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서평 <마운틴 오디세이. 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 심산. 바다출판사.2014년
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이용대
<마운틴 오디세이>작가 심산이 긴 침묵을 깨고<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을 펴냈다. 12년 전 심산의 첫 작품을 펼쳤을 때의 감흥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생동감이 넘쳐나는 톡톡 튀는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아직도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저력은 그가 현장경험을 지닌 산악인이자 생업자체가 시나리오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재학 시절에도 글쓰기를 하여 등록금을 마련했고<사흘 낮 사흘 밤>이란 장편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된 것은<비트>.<태양은 없다>등이다. 심산의 글은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쪽이다. 글이 간결하고 명료해서 독자의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첫 번째 책이 산악문학작품들을 저자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소개한 리뷰에세이집이라면 뒤에 펴낸 책은 세계 등산 사를 장식한 유명 산악인들의 삶과 등반기록들이다. 어찌 보면 두 책의 성격이 유사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첫 번째 책은 산서(山書)해제 중심의 산서입문서이고, 두 번째 책<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은 세계 등반 사에 전설을 남긴 등산가 35명의 개인적인 삶과 등반 이야기를 다룬 전기(傳記). 즉 그들 일생의 사적을 다룬 인물열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남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것처럼 흥미진지하다.
이 책의 목차를 일별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등장인물을 출생년도 순으로 배열하여 세계등반사의 밑그림이 되도록 했다. 이를테면 인물평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세계등반 사’인 셈이다. 몇몇 일화 중에는 역사적인 팩트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반드시 사실관계와 일치하라는 법은 없다.
이 책은 앞서 출간한 책의 내용과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재담으로 똘똘 뭉쳐있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시나리오. 소설. 칼럼 등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글을 쓰고 있지만 알파인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은 짧다. 그러나 그가 2002년에 펴낸 첫 책 <마운틴 오디세이>가 던져준 울림은 실로 엄청났으며 많은 산서 독자들에게 빛을 발했다.
<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은 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알피니즘의 무대에서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35명의 등산가들을 등장시킨다. 그 면면들을 살펴보자.
근대알피니즘 개막의 첫 계기를 마련한 근대등반의 아버지 드 소쉬르. 지식인 이라면 마땅히 산에 올라야한다고 말하며 알프스를<유럽의 놀이터>로 만든 19세기 영국 최고의 석학(碩學) 레슬리 스티븐. 알프스 황금시대를 빛내고 사람이 산에 오르는 한 계속 읽어야할 명저<알프스 등반 기>를 남긴 에드워드 윔퍼,
이미 나있는 길이면 가지 말고 ‘더 어렵고 다양한 길’로 오를 것을 주창하며, 현대등반의 기초를 다져내 모든 세대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산악인으로 평가받는 앨버트 머메리.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남벽을 단독 초등한 알프스 명가이드 마티아스 추르부리겐. 이탈리아 왕족의 신분으로 평생을 산악인과 탐험가의 삶을 산 아브루치공. 의족을 끼고 외다리로 마터호른을 오른 영국신사 제프리 윈스럽 영.
‘거기에 에베레스트가 있기 때문에’라는 명언을 남긴 채 에베레스트의 유령이 된 조지 맬로리. 고상하고 잘난척하는 영국신사들을 경멸했던 에릭 십턴. 그는 세계등산의 총본산 알파인클럽회장까지 역임했지만 지식인들에게 숨막혀하며 평생친구 틸만과 의기투합하여 짚시 같은 방랑자의 삶을 살아온 용기 있는 자유인이었다. 1933년 4차 에베레스트원정대에도 참여한다. 이원정대의 해리스와 웨자는 8229m지점에서 맬로리와 어빈의 유류품 피켈과 산소마스크를 발견한다. 실종 9년 뒤에 발견된 빌리슈 피켈은 처음엔 맬로리의 것으로 알려졌으나, 훗날 주인이 어빈 것으로 확인된다.
알프스 북벽등반기로 상징되는 1930-40년대 서부알프스에서 5-6급의 등반을 해내며 수많은 초등기록을 세운 정열의 화신이자 산의 지성이라 불리는 주스토 제르바수티. 이탈리아 알피니즘의 산증인이자 알프스북벽시대의 선봉장이던 리카르도 카신. 그는 1938년 단번의 시도로 그랑드조라스 워커릉을 초등하는 업적을 이룬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최후의 역량까지 쏟아 붓는 것이다’라고 말한 아이거 북벽의 영웅 하인리히 하러. 그가 펴낸<하얀거미>는 하러를 산악문학의 빌리언셀러 작가로 부상시킨다.
히말라야 8000m의 위와 아래서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낭가파르바트 단독등반을 이룩한 철인 헤르만 불, 그는‘내 생애는 낭가파르바트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고 말한다. 이 한 마디는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이산을 오르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 산에 오르는 일에 최후의 모험을 감행했다.
지구 최고봉 등정을 성사시킨 양봉업자 에드먼드 힐러리. 그는 비천한 신분의 자일파트너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배려한 헌신과 겸손의 사나이다. 에베레스트 정상가는 길목에 남겨진 그의 이름이 붙은 힐러리 스텝은 초등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곳을 오르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름이다.
히말라야자이언트 14봉에서 16년간의 드라마를 펼친 20세기 전 인류를 대표하는 단 한사람 라인홀트 메스너. 그는 ‘몽상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꿈같은 일’을 실현시킨 주인공이다. 이 밖에도 등산행위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는 무상의 정복자 리오넬 테레이. 요세미테의 전설이 된 엘캐피탄의 무법자 워렌 하딩. 그는 ‘등반가의 제1요건은 어리석음에 있다’고 말했다. 동계단독등반의 장르를 개척한 극한등반의 대명사 발터 보나티. 20세기 최고의 전략적인 등산가 크리스 보닝턴. 암벽등반 놀이에도 지켜야할 윤리강령이 있다고 외치며 클린 클라이밍을 외쳐댄 로얄 로빈슨. 암벽등반의 곡예사 존길. 장비개발의 귀재 이본 취나드 그는 현대판 에켄슈타인 이다.
성차별의 벽을 허물고 사라진 여성영웅 반다 루트키에비치. 등반가치의 기준을 정상보다 벽에 둔 보이테크 쿠르티카. 거벽을 희롱하고 스러진 두 히피 보드맨과 태스커. 고산의 하늘에 나래를 펼치며 놀아난 비행사 부아뱅. 여성이 아닌 거벽등반의 마술사 린힐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낯익은 등산가들의 흥미진지한 일대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알피니스트들이다. 하지만 알피니스트들의 대열 속에 의외의 인물 두 사람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두자. 철학자 니체와 알프스화가 세간티니다. 부록으로 실은 ‘세계등반 사 100대사건’은 역사지식이 일천한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보너스다. 그의 두 번째 책 <알피니스트 열전>은 산서 독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던져줄 것이라 믿으며 일독을 권한다.
첫댓글 <정상의 순례자들>이 떠오릅니다...책표지가 아주 깔끔하네요.
멋진산서 소개 감사합니다.
심산의 알피니스트 열전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