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틀 속에 집어넣을 수 없었던 한 철학교수의 실존적인 삶의 고백
광주교대 강성률 교수「땅콩집 이야기 8899」 발간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강성률 교수가 자전적 장편소설 ‘땅콩집 이야기 8899’을 출간(작가와 비평)했다. 이 책은 2014년의 ‘땅콩집 이야기’, 2015년의 ‘땅콩집 이야기 7080’에 이은 제3권에 해당하며, 강교수로서는 네 번째 문학작품인 셈이다.
제1권『땅콩집 이야기』는 전남 서해안의 농촌 마을에서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난 주인공 이태민이 여러 차례의 중학교 입학시험 낙방, 고교입시 실패 등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며 버티어 왔는지, 그 내밀한 심리를 파헤치고자 하였다. 제2권인『땅콩집 이야기 7080』은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 서슬 퍼런 유신정권 통치, 10.26과 12.12사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서울의 봄’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두환 정권 말기 4.13 호헌조치로 촉발된 6.10항쟁을 거쳐 6.29선언이 나오고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장면까지 이어지는데, 이 동안 주인공은 부친의 군(郡)농업협동조합장 사퇴, 두 여동생의 사망, 어린 딸의 죽음 등을 겪고 난 후 국립대학 교수로 임용을 받는다.
제 3권에 해당하는 본서『땅콩집 이야기 8899』는 대학교수가 된 주인공이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지런히 연구하여 저서를 내고 학생들 지도에도 소홀함이 없이 사회봉사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결심한다. 만약 아버지가 정치적으로 재기한다면 그 뒤를 이어 금배지도 한번쯤 노려볼만 하다 내심 욕심을 내기도 한다. 1988년 무렵 소련의 붕괴와 독일 통일 등 마침 세계 역사는 바야흐로 민주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다. 한국의 정치 역정에도 5공 비리 및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은 믿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채 백담사로 향한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는 다시 한 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으니. 호남을 배제한 '3당 합당'이 전격적으로 자행된 것. 이에 김대중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그 결과 여야 간에 지방자치의회 및 단체장 선거가 합의된다. 이에 평화민주당 영광함평 지구당 수석부위원장이던 이씨는 제1기 지방의회 선거에 도전한다. 그러나 '친구'인 김팔봉과의 경합에서 도의원 공천에 실패하고 '철천지원수'의 음흉한 계략에 의해 교육위원 선거에서마저 낙선하고 만다. 곧이어 이씨가 착수한 대하 양식사업마저 실패로 귀결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게 되고, 이에 태민은 한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 같은 굵직굵직한 개혁 작업이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지만, 육해공을 망라한 각종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휴거' 소동과 같은 사회적인 병리헌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혼란한 사회상만큼이나 태민의 가정경제 또한 어두운 밤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존경하는 은사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주인공은 저서 집필에 착수한다. 그 결과 베스트셀러 저서를 내기도 하지만,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IMF로 말미암아 모든 것은 물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새로운 토지법 시행을 앞두고 불거진 이씨 소유 12만평의 땅은 타인의 손으로 넘어가고,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자했던 칠산바다 앞 분등 지역의 간척지 땅 또한 전혀 소득을 안겨주지 못하는 신기루로 변한다.
