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악회는 산행이 끝나고 나면 꼭 저녁을 먹는다.
겨우 오후 네시가 가까웠고 배도 고프지 않는데
저녁을 먹을려니 이상하지만 이곳의 습관이 그러하니...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으스스 춥지만
몇가구 되지 않는 마을을 돌아 보기로 하고...
식사를 주문해 놓은 식당이고
앞산에 안개가 없다면 산세가 멋질 것 같다.
몇가구 되지도 않고 관광객도 많지 않는데
순전히 우리팀을 보고 난전을 펴 놓고 있는 아주머니가 딱해 보여서
참마 씨앗을 한됫박 팔아드렸더니 대단히 고마워 하시며 인사를 하신다.
마을이 몇가구 되지도 않으니
돌아보고 자시고 할 게 없고 고요하기만 하다.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는데
뚝배기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청국장과
여러 산채가 정갈하게 담긴 접시를 보니 식욕이 동한다.
뜨거운 청국장 한국자 퍼다가 맛을 보니
옛맛 그대로며 금방 추위까지 확 가시는 듯하다.
이렇게 정성을 드려 차려낸 식탁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고 고향에 온 것 같고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음식은 곧 그 나라의 문화며 고향이고 어머니품 같은 게 아닐까 한다.
우리 고향에서는 곶감이 지붕위에 널려야 하고
강원도에서는 옥수수가 처마에 길게 매달려 있고
전라도 친구집에 갔더니 말라가는 홍어가 냄새를 풍겨야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어린시절 학교를 파하고 배가 고파 집에와서
"엄마"하고 부르면 "그래 배가 많이 고프지?"하면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장찌게와 몇가지 찬을 차려 오셨고
내가 맛있게 먹는 걸 옆에서 지켜 보시며 흡족해 하셨다.
그 맛은 일품이었고 그 된장이 곧 어머니고 고향이고 그리움이다.
요즘은 배가 고파 집에와도
반가워 하지도 않는 냉장고가 엄마를 대신하게 되었고
정성이 전혀 담기지 않은 차가운 음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문화와 고향과 어머니의 정이란 게 없어진 음식이 되고 말았다.
여행가 한비야님이 세계를 두루 여행하며
지칠대로 지쳐 혼자 숙소에 앉아 처절한 외로움에 떨며
우리의 라면과 고추장을 안고 펑펑 울었다는 글을 읽고 공감했었다.
또 미군이 적지에서 포로로 잡혀 있다가
풀려 났을때 뭐가 제일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단번에 "콜라"라고 크게 외치는 걸 보면 그게 맛이나 영양면 보다
그네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정서와 문화가 그립다는 얘기로 들렸었다.
모든 찬이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조미료보다는 손과 정성이 많이 가야하고
어머니의 손맛이 더해진 어릴적 부터 먹어온 찬이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니
이런 찬을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엄두를 내기가 어렵고 대개 시장의 찬가게에서 사다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두고두고 먹는 게 일반적인 신혼 가정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여러날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갓 꺼낸 차가운 반찬을 보면 그 맛이 반감하고
왠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밥상같이 보이지도 않는다.
음식은 단순히 고픈 배를 채우고
양양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향에 대한 문화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과 그리움을 섭취한다는 생각이든다.
인스턴트 식품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어디를 가든지 적은 돈으로 간편하게 사먹을 수가 있어서
편리해지긴 했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은 사라져 버린 시대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성장하여 추억의 음식이라하면
냉장고 속의 우유나 콜라나 라면이나 차가운 김밥이 아닐까 한다.
오랫만에 시골에와서 시골의 향이 뜸뿍 담긴 따스함을 대하니 기분이 좋다.
배가 크게 고프지 않았겠지만
모두들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청국장과 정성이 담긴
시골스러운 찬을 대하니 식욕이 돋고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이 집의 주인장이신 이경자 사장님과
그의 옆에 얼굴이 엄청 넓으신 분은 사장님의
남편님이자 졸개이시며 호가 剛中인 장익환님이다.
여러 반찬을 수십번에 걸처 다시 주문해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푸짐하게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집의 옥호는 : 선암가든
전화는 : 011-482-5447 .043-422-1447이고
이렇게 광고를 해서 이집 음식을 드셔도 욕을 먹지 않을 것 같음.
후딱 식사를 하고 정원 구경을 하는데
바깥 주인장께서 나오셔서 설명을 해 주신다.
"이 산에는 물이 없지요?
비가오면 모두 땅속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지
이곳 샘에서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의 물이 솟아 나옵니다.
천연암반수라는 좋은 물이라는 게 이런 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키가 1.5미터 남짓되고
굵기가 8센티 가랑되는 오래된 회양목이 있다.
가지에는 오래된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끼가 많이 붙어 자란다.
"이 키가 작은 회양목은 150년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제 조부때부터 키워온 것이니 우리집에서 나이를 제일 많이 먹었지요."
"이 옆에 이것보다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죽고
이것은 아들 느티나무이며 저와 나이가 비슷할 것입니다."
"위의 나무가 제가 어릴때 이만했었지요.
이 나무는 우리집을 지키는 손자 느티나무 입니다."
"이 바위에 비스듬히 새겨진 멧돌은
어릴때부터 이렇게 있었는데 콩을 곱게 가는
멧돌이 아니라 벼의 껍질이나 보리의 껍질을 대충 벗기는데
사용한 걸로 생각되며 연자방아 구실을 하는 걸로 추정합니다.
저는 지금 집의 뒷켠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있는 토박이입니다."
이런 사항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를 해놓으면
후세의 사람들이 향토사학을 연구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 같다.
이 외에도 剛中 장익환 선생은
동양철학에 능통하시고 단양의 향토사학에
대해서도 해박해시고 풍수까지도 공부를 하신 것 같다.
오랫만에 친절과 정성이 가득담긴 저녁을 맛보고...
아!! 이집 식당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시 한구절이 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돌아 온다.
아이야 박주 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한석봉의 시가 이 집 주인장의 마음같아 보인다.
죽장망혜 [竹杖芒鞋]에 단표자 [單瓢子]로 시작되는
옛 사람들의 무욕과 낭만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식당인 것 같다.몹시 피곤해서 콧속이 확확 달아 오르지만
시원스럽게 달리는 버스속에서 보는 밖의 풍경도 기분이 좋다.
나라가 부강해지니 고속 고가도로가 시원스럽게 생기고
다음달 정기 등산때는 온천지가 녹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 같다.
이런 도락산 등산을 마치고...
하이고!!! 등산 한번 다녀오고 여러번도 울궈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