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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적 언어는 문자적 언어와 어떻게 다른가
※ 질문의 ‘분자적 언어’는 문맥상 ‘문자적 언어’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실제로 분자생물학의 ‘분자 언어’를 의미한 것이라면 별개의 설명이 필요하다.
[1] 결론부터 말하면
사진적 언어는 빛, 프레임, 시점, 거리, 초점, 색채, 순간, 배열 등의 시각적 관계를 통해 의미를 형성하는 표현체계이다.
문자적 언어는 낱말과 문법, 문장구조, 사회적 약속을 통해 대상을 지시하고 생각을 진술하는 표현체계이다.
둘 다 의미를 전달하므로 넓은 의미에서는 ‘언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사진에는 문자언어처럼 고정된 어휘와 보편적인 문법이 없다. 따라서 ‘사진적 언어’는 엄밀한 언어학적 언어라기보다 시각적 의미 형성 방식에 가까운 개념이다.
[2] 문자언어는 약속된 기호이고, 사진은 닮음과 물리적 흔적을 함께 가진다
소쉬르에 따르면 문자언어의 기호는 기본적으로 자의적이다. ‘나무’라는 글자와 실제 나무 사이에는 자연적인 닮음이나 물리적 연결이 없다. 한국어 공동체가 그것을 나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의미가 성립한다.
반면 나무사진은 실제 나무의 형태와 어느 정도 닮아 있다. 또한 전통적인 사진에서는 나무에서 반사된 빛이 렌즈를 통과하여 필름이나 센서에 작용했다는 물리적 연결도 존재한다.
퍼스의 기호론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도상기호(icon): 대상과 닮아서 의미하는 기호
② 지표기호(index): 대상과 물리적·인과적으로 연결된 기호
③ 상징기호(symbol): 사회적 약속과 관습으로 의미하는 기호
문자 ‘나무’는 주로 상징기호이다. 나무사진은 나무와 닮았다는 점에서는 도상기호이고, 실제 나무에서 온 빛의 흔적이라는 점에서는 지표기호이다. 그러나 그 사진이 ‘생명’, ‘고독’, ‘환경파괴’를 의미하게 되는 순간에는 문화적 상징도 작동한다.
따라서 사진은 도상성·지표성·상징성이 결합된 복합기호이다.
(Ferdinand de Saussure,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1916; Charles S. Peirce의 기호론은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eirce’s Theory of Signs」 참조)
[3] 문자언어에는 분절된 단위가 있지만 사진은 연속적인 화면으로 제시된다
문자언어는 분절된 단위로 구성된다.
① 음소가 결합하여 형태소와 낱말이 된다.
② 낱말이 문법에 따라 문장을 이룬다.
③ 문장은 주어, 목적어, 시제, 부정, 조건, 인과관계를 표시한다.
예를 들어 “그 남자는 어제 집에 가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다음을 비교적 분명하게 표현한다.
① 주체: 그 남자
② 시간: 어제
③ 장소 또는 방향: 집
④ 행위: 가다
⑤ 부정: 가지 않았다
반면 한 남자가 길에 서 있는 사진만으로는 그가 어제 집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정하기 어렵다. 사진은 그가 왜 그곳에 있는지, 집에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 가고 싶은지까지 문법적으로 표시하지 못한다.
사진에는 단어와 정확히 대응하는 최소단위가 없다. 사진 속 모자, 손, 그림자, 표정 등을 의미 단위로 분석할 수는 있지만, 언어의 단어처럼 안정된 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진의 어휘”와 “사진의 문법”이라는 표현은 유용한 비유이지만, 문자언어의 어휘·문법과 완전히 동일한 체계는 아니다.
[4] 문자언어는 순차적으로 읽고, 사진은 공간적 관계를 한꺼번에 제시한다
문장은 앞에서 뒤로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읽는다. 단어의 순서가 달라지면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와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문장구조 때문에 의미가 달라진다.