대기업의 문을 닫게 하고 수많은 실업자들을 거리로 내몬 IMF는 대출이자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고, 이에 석사과정부터 누적된 부채로 인하여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던 태민의 가정경제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힌다. 이 경제적 질곡을 벗어나고자 사업 경영에 나서보지만, 이 또한 적자만 남긴 채 문을 닫고 만다. 넓은 뜰 한 가운데 지어진 화려한 한식 기와집 ‘땅콩집’ 역시 이 대목에 이르러 운명적 종말을 고하게 된다. 집 주변의 땅콩밭마저 다른 사람의 수중에 떨어지고 부모님이 고향을 뜨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 태민은 한없이 방황을 이어간다. 한 개인의 삶이 정치, 경제, 가정적 환경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본서는 개인의 삶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다층적 사회구조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목차
1. 주마가편
2. 정치의 계절
3. 인간 말종-지방자치 선거
4. 고집불통의 뒤안길-염산 새우양식장
5. 돈과 권력
6. 문민정부와 종말의 징조
7. 베스트셀러
8. 신기루-12만평의 땅
9. 공유수면 매립사업
10. 장똘백이
11. 뿌리채 뽑히다-땅콩집 처분
12. 절망의 골짜기
13. 죽음 앞에서
<본문 스케치>
안마당 150평의 대지에 건평만 40여 평에 달하는 5칸 접집의 한식 기와집, 금잔디가 깔린 안마당 주변을 돌아가며 기와 돌담을 치고, 한쪽 켠에 연못을 만들어 금붕어와 잉어가 헤엄치며 다니게 했던 곳, 남쪽으로 솟을대문 높이 세우고, 앞쪽 큰 마당은 주차장으로 쓰던 곳, 그곳이 바로 땅콩집이었다.(‘주마가편’ 가운데서)
“노태우가 제1야당인 평민당허고 합칠락 했제. 그래 놓으먼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도 확보허고, 호남 민심도 얻을 것 아니냐?”(‘정치의 계절’ 가운데서)
‘아버지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던 바로 그 시간, 그는 일을 그르치게 하기 위한 쪽으로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던 것이니.’(‘인간 말종’ 가운데서)
“사고 직전, 배가 흔들린 후에 승객들에게 안전하게 선실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있었고, 그래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일부 생존자들의 주장과 “선박회사가 연료를 줄이기 위해 위험한 항로를 운항했다”는 현지 주민의 주장도 나왔다. (‘문민정부와 종말의 징조’ 가운데서)
“유명인들 저서는 작가들이 대필하는 것이 보통이고요. 베스트셀러의 상당 부분은 출판사에서 컨셉을 잡아 갖고 만들어버립니다.” (‘부채와 베스트셀러’ 가운데서)
위선의 탈을 쓰고 가식의 언어를 씨부렁거리며 광대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초대받지 않은 잔치에 와 있는 그 기분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었다.(‘뿌리채 뽑히다-땅콩집 처분’ 가운데서)
‘허물어져가는 토담집이라도, 내 집이라면 맘이 편할 텐데.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 두 평짜리 단칸방이라도 발 뻗고 잘 수 있으면 행복할 텐데. ...죄 많은 이 몸뚱이 뉘일 구들장 하나 있다면, 마냥 행복할 텐데….’(‘절망의 골짜기’ 가운데서)
<작가 프로필>
작가 강성률 교수는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였으며, 전남대 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광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생활연구소장, 교육정보원장 등의 보직을 역임하였고, 사회 활동으로는 광주평화통일포럼 연구위원장, 통일부 통일교육 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및 옴부즈맨 대표를 거쳐 현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앙상임위원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상과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풍향학술상(2회)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1996년 인문과학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2015년 베트남 언어로 출판, 포털 사이트 Naver에 대표적인 해설서로 전문 등재), 2010년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으로 선정한 『철학 스캔들』, 포털 사이트 Daum에 대표적인 해설서로 전문 등재된『위대한 철학자들은 철학적으로 살았을까』, 2014년 한국연구재단 우수도서에 선정된『이야기 동양철학사』, 대한출판문화협회 ‘2017년 청소년 우수도서’로 선정된『칸트, 근세철학을 완성하다』등 15권의 철학도서와 최초의 자서전적 성장소설로서 인터넷소설 <인터파크 도서>에 연재되었던『땅콩집 이야기』(2014년) 및 『땅콩집 이야기 7080』(2015년, 북DB 연재소설 인기순위 1위), 12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한 반려견과의 러브스토리『딸콩이』(2017년) 등 장편소설 3권이 있다. 전남문학신인상, 국제문예 문학신인상, 미주한국 기독문학 신인상 등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등단하였고(한국문인협회 정회원), 기독 타임즈 및 영광신문에 ‘강성률 교수의 철학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