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제사음식을 위한 시장보기
29 생전에 즐겨 드시는 음식으로
제사음식은 예로부터 두가지 관념이 있었다. 귀신에게만 올리는 특별한 식품이므로 산 사람들의 음식과는 달라야 한다는 인식이 하나이고,
귀신에게 올리는 식품도 보편적인 음식물이므로 산 사람들이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하나이다. 전자는 주로 국가나 왕실의 제사나 무속에서 전승되어 육류든 곡물이든 날것으로 올렸다. 후자는 인간적인 면모가 내포되어 잇으며 주로 중세 이후 서민사회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제사 음식이 산 사람을 대접할 때의 음식과 똑같이 된 데에는 대개 한·당대 이후 중국 서민사회의 조상 제사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주자의 <가례>에 수용되어 오늘날 표준 예법처럼 되었다.
중용의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 하고, 없는 이 섬기기를 있는 사람 섬기듯 하라"는 교훈이 그 이론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정신으로 생전에 드리던 음식을 사후의 제사에도 올리게 된 것이다.
30 마음을 다한 제수 준비
제수(祭需)라 함은 제사에 차리는 음식을 말한다. 제사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정성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 표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첫째 제수는 많은 돈을 들여서 성찬을 차리기보다는 간소하게 차리되 평상시 고인이 즐겨 먹는 음식 또는 가저어에서 먹는 반상 음식에 몇 가지를 더 장만하고 깨끗하게 차려 정성을 다하면 최고일 것이다. 조상은 제사 음식을 받아 먹어야 저세상에서도 영혼에 원기가 있어서 자손에게 많은 복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평소 살아계실 때 고인이 맛있게 먹는 음식으로 제사상을 차리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듯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후손들에게는 더 큰 위안거리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장르 볼 때부터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가장 실하고 깨끗하며, 보기 좋으 재료로 준비해야 한다. 분량은 제사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숫자와 이웃과 나눠먹는 것을 감안하여 조금 넉넉하게 하는 것이 좋다. 산 사람 먹는 것이야 싼 것을 먹을수도 있고, 떨이로 파는 물건을 사다가 맛나게 조리하여 먹을 수도 있지만 내 육신과 정신이 있게끔 나를 만든 조상에게 그런 자세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차라리 제사를 올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31 시장보기
제삿밥은 신위의 수대로 주발 식기에 담으르로 신위수와 음식을 나눌 후손들의 숫자를 감안하여 쌀을 미리 씻어 놓는다.
국(羹)은 신위의 수대로 준비하므로 적당한 양의 쇠고기와 무를 준비한다.
떡(餠)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백설기나 시루떡을 주로 올린다.
탕(湯)은 오늘날의 찌개라고 할 수 있다. 쇠고기, 생선, 닭고기 중 한 가지만 쓰기도 하고 3탕을 준비하기도 한다.
전(煎)은 기름에 튀기거나 부친 것으로 고기전과 생전전 두 종류를 준비한다. 야채전을 준비해도 된다.
적(炙)은 육적, 어적, 계적 등 3적을 세 번의 술잔을 올릴 때마다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한 가지만 준비하도록 하고 올리는 것도 처음 차릴 때 함께 올리면 된다.
나물(熟菜)은 삼색으로 마련하는데 삶아서 무친다. 대개 나물은 3,5,7 등의 홀수로 올린다.
과일은 대추, 밤, 감, 배 등을 꼭 준비하고 계절에 따라 사과, 수박, 등의 과일을 준비하면 된다. 옛날에는 과일이 땅에서 나는 것이라 하여 그릇수를 음수인 짝수로 했다. 그밖에 산자, 약과 등 과자류도 준비한다.
포(脯)는 고기를 말린 육포, 생선의 껍질을 벗겨서 말린 것, 문어나 오징어 중에서 한두 종류를 쓴다.