사진은 한 화면 안의 요소들을 공간적으로 함께 제시한다. 인물, 배경, 빛, 색, 사물의 위치가 동시에 나타난다. 관객의 시선이 사진 안을 이동하므로 실제 감상에는 순서가 생기지만, 그 순서가 문자언어처럼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레싱은 회화와 조형예술은 공간 속에 나란히 놓인 형상을 다루고, 언어와 시는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행위를 표현하는 데 상대적으로 적합하다고 구분하였다. 다만 이것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다. 연작사진은 배열을 통해 시간적 서사를 만들 수 있고, 문자 역시 표나 구체시처럼 공간적 구조를 사용할 수 있다.
(Gotthold Ephraim Lessing, 『Laocoön』의 매체 구분에 관한 개요는 Routledge Encyclopedia of Philosophy 참조)
[5] 사진은 구체적인 것을 강하게 보여 주지만 추상적인 관계를 단독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사진은 한 사람의 표정, 낡은 벽의 질감, 특정 장소의 빛, 우연한 몸짓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반면 문자언어는 다음과 같은 추상적 내용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진술할 수 있다.
① 그는 가난하다.
② 그는 가난하다고 오해받았다.
③ 가난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결과이다.
④ 만약 제도가 달랐다면 그는 가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이 허름한 방에 앉아 있는 사진은 가난을 암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가난의 원인, 사회제도의 책임, 촬영자의 판단까지 확정하지는 못한다.
사진이 추상적 관념을 전달하려면 흔히 다음 요소가 필요하다.
① 반복되는 시각적 패턴
② 여러 사진의 배열
③ 서로 충돌하는 이미지의 병치
④ 상징적 사물
⑤ 제목과 설명문
⑥ 관객이 이미 가지고 있는 문화적 지식
그러므로 사진은 추상적 사고를 못 하는 매체가 아니다. 문자처럼 직접 진술하는 대신 구체적인 사물과 장면의 관계를 통해 추상적 사고를 유도하는 매체이다.
[6] 사진의 의미는 크게 외연과 함축으로 구성된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서 보이는 직접적인 내용과 문화적으로 해석되는 의미를 구분하였다.
(1) 외연적 의미
사진에서 무엇이 보이는가에 관한 비교적 직접적인 층위이다.
예: “정장을 입은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2) 함축적 의미
그 장면이 문화적 지식과 결합하여 무엇을 연상시키는가에 관한 층위이다.
예: 권위, 성공, 관료주의, 고독, 가부장제, 노동, 긴장감.
정장을 입은 남자의 사진이 반드시 ‘권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장, 자세, 책상, 조명, 촬영 각도에 관한 사회적 관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권위라고 해석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바르트가 사진의 외연을 ‘코드 없는 메시지’라고 부른 것은 사진에 문화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는 같은 사진 안에 비교적 직접적인 재현과 문화적으로 구성된 함축이 함께 존재하는 역설을 설명한 것이다.
사진의 함축은 포즈, 사물, 조명, 촬영효과, 미적 양식, 사진의 배열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Roland Barthes, 「The Photographic Message」 개요, 1961; 「Rhetoric of the Image」, 1964)
[7] 사진은 다의적이고 문자는 그 의미를 고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은 한 장면을 보여 주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완전히 결정하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의 사진은 다음처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① 외로운 사람
② 비를 즐기는 사람
③ 퇴근하는 노동자
④ 연인과 헤어진 사람
⑤ 기후변화에 관한 사진
⑥ 우산 광고의 이미지
바르트는 이미지가 여러 잠재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다의성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때 제목, 설명문, 기사, 광고 문구는 관객이 가능한 의미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문자의 ‘고정’ 또는 ‘정박’ 기능이다.
예를 들어 같은 사진에 어떤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① 〈비 오는 날〉: 날씨와 분위기에 집중하게 한다.
② 〈해고 통보를 받은 오후〉: 인물의 경제적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③ 〈기록적인 폭우〉: 기상재해에 집중하게 한다.
