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시간 있나..?”
한참 잊고 있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 고등학교 시절 늘 같은 반이었지만
동창 모임 말곤 따로 만나는 사인 아니었다.
“밥이나 한 번 먹자고,,”
그의 목소리는 안개 속에서 들리는 듯 했다.
나올 때 카메라도 가져오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4년 여 만에 보는 그는
무척 수척해보였다.
학창 시절 소 눈 이란 별명을 들을 만큼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친구였다.
늘 조용히 성실했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서 정년퇴임했다.
식사를 하면서 그가 내는 목소리는 인간
내면의 세계에 대하여 떠올리게 하고,
그의 언어는 현재의 순간을 대단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는 듯
낮고 회고적인 울림 속을 맴돌았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공원을 잠시 걷던 중
피곤해보인 그가 벤치에 앉자고 했다.
그리고 카메라로 상반신만 나오게
찍어 달라 했다.
카메라의 망원렌즈는 그의 얼굴을
자연의 오리지널 언어로 읽고
LCD창은 그의 모습에서 뭔가 빠져나간
것 같은 추상적 화면으로 해석했다.
나는 마음을 열고 몇 번 셔터를 닫았지만
사진 속에서 그와 깊은 영적인 만남을
갖는 듯 내 카메라의 뷰화인더는 어두웠다.
촬영을 마치고 힘에 겨운지 그가 흐느적
거리며 호주머니 속에서 조그만 병을 꺼내
하안 알약 하나를 혀 밑에 밀어 넣었다.
나도 심장이 좋지 않아 비상시 혀 밑에
넣는 혈관 확장제를 가지고 다닌다.
그런 약이냐 물으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의 등 뒤 울타리에 핀 빨간
장미꽃들이 바르르 치를 떨었다.
“보통 하루에 한 번 먹는데
요즘엔 세 시간 마다 먹는구만..“
그 때 난 알았어야 했다, 그의 말에
어린 꽃들이 그토록 아프게 떨던 이유를.
일주일이 지나 비가 세차게 퍼붓던 어제
문자 메시지가 떴다,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그가 떠난 후에야 급성 혈액암을 앓았던 게
알려졌다.
그 때 그가 혀 밑에 넣었던 것은
진통제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친구는 23년 3월초 불치의 판정을 받아 아무
에게도 알리지 않고 옛 친구들을 만나
이승의 이별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와 만나 사진을 찍던 그곳으로 갔다.
그가 앉았던 벤치 뒤 울타리의 장미꽃들은
슬픔이 진화한 반항적인 검붉은 색으로
그의 환영과 나 사이를 누더기 누더기 덮고있었다.
* 이 노래는 예전에 소개한(?) 것 같은데 ..
가사는 아래에 번역해 올림
https://youtu.be/p8YxX7I3snw
<빗속으로>
번역 - 배홍배
비가내리네.
천갈래 만갈래 길이 흩어지며 내리네
내 영혼 깊은곳까지 흩어져 내리네
바람은 젖은 가슴 속으로 휘몰아치는데
당신은 아시나요 내리는 비의 의미를
내리는 빗물은 나의 눈물인 것을
빗물은 아프게 내 얼굴에서 흘러내리네
당신은 지금 먼 사람이 되어 떠나갔지만
당신은 아직 내 마음속에 있네
당신은 아시나요 내리는 비의 의미를
나의 눈물인줄도 모르고
당신은 빗물을 밟고 지나가고 있네
첫댓글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비의 노래는 감사히 듣고 갑니다
네 ~~ 감사합니다 사파이어님.^~^
함께 읽으며 마음의 전율을 느꼈어요.
저도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폭우가 무섭게 쏟아지는 이런 날은 어떠하실까요?
위로를 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나님.^^
제 카페로 모셔갑니다.
네 ~~ 감사합니다.^^