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微祿에 목을 적시고
산으로 돌아가 薄田을 살 것인가
― 두보(杜甫, 712 ∼ 760)
문득 두보를 떠올려 본다. 두보는 북방무인(北方武人)의 호방한 기상을 타고 났으며 종횡무진의 필력(筆力)을 자랑했다. 당대 체제의 바깥을 유랑하며 악정(惡政)을 질타하는 무수한 시를 썼으나 늘 숙식을 걱정하는 가난한 아들-남편-가장-아버지의 삶을 살았다. 두보는 곤곤히 흐르는 장강(長江)의 물 위를 떠가는 배 위에서 59세의 비루한 삶을 쓰러뜨렸지만, 그로부터 일천삼백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어도 시인의 운명의 전형성은 현무암처럼 요지부동이다. '순결한' 시인들이란 조금 지나친 삶을 살다 가는 사람들이다. 당대와의 불화는 그 지나친 삶의 대가로 지불하는 세금을 공제하기 전의 비용이며, '인간 실격'이라는 마지노선에 접근하는 최하의 삶이 품고 있는 불우함은 세금을 공제 당하고 난 뒤의 통장에 찍히는 잔고다.
시인 김영승이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나남 간, 2001)이라는 시집을 시골에 사는 내게 보내왔다. 시집은 이문재의 발문을 포함해 무려 363쪽에 이른다. 지방 중소도시의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시집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 없다. 시인의 '앙상한 全裸의 全身'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시집은 보증하건대 아주 잘 읽히는 시집이다. 한자(漢字)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시집을 읽을 때 옆에 옥편을 두는 것이 덜 번거로울 것이다. 김영승의 정신은 천상병(千祥炳)에서 김관식(金冠植)으로, 다시 김수영(金洙暎)으로 마구 건너뛰며 전횡(專橫)한다. 천상병의, 천진난만함과 순결한 막무가내의 도취정신에서, 김관식의, 생경한 한문 전적(典籍)에서 뽑아낸 동양의 예지(叡智)로 군소 재능들을 향해 능멸하듯이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 일갈하며, 질풍노도처럼 가로질러간 김영승의 정신은, 어느덧 김수영의, 어쩔 수 없이 수락한 소시민의 생활양식이 배태한 설움과 고매한 정신이 낳는 고뇌 사이에서 서성거린다. 그렇다고 김영승의 언어들이 이들 선배시인들에게 예속되는 것은 아니다. 김영승의 언어에는 김영승이라는 크래딧이 붙을 만한 수직(垂直)의 정신이 스며 있다. 어떤 시를 읽을 때 자지러지게 웃다가 어떤 시를 읽을 땐 아주 숙연해진다. 김영승의 시들은 상징이나 언어의 경제적 운용이라는 시의 기초적 소양조차 팽개치고 지나치게 풀어진 사변(思辨)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은 이미 하나의 고원(高原), 혹은 언어의 압축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어떤 진경(眞景)에 도달하고 있다.
김영승이 1959년생으로 인천에서 태어나고, 지방 명문고인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던가, 1986년 [세계의문학] 가을호에 「반성·序」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던가, 지금까지 시집으로 『반성』·『차에 실려가는 차』·『취객의 꿈』·『아름다운 폐인』·『몸 하나의 사랑』·『권태』 등을 펴냈다던가 하는 등의 정보는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영승의 시는 극빈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크는 나무다. 그런데 그 나무에 열리는 것은 과실이 아니라 울음이다. 그 울음은 극빈의 찬란함과 밥 먹고 잠자며 살아야 하는 삶의 비속(卑俗)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오열이다. '내 오늘은 울리/그냥 울리/울면서 그냥/울리.'(「겨울 눈물」)할 때의 그 오열. 시인에게 극빈이란 '극광 같은 극빈'이며 '國賓 같은 극빈'이고, 그것은 '쾌락의 극치'이며 '태극 같은 극빈'이다. 물론 이것이 현실을 비틀어 보이는 말장난이며 반어적인 언술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시인은 어느덧 이것에 길들여져 신체적 친밀감조차 느낀다. 그 때문에 '가난은 ?/행복이다.'와 같은 매우 단호한 시구가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언술은 농담의 뜻을 더 많이 머금은 채 불쑥 발언되는 언술이지만 그 안에 제 무의식에서 침출된 진실의 농도가 배어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시인은 그 극빈의 바닥 위에 제 삶을 부려놓았다. 극빈이란 사회학적인 뜻에서 만성적 저소득의 결과인 과잉 결핍 현상이며, 따라서 사회적 구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일방적 의존 관계로의 전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난은 주체의 경제 활동의 능력이나 수단과 경제적 목표 사이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가계의 소득 수준이 소비 수준에 비해 현저하게 열악함으로써 생겨난 사회적 기회의 상실, 그리고 가치 박탈이 굳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시인의 가난한 형편을 아는 사람들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어떻게 사세요 ?'