④ 〈방수 코트 신제품〉: 사진을 광고로 바꾼다.
문자는 사진에 없던 사실을 덧붙일 수도 있고, 사진의 의미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왜곡할 수도 있다.
(Roland Barthes, 「Rhetoric of the Image」, 1964)
[8] 사진은 사실의 흔적을 제공하지만 완전한 명제를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무언가가 카메라 앞에 있었다”는 강한 흔적을 제공한다. 바르트는 이를 “그것은 존재했었다”라는 사진의 존재론적 특성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사진이 어떤 사건의 흔적이라는 사실과 그 사진이 사건의 진실 전체를 설명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시민을 붙잡은 사진이 있다고 해 보자. 사진은 그 순간 두 사람이 그러한 자세로 있었다는 흔적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 한 장만으로는 다음을 모두 알기 어렵다.
① 사진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② 누가 먼저 어떤 행동을 했는가.
③ 경찰이 체포하는 것인지 구조하는 것인지.
④ 사진 밖에 누가 있었는가.
⑤ 촬영자가 왜 그 순간을 선택했는가.
사진은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증거의 의미는 촬영 전후의 상황, 설명문, 제도, 다른 자료와 결합하여 구성된다.
존 태그가 지적하듯 사진의 증거성은 사진 자체에만 들어 있는 절대적 속성이 아니다. 경찰, 법원, 언론, 병원, 기록기관 등의 제도적 절차가 특정 사진을 증거로 작동하게 한다.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1980; John Tagg, 『The Burden of Representation』, 1988/2021)
[9] 문자언어의 문법은 비교적 명시적이지만 사진의 ‘문법’은 역사적으로 변한다
문자언어에는 비교적 명확한 문법 규칙이 있다. 문법을 크게 어기면 문장의 의미가 불분명해진다.
사진에도 다음과 같은 관습이 있다.
① 낮은 시점은 대상을 강하고 권위적으로 보이게 한다.
② 높은 시점은 대상을 작고 약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
③ 어두운 조명은 불안이나 비극을 암시할 수 있다.
④ 중앙 배치는 안정성과 권위를 강조할 수 있다.
⑤ 흔들림은 속도, 혼란, 불안정성을 나타낼 수 있다.
⑥ 빈 공간은 고독이나 부재를 암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절대적인 문법이 아니다. 낮은 시점이 언제나 권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어두운 사진이 언제나 슬픔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 장르, 문화, 주변 사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따라서 사진적 언어의 규칙은 자연법칙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시각적 관습이다. 사진가는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
[10] 문자언어도 모호하고 사진도 정확할 수 있다
“문자는 정확하고 사진은 모호하다”라고 단순하게 대립시키는 것도 오류이다.
문자 역시 은유, 반어, 시, 애매한 대명사 때문에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사진은 얼굴의 상처, 건물의 위치, 특정한 물건의 상태처럼 문자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정확한 차이는 다음과 같다.
① 문자언어는 명제, 부정, 조건, 인과관계를 명시하는 데 강하다.
② 사진은 구체적인 외관, 공간관계, 순간의 세부를 제시하는 데 강하다.
③ 문자는 대상을 개념으로 일반화하기 쉽다.
④ 사진은 개별적인 존재와 우연한 세부를 드러내는 데 강하다.
따라서 두 매체는 정확성과 모호성의 우열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다루는 체계이다.
[11] 사진적 언어가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
문자언어에서는 작가가 “도시 개발은 주민의 기억을 파괴한다”라고 직접 진술할 수 있다.
사진에서는 그 생각을 문장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관계로 구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철거 직전의 주택 내부를 반복 촬영한다.
② 주민이 떠난 빈방과 새 아파트 견본주택을 병치한다.
③ 벽에 남겨진 생활의 흔적을 가까이 촬영한다.
④ 개발 홍보물과 철거 현장의 실제 모습을 함께 배열한다.
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장소를 연작으로 구성한다.