34 음식 마련할때 유의할 점
제사 음식으로는 옛부터 술은 맑은 술이나 막걸리를 쓰고, 과일은 복숭아를 놓지 않으며, 생선은 꽁치·갈치 등 '치'자기 들어간 생선은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도록 한다. 모든 제수의 조리에는 향신료인 마늘, 고춧가루, 파 등의 조미료를 쓰지 않고 간장과 소금만으로 만든다. 생강은 사용해도 되며 기타 양념은 괜찮다.
잘게 칼질하거나 각을 뜨지 않고 가급적 통째로 조리한다.
밥,국, 탕, 전,적,면,편과 같이 뜨겁게 먹는 음식은 식지 않도록 한다.
제상에 올릴 제수는 자손이 먼저 먹어서는 안 된다. 제상에 올릴만큼 따로 담아 놓고 남는 것을 먹는 것은 괜찮다.
제상에 올릴 제수는 제기에 담으면 큰상에 올려 대기시킨다.
밤은 껍질을 벗기고 육각모양으로 칼로 치며, 기타 과일은 담기 편하게 아래와 위를 도려낸다. 배, 사과와 같은 과일은 꼭지부위가 위로 가게 담는다.
35 제사에 쓰지 않는 음식
옛 사람들은 복숭아를 신선들과 더불어 있는 신령스런 나무로 여겼고 요사스런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쫒는 힘이 있다고 믿어 집안에 심지도 않았다. 복숭아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복숭아나무로 만든 조장, 활 또는 회초리조차 그럼 힘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복숭아는 제사 때 귀신들이 무서워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상에 올리지 않았다. 잉어는 성스러운 영물로 숭앙되기 때문에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으나 요즘은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올리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향이 진한 마늘, 파, 고추, 부추, 미나리 등의 음식을 제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사음식에는 고추, 마늘, 파를 양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갈치, 참, 꽁치, 멸치 등 이름 끝자가 '치'자로 끝나거나 고등어, 방어, 정어리 등 푸른 생선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천하다고 생가하여 옛부터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는다.
36 이런 음식을 차리는 까닭은?
제사에 감을 올리는 이유는 감나무의 상징성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다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데 그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감나무처럼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이어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감을 올린다. 곶감을 올려도 된다.
밤을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다른 식물과 달리 밤은 땅 속의 씨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맺어야만 씨밤이 썩는다. 그래서 밤은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신주를 밤나무로 깎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추는 원래 암수 한 몸인 나무여서 열매가 아주 많이 열리는데 꽃이 핀 곳에 반드시 열매가 맺히므로 후손의 번창을 뜻한다. 즉,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상에 대추가 첫 번째 자리에 놓인다. 거기다가 대추씨는 통씨여서 곧 절개를 뜻하며 순수한 혈통을 의미한다.
배는 껍질이 누헐기 때문에 황인종을 뜻한다.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고 이것은 바로 민족의 긍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배의 속살이 하얀 것은 우리 백의민족에 빗대어 순수함과 밝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제물로 쓰인다.
제사상에 빠지지 않느 북어는 동해 바다의 대표적인 어물이자 머리도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을 많이 두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의미가 있으며, 서해안 대표 어물인 조기는 예전부터 생선의 으뜸이었기 때문에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다.
37 밥과 국은 신위 수대로, 탕은 홀수 그릇수로
식초는 한 종지 담는다. 밥은 신위수대로 식기에 수북하게 담고 덮개를 덮는다. 국도 신위수대로 담고 덮개를 덮는다. 숭늉도 신위수대로 담아 낸다.
떡은 한 제사상에 한 접시를 내는데 현란한 색깔은 피한다.
탕은 홀수 그릇수를 쓰는데 대개 3탕을 쓰고 여유가 있으면 5탕을 쓰기도 한다. 모든 탕은 재료를 끓여서 건더기만 그릇에 담고 덮개를 덮는다.
전은 둥근접시에 적과 함해 홀수 접시를 쓰는데 대개 육전과 어전 2가지를 쓰며 여유가 있으면 고기회와 생선회를 보태 4가지를 쓰기도 한다.
적은 제사음식 중에서 중심이 되는 특별식으로 3가지를 마련해 직사각형 접시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