라고 물으면, 그는 '이것저것 청탁 받은 원고 쓰고/여기저기서 또 꾸기도 하며 그냥/살지요 하며 나는 웃는다/원고 쓴 돈으로 꾼 돈 갚으며 말입니다'(「氷上, 木炭畵」)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 시집에서 가난한 삶의 세목들을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뜻없는 일이다. 시인의 삶의 자리는 가난하되 언감생심, 갱생(更生)을 꿈꾸지 않는 자리에 있다. 그는 어느 편이냐 하면 '나 恒常 여기 꿰매가며 오래오래 살리라'는 편이다. 항상적(恒常的) 가난은 '쪽' 팔리는 삶이다. 그 쪽 팔리는 치욕을 삶의 저변에 상용화해놓고 당당(堂堂)하게 살면서 문득 제 정신이 돌아오면 '나는/얼떨결에/나를 따라오는/나의 그림자에게/꾸벅,/'謝過'' (「威 의 詩人」)를 하기도 한다. 가난의 불합리와 물리적 폭력을 향해 대놓고 질타하는 언어들보다 이렇게 슬쩍 비켜서서 가볍게 잽을 날릴 때 통렬해진다. 시인의 언어는 여러 부분 복자(覆字)로 처리된 자지, 보지, 좆, 씹과 같은 성적 용어들의 남용으로 진창의 현실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 보일 때, 그리고 쓸데없는 여성비하와 마초적인 웅성(雄性)이 뿜어내는 객기와 자만심을 여과없이 노출할 때 갱생 가능성의 여지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불평분자의 혐의를 벗기 힘들다. 김영승의 시는 가난의 새로운 외연(外延)을 견고한 언어로 지어 보일 때 형형한 빛이 난다.
밥을 먹어도 이 여름
얼음 띄운 맑은 물에 반듯하게 썬 오이지
그렇게 먹고 있는 한낮
채송화 노란 꽃 빨간 꽃
봉숭아 흰 꽃 빨간 꽃 이름 모를 蘭
별같이 총총히 핀 작은 꽃 흰 꽃
양귀비 흰 꽃 빨간 꽃
분꽃 그 빨간 꽃 환한 호박꽃
주렁주렁 달린 파란 고추 빨간 고추
그 흰 꽃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걸 보니
노란 나비 흰 나비 큰멋쟁이나비
고추잠자리 실잠자리 밀잠자리 또 왕잠자리
말벌 호리병별 풍이 풍뎅이
다 날아드는구나
인천에서도 배다리 그 도원고개
그 기찻길 옆 길 건너 대장간 철공소 붙어 있는 동네
初伏 지난 이 痛快한 날
닭 한 마리 사다가 놓고 아내는 마늘을 까고 있구나
어린 아들은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나는 어느 꽃잎 어느 날개 속에
이들을 포근히 뉠꼬
생각하는데
强風에, 急流처럼
우리집 그 좁은 골목으로 새까맣게 휘몰아쳐 들어온다.
― 김영승, 「꽃잎 날개」
이 시는 아마도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에 실린 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편 의 하나일 것이다. 시인은 '나 참 돈도 없다 없다 이렇게까지/없는 새끼는 생전하고도 처음이다'(「孤高팥죽」)라고 자조적으로 씹어뱉을 정도의 전근대적 가난을 사는데, 거기에 굴하지 않고 정신의 고고한 기개를 뻣뻣하게 유지하고 있는 풍경을 드러낸다. 이 시의 배면에 깔려 있는 것은 '다 망가졌지만/나는 그래도/그래도 當代의 선비.......'(「新婦」)라는 도저한 자긍심이다. 가난하지만 '정신의 삶', 혹은 '주체의 삶'을 고고하게 살고 있다는 저 유가(儒家)의 고색창연한 선비 정신 위에 이슬처럼 안빈낙도의 초연함이 고이기도 하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초복 지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날의 집안 풍경을 그가 누릴 수 있는 청결한 지복(至福)의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복날 보양식을 만들기 위해 닭 한 마리를 사다 놓고 마늘을 까고 있는 아내,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어린 아들, 얼음 띄운 맑은 물에 반듯하게 썬 오이지와 함께 밥숟갈을 뜨며 가족의 안위를 헤아려보는 지아비가 있는 풍경은 테크노 키드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주 유서 깊은 평화가 일종의 정서로 체화된 풍경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불과 삼십 몇 킬로그램의 극빈의 몸으로 시인 김영승이 발굴해낸 퇴영적 정서의 힘은 완강해서 문득 눈앞을 자욱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그 평화는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평화다. 시인은 그것을 알고 있다. 기분 좋게 밥 한술을 뜨다 말고 심안(心眼)으로 새까맣게 휘몰아쳐 오는 '강풍(强風)'과 '급류(急流)'를 보며 진저리를 친다. 만성이었다가 마침내 손쓸 틈도 없이 통렬하게 터져버리는 복막염과 같이 때늦게 찾아오는 이 분별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시인이 감당하고 있는 가난은 너무나 많은 부재의 다른 이름이다. 시인은 부재 위에 집을 짓고 식구들과 살림살이를 들여놓는 것인데, 따라서 그것은 없는 낙원이다.
