사, 강아지 요양사들도 힘찬 박수를 보내줍니다. 그 사이, 나는 양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은 후 휠체어를 붙잡았어요.
‘아침 산, 전영관, 산이 떠오르는 해를 어깨 너머로 가리고 있다./ 산꽃이 이슬에 세수를 마칠 때까지/산새가 둥지에서 이불을 다 갤 때까지/ 나무들이 바람에 머리를 다 빗을 때까 지/ 산이 떠오르는 해를 어깨 너머로 가리고 있다.’
긴 목에 진주 목걸이를 두 줄로 칭칭 감은 기린이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동시를 낭송합니다.
"산이 떠오르는 해를 어깨 너머로 가리고 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님들도 손자 손녀들을 위해 애 많이 쓰셨지요?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기에 저희들이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답니다. 다음에는 다람쥐의 오카리나 연주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이어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오카리나로 연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악기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람쥐는 '나뭇잎 배'를 노래로 다시 들려줍니다. 다람쥐는 자신 있게 노래를 부른다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반응은 약간 시큰둥합니다. 그렇지만 그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줍니다.
'풀잎위에 작은 달이 하나 떴습니다./ 풀잎위에 빨간 달이 하나 몰래 몰래 떴습니다.'
잘 알려진 이준관님의 '밤이슬' 이란 동시를 참새 남매들이 낭송을 하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냥 흐뭇해하십니다. 양할머님이 내 손을 꼬옥 잡으십니다. 그 손길에서 할머니의 행복해하시는 마음이 전해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늘 이렇게 우리가 하나가 되듯, 밤이슬, 풀잎, 풀벌레도 한마음이 되 었죠? 이번 순서는 토끼의 플루트 연주에 맞춰 곰의 노래가 있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해 주세요."
사회자인 사슴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내가 전주를 하고, 곰이 노래를 할 차례가 되었지요. 양할머니는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 해 주십니다. 나도 같이 '찡긋' 했어요. 우리 둘만이 통하는 싸인이거든요.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옷을 입은 예쁜 아기 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나는 연습한 것보다 연주가 잘 되지 않아 좀 속상했어요. 곰은 무대에 서는 것이 몸에 배인 듯 자연스럽게 노래를 잘했어요. 양쪽 손을 마주 잡고 배꼽 위를 왔다갔다하며 율동과 함께 흥겹게 노래를 합니다.
"와~~~ 앵콜, 앵콜~"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곰은 마치 오늘만을 기다린 것처럼 손유희와 함께 리듬에 맞춰 온 몸을 마구 흔들어댑니다. 구경하는 요양원 모든 식구들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그 자리에 일어서서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며 흥에 겨워하십니다. 할아버지 한 분은 무대로 나와 곰의 율동에 맞춰 동작을 따라 하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오리처럼 뒤뚱뒤뚱 춤을 추자 이곳에 모인 동물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몸을 비틀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나의 연주에 맞춰 곰의 노래가 끝났어요. 나는 곰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한 후, 고개를 들어 양할머니 쪽을 바라보았지요. 맨 뒷쪽에 자리한 양할머니와 그 옆 할머니가 화장지로 눈물을 닦고 계시지 않겠어요. 나도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 졌어요. 슬플 때 뿐만이 아니라 기쁠 때도 눈물이 나는가 봐요.
코끼리, 여우의 동시낭송이 있은 후, 사회자인 사슴의 마술 연기가 있었습니다. 종이에 불을 붙여 냄비에 넣은 후 부채로 두어 번 살살 부치자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되어 나왔어요. 잠깐의 눈속임이라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냥 신기해하십니다.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마지막 순서로 고양이가 나와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듯 트로트로 열창을 합니다.
왕방울 눈에 검은 털이 오늘따라 더 검다 못해 빛이 날 정도로 번쩍거립니다. 고양이 할아버지가 계신 경로당에서 많이 불러본 노래랍니다. 그 사이 나는 양할머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사회자의 마지막 인사말이 있은 후, 출연자 모두 무대로 나와 손에 손을 잡고 '나의 살던 고향은 ~'을 부르며 오늘 음악회는 막이 내립니다.
"참말로 고맙구먼유. 참말로~"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리를 뜨지 않으십니다.
"토끼야, 가서 엄마한테 꼭 전해주렴. 우리 아들 둘과 딸 한 명보다 네 엄마가 훨씬 더 낫 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네 엄마 덕분에 이 할미가 덜 외롭게 살아간다고. 몇일 전 하마원 장이 말해주더구나. 니네 엄마가 부탁해 이 음악회도 열게 되었다구."
뇌졸증에 걸린 양할머니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이번 추석엔 미국에서 송이 이모가 할머니 뵈러 올 거라고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삼촌들 도 아마 다녀가실거예요."
"나한테도 그런다고 전화는 왔다만, 그 먼 곳에서 오기가 쉬워야지. 쯧쯧..."
먹고 입는 것이 모자라지 않아도 늘 외로워 보이는 할머니가 나는 불쌍했어요. 두 아들과 딸을 걱정하며 보고 싶어하는 양할머니의 마음이 훤히 보이기도 했구요.
"누구든지 나이가 들수록 더 외로워지는 거란다."
라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양할머니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는 사실에, 내 마음속에 작은 기쁨이 샘솟았어요. 그 동안 연습하느라 힘들었던 몸과 맘이 씻은 듯이 나아지는 느낌도 들었구요.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마음속으로 외치며 돌아서는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뒤돌아보니 양할머니를 비롯한 요양원 모든 동물들은 아직도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