이렇게 하면 사진은 “도시 개발이 기억을 파괴한다”라는 문장의 삽화가 아니라, 관객이 공간의 부재와 충돌을 직접 발견하도록 만드는 시각적 구조가 된다.
사진적 언어는 작가의 생각을 글자 대신 빛과 사물의 관계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시간·공간·배열을 통해 생각이 발생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12] 사진 한 장과 사진 연작의 언어는 다르다
사진 한 장에서는 화면 내부의 관계가 중요하다.
① 무엇이 포함되고 제외되었는가.
② 어디에 초점이 맞았는가.
③ 대상과 촬영자의 거리는 어떠한가.
④ 빛과 색은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가.
⑤ 우연한 세부가 중심 의미를 흔드는가.
연작사진에서는 사진과 사진 사이의 관계가 새로운 언어가 된다.
① 반복: 공통된 구조를 강조한다.
② 대비: 차이를 부각한다.
③ 생략: 관객이 빠진 내용을 상상하게 한다.
④ 순서: 시간과 인과관계를 암시한다.
⑤ 변주: 같은 주제를 다른 모습으로 확장한다.
⑥ 충돌: 서로 모순되는 의미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배열은 문장의 통사구조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의미가 하나로 확정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바르트가 사진의 함축 방식 가운데 ‘구문’ 또는 ‘연쇄’를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13] 사진과 문자는 대립하기보다 함께 작동한다
사진과 문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 신문, 광고, 사진집, 전시,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사진은 대부분 제목, 설명, 배열, 장소와 함께 제시된다.
W. J. T. 미첼은 이미지와 문자를 독립적이고 순수한 영역으로 나누기보다 서로 침투하고 결합하는 표현형식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은 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사진은 제목과 설명에 의해 해석된다.
사진집에서 제목과 글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글이 사진에서 이미 보이는 내용을 대신 설명하거나, 사진이 글의 결론을 확인하는 삽화로만 사용되는 경우이다.
(W. J. T. Mitchell, 『The Language of Images』, 1980; 『Picture Theory』, 1994)
[14] 핵심 비교
① 문자적 언어의 기본 단위: 낱말과 문장
사진적 언어의 기본 재료: 빛, 대상, 프레임, 시점, 순간, 배열
② 문자적 언어의 기호관계: 주로 사회적 약속
사진적 언어의 기호관계: 닮음, 물리적 흔적, 문화적 약속의 결합
③ 문자적 언어의 구조: 순차적이고 분절적임
사진적 언어의 구조: 공간적이고 상대적으로 연속적임
④ 문자적 언어의 강점: 추상개념, 부정, 조건, 시제, 인과관계
사진적 언어의 강점: 구체적 외관, 공간, 순간, 우연한 세부
⑤ 문자적 언어의 문법: 비교적 명시적이고 공유됨
사진적 언어의 문법: 관습적이며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함
⑥ 문자적 언어의 의미: 문법으로 범위를 비교적 좁힐 수 있음
사진적 언어의 의미: 화면 밖의 맥락에 열려 있고 다의적임
⑦ 문자적 언어의 전달 방식: 생각을 진술함
사진적 언어의 전달 방식: 대상을 보여 주고 관계를 구성하여 생각을 유발함
[15] 최종 정리
사진적 언어는 문자적 언어를 사진으로 바꿔 놓은 것이 아니다.
문자언어가 “무엇이 왜 그러한가”를 낱말과 문법으로 진술한다면, 사진적 언어는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고 서로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를 빛, 프레임, 순간, 사물, 배열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사진의 의미가 문자처럼 하나로 확정되지 않는 것은 사진적 언어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이 구체적인 현실의 흔적을 보여 주면서도 그 흔적의 의미를 관객의 문화적 지식과 해석에 열어 두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가장 간결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문자적 언어는 생각을 문장으로 진술한다. 사진적 언어는 보이는 것들의 관계를 구성하여 생각이 발생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