시인이 보는 현실은 '非現實의 玄室'(「액자, 또는 액자 걸었던 자리......」)이거나, 하수종말처리장과 같다. '제정신으로 사는 것들은 하나도 없고/온통 정신적인 미숙아와 성격불구자/그 반사회적 인격들'(「滿開한 性器」)이 모여 사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에서 '김영승은 죽었는데/왜 죽었냐 하면/돈이 없어서 죽었다.//돈이 없으면/돈을 벌어야 하는데/왜 벌지 않느냐 하면/김영승은 돈을 안 버는/'性質'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威 의 詩人」)라는 외침은 사실이되, 아울러 진부하고 공소하다. 자칫하면 구제받을 길 없는 자기애에 침몰한 자의 자기변명으로 떨어진다. 진정성이 깃들 여지가 없는, 어쩐지 프티 브루조아의 교양을 흉내내는 의전(儀典)의 어투다. 가끔 김영승의 언어들은 지나친 자기애와 지식 현시욕에 사로잡힐 때 '배운 것 없는 것들이 맨날/미주알 고주알 쓸데없는 말들을 만들어/뇔뇔뇔뇔뇔 呪文을 외우고 자빠져 있으니/어찌 이 나라가 제대로 되겠으며/南北統一이 되겠는가'(「哨所에서」)처럼 이튼 스쿨의 모범적 졸업생 같은 정론을 내놓는다. 새로운 인지(認知)를 품고 발광(發光)하지 않는 언어는 시인의 언어가 아니다. 크고 반듯한 정론의 언어들보다는 「매달려, 늙어간다」에서
별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활비가 또, 똑, 다 떨어져
아내의 패물과 아들의 백일반지 돌반지를
팔았을 땐 조금은 그랬다, 그 모든 값나가는
기념품은 이제 사라지리라, 돈 들여 애써
부여했던 의미들은 옛날 어느 맹인가수가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그저 무지개 타고 온다
라는 사소하고 하찮은 체험에서 가난의 범용성을 발견하는 구절들이 더 마음을 젖게 한다. 이 시의 뒷부분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 무지개 너머엔 아내의 패물과 아들의 백일반지
돌반지를 팔고 으하하하하하하 매우 대견해 하는
그런 인디안 같은 족속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떡거려 보는 것이다 가로등 밑 보도블럭을
기는 여치는 어느새 褐色
겨울을 걱정한다는 것은 모든 짐승의 본분 아닌가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을 한 벌 마련하는
것은 나의 예절이고 또한 은총이라면
정말 별건 아니다, 오늘 아침 텃밭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 여덟 개와 토마토 한 개를 땄다
아내여, 아직 매달려 늙어가는, 호박 여섯 개는 이제, "아빠, 그럼 우리 부자네 !"하는 아들의 탄성처럼,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매달려
늙어가는 호박은, 끌려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문득, 이 아파트, 아니
이 인디안 reservation이 떠나가도록 도끼 들고 황홀하게
춤을 추고 싶지 아니 한가, 아내여
텃밭에서 아들과 아내와 함께 빨갛게 익은 고추와 토마토를 따고, 늙어가는 호박 여섯 덩이를 발견한 아들이 "아빠, 그럼 우리 부자네 !"라고 소리칠 때, 그리고 이미 갈색으로 변해버린 '보도블럭을 기는 여치'를 보며 '겨울을 걱정한다는 것은 모든 짐승의 본분'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을 때, 시인의 정신이 유연하게 박약함을 벗어나는 걸 느낀다. 시인은 가난을 산다. 가난은 그 자체로는 미덕도 악덕도 아무것도 아니다. 가난은 불가피하게 삶의 불편과 제약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나는 시인 김영승이 늙어가는 호박처럼 가난에 '매달려' 있되 '끌려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도소비사회에서 누구나 가난을 피해야 할 일종의 극악한 질병이라고 여길 때 그것을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시인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을 반영한 발칙한 사회적 에피그램이 되는 시대에 가난을 경영하며 고도한 정신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승의 시적 풍요는 백수의 삶을 꿋꿋하게 영위하며 가난을 주고 산 자산이다. 산패(酸敗) 냄새가 진동하는 가난의 신변잡사를 임상의학적 상상력으로 절개(切開)하고 까뒤집고 해체해내 마침내 그것에 불멸의 현존성을 덧씌워낼 때 김영승의 시는 그 언어들이 갖는 자의식에서 획득된 자장(磁場)의 힘으로 극빈 체험의 사적(私的) 토로라는 한계를 스스로 힘차게 벗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